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남쪽 나라&동쪽 나라~

 

찾는 물건을 발견하지 못한 채 시간은 시시각각 흘러... 

이윽고 서쪽 하늘이 빨갛게 물들어가기 시작할 무렵.

 

히스클리프

이제 힘이 안 들어가...

 

네로

...히스, 한동안 쉬고 있어. 여긴 내가 할 테니까.

 

히스클리프

네로. 그래도...

 

파우스트

네로의 말대로야. 빗자루로 날 수 있을 정도의 마력은 남겨둬.

시노는 괜찮나?

 

시노

어, 아직 계속 할 수 있어.

 

인간이 육체노동으로 피로를 느끼듯이, 마법사도 마법을 계속 사용하면 피곤해진다.

피가로에게 씩씩하게 대답하던 마법사들도 쉴새없이 구멍을 계속 파냈지만 역시 지쳐있었다.

 

미틸

...하아, 하아...

 

레녹스

미틸, 괜찮아? 조금 쉬는 게 어때.

 

미틸

괜찮, 아요... 그것보다도 빨리, 찾아야...

 

시노

마력이 거의 안 나오고 있다고. 네 몫은 내가 해주지.

 

루틸

미틸은 아팠다가 나은지 얼마 안 됐으니까, 여긴 형님에게 맡겨.

 

레녹스

...다들 무리하지 마. 내가 바꿔줄게.

교대해서 휴식을...

 

현자

(그만큼 마법을 사용했으니 분명 상당히 피곤할텐데...)

 

이제 그만하자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지하에 묻혀있는 주물을 목표로 마법사들은 한 마음으로 구멍을 파내고 있었다.

앞으로도 그 장소에는 피가로의 진료소가 있기를 바라니까.

 

피가로

.......

곤란하네.

 

한숨 쉬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마법사들이 서로 격려하며 구멍을 파고있는 모습을 피가로가 바라보고 있었다.

 

피가로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 둘이서 뭔가를 들고와서... 아아, 씨앗이었던가.

화단을 만들고 싶다고 했었어.

그래도 진료소의 흙과는 맞지 않는 종자였어서 말이지. 나는 말렸어.

시들어버린다고 말하면서.

그래도 두 사람은 그때도 화단을 만들자고 말했어.

그 애들이 놀러오지 않을 때에도 화단에 꽃이 피어 있으면, 내가 덜 외로워하지 않겠냐면서.

 

현자

.......

 

두 사람의 마음은 나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행동으로 이 사람이 기뻐하게 되면 좋겠다고.

내가 없을 때 조금쯤은 쓸쓸하다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옆에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없는 것 같은 피가로의 분위기는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진료소도 마찬가지겠지. 소중한 장소가 없어지면 피가로가 외롭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수고를 들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어른들도 그 마음을 받아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이, 소중한 장소가 없어지면 쓸쓸하다고 그가 여기기를 바란 것일지도 모른다.

 

피가로

...아니나 다를까 꽃은 시들어버렸어. 그 애들도 아쉬워했지.

나도 실망시켜서 아쉬웠어.

나는 오랫동안 살아왔고, 솔직히 꽃이 있든 없든 외롭진 않아.

포기하기 아까운 것도 거의 없어. 그래도 이렇게 누군가가 대신해서 나의 뭔가를 아껴주는 건...

조금은 기쁘네.

 

현자

피가로...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흙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쯤이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에 열중해 있던 우리의 등 뒤에서 레녹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가로가 돌아보고 끄덕인다.

신호였다. 네로와 파우스트도 안심한듯한 얼굴로 시선을 교환한다.

 

파우스트

좋아. 여긴 우리가 대신하도록 하지.

 

레녹스

알겠습니다. 다들 일단 저쪽으로.

 

시노

...윽, 나도 할게.

 

루틸

저도 도울게요.

 

네로

너희도 숨이 턱끝까지 찼잖아. 일단 앉아서 쉬어둬.

이럴 땐 어른들이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하는 법이야.

마력 페이스 배분도 기술이야. 이제부턴 경험의 차이를 보여줄 때라고.

 

루틸

네로 씨...

 

시노

네로, 멋있는걸.

 

히스클리프

응, 멋있어.

 

네로

그렇게 칭찬하지 마. 부끄러워 지잖아...

그렇다곤 해도, 이렇게도 계속 끊임없이 파내면 역시 죽을 것 같구만. 너희들 고생했네.

 

네로의 칭찬에 모두들 쑥스러워하며 얼굴을 마주보고 기쁜듯이 웃는다.

아이들을 피난시킨 레녹스가 돌아오자 어른들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굴착한 지면을 만졌다.

 

피가로

그럼 시작할게. 파우스트, 네로, 레녹스도 힘을 빌려주겠어?

 

네로

힘을 빌린다는 게 무슨 뜻이야? 당신이 일할 차례 아니었나?

 

피가로

그건 그렇지만 말야. 더이상 저 아이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고, 한번에 해결하고 싶어서 말이지.

 

파우스트

물론 상관없어. 빨리 아이들을 안심시키도록 하지.

피가로, 먼저 시작해줘.

 

피가로

알았어. 그럼 나부터...

《폿시데오》

 

파우스트

《사틸크나트 물크리드》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루틸・미틸・히스클리프

...어어!?

 

레녹스・파우스트・네로

!?

 

엘리베이터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듯한, 몸이 부유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올려다보니 동그랗게 도려내진 하늘이 저 멀리서 보였다. 순식간에 구멍이 터무니없을 정도의 깊이까지 내려앉은 듯했다.

 

시노

...뭐야, 방금 그건.

 

미틸

네 명의 마력만으로 이렇게 된 건가요...?

 

네로

어이어이... 다들 너무 힘 준 거 아냐?

 

파우스트

너야말로 거의 전력이었잖아. ...무심코 힘이 많이 들어가버렸군.

아이들은 무사한가?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들키지 않도록"이라고 말씀하셨으면서...

 

피가로

미안미안. 땡땡이 친 만큼 만회하고 싶어서 그만.

고마워 다들, 덕분에 살았어.

 

네 사람은 웃으면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조금 피곤한 듯 보이기도 했다.

피가로는 물론, 모두가 마력을 강하게 사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줄곧 마음에 걸렸던 것이겠지.

땅울림과도 같은 진동이 가라앉자 기다리고 있던 젊은 마법사들이 이쪽으로 뛰어왔다.

 

미틸

피가로 선생님! 방금 그건...

 

피가로

미틸. 모두들 다치진 않았어?

꽤 약한 지층이어서 한번에 무너진 것 같아. 눈치채준 레녹스 덕분이야.

 

히스클리프

그런 건가요...?

 

루틸

레노 씨, 대단해요!

 

시노

꽤 하는걸.

 

레녹스

...아니, 모두가 이렇게 열심히 해준 덕분이야.

 

미틸

그래도 이렇게나 깊이 파내도 마법사의 주물은 나오질 않네요...

 

파우스트

하지만 기척은 가까이서 느껴져. 이대로 계속 파내다보면 분명 나타날 것 같군.

 

네로

즉, 보물 찾기를 위한 구멍파기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는 말인가.

 

현자

여러분 모두 계속 일만 하시는데, 휴식이 없어도 괜찮은 건가요...?

 

히스클리프

맞아, 시노. 지금이야말로 그걸 쓸 때 아니야?

 

시노

그거? ...아아, 그렇군!

다들 이걸 마셔. 내가 만든 피로를 회복하는 약이다.

 

레녹스

고마워.

 

루틸・미틸・히스클리프

...써!

 

현자

피, 피가로의 약보다 써...!

 

파우스트

약초를 대체 얼마나 넣은 거지...?

 

시노

두 배다. 어때, 효과가 바로 나올 것 같지.

 

네로

그, 뭐냐. 일단 졸린 건 싹 날아갔구만.

 

미틸

에헤헤... 덕분에 조금 힘이 돌아왔어요. 계속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레녹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고 파내보자.

 

루틸

화이팅-!

 

시노・미틸・히스클리프

화이팅-!

 


 

미틸

...양이 엄청나게 울고 있지 않나요?

 

한창 구멍을 계속 파내던 와중, 레녹스의 양이 갑자기 매애매애 울기 시작했다.

 

레녹스

정말이네. 무언가를 겁내는 듯한...

 

미틸

뭔가를 느낀 걸까요.

 

미틸은 고개를 기울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미틸

어라? 뭘까요.

저쪽에 뭔가가...

 

현자

저쪽?

 

미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서, 벽에서 작게 튀어나온 불가사의한 색깔의 무언가가 보였다.

 

미틸

...혹시 저게 마법사의 주물...?

 

그것을 파내려고 미틸은 마법을 사용해 주변의 흙을 치우려고 했다.

그러자 주물은 불길한 빛을 내며 벽 속에서 튀어나왔다.

 

현자

...!

 

네로

아무래도 저게 맞는 것 같네!

 

파우스트

그래, 저주의 본체다...!

 

레녹스

선생님, 저건...

 

피가로

거무스름한 작은 구리상자... 피술자의 이와 손톱을 떼어내 넣은 악취미적인 주물이야.

돌이 된 마법사의 마도구인 것 같네.

 

작은 상자는 공중으로 떠오르고 주변에 거무스름한 안개를 내뿜었다.

사악하게 번쩍이면서 목소리가 울린다. 호응하듯 발 아래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루틸・히스클리프

...윽!

 

지면에 균열이 생긴다. 그 틈새에서 진흙 같은 것이 쏟아져나왔다.

작은 구리상자와 같은 색깔의 그것은 사람의 손처럼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며 우리들 쪽으로 다가왔다.

 

시노

어이, 뭐야 이건. 우리를 노리고 있다고!

 

피가로

산의 늪이야. 저주에 동화되어 조종 당하고 있어.

 

네로

서 있기만 해도 공격한다고. 일단 날아서 도망치자!

 

히스클리프

현자 님, 제 빗자루에!

 

현자

네!

 

일제히 빗자루로 날아가려던 그 순간. 산의 늪의 망령이 미틸을 덮쳤다.

 

미틸

와악!

 

레녹스

미틸!

 

곧바로 레녹스가 손을 뻗어 미틸을 껴안으며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레녹스

...윽.

 

루틸

레노 씨!

 

현자

레녹스, 어깨가...!

 

떠오를 때 산성에 데였는지 어깨가 문드러져 있었다.

 

미틸

괘... 괜찮으세요!?

 

레녹스

응, 걱정하지 마.

네로와 똑같이, 나도 좀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야.

 

미틸

레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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