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남쪽 나라&동쪽 나라~

 

피가로

생각해보면 마법관에서 살기 시작한 뒤로 제법 시간이 흘렀네.

두 사람과 얘기하니까 나도 그리워졌어.

지금은 의뢰가 별로 없기도 하니까 다음에 남쪽의 마법사들끼리 남쪽 나라로 돌아갈까. 거기서 한동안 느긋하게 지내보자.

 

미틸

어, 그래도... 저희는 현자의 마법사로서의 역할이...

 

피가로

역할이 있기 때문에야말로, 란다. 항상 긴장하고 있는 만큼 휴식도 확실하게 취해줘야 해.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만전의 상태로 움직일 수 없을테니까.

마법사는 마음으로 마법을 사용하지.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마음에 무리를 가게 하면 안 돼.

 

미틸

...네, 선생님. 알겠어요.

 

피가로

착하구나.

아직 몸이 나른할거야. 조금 쉬어 두렴.

 

미틸

네...

.......

 

레녹스

...잠든 것 같습니다.

 

피가로

약 기운이 돌 때가 됐으니까 말이야.

이번에 아픈 건 지친 것뿐만이 아니라 이 아이의 마음에도 원인이 있는 것 같아.

아마 가벼운 향수병이 컨디션에도 영향을 미친 거겠지.

 

레녹스

그래서 남쪽 나라로 돌아가자는 제안을 하셨군요.

 

피가로

뭐 그렇지. 지금의 미틸에게는 고향의 공기가 가장 도움이 될거야.

본인은 자각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애착있는 토지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건 상의를 벗어버리는 것과 같은 거야.

왠지 추운 것 같고 가끔씩 마음이 기침을 하거든. 토지의 정령에 깊게 관련된 마법사라면 더욱 그렇지. 

 

레녹스

그렇군요...

아무튼 오늘 일은 루틸에게도 나중에 얘기해 두겠습니다.

 

피가로

...이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레녹스

누군가 눈치채고 루틸에게 미틸이 아픈 걸 알려준 게 아닐까요.

 

피가로

그럴지도.

안녕, 루틸. 어서와.

마침 잘 됐어.

 

루틸

아, 피가로 선생님.

 

현자

미틸의 상태는 어떤가요?

 

피가로

어라, 현자 님? 혹시 네가 루틸에게 알려준거야?

 

현자

네. 방금 루틸과 복도에서 만나서.

 

나와 루틸의 얼굴을 보고 피가로는 안심시키듯이 미소지었다.

 

피가로

이제 안정됐으니까 괜찮아. 금방 좋아질거야.

 

레녹스

방금 피가로 선생님의 약을 먹고 막 잠든 참입니다.

 

루틸

정말인가요? 다행이다...

 

우리는 휴하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뺨은 긴장한 상태 그대로 좀처럼 웃어지지 않는다.

 

현자

피가로. 실은 상담하고 싶은 게 있어서...

 

피가로

.......

느긋하게 보내는 건 잠시 보류해둘까.

 

무언가 짐작한 듯이 피가로는 우리를 방으로 들였다.

 


 

레녹스

남쪽 나라에서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현자

네. 두 사람이 도서실에서 떠난 뒤 조사의뢰가 도착했어요.

루틸에게는 이미 설명했지만...

 

의뢰서에 의하면 최근, 남쪽 나라의 어떤 지역에서 지진이 빈발한다고 한다.

절벽이 무너지고, 건물이 무너지며, 땅에 묘한 구멍이 뚫리면서 피해는 점차 확대되어 부상자도 늘고 있다고 한다.

 

현자

피해 상황도 상당히 심각하지만, 심지어 그 지역이...

 

루틸

피가로 선생님의 진료소가 있는 장소와 아주 가까운 것 같아요.

 

피가로・레녹스

.......

 

피가로와 레녹스의 눈이 커졌다.

 

레녹스

진료소 근처에서 지진이...?

 

피가로

으음... 그 주변은 지진 같은 게 일어날 장소가 아닐텐데...

어쩌면 〈거대한 재앙〉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 발생한 것일지도 모르겠어.

 

루틸

아무튼 가서 조사해보죠.

 

레녹스

그렇네. 우선 현장의 상황을 확인해보고 싶어.

 

피가로

현자 님. 출발은 미틸의 회복을 기다리고나서 해도 괜찮겠어?

 

현자

물론이에요. 준비가 필요하기도 하고, 미틸의 상태가 만전이 되면 조사하러 가도록 할까요.

그리고 이번엔 피해 규모가 큰 것 같으니까 서포트로서 다른 나라의 마법사에게 동행을 부탁할 생각이지만...

 

그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잘 아는 목소리가 들렸다.

 

파우스트

피가로, 있나.

 

피가로

파우스트?

별일이네, 네가 방문해주다니. 무슨 일 있어?

 

의외라는 시선을 받고 파우스트는 민망한듯이 모자를 내렸다.

 

파우스트

미안하군, 환자가 있을 때.

 

피가로

괜찮아. 지금은 약을 먹고 쉬고 있어.

 

파우스트

그런가.......

 

퉁명스러운 대답 속에 희미하게 안도의 기색이 있었다.

 

파우스트

아까 살짝 들렸는데, 남쪽의 마법사 앞으로 의뢰가 도착했다지.

혹시 일손이 필요하다면 동쪽의 마법사가 동행해도 좋아. 그걸 전하러 왔다.

 

담담하게 고한 파우스트는 한순간 침대 쪽을 훔쳐보았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기피하는 그가 스스로 동행을 자청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아픈 미틸을 신경쓰고 있다는 것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해졌다.

 

현자

파우스트...

 

레녹스

파우스트 님...

 

루틸

파우스트 씨...

 

파우스트

뭐, 뭐야. 다가오지 마.

필요하다면, 이라는 얘기일 뿐이야.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면 별로...

 

피가로

아니, 꼭 부탁할게.

고마워, 파우스트. 너희가 와준다니 엄청 든든해.

 

파우스트

.......

 

기쁜 듯한 피가로에게 파우스트는 미묘한 표정을 띄웠다.

 


 

며칠 후. 미틸의 회복을 확인하고 조사를 나간 남쪽과 동쪽의 마법사들은 남쪽의 탑에 도착했다.

 

레녹스

여기서부터는 빗자루로 이동합니다.

 

루틸

저희가 안내할테니 동쪽의 마법사 분들은 따라와주세요.

 

네로

그래, 알겠어. 따라갈 수 있을 스피드로 부탁한다고.

 

파우스트

그건 그렇고, 의뢰 때문인지 의사 집단처럼 보이는군.

 

현자

진료소에 출입할테니까 환자 분들이 낯설어하지 않도록 클로에가 준비해줬어요.

 

피가로

좋은 애란 말이야. 배려가 세심하달까.

 

미틸

오늘 의상도 엄청 멋져요. 나중에 클로에 씨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러 가야겠어요.

 

시노

미틸, 몸은 괜찮아?

 

히스클리프

혹시 상태가 안 좋아지면 걱정말고 말해줘.

 

미틸

감사합니다. 이제 완전히 좋아졌어요.

그때는 두 분께 걱정 끼쳐드려 죄송해요. 병문안도 와주시고...

죽 엄청 맛있었어요!

 

히스클리프

천만에요.

 

시노

흐흥. 그렇지.

하지만 무리는 하지 말라고.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 약초 달인 약을 가지고 왔으니까.

 

히스클리프

아, 그거... 전에 시험에 나온 약이지.

 

시노

그래. 마시면 피로가 회복된다고 하던데.

파우스트가 말한 대로 이론 공부도 가끔은 도움이 되는군.

 

루틸

후후. 미틸에게 상냥한 형들이 무척 많이 생겼네요.

 

네로

저 녀석들, 미틸을 계속 걱정했으니까 말이야.

 

세 사람의 교류를 지켜보던 루틸과 네로는 보호자의 시선으로 미소지었다.

젊은 마법사들이 친근하게 미틸을 돌보는 모습은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는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진다.

 

피가로

슬슬 출발해볼까. 미틸은 막 나은 참이니까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선생님과 함께 날자.

 

미틸

네!

 

레녹스

현자 님은, 여기 제 빗자루로.

 

현자

감사해요, 잘 부탁드려요.

 


 

피가로의 진료소가 있는 러셀 호수는 구름의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빗자루로 날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마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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