DAY-0 / 유리로 된 달 - 프롤로그

 

 

 

문득, 눈이 떠졌다.

 

모두가 잠든 무렵, 밤의 냉기에 눈꺼풀을 뜬다.

어두운 밤.

집 안에는 아무도 없다.

 

익숙한 다다미와 장지문 냄새.

촘촘히 세공한 것 같은 하늘.

방구석에는 찐득하게 달라붙은 오래된 그림자.

그것은 음표 하나 없는 정적이며,

옷자락 스치는 소리조차 상실 중.

 

꼼짝 않고 선 채로, 멍하니 사람을 기다린다.

절멸한 소리 속에서 과거를 그린다.

꾸었던 꿈은, 만약의 이야기들 뿐이었다.

예를 들면,

 

만약, 하늘이 흐렸더라면.

만약, 깨닫는 것이 조금 빨랐더라면.

만약, 그가 쇠약해지지 않았더라면.

만약,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만약――여기서, 당신이 깨어나지 않았더라면.

 

줄곧 기다려도 끝은 오지 않는다.

밤은 더욱더 깊어져간다.

분명 이제, 집안에는 아무도 없다.

혼자서는 무서우니까 모두를 만나고 싶어서,

홀로 마당으로 나갔다.

 

호 하고 내뱉는 숨이 하얗게 번져간다.

마당은 무척이나 손끝이 아플 정도로 추웠다.

얼어가는 별.

깊은 어둠.

하염없이 세계를 비추는 차가운 빛.

 

무성한 풀. 짓밟는 감촉. 감감무소식인 신발 소리.

저택의 마당은 무척 넓어서

주변은 깊은 어둠에 갇혀서.

숲의 나무들은 검고 검은

커다란 커튼 같았다.

 

마치 어딘가의 극장 같다.

가슴의 고동으로, 목이 메일 것 같다.

스윽 나무 꼭대기의 창문이 열리고,

곧, 연극이 시작되는건가 두근거렸다.

 

귓가에, 시끌시끌 벌레소리가 기어들어온다.

멀리서 다양한 소리가 난다.

검은 나무들로 된 커튼 안쪽.

숲 안쪽에서 모두가 즐거운 듯이 떠든다.

막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열리지 않았다.

열리지 않았다.

 

참지 못하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무척, 어둡다.

숲은 깊어서 차가운 빛도 닿지 않는다.

다양한 소리가 나고

다양한 것이 있다.

그러나 어두워서 잘 모르겠다.

도중에 누군가와 스쳐지나갔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그저 차갑다.

안구 깊숙히 저릴 정도로 차가운 겨울.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

좀 더 깊이 걸어갔다.

 

나무들의 베일을 빠져나간 뒤.

숲의 광장에는 모두가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흐트러진 모습.

모두 뿔뿔이 흩어진 손발.

한편 새빨간 숲의 광장.

 

                    ―――모르겠다.

 

저편에서 모르는 사람이 다가온다.

흉기를 손에 들고 다가온다.

모두를 그렇게 한 것처럼 나도 뿔뿔이 흩어지게 하고싶은 것처럼.

 

―――잘 모르겠다.

 

멍하니 그 사람을 본다.

하릴없이 흉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가 나의 앞에 달려와서

대신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어린애니까 잘 모르겠다.

 

철퍽.

따뜻한 것이 얼굴에 묻는다.

붉다.

토마토처럼 붉은 물.

조각조각난 사람.

그 어머니라는 사람은

그 후로, 내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

 

......정말로 잘 모르겠지만.

그저 추워서.

나는 울 것만 같았다.

 

숲은 어두워서 보고싶지 않다.

땅은 붉어서 보고싶지 않다.

그래서, 하늘을 올려다보기로 했다.

 

―――하늘을 가리는 천개(天蓋)

 

눈에 따뜻한 심홍색이 섞여든다.

안구 깊숙이 스며든다.

하지만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다.

밤하늘에는, 그저 달이 홀로 떠있다.

 

―――밤을 여는 새하얀 얼굴

 

모르는 사람은

이번에야말로 나를 조각내러 다가온다.

터벅터벅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도 나는 멍하니

언제까지나 짙푸른 그림자를 올려다본다.

 

―――우아하고도 아름답게 낙하하는 별

 

무척 신기하다.

어째서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을까.

 

   아아―――오늘밤은 이렇게나

 

깨닫고보니 모르는 사람은 눈앞에.

소리도 없이, 쿵, 고통이 느껴졌다.

그것은 가슴 한가운데.

휘날려 춤추는 베일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세계가 점점 사라져간다.

그 속에서 계속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아아―――눈치채지 못했다.

 

오늘밤은 이렇게나

 

달이, 아름답―――――다――――

잠들지 못하는 밤의 캄페지오

 

무르

...푸하-!

이거봐 이거봐, 엄청난 걸 발견했어! 클로에 얼굴보다 커!

 

히스클리프

그, 그거 정말 조개 맞아...? 캬악대고 있는데?

 

네로

지금 입 같은 거 벌린거 아니냐?

 

무르

아하하, 물렸다-!

 


 

시노・레녹스

.......

 

루틸

.......

 

무르가 수수께끼의 조개를 잡았을 무렵, 조금 떨어진 해안에는 루틸과 레녹스, 시노, 이 셋이 모여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작은 나뭇가지를 손에 든 루틸을 레녹스와 시노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루틸

...앗.

 

레녹스

붙었어?

 

루틸

아뇨, 나무가 부러져 버렸어요.

 

시노

무슨 일이지.

 

현자

저기, 뭘 하고 있는 건가요...?

 

시노

모닥불 준비다. 야영할 때 우리들은 마법으로 불을 피우지만, 인간은 나무판자와 나뭇가지를 비벼서 불씨를 만들잖아.

 

레녹스

그걸 루틸이 해보고 싶다고 해서 도전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현자

앗, 그렇군요...! 엄청 무인도 같네요.

 

 

루틸

그렇죠? 저, 서바이벌스럽게 불을 피우는 걸 옛날부터 동경해서...!

좋아! 다시 한 번 도전해볼게요.

 

의욕 가득한 루틸은 소매를 걷고 다시 나뭇가지를 쥔다.

 

루틸

.......

 

시노・레녹스・현자

.......

 

루틸

...후우. 역시 어렵네요.

《올토닉 세토마오제》

 

시노・레녹스

앗.

 

현자

(결국 마법으로 불을 피웠어...)

 

개방적인 해변에 마법사들의 밝은 목소리가 울린다. 아무도 없는, 아무것도 갖추어지지 않은 만큼 무엇을 해도 자유다.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이건 이것대로 재밌는 바캉스가 될지도 모른다.

 


 

레녹스

현자 님. 날이 저물기 전에 저녁밥에 들어갈 식재료를 조달하려고 합니다만.

 

현자

그렇네요. 어두워지기 전에 준비를 끝내둘까요.

 

피가로

모두가 식재료를 조달하러 갈 생각이라면 그 동안 내가 거점을 만들어둘게. 미틸, 도와줄래?

 

미틸

네. 맡겨주세요!

 

네로

거점은 둘에게 맡기고, 나머지는 식재료 조달반이구만.

 

무르

난 꿈을 먹는 고리의 소재를 찾으러 갔다올게-!

 

히스클리프

엑? 무르?

 

루틸

벌써 가버렸네요... 혼자서 괜찮을까요?

 

시노

무르라면 괜찮겠지. 이 섬을 가장 자세히 아는 것 같으니까.

 


 

우리들은 식재료를 구하러 일단 숲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네로

자, 이 섬에서 먹을만한 게 있다고 한다면...

 

시노

고기.

 

네로

그건 먹을만한 게 아니라 먹고싶은 거 아니냐.

 

시노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짐승 발자국도, 둥지가 지어진 흔적도 봤어.

이 숲에는 엄청 큰 사냥감이 있다고. 내가 사냥해오지.

 

레녹스

시노가 그렇게 말한다면 틀림없겠지. 거대한 동물이 있다면 먹이도 풍부하다는 게 되겠네.

 

루틸

물고기나 과일을 손에 넣을지도 몰라요. 아까 미틸이 만들고있던 낚시 도구를 빌리는 건 어떨까요?

 

레녹스

그거 좋겠네. 나랑 루틸은 물고기를 낚아올게.

 

현자

물고기 기대할게요!

 

히스클리프

두 사람 모두 조심해서 다녀와.

 

루틸

커다란 놈을 낚아 올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다녀올게요!

 

시노

우리들도 지고있을 순 없어. 네로, 거물을 사냥하러 간다.

 

네로

네네.

 

히스클리프

그렇다면 나도...

 

시노

히스는 안 와도 돼. 네가 있으면 걸리적거려.

 

히스클리프

...윽. 뭐야 그 말.

 

시노

사냥은 나와 네로만으로 충분해. 넌 현자와 과일이라도 찾으러 가.

 

히스클리프

.......

알겠어.

가볼까요, 현자 님.

 

현자

앗... 네.

 

네로

정말이지 너희는... 이런 데서까지 싸우냐고.

 

시노

딱히 싸우고 싶었던 건 아냐.

걸리적거리는 건 사실이다. 그 녀석은 피를 보는 것도, 냄새도 익숙하지 않아.

생명을 죽이는 것에 맞지 않아.

처음 수렵을 나갔을 때도, 히스는 눈앞에 있는 사냥감을 마지막까지 쏘지 못했어.

 

네로

그 녀석은 상냥하니까 말이지.

 

시노

그래. 상냥하고 현명하고 훌륭하다.

사냥따위는 못해도 괜찮아.

그런 건 내가 할 일이니까. 그 녀석이 못하면 내가 사냥감의 목을 따면 되는 것 뿐이다.

 

네로

.......

 

시노

히스는 나와 달라. 히스밖에 할 수 없는 일을 하면 돼.

그저, 그것 뿐일 이야기인데 그 녀석은 언제까지 이해하지 못할 셈인지.

 

네로

...그렇구만 그렇구만.

 

시노

머리 쓰다듬지 마. 난 어린애가 아니라고.

 

네로

하하. ...응?

(...뭐지? 지금 기척...)

(이거, 설마...)

 

시노・네로

.......!

 

시노

들었어? 짐승의 울음소리다.

 

네로

짐승...

 

시노

저쪽 방향이군. 가자.

 

네로

어... 어어.

(...젠장, 심각하게 생각했네)

 


 

히스클리프

아. 저 나무...

 

숲 속을 걷기 시작하고 시간이 조금 지났을 무렵, 히스클리프가 공중을 가리켰다.

바라보니 키 높은 나무의 가지에 빨간 열매가 가득 매달려있다.

 

히스클리프

도감에서 본 적 있어요. 분명, 남쪽 나라 일부에서 구할 수 있는 과일이에요.

새가 먹은 흔적도 있어서 저희가 먹어도 괜찮을거라 생각해요.

 

현자

와아, 해냈네요! 새가 먹을 정도는 남겨두고 가져가도록 하죠.

...아. 그런데 과일이 있는 위치가 좀 높은 것 같은데.

나무를 타면 딸 수 있을까요?

 

히스클리프

아하하. 현자 님, 그럴 필요는 없어요.

전 마법사니까요.

《레프세바이블프 스노스》

 

히스클리프가 주문을 외우자, 상냥한 비가 내리는 것처럼 과일이 천천히 우리의 손으로 떨어진다.

 

현자

와아... 감사합니다.

달콤한 향기가 나요. 살짝 먹어볼까.

 

옷으로 과일을 문지른 뒤 덥석 깨문다. 입 안에서 상큼한 달콤함이 번졌다.

 

현자

맛있어...! 시원하고 아삭아삭해서 수박 샤베트를 먹는 것 같아.

히스도 하나 먹어보지 않을래요?

 

히스클리프

음... 그렇네요, 그럼 저도...

 

히스클리프는 익숙하지 않은 손짓으로 내가 했던 것을 흉내내듯이 쭈뼛쭈뼛 과일을 깨물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의 캄페지오

 

현자

네로도 함께 가는군요. 혹시 시노에게 권유받은 건가요?

 

조금 의외라 생각하고 말을 걸자, 네로는 난처한 듯이 어깨를 움츠렸다.

 

네로

아니, 장기여행치고는 어린애들이 많다면서, 피가로에게 동행을 부탁받아서 말이지...

 

한숨을 내쉬는 그의 손에는 커다란 도시락 상자가 매달려있다.

 

네로

요리할 사람도 필요하잖아? 오늘 점심은 모두가 좋아하는 걸 준비해 왔으니까, 배가 고프면 적당히 집어먹어도 돼.

 

시노

네로, 훌륭해.

 

미틸

감사합니다, 네로 씨!

 

네로

천만의 말씀.

그보다 재봉사 군에게 감사인사를 해야겠지. 이 옷도 만들어준거지?

 

현자

맞아요. 오늘 의상도 엄청 멋지죠.

 

무르

내 몫까지 즐기다 오라고 클로에가 말했어!

 

루틸

클로에, 기뻐...! 사실 함께 가면 더 좋았겠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던가.

 

히스클리프

응. 권유해 봤지만 일이 있는 것 같았어.

 

루틸

그랬구나... 그럼, 클로에가 기뻐할만한 선물을 잔뜩 가지고 돌아가자!

 

히스클리프

그러자.

 

미틸

저도 섬에 도착하면 리케에게 줄 선물을 찾을 생각이예요.

대체 어떤 곳일까요? 예쁜 걸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현자

남쪽의 마법사들도 가 본 적이 없는 건가요?

 

레녹스

네. 소문으로는 들어 본 적이 있지만 저희들도 가보는 건 처음입니다.

 

피가로

개척을 진행하는 토지와는 꽤 멀기도 하고, 시노에게 권유받지 않았다면 좀처럼 갈 기회가 없는 장소니까.

 

무르

준비는 됐어? 그럼 당장 모험을 떠나자!

 

루틸・미틸・시노

와아-!

 

현자

(...어라? 어느샌가 바캉스가 모험으로...)

 

마법사들은 순서대로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으며 엘리베이터에 타기 시작한다.

기대를 가득 담은 짐가방을 등에 메자, 문득 긍정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현자

(나도 루틸처럼 섬에서 선물을 찾아보자)

(돌아온 브래들리가 기뻐할만한 걸로)

 


 

남쪽의 탑에서 빗자루를 타고 철새 떼처럼 황야 위를 난다.

쉬엄쉬엄 3일 가까이 메마른 토지를 날아가고 커다란 산을 넘었을 때 드디어 수평선이 나타났다.

맞은편에 떠있는 작은 섬은 생각 이상으로 먼 데다, 거친 파도 위를 좀 지나간 후에야 겨우 소문의 섬에 도착했다.

 


 

루틸

와아...!

 

시노

헤에.

 

섬을 둘러본 마법사들은 여행의 피로도 잊은 모습으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빛날듯이 하얀 모래사장, 반짝이는 푸른 바다...

그리고 시선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자연, 자연, 자연... 그리고 또 자연.

 

현자

(이건... 어떻게봐도...)

 

네로

무인도인가...?

 

레녹스

무인도다.

 

표류한 배가 떠밀려올 것 같은 변경의 외딴섬이었다.

건물이나 가게는 물론, 인기척조차 없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이 섬을 뒤덮고 있다.

야성미 넘쳐나는 경관은 우아한 바캉스라기보다도 목숨을 건 서바이벌이라는 풍경이었다.

 

무르

재밌을 것 같은 섬이지? 두근두근!

 

피가로

남쪽치고는 정령들이 활기찬 땅이네. 알 수 없는 느낌이 가득하다는 의미에서는, 확실히 두근두근할지도 모르겠어.

 

현자

그, 그렇구나. 즐거운 섬이라는 건 이런 뜻이었던 거군요.

(조금 전에 갔던 볼더 섬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남아있어서 그만 착각해버렸어...)

 

미틸

무인도란 건 저희들밖에 없다는 뜻이죠? 괜찮을까요...?

 

히스클리프

만일에 대비해서 잘 장소나 먹을 것 같은 건 제대로 확보해 둬야겠어.

 

루틸

와아, 아름다운 섬이야. 숲 속에 들어가면 희귀한 동물이 많이 있을지도!

 

시노

즉 사냥터란 말이군. 실력발휘 해볼까.

 

레녹스

식재료도 그렇지만, 소재도 모을거면 거점 장소를 생각하는 게 좋을거야. 꿈을 먹는 고리의 소재는 어디에 있어?

 

무르

글쎄에.

 

히스클리프

엑?

 

무르

섬 어딘가엔 있어. 금방 찾을지도 모르고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

 

루틸

섬 어디에나 있는 게 아니라, 찾을 필요가 있다는 뜻이군요.

 

현자

그렇다면 꽤 시간이 걸릴 가능성도...?

 

피가로

뭐어, 상관없지 않을까. 모처럼 놀러 온 거니까 잠시동안 여기서 지내면서 자연을 만끽하자.

 

시노

바라던 바다. 이 섬을 제패해주지.

 

네로

일단 거점을 잡을 필요가 있겠네. 베이스캠프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할까.

 

루틸

그 전에 차를 마시지 않으시겠어요? 오랫동안 날아서 지치기도 했구요.

 

레녹스

그것도 그렇네. 무인도 생활을 위한 힘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쉬자.

 

피가로

찬성. 슬슬 쉬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미틸

저, 준비할게요.

 

남쪽의 마법사들이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남아있던 구운 과자가 놓인다. 왠지 피크닉 같다.

 

네로

...뭐, 느긋하게 지내볼까.

 

히스클리프

아하하. 그거 좋네.

 

모처럼의 바캉스에 성급하게 구는 건 아깝다.

우리들은 배를 채우고나서, 각각 무인도를 즐기기로 했다.

 


 

 

미틸

아니에요, 피가로 선생님. 여기는 이렇게 묶는 거예요.

 

피가로

어라? 그랬었나.

 

현자

둘이서 뭘 만드는 건가요?

 

미틸

낚싯대예요! 레노 씨에게 만드는 방법을 배워서 피가로 선생님에게도 알려드리고 있었어요.

이거라면 나뭇가지를 써서 어디서든 낚시를 할 수 있어요!

 

현자

앗. 설마 여기 있는 게 미틸이 만든 낚싯대인가요?

엄청 잘 만들었네요!

 

미틸

에헤헤...!

 

피가로

그렇지? 미틸은 손재주가 좋단 말이지.

 

현자

피가로의 낚싯대는...

(...조금 일그러졌어...?)

 

피가로

새로운 걸 배운다는 건 열심히해야해서 힘들단 말이야. 마법으로 만드는 게 확실하게 빠른데.

 

미틸

정말! 안 된다구요!

무인도인 것처럼 행동하자고 선생님이 말하셨잖아요.

다시 한 번 더 알려드릴테니까 잘 보세요.

 


 

히스클리프

아... 이거 예쁘다.

 

네로

헤에, 드문 색의 조개네.

 

히스클리프

좀 신기한 색이지. 햇빛에 비추면 다른 색깔로 보이고.

 

네로

여기에도 있어. 이 녀석은 재밌는 모양이네.

 

히스클리프

정말이다. 브로치로 가공할 수 있을지도.

 

무르

뭐야뭐야? 조개를 줍는거야?

 

히스클리프

응. 클로에에게 줄 선물로 할까 해서.

 

무르

좋네, 나도 주워올게!

 

히스클리프

엑.

 

네로

무르 녀석,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잠들지 못하는 밤의 캄페지오

 

현자

앗. 아뇨, 아무것도 아니예요.

(위, 위험해... 브래들리가 행방불명인 건 다들 모르는 상태였지)

 

시노

정말로 괜찮은건가?

 

히스클리프

안색도 좋지 않아 보이고... 무리하진 마세요.

 

현자

감사합니다. 괜찮아요.

 

걱정하는 두 사람에게 나는 어떻게든 미소를 지어보였다.

 

시노

잠이 안 오는 게 걱정되면 현자도 같이 가는 건 어때.

 

현자

간다니, 어디를요?

 

시노

남쪽 나라다. 아까 『꿈을 먹는 고리』를 만들러 가자고 히스와 얘기했거든.

 

현자

꿈을 먹는...?

 

무르

고리!

 

현자

!?

 

익숙하지 않은 말에 고개를 갸우뚱 거리자, 눈앞에서 거꾸로 떠 있는 무르가 불쑥 나타났다.

 

시노・히스클리프

무르!

 

뱅글 공중제비를 넘은 무르는, 내 옆 의자 위에 고양이처럼 앉았다.

 

무르

현자 님도 원해? 꿈을 먹는 고리.

 

현자

까, 깜짝이야... 무르, 꿈을 먹는 고리를 알고 있나요?

 

무르

알아! 남쪽 나라에서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소재를 고리 모양으로 만든 오래된 부적이야.

그걸 지니고 자면 꿈을 먹는 고리가 악몽을 우적우적 먹어치운다고 옛날부터 전해져왔어.

 

히스클리프

저희도 꿈을 먹는 고리에 대한 걸 무르에게서 들었어요.

 

시노

악몽을 고리가 먹어치우면 분명 잠을 잘 수 있게 되겠지?

 

현자

헤에, 숙면의 부적인거네요.

앗. 그렇다는 건... 혹시 두 사람도 잠을 못 자서 곤란한 건가요?

 

시노

우리가 아냐. 파우스트에게 줄거다.

 

히스클리프

파우스트 선생님, 가끔씩 잠을 못 주무시는 날이 있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꿈을 먹는 고리의 부적이 있으면, 조금은 편히 쉴 수 있는 게 아닐까 해서.

 

시노

파우스트에게는 말하지 마. 비밀로 해서 놀래켜줄거다.

그러는 편이 더 고마워할 거고.

 

현자

아하하. 파우스트, 무척 기뻐할걸요.

 

시노

그렇지? 그 녀석, 울지도 모르겠어.

 

히스클리프

우는 건 아니지 않을까...? 그래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네.

 

겁이 없는 시노뿐만이 아니라, 평소에는 소극적인 히스클리프도 의욕이 넘치는 모습이다.

파우스트를 따르는 두 사람의 마음이 느껴져서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히스클리프

꿈을 먹는 고리를 만드는 소재는 남쪽과 동쪽의 국경 근처 작은 섬에서밖에 구할 수 없는, 희소한 것이라는 듯해요.

어떤 소재를 사용하는지 무르에게 물어봐도 '도착지에서의 즐거움'이라며 알려주지 않아서요.

 

시노

궁금해지잖아. 좀 멀리 나가야 한다고 들었지만, 빨리 섬으로 가서 확인해보고 싶어.

 

무르

엄청나게 두근두근 설레는 재밌는 섬이야! 분명 현자 님의 걱정도 없어져버릴걸.

그 섬에서 우리와 함께 바캉스를 즐겨보자구?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망설였다.

그들의 권유는 솔직히 기쁘다. 하지만 가슴에 퍼져가는 근심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망설이게 만든다.

 

현자

(이런 때에 즐겨도 되는걸까. 브래들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르

현자 님. 아~

 

현자

...!?

 

느닷없이 옆에 앉아있던 무르가 숟가락으로 수프를 떠서 내 입 속으로 들이밀었다.

 

무르

어두운 얼굴로 지내도, 밝은 얼굴로 지내도 맛 볼 수 있는 인생은 한 번 뿐이라구?

거기다 그의 안부를 걱정하는 건 그의 강함을 의심하는 것이기도 해. 북쪽의 마법사라면 오히려 모욕이라 느낄지도!

 

현자

(...확실히, 그럴지도 몰라)

 

브래들리는 강하고, 믿음직하고, 재앙의 상처로 어떤 곳으로 날아가버려도 반드시 마법관으로 돌아와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스노우 일행의 말대로, 브래들리가 살이있다고 믿고서 그가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 뿐이다.

 

현자

...그렇네요. 저도 남쪽 나라의 섬에 가보고 싶어요!

 

무르

아싸-!

 

히스클리프

현자 님과 동행하게 되어 기뻐요.

 

시노

좋아. 이걸로 히스클리프대의 멤버는 네 명이 되었군.

 

히스클리프

에엑!? 뭐야 그 이름!

 

시노

편리상, 있는 게 좋잖아.

 

히스클리프

절대로 필요 없을 거라고!? 거기다 현자 님이 계시니까, 현자대가 훨씬...

 

현자

네? 아, 아뇨아뇨 그런.

이번에는 히스 일행의 제안이기도 하고, 히스클리프대인 게 좋다고 생각해요.

 

시노

거봐. 현자도 이렇게 말하잖아.

 

히스클리프

현자 님마저...!

 

무르

있지, 히스클리프대는 전부 합쳐서 네 명이야? 아니면 좀 더 동료를 모을래?

 

시노

동료는 많아도 좋지. 다른 녀석들에게도 말을 걸어볼까.

 

히스클리프

그러면 남쪽의 마법사들에게 권유해보면 어떨까. 남쪽 나라의 섬에 가는 거기도 하고.

 

시노

좋아. 지금부터 히스클리프대의 멤버를 모집해올게.

무르와 현자는 출발할 준비를 해 둬.

 

히스클리프

그러니까, 히스클리프대라고 하지 말라고...!

 


 

네로

.......

후아암...

 

파우스트

수면부족인가?

 

네로

우왓!

뭐야, 선생인가. 놀래키지 말라고.

 

파우스트

평소처럼 들어온 것 뿐이다만...

 

네로

무슨 일로... 아아, 커피인가.

 

파우스트

괜찮다면 너도... 아니, 수면부족일 때 권할 게 아니군.

 

네로

수면부족이라기 보단...

아주 조금, 악몽을 꿨을 뿐이야. 답지않게 옛날 꿈 같은 걸 꿔서.

 

파우스트

...악몽인가.

 

네로

뭐어, 그런 거지.

이런 류의 꿈은 커피보다도 쓴맛이 남는구만.

 

파우스트

.......

맡으면 마음이 진정되는 향기가 있어. 괜찮으면 그걸...

 

피가로

안녕, 네로. ...이런, 파우스트도 있었구나.

 

네로

엑, 피가로?

 

파우스트

...미안하지만 급한 일이 생각났다. 향기는 나중에 방으로 전해주지.

그럼.

 

네로

앗, 어이.

 

피가로

유감, 가버렸네. 뭐 괜찮아, 여기 온 목적은 그에게는 비밀이니까 말이지.

 

네로

하아...

 

피가로

너에게 맡기고 싶은 일이 있어. 괜찮아, 힘든 건 아니야.

악몽을 꾸는 너희들에게는, 좋은 이야기야.

 


 

그리고 며칠 후, 섬으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 찾아왔다.

 

시노

전원 모인건가?

 

히스클리프

응. 다들 모인 것 같아.

 

피가로

잊은 물건은 없지?

 

루틸・미틸

완벽해요!

 

레녹스

예정보다 빨리 출발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현자

다들, 예정 시간보다 빨리 모였네요.

 

무르

내가 제일 빨리 왔다구. 날이 밝기 전부터 여기서 기다렸어!

 

네로

즉, 여기서 잤다는 말이야?

 

장기 여행을 눈앞에 둔 마법사들이 들뜬 모습으로 엘리베이터 앞에서 모여있다.

그 얼굴들 중에는 뜻밖에도 네로의 모습도 있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의 캄페지오

 

스노우

그리 어려운 이야기는 아닐세. 우리들이 찾아간 북쪽 나라의 변경에서 본래 있을 리 없는 거대 마수가 난폭하게 날뛰고 있었다네.

아마 〈거대한 재앙〉의 영향으로 되살아난 고대종일테지.

 

화이트

그렇다곤 해도 우리는 북쪽의 마법사가 다섯 명이나 있는 데다 고전할 정도도 아니었다네.

그저 끝없는 체력이 말이지. 삶아도 구워도 제법 죽지 않았다네.

 

스노우

그 사이 짜증난 미스라가 갑자기 공간의 문을 열고...

 

미스라

이미 죽을 것 같았기에 그대로 마그마 속에 처넣어줬습니다.

그리고 깨닫고보니 브래들리가 없어졌습니다.

아아 그러고보니 브래들리도 함께 문 속으로 처넣었을지도...

뭐어, 그런 느낌입니다.

 

열쇠를 떨어뜨려 버렸습니다, 같은 텐션으로 미스라는 이야기했다.

그 가벼움과는 정반대로 나는 자신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느꼈다.

 

현자

그럼, 브래들리는 정말로...?

 

미스라

죄송합니다, 실수로.

 

현자

그런...

 

화이트

우리 애들이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네, 현자여.

 

스노우

그렇지만 그리 심각해하지 않아도 된다네. 그 녀석은 간단히 죽을 남자가 아닐세.

북쪽의 나라에서 돌이 되지도 않고, 수많은 마법사들을 따돌린 악동이니 말이야.

 

화이트

우리와 달리 죽여도 죽지를 않는다네. 그렇지, 오즈?

 

오즈

수완이 좋고 민첩한 남자다. 나도 아직 죽인 적이 없다.

 

샤일록

당신이 말하니 설득력 있군요.

 

파우스트

...뭐, 그 정도의 마력을 가진 자라면 마그마 속 정도는 어떻게든 될지도 모르지만...

 

피가로

맞아맞아. 살아있다면 그 사이에 자력으로 돌아올거야.

 

샤일록

그럼 이 건에 관해서는 잠시 상황을 지켜보기로 할까요?

 

피가로

괜찮지 않아? 관망하는 걸로.

 

스노우・화이트

음, 관망관망.

 

파우스트

...이 이야기는 너무 공개하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군. 동요하는 자들이 있을테니.

 

샤일록

그렇네요. 이 장소에 없는 분들에게는 우선 다른 임무에 갔다는 걸로 해두죠.

 

무르

비밀인거야?

 

현자

무르!?

 

내가 앉아있던 의자의 뒤쪽에서 무르가 얼굴을 내밀었다.

 

피가로

이런. 장난꾸러기 고양이가 귀 기울여 듣고 있었나보네.

 

스노우

무르, 이 이야기는 누설금지일세.

 

화이트

여기만의 비밀이라네.

 

파우스트

그런데 대체 어느틈에 숨어있었던 거지...

 

무르

글쎄, 언제부터일까?

 

샤일록

현자 님이 들어오셨을 때가 아닌가요?

 

오즈

나비의 모습으로 벽에 붙어있었지.

 

무르

딩동! 정답!

상으로 캔디 줄게.

 

샤일록

이거 참, 무르.

 

미스라

캔디라면 저한테 주세요. 차만 마시면 배가 안 차서.

 

파우스트

내 다과를 다 먹어놓고서 잘도 말하는군...

 

현자

(...다들 엄청 냉정하다)

 

당황한 기색이 없는 그들 속에서, 나 혼자 조금 진정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현자

(브래들리가 강한 마법사인건 충분히 알고있지만...)

 


 

그날 밤, 나는 네로의 방문을 두드렸다.

 

네로

현자 씨? 무슨 일이야.

 

현자

죄송해요, 밤 늦게 찾아와서. 할 이야기가 있는데 지금 괜찮을까요.

 

네로

이야기? 뭐어, 들어와.

 


 

요전날, 함께 술을 마시자던 이야기를 막 했던 참이다. 브래들리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네로도 신경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말하면 분명 네로가 걱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상냥하니까, 나중에 사실을 알게되면 오히려 충격받지 않을까...

고민한 끝에 담화실에서 들은 두 사람의 친밀한 대화를 떠올리고, 나는 역시 말하자고 결심했다.

 

네로

...그렇구나.

 

사정을 말하고나자 네로는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웃어넘겼다.

 

네로

브래들리라면 괜찮을거야. 분명 무사히 돌아올거라고.

나랑은 달리 그 녀석은 대담한 북쪽의 마법사니까 말이야.

 

조금의 불안을 달래듯이 네로의 목소리는 밝았다.

 

네로

선생들이 그렇게 말했다면 심각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너무 걱정하면 현자 씨가 지는 거라고.

 

현자

네로...

 

걱정해주는 말에 우울하던 기분이 조금 부드러워진다.

 

현자

감사합니다. 네로는 상냥하네요...

 

하지만 네로는 내 말로부터 시선을 돌리듯이, 조금 씁쓸한 표정을 띠운다.

 

네로

난 상냥하진 않다고.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박정한 놈이야.

 

현자

...네로?

 

퍼뜩 깨달은 듯이 네로는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네로

자, 방으로 돌아가. 오늘은 푹 쉬도록 해.

너무 신경 쓰진 말고.

 

현자

아, 네... 안녕히 주무세요.

 

네로

그래, 잘 자.

 


 

네로

...하아.

(...이제와서 그럴 입장이 아니잖아)

 


 

현자

(...별로 못 잤네)

 

침대 속에서 잠을 설친 사이에 아침이 와버렸다.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면서 식당으로 향한다.

 


 

자리에 앉자 맛있는 향기가 가득했다. 시들었던 식욕이 슬쩍 얼굴을 내민다.

 

현자

(...아)

 

테이블 위에 놓여진 아침식사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뿐이었다.

 

현자

(네로... 내가 기운나게 해주려고...)

 

가슴이 뭉클했다. 네로의 아무렇지 않은듯한 배려가 따뜻한 요리에서 전해진다.

 

현자

(네로는 자신을 박정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시노

현자, 오늘은 빨리 일어났군.

 

히스클리프

현자 님, 안녕하세요.

 

현자

시노, 히스. 안녕하세요.

 

시노

...무슨 일이야, 그 얼굴.

 

현자

네?

 

히스클리프

눈 밑에 다크서클이... 혹시 수면부족이신가요?

 

현자

어어, 조금... 어제의 일로 별로 못 자서.

 

히스클리프

어제의 일...?

잠들지 못하는 밤의 캄페지오

 

하루가 끝나가는 밤일 무렵. 왠지 목이 말라서 식당으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들려온 즐거운 목소리에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현자

(...응? 이 목소리...)

 


 

네로

술 상대라면 다른 놈을 찾으라고. 그럴 기분 아냐.

 

브래들리

바보, 잘 보라고. 좀 드문 녀석을 손에 넣었어.

 

네로

...헤에. 좋은 술이잖아.

어딘가에서 슬쩍해온 건가.

 

브래들리

단골가게에서 만난 귀가 어두운 할멈이 이 몸에게 넘긴거다. 잘생겼던 옛날 할아범이랑 닮았다든가 하면서.

 

네로

그 할머니, 눈도 안 좋았던 거 아냐?

 

브래들리

닥쳐. 이럴 때는 눈이 높다고 하는 거다.

됐으니까 같이 어울리라고. 한 잔 줄테니까.

 

엿보자, 브래들리와 네로의 모습이 보였다. 브래들리의 손에는 고가인 듯한 술병과 잔이 들려 있었다.

말을 걸려고 한 것보다 빠르게 두 사람은 내 인기척을 눈치챈 듯했다.

가볍게 대화하던 공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진다.

 

브래들리

...마음이 변했어. 역시 안 할란다.

어울릴 줄 모르는 어둡고 음침한 동쪽의 마법사 따위에게 권유하다니, 어떻게 됐었다고.

 

브래들리는 태도를 확 바꾸고, 어떻게 봐도 흥이 깨진 얼굴을 했다.

 

네로

그렇네... 나 같은 미천한 놈은 당신 같은 사람이 상대할만한 놈이 아니라고.

 

네로도 또 쌀쌀맞은 어조로 브래들리와 거리를 두었다.

 

브래들리・네로

.......

 

현자

저기, 죄송해요. 엿들을 생각은...

 

네로

신경쓰지 마. 들으면 안 되는 말 같은 건 안 했어.

 

브래들리

우연히 이 놈밖에 없었으니까 괴롭혀줄까 했을 뿐이다.

 

서로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의 목소리는 점점 험악해져 간다. 어색한 분위기에 나는 초조해졌다.

 

현자

(안 좋은 타이밍에 와버린 걸지도...)

그, 그랬었군요. 확실히, 누군가와 술을 마시고 싶어지는 때가 있는 법이죠.

맞다, 이걸 기회로 친해져보는 건 어때요?

 

네로

친해져?

 

현자

네. 서로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함께 술을 마시면서 사이가 좋아진다는 얘기도 있고...

내일 브래들리는 아침부터 임무가 있으니까, 돌아오면 회식을 여는 건 어떨까요?

'임무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위로의 의미도 포함해서...!

 

가능한 밝은 목소리로 제안하자, 떨떠름한 얼굴이던 브래들리의 한쪽 눈썹이 휙 치켜올라간다.

 

브래들리

듣고보니 좋네! 좋은 아이디어구만.

 

브래들리는 발 빠르게 접근하여 내 어깨를 안았다. 개를 칭찬하듯이 마구 머리를 쓰다듬는다.

 

브래들리

이왕이면 너도 오라고. 현자 님에게도 위로는 필요하잖아?

네로, 그런거다. 맛있는 안주를 준비해두라고.

 

네로

현자 씨까지 끌어들이지 말라고... 당신, 무리하게 어울리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야.

 

현자

어어...

(브래들리와 네로의 술자리는 어떤 느낌일까. 좀 신경 쓰이네...)

저도 참가하고 싶어요. 물론, 민폐가 아니라면요.

 

슬쩍 시선을 향하자, 네로는 조금 생각한 후에 끄덕여주었다.

 

네로

.......

현자 씨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요리 준비를 해둘게.

 

브래들리

하핫. 그렇게 나와야지!

 

브래들리는 굉장히 기분 좋아보이는 얼굴로 나와 네로의 등을 팡팡 쳤다.

 

현자

아야!

 

네로

아프다고!

 

브래들리

뭐 기다리라고. 임무 따윈 이 브래들리 님이 한 번에 정리해줄테니까!

 


 

그리고 며칠 후. 임무를 끝낸 북쪽의 마법사들이 마법관으로 돌아왔다.

 

현자

여러분, 어서오세요.

 

스노우・화이트

다녀왔어-!

 

미스라

하아.

 

오웬

드디어 끝났어.

 

현자

...어라? 분명 임무에는 5명 전원이 간다고...

브래들리는...?

 

북쪽의 마법사들

.......

 

돌아온 북쪽의 마법사들 중에 브래들리의 모습만 보이지 않았다.

 


 

그 후, 교사 회의가 열려 나도 참석하게 되었다. 왜인지 미스라의 모습도 있었다.

교사 역할의 마법사들은 차례차례 의제에 따라 보고와 연락, 의논을 진행했다.

 

피가로

최근 레노가 키우고 있는 양들 중에 탈주벽이 있는 애가 있다는 듯해. 중앙 마법사들의 수업에도 난입했다던데.

 

오즈

아아. 변신 마법을 시험하던 직후였기 때문에 리케가 누군가를 실수로 양으로 만들어버렸나 당황해했다.

 

파우스트

안뜰을 지날 때, 그가 양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던 건 그것 때문이었나...

 

샤일록

후후, 흐뭇한 이야기군요.

 

피가로

만약 또다시 양을 만나면 알려주었으면 한대. 이후로 우리도 계속 조심하겠습니다.

수업에 관해서는 이상이야.

 

샤일록

그럼 이번 본제로 들어가도록 하죠. 임무 도중에 행방불명이 된 브래들리에 관해서.

 

파우스트

...확실히 그의 모습을 한동안 못 봤군. 임무중에 무슨 일 있었나?

 

스노우

이 건은 우리 미스라가 이야기하겠네.

 

화이트

자, 미스라.

 

미스라

......

 

회의 중 졸린 듯이 티스푼을 씹고 있던 미스라는 쌍둥이의 재촉에 입에서 스푼을 떨어뜨렸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곳에서 미스라는 한마디 선언했다.

 

미스라

내가 죽였습니다.

 

파우스트

죽였...?

 

시원하게 자백한 미스라에게 홍차를 마시려던 파우스트는 사레가 들리고, 나는 엉겁결에 의자에서 일어났다.

 

현자

미, 미스라, 정말인가요...!?

 

피가로

죽여버린거야?

 

미스라

그렇네요. 아마.

 

샤일록

꽤 모호하네요.

 

오즈

.......

 

파우스트

감을 못 잡겠군. 스노우, 화이트.

순서대로 설명해줘.

 

스노우・화이트

호호호... 미스라쨩은 말하는 게 서투르니 말일세.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두 사람은 이번 임무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유성이 걸린 다리의 랩소디~중앙 나라&북쪽 나라~

 

아서

꽤 밤도 깊어버렸지만... 다시 파티를 재개하자.

그럼, 헤이갈에의 감사와 새로운 출발을 기념하여... 건배!

 

현자・마법사들

건배!

 

모든 소동과 혼란을 극복하고, 모두가 밝은 미소로 잔을 부딪친다.

 

오웬

잠깐, 미스라. 재를 이쪽으로 날리지 마.

옷이 더러워지잖아.

 

브래들리

어이, 함부로 내 고기 먹지 말라고.

 

미스라

시끄럽네... 됐으니까 빨리 고기를 구워주세요.

 

그림 속의 화이트

뭘 싸우고 있는 게냐! 똑바로 일하거라!

 

그림 속의 스노우

똑바로 일하지 않으면 또 벌을 줄 게다!

 

미스라・오웬・브래들리

칫...

 

오즈의 번개를 맞고 쌍둥이에게 징계를 받는 그들은, 벌로 바베큐 굽는 일을 맡게 되었다.

 

카인

처음부터 그 마귀 퇴치는 가짜라고 말했잖아. 그런데도 이런 소동을 일으키다니...

 

미스라

그런 말 했던가요?

 

브래들리

말했다고. 네놈들이 적당히 흘려넘겼을 뿐이다.

 

미스라

브래들리도 알고 있었다면 말해줬어야죠.

 

오웬

진짜로. 오늘은 너희들 덕분에 쓸데없는 일을 엄청 하게 됐어.

 

미스라

그 대사, 완전히 그대로 돌려드리죠.

 

브래들리

웃기지 마. 이렇게 된 건 대략 네놈들 때문이잖아.

얼마나 모자란 머리를 가진 거냐고.

 

미스라・오웬・브래들리

.......

 

현자

(왠지 또 불온한 느낌이 도는 듯한...)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조마조마한 상태를 엿보고 있을 때, 옆 테이블에서 리케의 즐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케

헤이갈 선생님! 제 글자 연습 노트는 어떤가요?

예쁘게 썼나요?

 

헤이갈

네, 무척이나 아름답게 쓰여 있습니다. 리케 님의 문자와 말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점이 잘 전달되었습니다.

 

리케

에헤헤, 갑사합니다.

 

현자

리케, 기뻐보여요.

 

아서

네. 이렇게 보고 있으니 제 어릴 적 모습이 떠올라요.

저도 지금의 리케와 같은 목소리로 그의 수업을 즐겼으니까요.

 

아서가 온화하게 미소 짓는다. 그 눈동자에는 회고와 애석함이 스며있었다.

 

현자

(한때 어떻게 되나 생각했지만, 제대로 파티가 이뤄져서 다행이야)

 

내가 기쁜 분위기에 취해 있는 한편, 아서는 시중들러 온 사용인에게 감사의 말을 건넸다.

 

아서

너희를 소동에 말려들게 해버렸네. 다치진 않았어?

 

사용인

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물론 다들 다친 곳은 없습니다.

실은 소동이 일어났을 때, 오즈 님께서 주변에 수호 마법이라는 것을 걸어주셨다는 것 같아서...

그 덕분에 밖에 있던 다른 사용인들도, 준비해두었던 식사도, 전부 무사했다고 합니다.

 

아서

그런가, 오즈 님께서...

 

아서의 입꼬리가 기쁜 듯 올라간다. 모르는 새에 오즈는 성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마법을 걸어주었다고 한다.

 

현자

(미스라와의 전투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을 도와주면 좋겠다는 내 말을 기억해준 걸지도)

저기, 오즈.

헤이갈 씨와 성 사람들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즈

...왜 네가 감사 인사를 하지.

 

현자

다들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저도 기뻐져서...

거기다, 보세요. 아서도 웃고 있잖아요.

 

오즈

.......

그런가.

 

오즈가, 아서를 보며 살짝 입가를 올린다.

그것은 자신이 감사인사를 받아서 기뻐한다기 보다, 아서가 기뻐하는 것에 안도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스노우

헤이갈이여, 이건 그대의 것이었지. 다리 근처에 떨어져 있었다네.

 

헤이갈

이건, 오즈의 영혼 파편...

 

스노우

그렇게 이름 붙여졌을 뿐인, 평범한 거북의 등껍질이구먼.

이건 가짜일세. 오즈를 불러내는 효과 같은 건 전혀 없다네.

행방불명된 아서와는 전혀 관계 없다네. 그대가 죄책감을 느낄 이유 따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아.

 

헤이갈

전혀 관계 없다...

 

스노우

오히려 죄책감은 커녕, 그대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다네.

 

헤이갈

자랑스럽게...?

 

스노우

오즈는 옛날부터 성급해서 말일세. 만약 아서의 말투가 조심스럽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아서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네.

그대가 정중한 말투를 알려주었기 때문에, 오즈는 아서를 살려두었고 키울 마음이 들었던 거겠지.

아서를 양육함으로써 오즈의 마음도 이전과 비할 바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네.

그건, 우리에게 있어서도 기쁜 일일세. 감사하구먼.

 

헤이갈

...그렇습니까...

제 공로라니, 몸둘 바 모르겠습니다... 오로지 아서 님의 총명함과 마음씨가 이뤄낸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어린 아서 님 속에 잠재하던 교양과 상대를 헤아리는 온화한 말씨가 오즈 님의 관용을 이끌어내었다고 한다면...

아서 님께 학문을 가르쳐드린 문학박사 나부랭이로서, 이 정도 자랑스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스노우

호호호. 그대의 마음은 잘 알겠네.

스승으로서 제자를 가르친 것이 제자의 인생을 구했을 때 만큼이나 자랑스러운 일은 없으니 말일세.

 


 

현자

아서, 여기 있었군요.

 

축제가 끝난 후의 조용함에 빠져들면서 성을 걷고 있으니, 다리 근처에서 아서를 발견했다.

 

현자

오늘은 파티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척 멋진 시간을 보냈어요.

 

아서

저야말로.

...맞다. 현자 님께 별의 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죠.

헤이갈에게서 배운 말놀이라고.

 

현자

네. 그런데 헤이갈 씨는 왕비 님이 아서에게 가르쳤다고 하셨죠.

 

아서

맨 처음엔 저도 당시의 일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만...

좀 전의 전투에서 시녀들과 이 장소를 산책하는 어머니를 봤어요.

그때, 시녀가 당황해서 제 이름을 부르고...

 

아서는 좀 전까지 시녀와 왕비가 서있던 장소를 보고 눈을 가늘게 뜬다.

 

아서

어머니도 자연스레 딱 한 번, 제 이름을 불러주셨어요. 아서, 라고.

그때 생각났어요. 어릴 적 언젠가의 밤, 부모님과 손을 잡고 다리를 걸으면서, 하늘을 향해 노래하며 별들을 세던 것을.

 

아서는 별이 수놓인 하늘을 보고, 그리운 듯이 눈을 가늘게 뜬다. 일찍이 세었던 별들을 찾듯이.

 

현자

...또 언젠가, 가족과 함께 웃으며 이 다리를 건너는 날이 오면 좋겠네요.

 

아서

네. 아직 시간이 조금 지나버렸지만...

스노우 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두 분께선 오즈 님을 두려워 하셨지만,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고.

그러니까, 분명...

 

아서는 다리 위에서 성의 상층부로 시선을 향한다. 그 시선의 끝에는 희미하게 빛이 새어나오는 창문이 있었다.

창가에 선 누군가의 그림자가 이쪽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나도 시선을 집중한다.

 

아서

오랜만에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어서 기뻤어요.

언젠가 다시 한 번, 어머니의 곁에서 함께 얘기할 수 있을 때가 오기를 믿어보려고 해요.

그게 얼마나 머나먼 길이라고 해도.

 

현자

...분명 아서라면 괜찮을거에요.

 

아서는 내 말에 돌아보고, 짧게 침묵하고서 작게 끄덕이곤 웃었다.

그리고 성으로 시선을 되돌리고, 따뜻한 빛이 새어나오는 창가를 향해 손을 쥐었다.

나는 그 옆모습을 바라보면서 언젠가 그의 어머니가 손을 쥐어줄 날이 올 것이라고, 별이 가득한 하늘에 기도했다.

유성이 걸린 다리의 랩소디~중앙 나라&북쪽 나라~

 

스노우

오웬이여, 못된 장난은 그만두거라!

 

화이트

이 이상 소동을 피우면 심한 벌이 기다리고 있을게다!

 

오웬

헤에...

 

오웬은 재밌는 장난을 떠올린 듯이 웃더니, 일부러 농락하는 듯한 움직임으로 카인에게 다가갔다.

 

오웬

이 놈을 구하고 싶으면 힘으로 뺏어보시지? 너희가 공격하는 순간, 실수로 떨어뜨려 버릴지도 모르지만.

 

카인

...윽!

 

리케

헤이갈 선생님! 읏, 따라잡을 수가 없어...!

 

두 사람과는 다른 방향에서 오웬을 쫓는 리케도 고전하는 듯했다.

훈련 때문에 마력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인지,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오웬의 빗자루에 좀체 따라잡을 수가 없다.

 

브래들리

핫, 별로 날지도 않았는데 벌써 비실비실대는구만.

나는 게 힘든 꼬맹이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코 잠이나 자라고.

 

 

리케

브래들리, 지금 당장 헤이갈 선생님을 풀어주세요!

이런 난폭한 일을 저질러놓고 용서받을거라 생각하는 건가요!

 

브래들리

착각하지 말라고. 여긴 지금 우리의 놀이터잖아?

용서를 비는 건 우리가 아냐. 너희들 쪽이지.

이 성의 가냘픈 인간놈들의 목숨을 소중히하고 싶다면 말이지.

 

마음대로 손을 댈 수 없는 이쪽과는 달리, 인질을 데리고 있는 그들은 안하무인한 행동으로 이 장소를 지배한다.

 

브래들리

미스라! 이 상태로는 영원히 목표물을 손에 넣을 수가 없다고.

이 놈들 전원, 한 번에 흩어버리자고. 틈을 만들면 나랑 오웬이 할아범 쪽은 어떻게든 할테니까.

 

미스라

명령하지 마세요. 뭐, 알겠지만요.

《아르시무》

 

미스라가 귀찮은 듯이 주문을 외운 순간, 공중에 몇 개의 회오리가 나타나 주위를 나는 마법사들을 날려버릴 듯이 날뛴다.

 

현자

아...!

 

회오리 맨 아랫부분에 성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보인다.

다리에는 몇몇의 사람 그림자가 있었다.

 

아서

...어머니!

 

시녀

어!? 아, 아서 님!?

이건...!?

 

왕비

아서...?

 

시녀의 말을 되새기듯이, 왕비의 입에서 아서의 이름이 흐른다.

 

왕비

...아서, 넘어지지 않게 어머니의 손을 잡으세요. 그렇게 하면 좋은 걸 가르쳐줄게요.

자, 하늘을 바라보고. 새까만 어둠 속에 하나 둘 반짝반짝 빛나는 별님이 있어요.

저것을 악보 삼아 노래를...

 

아서

...!

《파르녹턴 닉스지오》 !

 

아서가 주문을 외우자, 회오리로부터 다리를 지키듯이 빛의 벽이 떠오른다.

수호 마법에 회오리가 튕기고, 시녀들이 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서

너희들, 여긴 위험해! 곧바로 성 안으로 피난하도록!

 

시녀

네, 네! 왕비 님, 이쪽으로...!

 

시녀들에게 재촉받듯이 걷던 왕비가 얼굴을 들고 눈동자에 아서를 비추려 했을 때...

 

아서

...!

 

상공에서 폭발음이 울리자 아서는 정신을 차렸다.

성으로 향하던 왕비 일행의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곧장 굉음이 난 방향으로 틀어 다시 하늘 높이 날아갔다.

 


 

아서가 올라가자, 교착상태의 오즈와 미스라가 있었다. 상태를 엿보는 듯한 오웬과 브래들리의 모습도 있다.

다른 중앙의 마법사들과 스노우, 화이트는 헤이갈 씨를 방패 삼은 모습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자

아서, 다치지는 않았나요!?

 

아서

네, 전 괜찮아요. 시녀들도 피난시켰습니다.

그보다 아까의 폭발음은?

 

현자

오즈와 미스라의 마법이 부딪친 소리예요.

 

오즈

.......

 

미스라

이제 슬슬 지겨워졌어...

 

오웬

동감. 슬슬 이 놈의 겁내는 얼굴도 싫증나기 시작했어.

자, 오즈의 영혼 파편을 넘겨. 네가 가지고 있잖아.

 

헤이갈

오즈의 영혼 파편...? ...아, 알겠네...!

알겠으니까 모두에게 위해를 가하지 말아주게...!

 

헤이갈 씨는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손바닥 정도의 주머니를 꺼내어 그들에게 내밀었다.

브래들리와 오웬이 흥미로운 듯이 그 내용물을 들여다본다.

 

오웬・브래들리

.......

...하?

 

하지만 한 박자 뒤에, 두 사람에게서는 얼빠진 소리가 새어나왔다.

 

브래들리

...뭐냐, 이건. 이게 어디가 오즈의 영혼 파편이란 거냐?

낡고 상처투성이인 결정거북의 등딱지잖아.

 

오웬

뭐야, 이 쓰레기는. 이런 걸 너는 그렇게 소중히 품에 넣고 다녔다는 거?

 

오웬 일행은 독기가 빠진듯이 거북의 등딱지를 보고, 이윽고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오웬

하하하! 바보같아, 인간은 이걸 오즈의 영혼 파편이라 생각하는 거야?

 

브래들리

아하하! 오즈 놈, 인간에게 거북이라 여겨지는 거냐고.

 

그들은 배를 붙잡고 웃으면서, 평범한 거북의 등딱지를 가지고 논다.

 

브래들리

이 몸이 말한대로잖냐. 야, 누구였지?

이런 걸 진짜라 생각하고 의기양양해하던 거 말이야.

 

오웬

걸작이네. 분명 미스라였어.

그 놈도 얼빠진 구석이 있으니까.

 

미스라

무슨 말인가요?

 

브래들리

우왓, 너. 오즈를 상대하고 있던 거 아니었냐고!

 

미스라

당신들이 내 이름을 불렀잖습니까.

 

오웬

부를 리가 없잖아. 뭐어, 이야기는 했지만 말야.

너, 거북이 좋아해? 느릿느릿하고 얼빠진 점이 너랑 닮았네.

 

미스라

하?

 

브래들리

자, 오즈의 영혼 파편을 줄 테니까 화 내지 말라고.

 

미스라

...이 거북의 등딱지가 오즈의 영혼 파편? 날 얕보는 겁니까.

역시 죽이는 수밖에 없나.

 

미스라・오웬・브래들리

.......

 

세 사람 주변 공기가 급속히 차가워진다. 헤이갈 씨는 그 모습에 파랗게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헤이갈

도, 도와...!

 

아서

헤이갈! 나에게 힘껏 손을 뻗어!

이 빗자루로 옮겨 타는 거야!

 

헤이갈

...!

 

오웬의 빗자루에 접근한 아서를 북쪽의 마법사들이 성가시다는 듯이 노려본다.

 

아서

괜찮아. 무슨 일이 있어도 떨어뜨리지 않아.

나를 믿어!

 

헤이갈

...네, 네!

 

오웬

시끄러워.

 

헤이갈

우왓...!

 

완전히 흥이 깨진 모습의 오웬은 헤이갈 씨의 등을 툭하고 밀었다.

마치 짐이라도 떨어뜨리는 듯한 가벼움으로.

헤이갈 씨의 몸이 공중에 던져진다. 하지만 그의 동요는 한 순간뿐이었고, 곧장 아서를 향해 손을 뻗었다.

 

헤이갈

아서 님...!

 

아서

...읏!

 

빗자루의 스피드를 올린 아서가 그 손을 강력하게 붙잡는다.

그리고 그대로 그를 끌어당겨 자신의 빗자루로 받아냈다.

 

현자

다, 다행이다...!

 

오즈

.......

 

충격으로 흔들린던 빗자루를 똑바로 하고 안심하며 웃는 그들을 보면서, 오즈는 아무 말 없이 마법도구를 손에 쥔다.

그리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 마법도구를 미스라 일행을 향한 채 주문을 외운다.

 

오즈

《복스노크》

유성이 걸린 다리의 랩소디~중앙 나라&북쪽 나라~

 

아서

나는 납치당한 게 아니야. 그날 밤, 나는 신비한 힘으로 유성처럼 하늘을 날아 북쪽 나라까지 이끌렸어.

하지만 나는 미아가 되어버리고 말았지. 별의 바다를 헤엄치면서, 외로움에 떨고 있었어.

그때 나를 발견해준 분이 오즈 님이야.

그대로 혼자 있었으면 떨고만 있는 채로, 분명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거야.

 

오즈

.......

 

아서는 소중한 기억을 그리워하듯이 오즈를 보고, 헤이갈 씨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 눈동자에, 슬픔은 없었다.

 

아서

그러니까 그대에게 죄 같은 건 없어. 결코 그대 때문이 아니니까.

 

아서는 헤이갈 씨를 살짝 그러안았다.

그는 상냥한 거짓말을 했다. 헤이갈 씨도, 왕비 님도, 오즈도, 누구도 상처입게 하고싶지 않다고 바라듯이.

그리고 헤이갈 씨에게서 천천히 떨어진 뒤, 보물상자를 여는 아이처럼 아서는 밝게 눈을 빛냈다.

 

아서

...떠오른 게 있어.

북쪽 나라의 맑은 밤하늘에 펼쳐진 별들을 보고, 나는 그대에게 배운 별의 노래를 불렀어.

 

헤이갈

별의 노래...

 

아서

그래. 반짝이는 밤하늘을 악보삼아 하나 둘 별을 세던 노래 말이야.

기억하고 있나?

 

아서는 그리운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에 펼쳐진 별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그의 옆모습을 보고, 헤이갈 씨도 눈매가 부드러워진다.

 

헤이갈

기억하고 있고 말고요. 그렇지만 전하께 그 말놀이를 알려드린 건 제가 아닙니다.

 

아서

응...?

 

놀라서 눈을 깜빡이는 아서에게 헤이갈 씨는 미소지었다.

 

헤이갈

별의 노래는 왕비 님께서 전하께 알려드린 노래입니다. 저 다리를 폐하와 세 분이서, 손을 잡고 걸으면서.

 

아서

어머니가, 나에게...?

 

그때, 갑자기 날려버릴 듯한 폭풍이 우리들의 눈앞에서 일었다.

 

헤이갈

우와악!?

 

아서

윽, 헤이갈!

 

???

오즈의 영혼 파편이 있는 곳을 알아냈네요.

 

거칠게 부는 바람 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목소리가 난 방향을 올려다보자, 헤이갈 씨를 안아든 미스라가 밤하늘에 유연하게 군림해 있었다.

가까이에는 브래들리와 오웬의 모습도 있었다.

 

브래들리

그래. 귀찮은 봉사활동을 열심히 한 보람이 있었다고.

 

오웬

정말, 기다리다 지쳤어. 드디어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네.

있지, 헤이갈. 오즈의 영혼 파편, 네가 가지고 있다며?

불쌍하게도. 그것 때문에 너는 나쁜 걸 끌어당긴거야.

실제로 지금, 나쁜 마법사에게 붙잡혀서 안 좋은 꼴을 보기 직전이고.

 

헤이갈

...!!

 

브래들리

아하하! 겁주지 말라고, 오웬.

할아범, 안심하라고. 떨면서 잠드는 밤은 오늘로 끝이다.

우리가 너를 해방시켜 줄테니까 말이지.

자, 얌전하게 오즈의 영혼 파편을 넘겨. 안 그러면 최악의 악몽을 지금부터 맛보게 될거라고.

 

말에 냉혹함을 담아 그들은 헤이갈 씨를 위협한다.

 

아서

윽, 시종들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카인

다들, 이쪽이야! 스노우 님과 화이트 님도 내가 안전한 장소로 옮겨...

 

그림 속의 스노우

기다리거라, 카인! 우리는 도망치지 않아도 괜찮다네!

 

그림 속의 화이트

그보다 우리를 미스라 일행의 곁으로 옮겨주게.

 

그림 속의 스노우・화이트

장난이 지나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해 줄 필요가 있겠구먼.

 

카인

...알겠어! 바로 옮겨줄게.

 

카인은 진지한 표정으로 끄덕이고, 성 사람들에게 피난을 지시하면서 그림을 안고 빗자루로 날아간다.

 

리케

헤이갈 선생님!

 

리케도 빗자루에 올라 미스라 일행을 쫓는다,

 

오즈

현자.

 

현자

아, 오즈...!

 

오즈

...손을.

 

나는 그에게 달려가 내밀어진 커다란 손을 붙잡는다.

그가 긴 지팡이로 지면을 한 번 찌르자, 지팡이 전체가 신비한 빛을 띠더니 그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두둥실 날아올랐다.

 

오즈

《복스노크》

 

오즈가 주문을 외우자, 팽팽히 긴장된 공기가 주변을 뒤덮는다.

그리고 오즈는 나를 빗자루 앞자리에 태우더니 기세 좋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카인

미스라, 멈춰! 헤이갈 경을 빨리 풀어줘.

 

미스라

싫은데요.

 

카인

큭, 이...!

 

그림 속의 스노우・화이트

카인, 우리에게 맡기거라.

 

스노우・화이트

으음음... 됐어, 나왔다!

미스라여. 이 이상, 마음대로하게 두진 않겠네.

 

 

스노우

오늘 밤은 그대들이 너덜너덜해져 울면서 사과할 때까지 우리가 상대해주지.

 

휘감기는 바람에 검은 의상을 날리면서, 그림에서 뛰쳐나온 스노우가 냉담하게 선언한다.

 

스노우

못된 장난의 도를 넘은 바보들에게는, 두 번 다시 잊을 수 없을 정도의 벌을 주지 않을 수 없겠구먼.

 

스노우・화이트

《노스콤니아》

 

미스라

칫... 《아르시무》

 

헤이갈

허억...!

 

무시무시한 마법의 공방을 눈앞에서 목격해 안색이 파래진 헤이갈을 보고, 아서 일행이 미스라를 다그쳤다.

 

카인

두, 두 사람 다! 좀 더 힘을 빼!

헤이갈 경이...!

 

스노우・화이트

데헷! 너무 지나쳐버렸당.

 

아서

헤이갈...! 기다려, 지금 구할게!

 

미스라

귀찮네.

...당신까지 온 건가요. 오즈.

 

오즈

.......

 

미스라는 성가시다는 듯이 오즈를 노려보고, 오웬의 빗자루에 몸을 실었다.

 

미스라

오웬. 이 사람은 당신이 맡아주세요.

 

오웬

뭐?

 

헤이갈

우와악!

 

오웬에게 헤이갈 씨를 공중에서 던지듯이 떠맡긴 뒤, 미스라는 마법도구를 손에 쥐었다.

 

미스라

오즈. 미스라는 맡기겠네.

 

오즈

아아.

 

화이트

현자 쨩이 함께 있으니까 위험한 짓은 적당히 하게나!

 

오즈

...아아.

 

현자

오, 오즈? 잠깐 멈칫했던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요?

 

화이트

오웬과 헤이갈은 우리가 쫓아가겠네. 카인, 아서, 출발합세.

 

아서・카인

네!

 

오즈

...네놈들의 목적은 뭐지.

 

미스라

그건... 어라, 뭐였더라.

 

현자

엑, 잊어버린 거예요?

 

미스라

으음. 분명 오즈의 영혼이 어떻다던가...

...뭐어, 아무래도 좋나. 어쨌든 내 제일의 목적은 당신을 죽이는 것이니까.

《아르시무》

 

오즈

《복스노크》

 

현자

꺄악----!!

 

오웬

칫... 저 놈, 정말 제멋대로란 말이야.

나에게 짐을 떠맡기다니.

 

카인

오웬!

 

아서

헤이갈을 놔줘!

 

오웬

...아아, 불쌍한 너를 구하러, 기사 님과 왕자 님이 왔네.

유성이 걸린 다리의 랩소디~중앙 나라&북쪽 나라~

 

스노우

아서여, 다리를 바라보며 무얼 하고 있었느냐. 산책 중인가?

 

아서

스노우 님!

네, 그러던 중입니다. 스노우 님은 혼자 오신건가요?

 

스노우

음. 지금 북쪽의 마법사들은 비교적 진지하게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일세.

화이트에게 맡기고 왔다네.

 

아서

하하, 그거 다행이군요.

 

스노우

감개무량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구나. 이곳은 그대에게 있어서 무언가 인연이 있는 장소인건가.

 

아서

...네.

제가 아직 어릴 무렵 아버지, 어머니와 셋이서 이 다리를 건넜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를 가운데에 두고, 오른손은 아버지께서 왼손은 어머니께서 잡아주셨어요.

...따뜻하고 간지러워서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때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스노우

그대가 오즈와 만나기 전의 일이구먼.

 

아서

네. 저는...

스스로가 축복 받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시고, 오즈 님이나 스노우 님과 같이 소중한 동료들이 함께 있어요.

그러니까 이 이상 무언가를 바라는 건 이기적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언젠가, 다시 셋이서 이 다리를 건널 수 있게 된다면...

그런 걸, 바라게 되어버려요.

 

스노우

.......

아서여, 쓸쓸한 얼굴을 하지 말거라.

나는 그대의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해.

자신으로선 다루기 힘든 미지의 힘을 품은 아이는 두려운 법일세. 하지만 결코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라네.

나에게 있어서 오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일세.

 

아서

오즈 님이...?

 

스노우

음. 마치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맹수를 상대하는 듯한 기분이었다네.

그야말로 만났을 때는 의사소통을 하는 것조차 어려워서, 대단히 고생했다네.

 

아서

...두 분께선 오즈 님을 놓고 싶어진 적이 있으셨나요?

 

스노우

그건 물론, 셀 수 없을 정도지.

 

아서

.......

 

스노우

그 녀석은 어릴 때부터 세상을 멸망시킬 정도의 강대한 마력을 품고 있었다네.

오즈의 기분이 상하면 우리 따윈 아주 쉽게 죽어버렸을테지.

그래서 어떻게든 그 녀석을 따르게 할 필요가 있었다네. 그 때문에 공포를 극복한 게지.

물론 그건 오즈를 위해서가 아닌,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네. 호호호, 그닥 칭찬받을 이야기는 아니구먼.

 

아서

.......

 

스노우

아서여, 용서하라고는 말하지 않겠네. 그대의 어머니는 그럴만한 잘못을 저질렀어.

그러나 버려진 슬픔에 갇혀있지 말게나. 그대는 먼지가 아닌, 별에서 떨어진 유성의 아이.

세차게 불타는 유성을 받아내지 못하듯이 그대를 품지 못한 것 뿐일세.

그저 한 명의, 최강의 마법사를 제외하곤 말이지.

 

아서

스노우 님...

 

스노우

호호호. 우리가 보기에는 오즈가 아이를 키운다는 게 뒤집어질 정도로 의외였으니까 말이네!

아서. 그대가 바란다면 언젠가 어머니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게야.

조금 머나먼 길이 될지도 모르지만 말일세.

하지만 불안할 필요는 없다네. 방금도 스스로 말하지 않았는가.

그대의 곁에는 오즈와 우리들이 있다네. 우리는 그대를 지켜보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네.

 

 

아서

...감사합니다. 뭐랄까,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아요.

별을 세는 노래도, 북쪽 끝의 극광도, 오늘밤의 불꽃놀이도, 저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받은 말들을 소중히 가슴에 품으면서.

 


 

이윽고 날이 저물고, 헤이갈 씨의 송별회가 시작되었다.

형형색색의 꽃이 피는 성의 안뜰에는 각각의 테이블에 하얀 식탁보가 펼쳐져 셀 수 없을 정도의 음식이 늘어서 있다.

화려한 모습은 송별회라기보다,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리케

브래들리 일행은 어디로 간 걸까요. 봉사활동은 끝났을까요?

 

카인

스노우 님, 화이트 님. 그 녀석들의 감시는 이제 끝난거야?

 

그림 속의 스노우・화이트

괜찮다네 괜찮아. 호화로운 식사에 이끌려서 금방 돌아올 거라네.

무사히 파티도 시작되지 않았는가!

 

현자

(싫증났구나...)

 

주변을 둘러보자, 커다란 테이블 옆에서 아서가 헤이갈 씨를 반기고 있었다.

 

아서

헤이갈, 지금까지 수고 많았어. 고향에 돌아가도 몸조심 하고.

기회가 있다면 언제라도 성으로 놀러와도 돼. 다들 기쁘게 맞아줄거야.

 

헤이갈

...감사합니다.

 

아서에게 대답하는 헤이갈 씨는 왠지 깊이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아서

헤이갈? 왜그래?

 

헤이갈

아서 님...

.......

 

헤이갈 씨는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헤이갈

지금까지 중대한 일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서

무, 무슨 일이야. 숨기고 있었다니...?

 

헤이갈

실은... 아서 님께서 북쪽 나라로 납치되셨던 것은 제 탓입니다.

 

오즈

.......

 

그 말에 오즈는 느릿한 동작으로 헤이갈 씨를 보았다. 헤이갈 씨는 괴로운 듯이 말을 잇는다.

 

헤이갈

...제가 옛날, 어린 아서 님께 부적을 건넸던 것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오즈의 영혼 파편이라 불리던, 마귀 퇴치의 부적 말입니다.

아서 님께서 오즈에게 납치당했다고 들었을 때, 저는 겨우 자신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제가 그것을 건넸기 때문에, 당신께서 북쪽 나라로 끌려가버린 것이라고.

그것을 알고나서 오즈의 영혼 파편은 제가 계속 갖고 있었습니다... 더이상 누구도 같은 처지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용서해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제 경솔한 행동을, 무례를, 진심으로 사죄하게 해주십시오.

제가 얕은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서 님께서 끌려가는 일은 없었을텐데...!

 

헤이갈 씨는 깊이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일을 밝히기 위해서 상당한 각오를 한 것이겠지.

 

아서

...그대가 나를 피한 건 그 이유였던 건가.

 

헤이갈

네... 자신의 죄를 생각하면 면목이 없어서, 아서 님의 얼굴을 떳떳하게 볼 수 없었습니다.

 

아서

그렇군...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내가 없어진 건 그대 탓이 아니야.

 

아서의 말에 헤이갈 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불안한 기색인 그에게 아서는 온화하게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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