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남쪽 나라&동쪽 나라~

 

그날 나는 도서실에서 현자의 서를 읽고 있었다. 조용하고 안정된 공간은 독서하기에 최적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도서실은 아까부터 묘한 긴장감에 휩싸여있다.

 

피가로

오, 파우스트잖아.

이렇게 가득 책을 쌓아놓고, 무슨 조사 중이야? 변함없이 열심히 공부하네.

 

파우스트

너랑은 관계 없잖아.

 

피가로

그러지 말고. 나도 수업에 쓸만한 자료를 찾으러 온 참이야.

 

현자

(...괘, 괜찮을까. 이 두사람이 함께 있으면 왠지 조마조마해...)

 

옛날에 파우스트가 혁명군으로 싸우던 무렵, 피가로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피가로는 제자인 파우스트에게서 멀어졌고, 그 후 파우스트가 화형 당하는 비극이 일어나버렸다.

현재 두 사람의 관계는 좋다고 할 수 없었다. 파우스트는 피가로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피가로

헤에, 테스트를 만들고 있었구나? 이게 질문할 목록이야?

 

가시 돋친 태도에도 꿈쩍 않고 피가로는 파우스트의 손 안을 들여다보았다.

 

피가로

그렇구나. 너무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은, 적당하고 알기 쉽네.

 

파우스트

어이, 이제 그만...

 

피가로

아, 잠깐. 이 문제, 다른 사례를 본 적이 있어.

옛날엔 이 방법이 가장 좋았지만, 최근에는 이렇게 하는 게 일반적인 것 같아. 나도 지금은 이걸 사용하고.

 

파우스트

...그런가? 하지만 이렇게 하면 신체에 부담이 갈텐데.

 

피가로

요즘 이 약초랑 나무열매는 숲의 깊숙한 곳에서밖에 찾을 수 없게 됐어. 북쪽의 따뜻한 곳이나 동쪽에는 남아 있지만.

이 약초를 입수하지 못했을 경우, 이걸 사용하면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이거라면 부작용이 괴롭더라도 며칠 정도뿐이야.

 

파우스트

...여전하군. 치료도 그렇게 가차없이 하나?

 

피가로

뭐니뭐니해도 생명을 살리는 게 우선이니까 말이야. ...어라, 이 술식은 나도 시험해본 적 없어.

굉장히 간략화되어 있네. 잘 됐어?

 

파우스트

그래. 긴급 시에 이 방법이 더 편해.

이걸 대체할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피가로

이러면 힘이 모자랄거야. 북쪽의 마법사들을 상대할 때는 더 강한 매개체가 필요해.

 

파우스트

그런 사태에 처하고 싶진 않지만... 역시 이건 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

고마워, 참고가 됐어.

 

옛날보다 조금은 침착해진 어조로 피가로는 파우스트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에 차갑게 대하던 파우스트도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고 상담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현자

(...다행이다. 이제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아.)

 

평화가 지속될 분위기에 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때.

 

히스클리프

죄송해요, 실례합니다!

 

시노

피가로 있냐!

 

시노, 히스클리프, 레녹스 이 셋이 도서실로 뛰어들어왔다.

레녹스의 팔에는 축 늘어진 미틸이 안겨있었다.

 

파우스트・피가로

!

 

현자

미틸!? 어떻게 된 거예요?

 

시노

우리와 함께 숲에서 마법 훈련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쓰러졌어.

 

히스클리프

저와 시노가 미틸을 업으려 했더니, 마침 지나가던 레녹스가 도와줘서...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께서 여기 계신다고 들어서 그대로 데려왔습니다.

 

미틸이 살짝 눈을 뜨려고 했다.

 

미틸

선생님...?

 

피가로

선생님은 여기 있어. 걱정 안해도 되니까, 눈을 감으렴.

 

피가로는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미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피가로

...응. 레노, 내 방까지 옮겨줄래?

 

레녹스

알겠습니다.

 

시노

피가로, 미틸은 괜찮은건가?

 

히스클리프

설마 계속 상태가 안 좋았던 걸까. 빨리 눈치챘더라면...

 

피가로

괜찮아. 금방 좋아질테니까.

두 사람 모두 고마워.

 

파우스트

그에게 맡겨두면 걱정할 필요 없어. 나중에 죽이라도 만들어서 들고 가면 괜찮을거다.

 

어른들이 달래자 조금 진정된 것인지, 시노와 히스클리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노

알겠어.

 

히스클리프

병문안도 겸해서 나중에 들고 갈게요.

 

시노

좋아, 히스. 미틸이 건강해지도록 맛있는 죽을 준비하자고.

 

현자

시노, 죽을 잘 만드나요?

 

시노

네로가 잘해.

 

레녹스

네로가 만드는건가.

 

히스클리프

병문안이기도 하니까 우리가 만들자. 요리하는 법은 내가 알려줄게.

 

시노

좋아. 엄청나게 강한 죽을 만들어주지.

기다리라고, 미틸.

 

현자

강한 죽...?

 

파우스트

어이, 이상한 건 넣지 말라고...?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미틸의 상태는...

 

피가로

열이 좀 높네. 일시적인 거니까 걱정하지 마.

요즘 너무 훈련에 몰두했으니까 그 피로가 나타난 거겠지.

미틸, 입을 벌려보렴. 피가로 선생님의 특제 슈가와 약초를 달인 약이야.

 

미틸

.......

 

피가로

어때? 좀 괜찮아졌어?

 

미틸

네... 조금 편해졌어요.

저, 훈련하고 있었더니 다리가 비틀거려서... 아침엔 아무 일도 없었는데.

 

피가로

최근 미틸이 무척 열심히 했으니까. 몸이 좀 놀란 거야.

 

미틸

피가로 선생님, 레노 씨. 감사합니다.

모두에게도 폐 끼쳐서 죄송해요.

 

레녹스

신경쓰지 마. 우리도 다른 사람들도 걱정했어.

 

피가로

조금 안정되면 금방 괜찮아질거야. 빨리 모두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안심시켜주자.

 

미틸

...왠지 옛날 같아요.

 

피가로

옛날?

 

미틸

네. 제가 어렸을 때, 항상 이렇게 진찰해 주셨잖아요.

 

레녹스

어린이는 아프기 쉬우니까. 내가 마을에 있을 적엔 빗자루에 태우고 데려간 적도 있었지.

 

피가로

맞아 맞아, 루틸이 항상 걱정했었어. 대체로 하룻밤 지나면 회복되지만 좀처럼 열이 안 내려갈 때도 있었지.

감기가 심해졌을 때는 한동안 내가 돌봐줬었던가.

 

미틸

피가로 선생님의 진료소에서 지내던 때의 일, 저 지금도 자주 떠올라요.

진료소 창문에서 보이는 커다란 나무랑, 약 냄새가 섞인듯한 신기한 향...

아까 약이랑 슈가를 먹었을 때, 그때가 생각나서 왠지 그리웠어요...

 

피가로

선생님도 생각났어. 진찰하려 했더니 미틸이 내 손을 꼭 쥐던 게.

그 때 미틸의 손, 아주 작았었지.

 

미틸

에엑? 그래요?

그, 그건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피가로

지금보다 훨씬 더 아기였을 때니까 말이야. 상태가 좋지 않아서 불안했었어.

 

미틸

으으... 좀 부끄러워요.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특히 리케에게는...

 

피가로

아하하, 알겠어. 우리만의 비밀 말이지.

 

레녹스

그래, 비밀은 지킬게.

 

미틸

에헤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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