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남쪽 나라&동쪽 나라~

 

히스클리프

앗, 스케치북이네.

 

루틸

응. 우리가 어렸을 때 여기서 자주 그림을 그렸어.

 

미틸

둘이서 다양한 걸 그렸었죠. 산과 호수, 물고기, 나비 등등.

물론 피가로 선생님과 레노 씨의 그림도.

 

시노

헤에. 물고기 그림은 이건가?

 

루틸

아니! 그건 피가로 선생님을 그린 거야.

 

히스클리프

어? 그럼 이건?

틀림없이 피가로 선생님을 그린 거라고...

 

루틸

그건 꽃이 춤추는 그림!

 

시노・히스클리프

.......

 

미틸

형님은 본 것을 그대로 그리지 않아요. 마음에서 느껴지는대로 그리니까, 좀 개성적이게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어떻게 아는지 신기하지만 피가로 선생님과 레노 씨는 가끔씩 맞추셨어요.

 

시노

그런거군. 심오하네.

 

히스클리프

아하하.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 알게 될지도 모르겠네.

 

피가로

약도 발랐고 치유마법도 걸어뒀으니까 문제 없을거야. 통증은 이제 없지?

 

레녹스

네. 감사합니다.

 

피가로

그 산성은 강력해. 많이 뒤집어쓴 건 아니지만 아주 고통스러웠을거야.

 

레녹스

그래서 다행이었습니다. 미틸이 그걸 맞지 않아서.

 

피가로

맞아, 고마워.

........

오늘은 레노의 완고함이 도움됐어. 그 애들을 울리지 않을 수 있어서.

 

레녹스

저야말로. 그 애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평생 후회했겠죠.

이번엔 선생님의 심려를 헤아리지 못하고 주제넘은 행동을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피가로

아냐. 또 비슷한 일이 있을 때면 오늘처럼 포기하지 말고 의견을 말해줘.

앞으로도 계속 싸우자고. 되도록 상냥하게 말이야.

 

현자

...괜찮은 것 같네요.

 

파우스트

그래.

 

네로

그런 것 같네.

 

레녹스의 부상과 두 사람의 화해. 양쪽 다 마음에 걸렸던 우리는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네로도 파우스트도 안도의 숨을 내쉬고 과실주를 꿀꺽 마신다. 동쪽의 마법사들은 걱정이 많은 데다 상냥하다.

 

현자

오늘은 여러분이 도와주러 오셔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파우스트

뭐어, 우연히 시간을 낼 수 있었으니까.

 

네로

어떻게든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야. 막 나은 참이던 미틸도 괜찮았던 것 같고.

아... 그러고보니 분위기가 안 좋을 때 선생 혼자만 두고 가버려서 미안했어.

 

파우스트

정말이지... 갑자기 혼자 남겨진 처지가 되어보라고.

 

현자

(확실히 미안한 일을 한 것 같네...)

 

피가로

누구의 처지가 되어보라고?

 

네로

우왓.

 

파우스트

멋대로 등 뒤에 서있지 마.

 

현자

피가로, 레녹스. 치료 고생했어요.

괜찮으면 여기 앉으실래요?

 

레녹스

감사합니다.

 

피가로

그럼 사양않고 현자 님의 옆에 앉아버릴까나.

그래서, 무슨 얘기했어?

 

현자

어, 어-으음, 동쪽의 마법사들이 와줘서 다행이라고...

 

레녹스

확실히 그 말대로입니다.

동쪽의 마법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번 이변은 막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피가로

딱딱하네-.

 

레녹스

그렇습니까...?

 

네로

딱딱해 딱딱해. 식전 연설 같은 것도 아니니까.

 

피가로

같은 현자의 마법사들이니까 '다들 고마워, 다음에도 잘 부탁해!' 정도면 괜찮지 않아?

 

파우스트

그것도 별로라고 생각한다만...

 

레녹스

감사합니다. 피가로 님과... 모두의 소중한 장소를 지키기 위해 힘을 빌려주셔서.

의외였습니다.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파우스트 님께서도, 피가로 선생님과 의견이 같을 거라 생각했어서.

 

현자

어? 그랬던 건가요?

 

파우스트

분명 나도 내 집이었다면 매개로 사용하는 방법을 골랐을 것 같군.

하지만 그때는 누구의 주장도 조금씩 이해가 됐어. 관계자가 아닌 자는 끼어들지 않았을 뿐이야.

 

네로

그래그래. 남쪽의 마법사들끼리 정해줘서 다행이었다고.

 

모두가 가벼운 어조로 평화롭게 이야기한다.

볼과 옷에 진흙을 묻히고 땀에 젖은 머리카락도 그대로였지만, 긴장이 풀린 모습에 출발 전의 날카롭던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조금 상상했다. 사람들의 생활에 뒤섞여 개척하는 데 힘을 빌려준, 이 풍경을 키워온 피가로의 모습을.

 

현자

(...지키고 싶은 건 분명 똑같았던 거야)

 

지금까지 피가로는 그런 식으로 남쪽 나라를 쭉 지켜와준 것이겠지.

모두를 위해서 조금씩 무언가를 잘라버리며.

그것이 때로는 자신에게 소중한 것일지라도.

 

미틸

피가로 선생님! 레노 씨!

 

피가로・레녹스

응?

 

미틸

지금 형님의 어릴 적 스케치북을 봤는데요,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이 그림이래요.

뭘 그린 건지 아시겠어요? 현자 님도, 모두도 생각해보고 말씀해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미틸은 스케치북을 우리들에게 보이도록 내걸었다. 중앙에 선명하고 신선한 그림이 그려져있다.

 

현자

...이, 이건...

 

네로

...뭐야? 휘어진 야채...?

 

파우스트

마법생물이 아닌가?

 

피가로・레녹스

.......

...낮잠자는 개?

 

루틸

정답입니다!

 

시노・히스클리프

진짜로 맞췄어...!?

 

현자

두 분 다 잘 아셨네요!?

 

네로

어떻게 안 거야?

 

레녹스

옛날에 이 근처에서 발견한 개와 함께 미틸과 루틸이 자주 놀았던 것 같아서...

 

피가로

맞아맞아. 그 다음에 대충 때려맞췄다고나 할까?

 

시노

그럼 이것도 알겠어?

 

히스클리프

이 그림도?

 

그대로 테이블에 스케치북을 펼쳐 다함께 그림 맞추기가 시작되었다.

그러고 미틸의 스케치북과 추억의 작품도 놓여지면서, 옛날 이야기 꽃이 핀다.

 

피가로

현자 님. 잔이 비었어.

나랑 똑같이 주스로 할래?

 

현자

네, 감사해요. ...어라? 피가로, 술이 아니네요.

 

피가로

응. 오늘 밤은 취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서.

 

놀라거나 웃거나 수많은 목소리가 들리는 와중, 피가로는 계속 기쁜 것 같았다.

진료소를 지킬 수 있어서 안심한 것은 분명 미틸 일행뿐만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도 이 장소는 날개를 쉴 수 있는 커다란 나뭇가지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현자

(이 장소가 없어지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웃음소리는 끊어지는 일 없이, 즐거운 밤이 계속된다.

시노의 요청에 응한 네로가 식후 디저트를 오븐에서 꺼내어, 파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무렵.

 

네로

자, 레몬파이가 구워졌다고. ...어라.

 

루틸・미틸

...쿨...

 

시노・히스클리프

쿨쿨...

 

레몬파이의 완성을 기다리던 네 사람은 어느샌가 잠들어 있었다.

테이블에 엎드리고 평화롭게 숨소리를 낸다.

 

피가로

결국 잠들어버렸나.

 

레녹스

오늘 하루종일 고생한 피로가 몰려온 것이겠죠.

 

파우스트

한나절 내내 구멍을 팠으니까. 무리도 아니지.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네 명의 자는 얼굴은 막 태어난 것처럼 평온하다.

 

네로

하지만 이 녀석들 꽤 사이가 좋네. 다같이 똑같은 모습으로 자고 있어.

 

현자

아하하. 일어나면 어떤 얼굴일까요.

 

파우스트

왜 깨워주지 않았냐고 분개하는 사람은 있겠지.

 

피가로

애들은 잠들면 순해진단 말이지. 더 놀고 싶었는데.

 

네로

심지어 오늘은 갓 구운 레몬파이를 먹을 기회를 놓쳤구만.

 

레녹스

미틸은 아쉬워하겠고 시노는 억울해하겠네.

 

숨소리가 넷, 각각 다른 음악처럼 들려온다. 그것이 끊기지 않도록 어른들은 조심스레 소리죽여 웃음을 흘린다.

 

현자

또 하나, 새로운 추억이 생겼네요.

 

네로

확실히 오늘 일은 잊을 수 없겠네.

 

파우스트

이 아이들이 잠기운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녹초가 돼서 지켜낸거야.

 

레녹스

네. 여긴 더이상 우리 남쪽의 마법사들뿐만이 아닌, 모두에게 소중한 장소입니다.

 

피가로

...응. 그렇네.

 

밤의 시간이 느긋하게 내일로 흘러간다. 언젠가 오늘의 일을 웃으며 돌아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는 나도 보물을 하나씩 보여주듯이 얘기하고 싶다.

소중한 보물이, 소중한 누군가의, 새로운 추억이 되는 것처럼.

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남쪽 나라&동쪽 나라~

 

균열에서 흘러나온 산성은 머물지 않고 주변을 침식해간다.

그뿐 아니라 기어올라와서, 지면 그 자체가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휩쓸린 바위와 돌이 얼음처럼 쉽게 녹아가는 모습은 위에서 보아도 오싹했다.

 

피가로

큰일인걸. 기세를 몰아 지상으로 나가려고 하네.

얼른 원흉인 마도구를 없애버리자.

 

파우스트

그러고는 싶지만 산의 늪이 방해하는군. 마도구를 지키듯이 둘러싸고 온다고.

 

피가로

막무가내로 봉인하는 건 리스크가 높아. 일단 저게 좀 얌전해지게 만들어볼까.

 

끄덕인 파우스트는 뒤에서 날고있는 네로와 레녹스를 돌아보았다.

 

파우스트

네로, 레녹스. 산의 늪을 억제할 수 있나? 아주 잠깐이라도 좋아.

레노는 치유가 필요하면...

 

레녹스

아뇨, 문제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정도 상처는 마법을 사용하는 데 아무 지장 없습니다.

 

파우스트

...그렇네. 미안하군.

 

네로

요리인에게는 막중한 일이구만. 뭐, 할 거지만 말이야.

 

미틸

저기...! 레노 씨 대신에 제가 해도 될까요!?

 

미틸이 피가로의 옆으로 날아온다.

 

미틸

물론 저로는 역부족이란 걸 알고 있지만요, 저를 감싸주신 것 때문에 레노 씨는 부상을 입으셨어요. 그러니까...

 

레녹스

미틸...

 

루틸

저도 하게 해주세요. 저와 미틸이 레노 씨 몫까지 할게요.

셋이서 힘을 합치면 분명 오랫동안 억제할 수 있을 거예요.

 

네로

...아니, 안 돼.

 

짧은 망설임 뒤, 피가로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네로가 먼저 고개를 저었다.

그로서는 드물게 단정짓는 말에 모두가 네로를 돌아본다.

 

미틸

네, 네로 씨...

 

네로

미안하지만 당신들은 뒤로 물러나줘.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산의 늪을 억제하지 못하면 당신들을 지켜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

양치기 군의 부상을 봤잖아. 당신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서 피가로는 진료소를 없애자고 말했던거야.

 

루틸・미틸

아...

 

레녹스

.......

 

짐작이 가는 듯,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예전 거처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진료소를 생각하지 않는 피가로의 태도에는 나도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합리성의 저울 반대쪽에는 모두의 안전이 놓여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형제가 후회를 머금고 빗자루를 움켜쥔다. 피가로는 그것을 털어내듯이 밝고 상냥한 목소리를 건넸다.

 

피가로

지금은 아냐.

모두가 없애지 않으려고 한 진료소를, 나 자신도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건 미틸과 루틸, 레녹스가 나를 멈춰준 덕분이야.

추억이 가득한 진료소는 없애지 않고 다함께 힘을 합쳐서 산의 늪을 다시 한 번 봉인할거야. 레노의 부상은 나중에 내가 치료할테니까 감사하라구.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피가로

너희들이 제안해준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야.

그렇지, 현자 님?

 

피가로는 나를 돌아보고 물었다. 그 표정은 왜인지 상쾌해 보였다.

이 장소의 누구나가 기쁜 마음이 북받쳐오른 얼굴이어서 나도 따라 웃으며 끄덕였다.

 

현자

네...! 부탁할게요, 피가로.

 

파우스트

좋아. 그럼 루틸과 미틸은 저쪽으로.

시노와 히스클리프는 현자를 지켜라.

 

히스클리프

네.

 

시노

간다, 미틸.

 

미틸

네... 레노 씨, 피가로 선생님, 조심하세요!

 

루틸

여러분, 무리하지 마세요...!

 

걱정 가득한 얼굴인 형제를 재촉하며, 시노와 히스클리프의 빗자루가 산의 늪에서 뿜어져나오는 구멍에서 떨어져 상승한다.

손을 흔들며 배웅한 피가로는 남은 세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피가로

그럼 시작해볼까. 레녹스, 네로.

 

피가로의 눈짓에 두 사람이 마도구를 꺼내들었다.

 

네로

간다.

 

레녹스

그래.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두 사람이 주문을 외우자 투명한 막으로 지면 전체가 덮였다.

강하게 짓눌린채로 산의 늪의 기세가 약해진다.

 

시노

좋아!

 

히스클리프

산의 늪이 막혔어!

 

직후, 검은 안개에 휩싸인 작은 상자가 격렬하게 빛났다. 짓눌린 지면이 저항하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레녹스

큭...!

 

네로

...윽...!

 

두 사람이 동시에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어떻게든 억제하고는 있지만 산의 늪의 저항은 꽤나 격렬한 것 같았다.

 

네로

...이제 한계야. 그쪽 서포트는 못해줘!

 

피가로

내가 주물 주변의 사악한 기운을 없앨게. 정화는 그쪽의 프로에게 맡길게.

 

파우스트

뭐가 프로란 거냐.

 

피가로

믿고있다구.

《폿시데오》

 

주물을 둘러싼 검은 안개가 날려가듯이 홀연히 사라진다.

사악한 기운이 벗겨진 마도구는 허공에 뜬 채 흔들리더니 괴로운 듯이 허덕였다.

 

파우스트

《사틸크나트 물크리드》

 

그러자 하얀 사슬 같은 것이 나타나 마도구를 휘감았다.

사슬은 마도구를 꽉꽉 조였고 비명이 더욱 커졌다.

원망이 담긴 목소리에 눈을 가늘게 뜨고 피가로가 무언가 중얼거렸다.

 

피가로

돌이 된 뒤, 이렇게나 집착만이 남아있었다니. 네가 조금 부러워.

무언가를 상상하고 애석해하고 단념하지 못한 채 큰 소리 치는 걸, 나는 앞으로 볼 수 있을까.

 

파우스트

뭘 중얼거리는 거야. 마무리할 차례다.

너도 목적을 달성하도록.

 

피가로

알고 있어.

 

파우스트

《사틸크나트 물크리드》

 

피가로

《폿시데오》

 

터지는 듯한 눈부심 속, 돌이 부서졌다.

동시에 눈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바람이 밑에서 불어온다.

 

현자

으...

 

잠깐 보였던 것은 구슬을 손에 든 채, 거칠게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떠오르는 장엄한 피가로의 모습.

 

현자

..........

.......?

 

다음 순간에는 산의 늪도, 꺼림칙한 마도구도 눈 앞에서 사라져 있었다.

 

현자

어라...

 

미틸

구멍이 없어졌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울퉁불퉁한 바위산의 풍경이 발 아래에 펼쳐져 있다.

 

루틸

이건...

 

시노

잘 모르겠지만 결국 잘 해결된 건가.

 

파우스트

그래, 끝났어.

 

피가로

이젠 괜찮아. 마도구는 정화했고, 산의 늪은 다시 땅 깊은 곳에 봉인시켰어.

 

히스클리프

다행이다...

 

네로

이거 참, 일단 안심이구만.

 

미틸

...저기, 피가로 선생님.

방금 전 마법, 피가로 선생님이 하신 거예요?

 

루틸

왠지 터무니없는 걸 본 것 같은데요...

 

피가로

.......

설마! 파우스트에게 일시적으로 힘을 빌렸어.

그렇지 않으면 주물과 산의 늪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을 테니까.

 

파우스트

.......

그렇...지...

 

루틸

뭐야, 그런건가요. 파우스트 씨가 힘을 빌려주셨군요.

 

미틸

혹시 피가로 선생님은 엄청난 마법사인 거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피가로

아하하. 그럴 리가 없잖아.

피가로 선생님은 그저 상냥한 의사 마법사니까. 그렇지, 레노.

 

레녹스

그렇습니다. 그래도 선생님 덕분에 이변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미틸

이제 진료소를 없애지 않아도 괜찮은거죠?

 

피가로

응. 지금까지처럼 그 장소에서 진료소를 계속할 수 있어.

모두들 덕분이야. 고마워.

 

루틸・미틸

아싸!

 

빗자루 위만 아니었으면 미틸과 루틸은 분명 펄쩍 뛰며 기뻐했을 것이다. 우리들도 분명 똑같이 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서로 손뼉을 치고 성공을 축하했다. 그 유쾌한 소리에 섞여 시노의 배에서 성대한 소리가 울렸다.

 

시노

...배고파.

 

파우스트・히스클리프

...풉.

 

루틸

아하하!

 

네로

그러고보니 계속 아무것도 안 먹었었네.

 

미틸

그 말 들으니까 갑자기 배가 고파졌어요.

 

피가로

좋아. 굶어 죽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자.

 

산 너머로 바람이 불어와 피로를 기분 좋게 어루어만진다.

석양을 쫓아가듯이 마법사들은 그 장소를 떠났다.

 


 

진료소에 돌아온 후. 이변이 해결된 것을 축하하며 우리들은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옹기종기 모인 진료소의 테이블에는 솜씨를 발휘한 네로의 맛있어 보이는 요리가 놓여있다.

 

루틸・미틸

와, 맛있겠다!

 

레녹스

진수성찬이네.

 

현자

네로, 고마워요.

 

네로

공복으로 일했으니 배고프잖아. 간단한 것들 뿐이지만 마음껏 먹어.

 

시노

한 그릇 더.

 

네로

빠르지 않아!?

 

시노

오늘 하루 종일 배고픈 상태였으니까 말이지. 접시에 놓는 것보다 빨리 내 입 안으로 넣고 싶을 정도다.

 

파우스트

아기새냐...?

 

히스클리프

바로 입에 넣으면 화상 입을걸.

 

피가로

하하. 젊은이의 위는 대단하구나.

 

남쪽의 마법사들도 동쪽의 마법사들도 이변을 해결했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파티는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크기도 형식도 상관없이, 제각각인 잔을 손에 들고 모두들 스스럼 없이 이 시간을 즐겼다.

 

미틸

형님, 이거 기억나요? 선생님께서 간직해두셨어요.

 

루틸

와아, 오랜만이다!

 

시노

뭐지?

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남쪽 나라&동쪽 나라~

 

찾는 물건을 발견하지 못한 채 시간은 시시각각 흘러... 

이윽고 서쪽 하늘이 빨갛게 물들어가기 시작할 무렵.

 

히스클리프

이제 힘이 안 들어가...

 

네로

...히스, 한동안 쉬고 있어. 여긴 내가 할 테니까.

 

히스클리프

네로. 그래도...

 

파우스트

네로의 말대로야. 빗자루로 날 수 있을 정도의 마력은 남겨둬.

시노는 괜찮나?

 

시노

어, 아직 계속 할 수 있어.

 

인간이 육체노동으로 피로를 느끼듯이, 마법사도 마법을 계속 사용하면 피곤해진다.

피가로에게 씩씩하게 대답하던 마법사들도 쉴새없이 구멍을 계속 파냈지만 역시 지쳐있었다.

 

미틸

...하아, 하아...

 

레녹스

미틸, 괜찮아? 조금 쉬는 게 어때.

 

미틸

괜찮, 아요... 그것보다도 빨리, 찾아야...

 

시노

마력이 거의 안 나오고 있다고. 네 몫은 내가 해주지.

 

루틸

미틸은 아팠다가 나은지 얼마 안 됐으니까, 여긴 형님에게 맡겨.

 

레녹스

...다들 무리하지 마. 내가 바꿔줄게.

교대해서 휴식을...

 

현자

(그만큼 마법을 사용했으니 분명 상당히 피곤할텐데...)

 

이제 그만하자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지하에 묻혀있는 주물을 목표로 마법사들은 한 마음으로 구멍을 파내고 있었다.

앞으로도 그 장소에는 피가로의 진료소가 있기를 바라니까.

 

피가로

.......

곤란하네.

 

한숨 쉬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마법사들이 서로 격려하며 구멍을 파고있는 모습을 피가로가 바라보고 있었다.

 

피가로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 둘이서 뭔가를 들고와서... 아아, 씨앗이었던가.

화단을 만들고 싶다고 했었어.

그래도 진료소의 흙과는 맞지 않는 종자였어서 말이지. 나는 말렸어.

시들어버린다고 말하면서.

그래도 두 사람은 그때도 화단을 만들자고 말했어.

그 애들이 놀러오지 않을 때에도 화단에 꽃이 피어 있으면, 내가 덜 외로워하지 않겠냐면서.

 

현자

.......

 

두 사람의 마음은 나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행동으로 이 사람이 기뻐하게 되면 좋겠다고.

내가 없을 때 조금쯤은 쓸쓸하다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옆에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없는 것 같은 피가로의 분위기는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진료소도 마찬가지겠지. 소중한 장소가 없어지면 피가로가 외롭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수고를 들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어른들도 그 마음을 받아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이, 소중한 장소가 없어지면 쓸쓸하다고 그가 여기기를 바란 것일지도 모른다.

 

피가로

...아니나 다를까 꽃은 시들어버렸어. 그 애들도 아쉬워했지.

나도 실망시켜서 아쉬웠어.

나는 오랫동안 살아왔고, 솔직히 꽃이 있든 없든 외롭진 않아.

포기하기 아까운 것도 거의 없어. 그래도 이렇게 누군가가 대신해서 나의 뭔가를 아껴주는 건...

조금은 기쁘네.

 

현자

피가로...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흙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쯤이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에 열중해 있던 우리의 등 뒤에서 레녹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가로가 돌아보고 끄덕인다.

신호였다. 네로와 파우스트도 안심한듯한 얼굴로 시선을 교환한다.

 

파우스트

좋아. 여긴 우리가 대신하도록 하지.

 

레녹스

알겠습니다. 다들 일단 저쪽으로.

 

시노

...윽, 나도 할게.

 

루틸

저도 도울게요.

 

네로

너희도 숨이 턱끝까지 찼잖아. 일단 앉아서 쉬어둬.

이럴 땐 어른들이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하는 법이야.

마력 페이스 배분도 기술이야. 이제부턴 경험의 차이를 보여줄 때라고.

 

루틸

네로 씨...

 

시노

네로, 멋있는걸.

 

히스클리프

응, 멋있어.

 

네로

그렇게 칭찬하지 마. 부끄러워 지잖아...

그렇다곤 해도, 이렇게도 계속 끊임없이 파내면 역시 죽을 것 같구만. 너희들 고생했네.

 

네로의 칭찬에 모두들 쑥스러워하며 얼굴을 마주보고 기쁜듯이 웃는다.

아이들을 피난시킨 레녹스가 돌아오자 어른들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굴착한 지면을 만졌다.

 

피가로

그럼 시작할게. 파우스트, 네로, 레녹스도 힘을 빌려주겠어?

 

네로

힘을 빌린다는 게 무슨 뜻이야? 당신이 일할 차례 아니었나?

 

피가로

그건 그렇지만 말야. 더이상 저 아이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고, 한번에 해결하고 싶어서 말이지.

 

파우스트

물론 상관없어. 빨리 아이들을 안심시키도록 하지.

피가로, 먼저 시작해줘.

 

피가로

알았어. 그럼 나부터...

《폿시데오》

 

파우스트

《사틸크나트 물크리드》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루틸・미틸・히스클리프

...어어!?

 

레녹스・파우스트・네로

!?

 

엘리베이터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듯한, 몸이 부유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올려다보니 동그랗게 도려내진 하늘이 저 멀리서 보였다. 순식간에 구멍이 터무니없을 정도의 깊이까지 내려앉은 듯했다.

 

시노

...뭐야, 방금 그건.

 

미틸

네 명의 마력만으로 이렇게 된 건가요...?

 

네로

어이어이... 다들 너무 힘 준 거 아냐?

 

파우스트

너야말로 거의 전력이었잖아. ...무심코 힘이 많이 들어가버렸군.

아이들은 무사한가?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들키지 않도록"이라고 말씀하셨으면서...

 

피가로

미안미안. 땡땡이 친 만큼 만회하고 싶어서 그만.

고마워 다들, 덕분에 살았어.

 

네 사람은 웃으면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조금 피곤한 듯 보이기도 했다.

피가로는 물론, 모두가 마력을 강하게 사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줄곧 마음에 걸렸던 것이겠지.

땅울림과도 같은 진동이 가라앉자 기다리고 있던 젊은 마법사들이 이쪽으로 뛰어왔다.

 

미틸

피가로 선생님! 방금 그건...

 

피가로

미틸. 모두들 다치진 않았어?

꽤 약한 지층이어서 한번에 무너진 것 같아. 눈치채준 레녹스 덕분이야.

 

히스클리프

그런 건가요...?

 

루틸

레노 씨, 대단해요!

 

시노

꽤 하는걸.

 

레녹스

...아니, 모두가 이렇게 열심히 해준 덕분이야.

 

미틸

그래도 이렇게나 깊이 파내도 마법사의 주물은 나오질 않네요...

 

파우스트

하지만 기척은 가까이서 느껴져. 이대로 계속 파내다보면 분명 나타날 것 같군.

 

네로

즉, 보물 찾기를 위한 구멍파기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는 말인가.

 

현자

여러분 모두 계속 일만 하시는데, 휴식이 없어도 괜찮은 건가요...?

 

히스클리프

맞아, 시노. 지금이야말로 그걸 쓸 때 아니야?

 

시노

그거? ...아아, 그렇군!

다들 이걸 마셔. 내가 만든 피로를 회복하는 약이다.

 

레녹스

고마워.

 

루틸・미틸・히스클리프

...써!

 

현자

피, 피가로의 약보다 써...!

 

파우스트

약초를 대체 얼마나 넣은 거지...?

 

시노

두 배다. 어때, 효과가 바로 나올 것 같지.

 

네로

그, 뭐냐. 일단 졸린 건 싹 날아갔구만.

 

미틸

에헤헤... 덕분에 조금 힘이 돌아왔어요. 계속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레녹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고 파내보자.

 

루틸

화이팅-!

 

시노・미틸・히스클리프

화이팅-!

 


 

미틸

...양이 엄청나게 울고 있지 않나요?

 

한창 구멍을 계속 파내던 와중, 레녹스의 양이 갑자기 매애매애 울기 시작했다.

 

레녹스

정말이네. 무언가를 겁내는 듯한...

 

미틸

뭔가를 느낀 걸까요.

 

미틸은 고개를 기울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미틸

어라? 뭘까요.

저쪽에 뭔가가...

 

현자

저쪽?

 

미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서, 벽에서 작게 튀어나온 불가사의한 색깔의 무언가가 보였다.

 

미틸

...혹시 저게 마법사의 주물...?

 

그것을 파내려고 미틸은 마법을 사용해 주변의 흙을 치우려고 했다.

그러자 주물은 불길한 빛을 내며 벽 속에서 튀어나왔다.

 

현자

...!

 

네로

아무래도 저게 맞는 것 같네!

 

파우스트

그래, 저주의 본체다...!

 

레녹스

선생님, 저건...

 

피가로

거무스름한 작은 구리상자... 피술자의 이와 손톱을 떼어내 넣은 악취미적인 주물이야.

돌이 된 마법사의 마도구인 것 같네.

 

작은 상자는 공중으로 떠오르고 주변에 거무스름한 안개를 내뿜었다.

사악하게 번쩍이면서 목소리가 울린다. 호응하듯 발 아래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루틸・히스클리프

...윽!

 

지면에 균열이 생긴다. 그 틈새에서 진흙 같은 것이 쏟아져나왔다.

작은 구리상자와 같은 색깔의 그것은 사람의 손처럼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며 우리들 쪽으로 다가왔다.

 

시노

어이, 뭐야 이건. 우리를 노리고 있다고!

 

피가로

산의 늪이야. 저주에 동화되어 조종 당하고 있어.

 

네로

서 있기만 해도 공격한다고. 일단 날아서 도망치자!

 

히스클리프

현자 님, 제 빗자루에!

 

현자

네!

 

일제히 빗자루로 날아가려던 그 순간. 산의 늪의 망령이 미틸을 덮쳤다.

 

미틸

와악!

 

레녹스

미틸!

 

곧바로 레녹스가 손을 뻗어 미틸을 껴안으며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레녹스

...윽.

 

루틸

레노 씨!

 

현자

레녹스, 어깨가...!

 

떠오를 때 산성에 데였는지 어깨가 문드러져 있었다.

 

미틸

괘... 괜찮으세요!?

 

레녹스

응, 걱정하지 마.

네로와 똑같이, 나도 좀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야.

 

미틸

레노 씨...

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남쪽 나라&동쪽 나라~

 

미틸의 곁에 피가로가 서 있었다. 그 뒤에는 레녹스와 파우스트의 모습도 보인다.

 

피가로

담력시험 때문에 울려버렸을 때는 정말 당황했었지. 루틸은 무서울수록 좋아하는 아이였어서 정도를 잘 몰랐거든.

눈알을 열 개 붙인 얼굴 같은 것도 준비해뒀었지만 안 하길 잘했네.

 

레녹스

그것 말고도 천장에서 피의 비가 내리게 하려고 하셨죠.

 

루틸・미틸

엑, 그랬나요? 그런 거...

 

미틸

무서워!

 

루틸

재밌을 것 같아!

 

현자

아하하.

 

네로

의견이 멋지게 갈렸네.

 

히스클리프

아무리 그래도 피의 비는 자극이 강한 것 같은...

 

피가로

그때는 재밌게 해주려고 의욕이 좀 넘쳤어서.

 

파우스트

너무 의욕이 넘쳤잖아. 애를 기절하게 할 셈이냐.

 

피가로

다음부턴 자제했어. 모처럼의 숙박회인데 재밌어야지.

기억하니? 숙박회 때 다같이 만든 스튜.

 

미틸

당연히 기억해요! 형님이 좋아하는 걸 전부 다 냄비에 넣어버려서...

 

레녹스

채소와 함께 캔디가 들어가는 등 개성적인 맛이었지.

 

루틸

심지어 크게 썰어서 식재료가 안 익어서...

 

피가로

먹을 때 다들 입에서 딱딱하는 소리가 울렸었어.

 

남쪽의 마법사들이 입을 모아 웃었다.

그들다운, 평소와 같은 광경이었다. 따뜻하고 명랑하며 가슴이 벅찬다.

언제까지나 이런 시간이 계속되기를.

 

미틸

...저, 다시 예전처럼 다함께 숙박회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한 번 더 화단에 꽃을 심고 싶어요.

그리운 추억으로만 두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피가로

...그렇네.

 

피가로의 눈꼬리가 상냥하게 휘었다.

 

피가로

고마워, 두사람 모두. 여길 소중한 장소라고 말해줘서.

진료소를 없애는 건 일단 보류할게. 먼저 파우스트가 말한 방법을 시험해보자.

 

미틸

...피가로 선생님!

 

루틸

정말인가요!?

 

피가로

단, 기한은 하루뿐이야. 그 이상은 기다릴 수 없어.

그 기한 내에 해결하지 못하면 이곳을 매개체로 해서 이변을 막을거야.

...레노도 그거면 괜찮지?

 

레녹스

충분합니다.

 

루틸

다행이다... 재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가로 선생님!

 

네로

잘됐네, 미틸.

 

미틸

네!

 

히스클리프

그런데 파우스트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방법이란 게 어떤 건가요?

 

파우스트

과거에 산의 늪과 함께 지하 깊숙히 묻힌 마법사가 있다.

그곳에 남은 사념을 폭발하게 만드는 주물을 찾아 악의를 버리는 방법이다.

 

미틸

산의 늪과 마법사의 주물...?

 

루틸

그런 게 여기 묻혀있는 건가요?

 

레녹스

정확하게는 묻혀있는 건 이곳이 아니라 훨씬 먼 장소라고 해.

그 마법사의 주물이 저주를 불러와서 산의 늪과 함께 이변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 같아.

 

시노

성가신 이야기군. 누구야, 그 마법사를 묻은 놈이.

 

피가로

글쎄, 오래된 시절의 이야기니까 말이야.

 

네로

뭐 어쨌든 땅을 파내서 주물을 찾으면 어떻게든 된다는 얘기네.

 

루틸

그런 거라면 열심히 땅을 파도록 하죠!

 

미틸

네! 저, 반드시 찾을게요...!

 

히스클리프

다같이 찾으면 분명 발견할거야.

 

현자

맞아요, 힘내죠!

 

시노

우리가 협력하는 거니까 말이지. 주물이 어떤 건진 모르겠지만 파내서 찾기만 할 뿐이라면 여유롭다.

 

파우스트

당연하지.

 

히스클리프

...후후.

 

레녹스

그렇네요.

 

시노뿐만 아니라 파우스트의 믿음직한 대답에 모두들 조금 어색해했다.

 


 

그러고 잠시 뒤 우리들은 산의 늪이 묻혀진 곳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생각보다도 멀었고 이동하는 데에 대략 반나절이 지나고 말았다.

 


 

피가로

산의 늪이 묻혀있던 건 바로 이 밑이야.

 

도착한 것은 바위산 중턱쯤이었다. 초목은 적고 황량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파우스트

이제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순 없어. 곧바로 시작하지.

 

레녹스

목표물은 꽤 깊은 위치에 있다고 해. 모두들 이 밑을 마법으로 파내줘.

 

루틸・미틸・히스클리프

네!

 

피가로

이 주변을 한참 파내다보면 지반이 약한 곳이 있을지도 몰라.

거기는 한꺼번에 파낼 수 있을거야.

레녹스라면 알아볼 수 있겠지. 찾으면 신호를 보내줘.

붕괴될 위험이 있으니까 애들은 피신시키고.

 

레녹스・파우스트・네로

........

 

레녹스

알겠습니다.

 

그것은 피가로가 제안한 절차였다. 이곳에 오기 전에 어른들이 상의한 작전은 이렇다.

주물을 발견하기 위해 땅속 깊이 구멍을 파내기에는 피가로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피가로는 젊은 마법사들에게 강한 마력을 가진 것을 숨기고 있다. 들키지 않도록 마법을 사용해야만 한다.

숨어서 마법을 쓰면서 의심받지 않을 타이밍에 『지반이 약한 곳을 발견했다』라고 말한다.

그것을 신호로 아이들을 이동시켜, 그 틈에 피가로가 강한 마법을 사용할 예정이다. 

 

피가로

우리는 이쪽에서 작업하자. 파우스트, 레녹스, 네로.

부탁해도 될까?

 

레녹스

네.

 

파우스트

레녹스 안쪽에 서면 되겠지. 네로는 저쪽으로.

 

네로

예엡.

 

피가로

미안해. 동쪽의 섬세한 요리인 마법사인 너에게 이런 일을 맡게해서.

 

네로

아니아니... 남쪽의 가냘프고 상냥한 마법사의 부탁이면 나도 거절할 수 없는 법이라.

 

피가로

현자 님은 파낸 곳에 그럴싸한 게 없는지 봐줄래?

 

현자

알겠어요.

 

피가로

미안해. 이렇게 끌어들여서.

 

조금 미안한 듯한 목소리에 돌아보았다. 진료소를 없애지 않는다는 수고를 들이기 위한, 이것은 일종의 거래다.

미틸이 진료소를 없애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했던 욕망과, 형제의 앞에서는 남쪽의 마법사 피가로로 계속 있고싶다는 욕망.

그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조금의 무리가 필요했다.

 

미틸

좋아. 형님 시작하죠!

 

루틸

응! 시작할게!

 

미틸

《올토닉 세아르시스필체》

 

루틸

《올토닉 세토마오제》

 

히스클리프

시노, 우리도.

 

시노

그래.

 

히스클리프

《레프세바이블프 스노스》

 

시노

《맛차 스디파스》

 

기합을 넣은 젊은 마법사들이 각자 주문을 외운다.

그러자 크고작은 제각각의 구멍이 움푹하게 지면에 파이기 시작했다. 어른들도 그에 따라 주문을 외웠다.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파우스트

《사틸크나트 물크리드》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피가로

《폿시데오》

 

주문을 외울 때마다 포크레인으로 파낸 것처럼 구멍은 점점 커지고 깊어지며, 지하로 흙이 파여간다.

마법이라고 하지만 지층을 거슬러 올라가 바위가 섞인 흙을 파내는 일은 꾸준하고 끈기가 있어야하는 작업이다.

마법사들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오로지 구멍을 파는 일을 계속했다.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이 주변에는...

 

피가로

아직이야, 조금 더.

 

현자

(아직 피가로의 마법이 자연스럽게 보일 타이밍이 아닐지도 몰라)

(젊은 마법사들을 위해서라도 레녹스 일행은 빨리 작업을 끝내고 싶어하는 거겠지만...)

 

피가로의 힘을 빌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아이들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서이다.

사정을 알고있는 세 사람은 말을 꺼내기 어렵겠지.

 

히스클리프

...안 보이네요.

 

현자

그러게요. 지금쯤 그럴싸해 보이는 건...

 

시노

꽤 파냈지만 정말로 이 밑에 있는건가.

 

미틸

아직 부족한가봐요... 얼마나 깊게 묻혀있는 걸까요...

 

구멍에서 올라다보는 하늘이 멀어져도 산의 늪과 함께 묻혀진 주물은 보이지 않았다.

피가로의 말대로 산의 늪이 잠든 곳은 간단하게 파낼 수 없는 깊은 장소인 듯하다.

 

피가로

다들 몸은 괜찮아? 조금은 휴식을 취하면서 해야해.

 

미틸

아직 괜찮아요! 그보다 피가로 선생님은 괜찮으세요?

 

피가로

어?

 

루틸

아까 아기를 치료하셨으니까요. 피곤하시죠?

 

피가로

...아하하. 고마워.

그래도 나도 열심히 해야지.

 

피가로가 몇 번이나 쉬라고 얘기해도 그들은 고개를 저으며 구멍을 팠다.

마법사들의 주문이 여러 번 들려온다. 남쪽의 마법사 피가로의 주문도, 작게 포개져 갔다.

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남쪽 나라&동쪽 나라~

 

평소 온화하고 협조적인 남쪽의 마법사들 간의 충돌은 차가운 긴장감을 불러왔다.

그만큼 서로에게 양보할 수 없는 생각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르겠다고 말하며 피가로를 거부한 미틸처럼.

 

현자

(...미틸, 괜찮을까)

 

자연스레 문 쪽을 본다. 슬퍼하며 나간 그는 지금쯤 어쩌고 있을까.

 

현자

...죄송해요. 저, 미틸의 상태를 보러 다녀올게요.

 

네로

그럼 나도 같이 갈게.

 

현자

고마워요, 네로.

 

피가로 일행도 걱정은 되지만 우리는 미틸을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조금 떨어진 나무 그늘에 미틸은 주저앉아 있었다. 루틸이 다가가는 와중, 시노와 히스클리프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을 건다.

 

미틸

저, 고집 부린 걸까요. 하지만 여기가 없어져 버린다니...

 

시노

고집이 아니야. 미틸이 장래에 일할 곳이다.

네 허가도 없이 멋대로 없애버리면 곤란하잖아.

 

히스클리프

그렇지...

나도 갑자기 블랑쉐 성을 없앤다고 들으면, 만약 나에게 결정권이 없더라도 놀라고 상처받을거라 생각해.

 

시노

그런 짓을 하게 놔둘까보냐. 주인님이 상대라해도 목숨과 바꿔서라도 저항할거다.

 

히스클리프

곧바로 목숨 걸지 마! 단순히 예시일 뿐이야.

그래도 지금의 미틸은 그런 기분을 품고있는 거지.

 

미틸

.......

 

현자

저기...

 

루틸

현자 님. 와주셨군요.

 

히스클리프

네로도.

 

시노

다른 녀석들은?

 

네로

아-- 아직 안에서 얘기하고 있어.

 

현자

미틸, 조금 진정 됐나요?

 

나를 보고 미틸은 작게 끄덕였다. 울었던 것인지, 울음을 참았던 것인지, 예쁜 녹색의 눈동자가 지금은 새빨갛게 젖어있다.

그 어깨를 루틸은 상냥하게 감싸안았다. 늘 명랑하던 형제는, 지금은 슬픈 듯 속눈썹을 내리깔고 같은 아픔을 견디고 있다.

 

미틸

어떤 사정이 있는지 자세히는 몰라요. 진료소를 포기한다는 말밖에 안 들렸거든요.

그래서 혹시 피가로 선생님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이, 모두를 위한 올바른 일일지도 몰라요.

그래도... 역시 싫어요.

 

미틸은 코를 훌쩍였다.

 

미틸

이런저런 방법을 시험해보고 더이상 다른 수단이 없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이 장소를 없앤다는 방법을 가장 먼저 고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가능성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방법을 시험해보고 싶어요.

저는, 저 장소를... 피가로 선생님의 진료소를, 지키고 싶어요...

피가로 선생님께서 그걸 허락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현자

미틸...

 

시노・히스클리프

........

 

루틸

미틸, 형도 같은 생각이야. 저 장소는 울고 웃던 추억이 가득하니까.

 

미틸

...형님.

 

루틸이 미틸의 어깨를 끌어안고, 미틸은 쓸쓸한 듯이 무릎을 꼭 안았다.

피가로를 대신하듯 네로는 미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로

너희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마음과 똑같이, 피가로도 여기 사는 모두를 지키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거야.

 

네로는 주변을 바라보고 한숨을 쉬었다. 바람이 약하게 불자 호수 위에 물결이 인다.

남쪽 나라는 자연이 험하고 개척이 어렵다고 여겨지던 땅이다. 이 마을도 이렇게 생활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고난이 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현자

(...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진료소 쪽을 바라보았을 때, 문득 작은 화단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꽃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꽃의 이름이 쓰여있었을 귀여운 간판이 늘어서있다.

 

히스클리프

현자 님? ...아아.

저런 곳에 화단이 있었군요.

 

현자

지금 깨달았어요. 꽃은 없는 것 같지만...

 

미틸

저건 옛날에 저희가 만든 거예요.

 

현자

그런가요?

 

루틸

네. 레노 씨에게도 도움을 받아서 흙을 옮기거나 모종을 심기도 했어요.

 

구름 사이로 빛이 비추듯이 미틸과 루틸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미틸

물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흙이 맞지 않았는지, 꽃이 금방 시들어버렸지만요...

피가로 선생님이 다음에 또 심자고 화단을 그대로 남겨두셨어요.

 

시노

헤에.

 

네로

그래서 간판도 그대로 남아있구나.

 

루틸

저건 미틸이 쓴 거예요. 글자를 막 배운 참이었어서 자기가 쓰겠다고 의욕이 넘쳐서.

 

히스클리프

아하하. 그렇게 작을 때 만든 거구나.

 

미틸

저, 어릴 때부터 피가로 선생님의 진료소에 자주 신세를 졌어요.

열이 내려가지 않을 때나, 몸상태가 안정되지 않을 때는 몇 번이나 여기서 지내게 해주셨던 적도 있어요.

 

현자

진료소에 입원했던 적이 있나요?

 

미틸

네. 가끔이지만요.

 

루틸

집에서 금방 나아지지 않아서 피가로 선생님께 진찰을 받으면서 한동안 지내고 있었죠.

 

미틸

그래도 괴로웠던 것뿐만 아니라, 즐거웠던 추억도 많이 있어요!

숙박회를 하면서 형님과 함께 진료소에서 묵기도 하고.

 

루틸

어릴 적에 자주 했었지. 그런 날은 다함께 밥을 해먹고 밤에는 반드시 담력시험을 하고...

귀신 역할이었던 피가로 선생님이 너무 겁을 줘서 미틸을 울렸던 적도 있었지.

 

미틸

하지만, 엄청 무서웠다구요! 찬장을 열었더니 피가로 선생님의 머리가 떠 있어서...

 

히스클리프

그, 그건 무섭네.

 

네로

너무 의욕이 들어갔잖아.

 

루틸

그때 피가로 선생님은 무척 당황하셨었지. '미안해, 괴물이 아니야'라면서 미틸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필사적으로 사과하고. 

 

미틸

레노 씨도 안심시키려 웃어줬지만 그 얼굴이 무서워서 더 울어버렸어요.

 

현자

아하하. 상상이 가요.

레녹스도 함께 담력시험을 했군요.

 

미틸

네! 양치기 일이 없을 시기에 몇 번인가 함께 진료소에 얼굴을 비춰주셨어요.

 

미틸과 루틸은 진료소에서의 추억을 아주 많이 들려주었다.

두 사람에게 얼마나 애착있는 곳인지, 그 신난 표정을 보면 누구라도 알 것이다.

소중한 누군가와 울거나 웃거나 응석부리거나. 되돌아보면 전부 빛으로 가득 찬, 분명 보물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미틸

아직 말하기 부족할 정도로 이곳에는 추억이 가득해요.

저희에게 있어 둘도 없는 정말로 소중한 장소예요.

 

피가로

그런 일도 있었지. 그립네.

 

미틸

피가로 선생님!

 

루틸

어느새...

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남쪽 나라&동쪽 나라~

 

피가로

지하에 묻혀있는 산의 늪은 마법사의 저주에 이끌리듯 이동하고 있어.

이 주변에 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게 그 증거야.

마을의 주거구역에까지 영향이 미치면 큰일이야. 늦기 전에 손을 써두는 게 좋을거라 생각해.

 

레녹스

그건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망설이는 와중, 레녹스가 무겁게 묻는다.

 

레녹스

...그건, 이 진료소를 없앤다는 뜻입니까...?

 

피가로

그렇게 되겠네.

 

현자

그럴수가....

 

피가로

벌써 여기저기서 피해가 나오고 있어. 우물쭈물해 있을 시간이 없으니까 말야.

 

파우스트・레녹스

.......

 

우리는 할 말을 잃고 침묵에 잠겼다.

방금 전까지 진료소의 미래에 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훈훈한 실내 공기가 확 차가워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피가로가 하는 말은 옳을지도 모른다. 이 이상으로 피해가 넓어지기 전에 이변을 방지하는 것이 마땅할 터.

 

현자

(...하지만)

 

이 풍경을 반갑다며 기뻐하던 루틸과, 언젠가 이 곳에서 피가로와 함께 일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으며 꿈을 이야기하던 미틸.

그리고 피가로를 의지하여 방문한 부부의 얼굴. 그들이 피가로의 모습을 보았을 때의, 가슴을 쓸어내리고 웃음꽃이 피던 모습이 눈꺼풀 뒷편에 떠오른다.

아주 짧은 체류 중에도 이곳이 둘도 없는 장소라는 것을 그들은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현자

(그런 소중한 장소를 없앤다니...)

 

정말 괜찮을까.

이변을 잠재우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쉽게 결정해버리면 후회하지 않을까.

 

피가로

그렇게 무겁게 받아들이지 마. 진료소를 포기할 뿐인 거야.

 

미틸

잠시만요!

 

루틸

어떻게 된 건가요!?

 

레녹스

미틸, 루틸.

 

파우스트

너희들, 벌써 돌아온 건가?

 

히스클리프

죄송해요. 시노가 도중에 배가 고프다고 해서...

 

시노

갑자기 생각났다. 아직 점심을 먹지 않은 게.

 

네로

것보다 방금 그 이야기는 어떻게 된 거야? 진료소를 포기한다니...

 

피가로

말 그대로야. 진료소는 처분하기로 했어.

 

미틸

그럴수가, 대체 왜...

 

피가로

이변을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어. 나도 이 진료소에는 애착이 있고 추억도 아주 많아.

그래도 이대로 있다간 더욱 끔찍한 일이 일어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슬퍼할지도 몰라.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만하는 일이란다.

 

미틸

어, 어떻게든 없애지 않는 건 안 되나요? 여기는 저희들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추억이 아주 많은데...

 

미틸의 목소리에서 감출 수 없는 동요가 느껴졌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피가로가 극히 차분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대답한다.

 

피가로

없애지 않을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위험이 동반되고 제법 손이 많이 가.

여기는 미틸의 휴식도 겸해서 온 거니까 말이야. 의뢰는 빨리 끝내고 다같이 느긋하게 쉬고 싶잖아.

 

미틸

피가로 선생님...

 

피가로의 말을 듣고 미틸은 충격을 받은 듯 눈을 크게 떴다.

피가로는 아주 오랫동안 살아온 마법사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자신의 집을 없앤다는 것은 별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진료소도 오랜 시간을 살아오는 동안 잃거나 얻은 것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미틸에게 있어서는 어릴 적 추억이 많이 남아있는 장소이고, 방금 전까지도 다같이 평화롭게 지내던 곳이다.

그런 장소를 갑자기 없앤다고 들으면 망설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의 눈동자에서 슬픔과 반발심이 느껴졌다.

 

미틸

게다가... 제가 장래에 약사가 되면 여기서 일하게 해주신다고, 아까...

 

피가로

...미틸. 너는 현명하니까 알겠지?

 

미틸

.......

모르겠어요.

 

무척 슬픈 듯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미틸은 고개를 저었다.

 

미틸

저,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알고싶지 않아요...!

 

시노・히스클리프

미틸!

 

루틸

잠깐만, 미틸.

죄송해요, 진료소에 관한 건 선생님께서 결정하실 일인데. 하지만 미틸에게도 생각하는 바가 있는 것 같아요.

 

미틸을 쫓아 세 명이 달려나갔다. 발소리가 멀어지고, 잠시 동안 진료소는 조용해졌다.

 

피가로

...납득하지 못한 걸까. 역시 남쪽의 젊은 마법사는 토지에 집착이 있네.

 

레녹스

지금은 당신도 남쪽의 마법사입니다.

 

레녹스가 낮은 목소리로 던졌다. 한숨을 내쉬는 듯한 태도에 피가로가 천천히 그쪽으로 시선을 향한다.

 

레녹스

저도 미틸과 같은 의견입니다.

 

현자

레녹스...

 

피가로

뭐야. 레녹스까지 반대하는 거야?

 

레녹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나서 포기하고 싶습니다. 당신에게는 쓸데없는 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요.

 

피가로

시간이 있다면 쓸데없는 일이나 수고가 들어도 사랑할 수 있는 법이야. 지금은 그렇지 않고.

다소의 희생은 따르기 마련이야. 수수방관한 채 나무를 시들게 할 바에, 난 차라리 병든 가지를 꺾을거야.

 

레녹스

가지도 아픔을 느낍니다. 그 가지에 앉아 쉬는 작은 새들도 있을 거고요.

이런 일을 반복하니까 잃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게 아닙니까. 저는 당신처럼 딱 잘라버리진 못합니다.

 

레녹스의 목소리는 조용하고도 반항적이었다.

 

피가로

너도 제법 잘 말하는구나.

 

그에 비해 피가로는 싫증난 왕자처럼 입꼬리를 올렸다.

두 사람 사이에 험악한 분위기가 흐른다.

 

네로

...저기 말야, 잘은 모르겠지만 수단은 그거 하나밖에 없는 거야?

 

네로의 말을 듣고 자연스럽게 시선이 파우스트에게로 모인다.

레녹스는 파우스트 쪽으로 완전히 몸을 틀었다.

 

레녹스

파우스트 님. 달리 저주를 없앨 방법은 없을까요.

 

조금 생각에 잠긴 뒤, 파우스트는 입을 열었다.

 

파우스트

.......

없는 건 아냐.

우선 당시 산의 늪과 그 마법사를 묻은 현장으로 가서, 그 토지를 파내고 원흉이 된 물건을 찾는다.

피가로는 무언가에 원한이 깃들었다고 말했지만, 아마 마법사가 지녔던 물건이나 마도구가 원인이겠지. 별로 좋은 물건은 아닐거다.

주물이 된 그걸 찾아서 정화하면 이변을 잠재울 수 있을지도 몰라.

 

현자

정말인가요...!?

 

희망이 보여 그 순간 가슴이 북받쳤다. 하지만 피가로의 한숨이 그것을 싹 지워버렸다.

 

피가로

지상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산의 늪은 상당히 깊은 지하에 묻었어. 주물을 찾는다면 엄청난 시간과 수고를 들여야 해.

그럴 동안에도 저주가 산의 늪을 이끌고 마을로 오지 않는다고는 장담할 수 없어.

보아하니 앞으로 남은 건 이틀 정도야.

주물이 나올 가능성은 낮고, 애초에 발견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어.

 

레녹스

.......

 

모두에게 설명하면서도 피가로의 눈은 레녹스를 향하고 있다.

 

현자

(...설마 이 두 사람이 대립하다니...)

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남쪽 나라&동쪽 나라~

 

침대에 눕혀도 아기는 불에 데인 것처럼 계속 울었다.

 

피가로

좋아좋아. 착하지.

 

피가로는 아기를 달래면서 목구멍과 눈의 색을 관찰하고 상태를 확인했다.

 

피가로

...응. 어디가 아픈 건 아니야.

 

피가로는 작은 몸에 손을 대고 마법을 걸었다.

그러자 흐느껴 울던 아이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져갔다.

 

피가로

조금 나쁜 게 들어간 것 같아. 회복 마법을 걸어뒀으니 금방 좋아질거야.

오늘 밤 푹 자고나면 내일 아침에는 분명 건강해져 있을거야.

 

남성

정말인가요!?

 

여성

아아, 다행이다...!

 

눈물을 흘리며 부부는 아이를 안아올렸다. 몇 번이나 머리를 숙인다.

 

여성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는 이 아이에게 큰 일이 생겼으면 어쩌지 싶어서... 

 

피가로

괜찮아. 쉽게 지지 않는 강한 애야.

그렇지? 아가씨.

 

아기의 코를 상냥하게 쿡 찔렀다. 아기가 웃자 부부도 긴장이 풀린 것인지 따라 웃었다.

 

남성

맞다, 피가로 선생님. 일이 끝나시면 꼭 저희 마을에 들러주세요.

마을 녀석들을 불러서 환영해드릴테니까요.

 

여성

맞아요. 꼭 대접하게 해주세요.

제 어머니도 선생님께 진료 받고나서 복통이 좋아졌다고, 저에게 몇 번이나 말씀하세요. 선생님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세요.

 

피가로

아하하. 고마워.

다음에 천천히 들를게.

 

왔을 때는 불안해 보였던 부부는 이제 완전히 밝은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이를 안은 손에서도 안도감이 느껴진다.

피가로를 신뢰하는 그 모습을 눈앞에 두고, 나는 미틸의 말을 떠올렸다.

 

현자

(...든든하고 소중한 장소...)

 

오늘뿐만 아니라 부부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피가로에게 도움을 받아온 것이겠지.

그것은 분명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현자

(이곳은 모두에게 있어서 안심을 주는 소중한 장소구나...)

 

부부가 진료소를 떠나고 드디어 진정된 무렵.

 

피가로

그럼 본격적으로 조사를 진행해볼까.

 

미틸

피가로 선생님, 뭘 하면 될까요?

 

루틸

저희, 뭐든 할게요!

 

피가로

응. 두 사람에게 맡기고 싶은 일이 있어.

그리고 시노와 히스클리프와 네로에게도.

다섯명은 우선 이 주변을 날아서 뭔가 눈에 띄는 이변이 없는지 확인해줬으면 좋겠어. 그 동안 우리도 조금 조사하고 싶은게 있어서.

 

루틸・미틸・히스클리프

네!

 

시노・네로

알겠어.

 

현자

여러분, 조심하세요.

 

루틸

감사합니다. 그럼, 다녀올게요.

 

다섯명이 타다닥 밖으로 나가고 진료소의 문이 닫힌다.

적당한 때를 기다리던 것처럼 파우스트가 말을 꺼냈다.

 

파우스트

...너, 벌써 이 이변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챈 거 아닌가?

 

현자

어... 그런가요?

 

피가로는 어깨를 으쓱였다.

 

피가로

짐작일 뿐이지만, 이 지진의 원인은 산의 늪이야.

 

레녹스

...산의 늪?

 

피가로

풀과 나무는 물론, 닿는 건 뭐든 녹여버리는 귀찮은 늪이야. 남쪽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생물에게 맹독 그 자체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지반은 안정되지 않고 다양한 재해를 일으켜. 처치 곤란하단 말이지.

 

현자

그런 무서운 늪이 있다는 건가요...?

 

피가로

정확하게는 있었다, 라고 할까. 아주 먼 옛날에 덮어버렸으니까.

개척하기 시작했던 무렵의 오래된 이야기인데, 덮어버리기 전, 산의 늪 주변에는 다양한 이변이 일어났었어.

커다란 지진이 자주 일어나거나, 지면에 갑자기 구멍이 뚫리거나 말이야.

 

파우스트

이번 이변과 거의 똑같군.

 

피가로

그래. 우연의 일치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매립한 늪이 이제와서 장난을 치고 있어.

 

현자

.......

 

무의식 중에 시선을 발밑으로 떨어뜨린다. 땅 밑에 묻힌 꺼림칙한 늪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그런 위험한 장소에 이 진료소를 세운 겁니까?

 

피가로

설마!

 

섭섭하다고 말하듯이 피가로는 크게 고개를 저었다.

 

피가로

산의 늪이 있었던 건 여기가 아니야. 아주 먼, 사람이 사는 곳에서 떨어진 장소야.

애초에 생물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토지였지만 그냥 놔두는 것도 위험하니까. 지하 깊숙히 묻고 봉쇄한거지.

그래서 지금은 안전하고,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 있는 진료소 주변까지 영향 같은 건 있을 리가 없어.

 

파우스트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이변이 발생하고 있어. 짚이는 게 있을텐데.

 

아주 잠깐 난처한 듯이 피가로는 팔꿈치를 긁었다.

 

피가로

나에 대한 복수이려나.

 

레녹스

복수, 말인가요.

 

피가로

그래. 당시 사람을 속이거나, 마법으로 도둑질을 하는 마음가짐이 나쁜 마법사가 있어서 말이지.

돌로 만들어서 늪과 함께 묻어버렸어. 한꺼번에 처리했다고나 할까.

 

피가로의 말에 나는 철렁했다.

 

현자

처, 처리?

 

시원스러운 말투는 주눅 든 기색도 없다.

 

현자

(평소 분위기로 보면 금방 잊어버렸을 것 같은데...)

 

피가로는 수천 년을 살아온 마법사다. 낙숫물이 목덜미에 떨어진 것처럼 오싹한 감각이 들었다.

 

레녹스

그럼 이번 이변은 그 마법사가 일으켰다는 건가요.

 

피가로

그렇다고 생각해. 방아쇠는, 아마 〈거대한 재앙〉이겠지.

저 달의 영향으로 마법사가 남긴 원한이 무언가에 깃들어 산의 늪의 정령과 결합된 게 아닐까.

약한 만큼, 집념이 강한 남자였으니까 말이야.

자아 같은 건 벌써 사라졌을텐데도, 나를 찾으러 지맥을 기어다니고 이 진료소 지하까지 이동해 온 거겠지.

정말이지, 한결같은 놈이야.

 

그렇게 말하고 피가로는 주문을 외웠다.

 

피가로

《폿시데오》

 

현자

...우왓?

 

또다시 커다랗게 지면이 흔들렸다.

동시에 검은 안개 같은 것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현자

(...어? 뭐지...?)

 

레녹스

이건...

 

갑자기 낮은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음산한 소리가 울리고, 무심코 귀를 막았다.

온몸에 휘감기는듯한 불안감. 듣는 것만으로 기분이 안 좋아진다.

실제로 목소리가 들린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 소리에서 강한 원망과 증오가 느껴졌다.

괴로워하고 발버둥쳐라... 뭐든 빼앗아주겠다, 라고.

 

피가로

미안해, 무섭게해서.

 

딱, 하고 피가로의 손가락이 울린다.

그러자 검은 안개도, 원망하던 느낌도 꿈처럼 확 사라졌다.

 

현자

...방금 그건...

 

파우스트

아까 느낀 저주의 기운은 이거였나...

 

레녹스

파우스트 님. 눈치채고 계셨습니까?

 

파우스트

왠지 불온함을 느끼고 있던 정도다. 이 남자처럼 뭐든 알고있는 건 아냐.

 

파우스트는 힐끗 피가로를 보았다.

 

파우스트

거기까지 알고 있었으면 해결책도 있는 거겠지.

 

피가로

그렇네...

이변을 일으키고 있는 집념의 대상은 나야. 나와 토지의 결합이 강한 걸 매개로 하면 금방이라도 소멸시킬 수 있어.

즉, 이 진료소야.

 

현자

어...

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남쪽 나라&동쪽 나라~

 

피가로

자, 도착이야. 다들 고생했어.

 

현자

여기가 피가로의 진료소...

 

커다란 호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러셀 호수는 호반을 중심으로 마을이 군집해 있는 것 같았다.

주민들의 집들이 호수 주변에 모여있었다.

피가로의 진료소는 그 호수를 마주하고 서 있었다. 소박한 모습은 친숙해지기 쉬운 분위기가 있다.

 

미틸

왠지 오랜만에 온 기분이에요.

 

루틸

최근엔 올 기회가 없었지. 그래도 하나도 변한 게 없는 것 같아.

 

그리운 풍경에 둘러싸여 루틸과 미틸은 기쁜 듯했다. 그래서 그런지 레녹스도 표정이 부드럽다.

 

현자

레녹스도 역시 반가운 기분인가요?

 

레녹스

그렇군요. 저도 오는 건 오랜만이라.

 

시노

호수랑 가깝네. 나쁘지 않아.

 

히스클리프

경치가 아름다워. 몸을 돌보기엔 딱 좋은 환경인 것 같아.

 

루틸

무척 예쁜 곳이죠? 피가로 선생님의 진료소에는 옛날부터 쭉 신세를 지고 있어요.

저희뿐만 아니라, 여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 피가로 선생님을 의지하고 있거든요.

 

미틸

약을 받거나, 다친 곳을 봐주시거나, 아플 때 상담하거나...

모두에게 무척 든든하고 소중한 장소예요.

 

피가로

그렇게 칭찬하면 부끄러운걸.

 

피가로가 바라보자, 미틸과 루틸은 웃으며 가슴을 폈다.

그것은 고향인 구름의 거리로 돌아왔을 때, 그들이 보인 표정과 같은 것이었다. 자랑스럽고 마음이 편안한 듯했다.

 

현자

(미틸과 루틸에게 있어서 이곳은 또 하나의 집 같은 곳일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한 직후, 현기증 같은 감각이 엄습했다.

 

현자

...윽!

 

시노・미틸・히스클리프

!?

 

네로

우왓?

 

파우스트

지진인가...!

 

진동은 생각보다 컸다. 몸서리 치는 지면에 몸이 휘둘린다.

갑작스러웠기 때문인지 다들 크게 휘청거렸다. 나도 비틀거리며 넘어질 것 같았지만 레녹스가 받쳐주었다.

 

레녹스

현자 님, 저를 잡으세요.

 

현자

가, 감사합니다...!

 

곧 진동은 멎었다. 다들 크게 숨을 내쉬었다.

 

루틸・미틸

깜짝 놀랐어...!

 

시노

히스, 괜찮아!?

 

히스클리프

으, 응. 괜찮아...!

 

파우스트

...지진이 빈발한다는 얘기는 아무래도 진짜인 것 같군.

 

네로

도착하자마자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네. 거기다 꽤 크잖아.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야기를 듣기만 해서는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그 무서움을 알지 못한다.

우리들은 직접 이변의 심각함을 실감했다.

 

레녹스

이 정도 규모의 지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난다면 피해가 상당할 것 같습니다.

 

루틸

이미 무너진 건물도 있다고 해요. 이대로 지진이 계속되면 진료소도 무사하지 못할지도...

 

미틸

그럴수가... 빨리 어떻게든 해야겠어요.

이 이상 큰 일로 번지기 전에 저희가 이변을 막죠!

 

루틸

응! 모두의 소중한 장소는 우리가 지켜야지.

 

친숙한 토지라는 것도 있어서인지 미틸과 루틸은 평소보다도 의욕이 가득했다.

한편, 피가로는 웅크려 앉은 채 지면에 손을 댔다.

일어났다고 생각했으나, 금방 묘한 얼굴로 생각에 잠긴다.

 

피가로

.......

 

현자

피가로?

 

파우스트

...어이, 이 토지는.

 

피가로

파우스트.

우선 진료소 안에서 이후의 조사 방침을 정하고 싶어.

거기다 모처럼 여기까지 오게 했잖아. 일부러 멀리서 찾아온 손님을 환영해주고 싶어.

 


 

피가로에게 이끌려, 일단 진료소에 들어가기로 했다.

건물은 그렇게 넓지 않았다. 한정된 공간에, 오래된 책상과 의자, 침대와 약을 늘어놓은 서랍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어떤 곳도 햇볕이 잘 들고 깨끗했다. 약해진 심신에 좋은 공간일 것이다.

 

피가로

좁은 곳이지만 편하게 쉬어도 돼.

 

현자

피가로, 차까지 내주시다니 감사해요.

 

히스클리프

이거, 무척 향이 좋네요.

 

피가로

마음에 든다니 기뻐. 약초를 달인, 피로회복에 도움이 되는 차야.

다들 여기까지 이동하느라 피곤하잖아?

 

네로

그거 고맙네.

 

히스클리프

잘 마실게요.

 

현자

...쓰....

 

시노

써!!

 

루틸

오랜만이네, 피가로 선생님의 쓴 차.

 

미틸

으으... 이 차, 맨날 마셔도 쓰네요.

 

다들 고전하고 있는 와중, 파우스트와 레녹스는 조용히 차를 마셨다.

 

네로

두 사람 다 잘도 태연하게 마시는구나. 쓰지 않아?

 

파우스트

쓴 맛의 차는 익숙하니까.

 

히스클리프

레녹스도?

 

레녹스

아니, 써.

 

현자

(쓰구나...)

 

미틸

맛은 조금 개성적일지도 모르지만, 이 쓴 차는 정말로 몸에 좋아요. 이걸 마시고 하룻밤 자면 엄청나게 건강해져요.

 

루틸

맞아맞아. 거기다 계속 마시면 이 맛이 중독된다고나 할까...

미틸과 자주 차를 마시러 여기 오곤 했어요.

 

미틸

네, 반갑네요!

 

피가로

어, 혹시 두 사람이 여기 자주 왔던 건 이 차가 목적이었던 거야?

피가로 선생님을 만나러 와줬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서럽네에.

 

루틸・미틸

아하하, 농담이에요.

 

미틸

전... 피가로 선생님도, 이 진료소도 엄청 좋아해요.

병이나 상처를 입으면 왠지 불안해지잖아요. 여긴 그걸 '괜찮아, 안심하렴'하며 받아주는 장소니까요.

그래서 커서는 선생님의 진료소에서 약사로 도우며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피가로

미틸...

 

미틸

실은 그런 공부도 겸해서 진료소에 왔던 것도 있어요.

앗. 물론 피가로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예요!

 

피가로

아하하. 고마워, 미틸의 마음 무척 기뻐.

그럼 네 책상을 여기에 두는 건 어떠니?

 

미틸

어...? 괘, 괜찮나요?

제가 여기서 일해도...

 

피가로

물론. 약장과 작업대도 옆으로 이동시키면 일하기 편해지려나.

 

미래의 일을 이야기하며 온화하게 웃는 피가로에게, 미틸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핀다.

그것을 지켜보는 다른 마법사들의 얼굴에도 자연스레 웃음이 번졌다.

 

현자

(이 진료소는 남쪽의 마법사들에게 있어 무척이나 소중한 장소구나...)

 

남성

저기, 실례합니다...!

 

여성

피가로 선생님 계신가요!?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진료소의 문이 두드려졌다.

방문해온 것은 젊은 부부처럼 보이는 남녀. 남성의 팔에는 아기가 안겨 있다.

두 사람은 피가로의 얼굴을 보고 명백하게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남성

다행이다, 계셔서...! 여러분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고 혹시나 싶어 찾아왔습니다...!

 

여성

선생님, 부디 이 아이를 진료해 주세요! 어젯밤부터 계속 우는 데다 우유를 먹여도 자꾸 토해내요.

 

피가로

정말이네, 괴로운 듯이 울고있어. 자, 안으로 들어와요.

 

부부는 이 근처 마을에 사는 듯했다. 마을에는 의사가 없기 때문에 이곳이 가장 가까운 진료소가 되는 듯했다.

 

남성

그야말로 하늘이 도우셨어. 피가로 선생님이 우연히 계시다니.

젊은 선생님이 있는 구름의 거리의 진료소를 찾아가는 게 좋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좀 멀어서...

 

현자

젊은 선생님? 구름의 거리에도 의사가 있는 건가요?

 

미틸

네. 젊은 선생님은 크라크 씨를 말씀하시는 거죠?

 

여성

맞아맞아. 그 분이야.

때때로 피가로 선생님 대신 이 진료소에 와서 진찰해주기도 하셨지.

그래서 젊은 선생님이 여기 오는 걸 기다릴지, 기다리지 않고 구름의 거리로 갈지 남편과 상의했는데...

일단 호수 근처까지 와보니 피가로 선생님의 모습이 보여서 급하게 달려왔어.

 

피가로

그거 잘 됐네. 병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그 애도 바쁜 몸이니까 그렇게 자주는 여기 오지 못할거야.

 

레녹스

구름의 거리 환자 분들께서 많이 의지하시는 것 같네요. 젊은데다 수완이 좋다는 평판이라 하더군요.

 

루틸

역시 피가로 선생님의 제자 분이시네요!

 

파우스트

...제자?

 

시노

제자라는 건, 그 녀석도 마법사인 건가?

 

피가로

아니, 인간이야. 의사가 되고싶어 하길래 내가 첫걸음을 떼게 해준 것 뿐이야.

자, 그보다...

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남쪽 나라&동쪽 나라~

 

피가로

생각해보면 마법관에서 살기 시작한 뒤로 제법 시간이 흘렀네.

두 사람과 얘기하니까 나도 그리워졌어.

지금은 의뢰가 별로 없기도 하니까 다음에 남쪽의 마법사들끼리 남쪽 나라로 돌아갈까. 거기서 한동안 느긋하게 지내보자.

 

미틸

어, 그래도... 저희는 현자의 마법사로서의 역할이...

 

피가로

역할이 있기 때문에야말로, 란다. 항상 긴장하고 있는 만큼 휴식도 확실하게 취해줘야 해.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만전의 상태로 움직일 수 없을테니까.

마법사는 마음으로 마법을 사용하지.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마음에 무리를 가게 하면 안 돼.

 

미틸

...네, 선생님. 알겠어요.

 

피가로

착하구나.

아직 몸이 나른할거야. 조금 쉬어 두렴.

 

미틸

네...

.......

 

레녹스

...잠든 것 같습니다.

 

피가로

약 기운이 돌 때가 됐으니까 말이야.

이번에 아픈 건 지친 것뿐만이 아니라 이 아이의 마음에도 원인이 있는 것 같아.

아마 가벼운 향수병이 컨디션에도 영향을 미친 거겠지.

 

레녹스

그래서 남쪽 나라로 돌아가자는 제안을 하셨군요.

 

피가로

뭐 그렇지. 지금의 미틸에게는 고향의 공기가 가장 도움이 될거야.

본인은 자각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애착있는 토지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건 상의를 벗어버리는 것과 같은 거야.

왠지 추운 것 같고 가끔씩 마음이 기침을 하거든. 토지의 정령에 깊게 관련된 마법사라면 더욱 그렇지. 

 

레녹스

그렇군요...

아무튼 오늘 일은 루틸에게도 나중에 얘기해 두겠습니다.

 

피가로

...이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레녹스

누군가 눈치채고 루틸에게 미틸이 아픈 걸 알려준 게 아닐까요.

 

피가로

그럴지도.

안녕, 루틸. 어서와.

마침 잘 됐어.

 

루틸

아, 피가로 선생님.

 

현자

미틸의 상태는 어떤가요?

 

피가로

어라, 현자 님? 혹시 네가 루틸에게 알려준거야?

 

현자

네. 방금 루틸과 복도에서 만나서.

 

나와 루틸의 얼굴을 보고 피가로는 안심시키듯이 미소지었다.

 

피가로

이제 안정됐으니까 괜찮아. 금방 좋아질거야.

 

레녹스

방금 피가로 선생님의 약을 먹고 막 잠든 참입니다.

 

루틸

정말인가요? 다행이다...

 

우리는 휴하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뺨은 긴장한 상태 그대로 좀처럼 웃어지지 않는다.

 

현자

피가로. 실은 상담하고 싶은 게 있어서...

 

피가로

.......

느긋하게 보내는 건 잠시 보류해둘까.

 

무언가 짐작한 듯이 피가로는 우리를 방으로 들였다.

 


 

레녹스

남쪽 나라에서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현자

네. 두 사람이 도서실에서 떠난 뒤 조사의뢰가 도착했어요.

루틸에게는 이미 설명했지만...

 

의뢰서에 의하면 최근, 남쪽 나라의 어떤 지역에서 지진이 빈발한다고 한다.

절벽이 무너지고, 건물이 무너지며, 땅에 묘한 구멍이 뚫리면서 피해는 점차 확대되어 부상자도 늘고 있다고 한다.

 

현자

피해 상황도 상당히 심각하지만, 심지어 그 지역이...

 

루틸

피가로 선생님의 진료소가 있는 장소와 아주 가까운 것 같아요.

 

피가로・레녹스

.......

 

피가로와 레녹스의 눈이 커졌다.

 

레녹스

진료소 근처에서 지진이...?

 

피가로

으음... 그 주변은 지진 같은 게 일어날 장소가 아닐텐데...

어쩌면 〈거대한 재앙〉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 발생한 것일지도 모르겠어.

 

루틸

아무튼 가서 조사해보죠.

 

레녹스

그렇네. 우선 현장의 상황을 확인해보고 싶어.

 

피가로

현자 님. 출발은 미틸의 회복을 기다리고나서 해도 괜찮겠어?

 

현자

물론이에요. 준비가 필요하기도 하고, 미틸의 상태가 만전이 되면 조사하러 가도록 할까요.

그리고 이번엔 피해 규모가 큰 것 같으니까 서포트로서 다른 나라의 마법사에게 동행을 부탁할 생각이지만...

 

그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잘 아는 목소리가 들렸다.

 

파우스트

피가로, 있나.

 

피가로

파우스트?

별일이네, 네가 방문해주다니. 무슨 일 있어?

 

의외라는 시선을 받고 파우스트는 민망한듯이 모자를 내렸다.

 

파우스트

미안하군, 환자가 있을 때.

 

피가로

괜찮아. 지금은 약을 먹고 쉬고 있어.

 

파우스트

그런가.......

 

퉁명스러운 대답 속에 희미하게 안도의 기색이 있었다.

 

파우스트

아까 살짝 들렸는데, 남쪽의 마법사 앞으로 의뢰가 도착했다지.

혹시 일손이 필요하다면 동쪽의 마법사가 동행해도 좋아. 그걸 전하러 왔다.

 

담담하게 고한 파우스트는 한순간 침대 쪽을 훔쳐보았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기피하는 그가 스스로 동행을 자청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아픈 미틸을 신경쓰고 있다는 것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해졌다.

 

현자

파우스트...

 

레녹스

파우스트 님...

 

루틸

파우스트 씨...

 

파우스트

뭐, 뭐야. 다가오지 마.

필요하다면, 이라는 얘기일 뿐이야.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면 별로...

 

피가로

아니, 꼭 부탁할게.

고마워, 파우스트. 너희가 와준다니 엄청 든든해.

 

파우스트

.......

 

기쁜 듯한 피가로에게 파우스트는 미묘한 표정을 띄웠다.

 


 

며칠 후. 미틸의 회복을 확인하고 조사를 나간 남쪽과 동쪽의 마법사들은 남쪽의 탑에 도착했다.

 

레녹스

여기서부터는 빗자루로 이동합니다.

 

루틸

저희가 안내할테니 동쪽의 마법사 분들은 따라와주세요.

 

네로

그래, 알겠어. 따라갈 수 있을 스피드로 부탁한다고.

 

파우스트

그건 그렇고, 의뢰 때문인지 의사 집단처럼 보이는군.

 

현자

진료소에 출입할테니까 환자 분들이 낯설어하지 않도록 클로에가 준비해줬어요.

 

피가로

좋은 애란 말이야. 배려가 세심하달까.

 

미틸

오늘 의상도 엄청 멋져요. 나중에 클로에 씨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러 가야겠어요.

 

시노

미틸, 몸은 괜찮아?

 

히스클리프

혹시 상태가 안 좋아지면 걱정말고 말해줘.

 

미틸

감사합니다. 이제 완전히 좋아졌어요.

그때는 두 분께 걱정 끼쳐드려 죄송해요. 병문안도 와주시고...

죽 엄청 맛있었어요!

 

히스클리프

천만에요.

 

시노

흐흥. 그렇지.

하지만 무리는 하지 말라고.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 약초 달인 약을 가지고 왔으니까.

 

히스클리프

아, 그거... 전에 시험에 나온 약이지.

 

시노

그래. 마시면 피로가 회복된다고 하던데.

파우스트가 말한 대로 이론 공부도 가끔은 도움이 되는군.

 

루틸

후후. 미틸에게 상냥한 형들이 무척 많이 생겼네요.

 

네로

저 녀석들, 미틸을 계속 걱정했으니까 말이야.

 

세 사람의 교류를 지켜보던 루틸과 네로는 보호자의 시선으로 미소지었다.

젊은 마법사들이 친근하게 미틸을 돌보는 모습은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는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진다.

 

피가로

슬슬 출발해볼까. 미틸은 막 나은 참이니까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선생님과 함께 날자.

 

미틸

네!

 

레녹스

현자 님은, 여기 제 빗자루로.

 

현자

감사해요, 잘 부탁드려요.

 


 

피가로의 진료소가 있는 러셀 호수는 구름의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빗자루로 날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마을에 도착했다.

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남쪽 나라&동쪽 나라~

 

그날 나는 도서실에서 현자의 서를 읽고 있었다. 조용하고 안정된 공간은 독서하기에 최적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도서실은 아까부터 묘한 긴장감에 휩싸여있다.

 

피가로

오, 파우스트잖아.

이렇게 가득 책을 쌓아놓고, 무슨 조사 중이야? 변함없이 열심히 공부하네.

 

파우스트

너랑은 관계 없잖아.

 

피가로

그러지 말고. 나도 수업에 쓸만한 자료를 찾으러 온 참이야.

 

현자

(...괘, 괜찮을까. 이 두사람이 함께 있으면 왠지 조마조마해...)

 

옛날에 파우스트가 혁명군으로 싸우던 무렵, 피가로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피가로는 제자인 파우스트에게서 멀어졌고, 그 후 파우스트가 화형 당하는 비극이 일어나버렸다.

현재 두 사람의 관계는 좋다고 할 수 없었다. 파우스트는 피가로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피가로

헤에, 테스트를 만들고 있었구나? 이게 질문할 목록이야?

 

가시 돋친 태도에도 꿈쩍 않고 피가로는 파우스트의 손 안을 들여다보았다.

 

피가로

그렇구나. 너무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은, 적당하고 알기 쉽네.

 

파우스트

어이, 이제 그만...

 

피가로

아, 잠깐. 이 문제, 다른 사례를 본 적이 있어.

옛날엔 이 방법이 가장 좋았지만, 최근에는 이렇게 하는 게 일반적인 것 같아. 나도 지금은 이걸 사용하고.

 

파우스트

...그런가? 하지만 이렇게 하면 신체에 부담이 갈텐데.

 

피가로

요즘 이 약초랑 나무열매는 숲의 깊숙한 곳에서밖에 찾을 수 없게 됐어. 북쪽의 따뜻한 곳이나 동쪽에는 남아 있지만.

이 약초를 입수하지 못했을 경우, 이걸 사용하면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이거라면 부작용이 괴롭더라도 며칠 정도뿐이야.

 

파우스트

...여전하군. 치료도 그렇게 가차없이 하나?

 

피가로

뭐니뭐니해도 생명을 살리는 게 우선이니까 말이야. ...어라, 이 술식은 나도 시험해본 적 없어.

굉장히 간략화되어 있네. 잘 됐어?

 

파우스트

그래. 긴급 시에 이 방법이 더 편해.

이걸 대체할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피가로

이러면 힘이 모자랄거야. 북쪽의 마법사들을 상대할 때는 더 강한 매개체가 필요해.

 

파우스트

그런 사태에 처하고 싶진 않지만... 역시 이건 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

고마워, 참고가 됐어.

 

옛날보다 조금은 침착해진 어조로 피가로는 파우스트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에 차갑게 대하던 파우스트도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고 상담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현자

(...다행이다. 이제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아.)

 

평화가 지속될 분위기에 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때.

 

히스클리프

죄송해요, 실례합니다!

 

시노

피가로 있냐!

 

시노, 히스클리프, 레녹스 이 셋이 도서실로 뛰어들어왔다.

레녹스의 팔에는 축 늘어진 미틸이 안겨있었다.

 

파우스트・피가로

!

 

현자

미틸!? 어떻게 된 거예요?

 

시노

우리와 함께 숲에서 마법 훈련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쓰러졌어.

 

히스클리프

저와 시노가 미틸을 업으려 했더니, 마침 지나가던 레녹스가 도와줘서...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께서 여기 계신다고 들어서 그대로 데려왔습니다.

 

미틸이 살짝 눈을 뜨려고 했다.

 

미틸

선생님...?

 

피가로

선생님은 여기 있어. 걱정 안해도 되니까, 눈을 감으렴.

 

피가로는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미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피가로

...응. 레노, 내 방까지 옮겨줄래?

 

레녹스

알겠습니다.

 

시노

피가로, 미틸은 괜찮은건가?

 

히스클리프

설마 계속 상태가 안 좋았던 걸까. 빨리 눈치챘더라면...

 

피가로

괜찮아. 금방 좋아질테니까.

두 사람 모두 고마워.

 

파우스트

그에게 맡겨두면 걱정할 필요 없어. 나중에 죽이라도 만들어서 들고 가면 괜찮을거다.

 

어른들이 달래자 조금 진정된 것인지, 시노와 히스클리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노

알겠어.

 

히스클리프

병문안도 겸해서 나중에 들고 갈게요.

 

시노

좋아, 히스. 미틸이 건강해지도록 맛있는 죽을 준비하자고.

 

현자

시노, 죽을 잘 만드나요?

 

시노

네로가 잘해.

 

레녹스

네로가 만드는건가.

 

히스클리프

병문안이기도 하니까 우리가 만들자. 요리하는 법은 내가 알려줄게.

 

시노

좋아. 엄청나게 강한 죽을 만들어주지.

기다리라고, 미틸.

 

현자

강한 죽...?

 

파우스트

어이, 이상한 건 넣지 말라고...?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미틸의 상태는...

 

피가로

열이 좀 높네. 일시적인 거니까 걱정하지 마.

요즘 너무 훈련에 몰두했으니까 그 피로가 나타난 거겠지.

미틸, 입을 벌려보렴. 피가로 선생님의 특제 슈가와 약초를 달인 약이야.

 

미틸

.......

 

피가로

어때? 좀 괜찮아졌어?

 

미틸

네... 조금 편해졌어요.

저, 훈련하고 있었더니 다리가 비틀거려서... 아침엔 아무 일도 없었는데.

 

피가로

최근 미틸이 무척 열심히 했으니까. 몸이 좀 놀란 거야.

 

미틸

피가로 선생님, 레노 씨. 감사합니다.

모두에게도 폐 끼쳐서 죄송해요.

 

레녹스

신경쓰지 마. 우리도 다른 사람들도 걱정했어.

 

피가로

조금 안정되면 금방 괜찮아질거야. 빨리 모두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안심시켜주자.

 

미틸

...왠지 옛날 같아요.

 

피가로

옛날?

 

미틸

네. 제가 어렸을 때, 항상 이렇게 진찰해 주셨잖아요.

 

레녹스

어린이는 아프기 쉬우니까. 내가 마을에 있을 적엔 빗자루에 태우고 데려간 적도 있었지.

 

피가로

맞아 맞아, 루틸이 항상 걱정했었어. 대체로 하룻밤 지나면 회복되지만 좀처럼 열이 안 내려갈 때도 있었지.

감기가 심해졌을 때는 한동안 내가 돌봐줬었던가.

 

미틸

피가로 선생님의 진료소에서 지내던 때의 일, 저 지금도 자주 떠올라요.

진료소 창문에서 보이는 커다란 나무랑, 약 냄새가 섞인듯한 신기한 향...

아까 약이랑 슈가를 먹었을 때, 그때가 생각나서 왠지 그리웠어요...

 

피가로

선생님도 생각났어. 진찰하려 했더니 미틸이 내 손을 꼭 쥐던 게.

그 때 미틸의 손, 아주 작았었지.

 

미틸

에엑? 그래요?

그, 그건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피가로

지금보다 훨씬 더 아기였을 때니까 말이야. 상태가 좋지 않아서 불안했었어.

 

미틸

으으... 좀 부끄러워요.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특히 리케에게는...

 

피가로

아하하, 알겠어. 우리만의 비밀 말이지.

 

레녹스

그래, 비밀은 지킬게.

 

미틸

에헤헤, 감사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