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넘친 꿈의 스텔라토

 

샤일록이 꺼내준 과일경에 쭈뼛쭈뼛 손을 대면서 미틸이 성로의 잼을 넣는다.

 

샤일록

《인비벨》

 

한숨 같은 주문이 흩어지고 나자, 순간적으로 과일경이 진동하더니 바의 모습이 변했다.

 

미틸

어?

 

시노

뭐지...?

 

천장, 마루, 벽... 모든 것이 별하늘로 덮이고 반짝인다.

그 경치는 본 기억이 있었다.

 

현자

(엇. 이건...)

 

파우스트

...

 

미틸

멋지다...

 

화이트

이건 멋지구먼...

 

아름다운 경치에 모두가 압도되어 있을 때, 과일경이 폭발음을 냈다.

직후, 확하고 별하늘이 사라진다. 바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과일경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화이트

...고장난 것 같구먼.

 

미틸

호, 혹시 이 돌을 넣어서 잘못된 걸까요?

 

새파래진 얼굴의 미틸에게 샤일록은 고개를 젓고 한숨을 내쉬었다.

 

샤일록

적당히만 고쳐서 그럴 거예요. 꽤 거친 일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부디 신경쓰지 마시길. 무르라면 금방 고칠거라 생각하니까요. 

 

시노

영상이 보였던 건 방금 한 순간뿐이었지.

 

스노우

아름다운 경치였다만.

 

화이트

아마도 저 돌이 과거에 보았던, 별하늘 중 하나였을걸세.

 

오웬

어이없어...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었잖아.

 

짜증난 듯이 그 말만을 남기고 오웬은 오랫동안 모습을 감췄다.

 

미틸

돌이 있는 장소의 단서가 될만한 건 비춰지지 않았네요...

 

시노

아쉽네.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네로

뭐어 뭐어, 기운 내라고. 레몬파이 먹을거지?

오늘은 특별히 크게 잘라줄테니까.

 

아쉬움과 흥분의 여운이 바에 남아있다. 그 중에서 나는 조금 전 과일경이 보여준 영상을 떠올리고 있었다.

 

현자

(...그 별하늘...)

 

미틸

현자 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현자

아, 미안해요. 아무것도 아니예요.

 

샤일록

그건 그렇고 유감이군요. 수수께끼의 돌이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라스티카

매혹적이고 가슴 뛰는 한때였네. 모처럼이니까 좀 더 다같이 즐기고 싶었는데.


 

그날 밤, 나는 파우스트의 방을 방문했다.

 

파우스트

무슨 일이지. ...설마 또 꿈이 새어나왔나?

새로운 매개는 문제없이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현자

아, 매개의 문제는 해결하신 거군요. 다행이예요.

 

파우스트

...뭐 그렇지.

 

현자

(왜 그렇게 복잡한 듯한 얼굴을...)

결계도 걱정했지만, 방문한 건 결계에 대한 게 아니예요.

오늘 얘기하고 싶었던 건 낮에 샤일록의 바에서 본 돌의 기억에 관한 거예요.

 

파우스트

...그건 그냥 그 돌이 봤던 과거의 밤하늘 영상이었겠지.

 

현자

그럴지도 모르죠.

그저, 어제 제가 봤던 파우스트에게서 흘러나온 꿈의 풍경과도 무척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파우스트

.......

 

그렇게 고하는 파우스트는 가만히 나를 응시했다.

아주 조금 당황하면서도, 나는 솔직한 마음을 그에게 전한다.

 

현자

쏟아져내릴 것 같은 빛의 갯수도, 밤하늘에 둘러싸인 것 같은 감각도...

마치, 파우스트의 꿈을 재현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혹시... 파우스트는 성로의 잼이 있는 장소를 알고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단순히, 제 착각일지도 모르지만요...

혹시나 과거의 오래된 기억이 꿈으로 나타난다던가, 그런 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파우스트

...그렇군. 어제의, 꿈...

 

파우스트가 생각에 잠긴 사이에 노크 소리가 났다.

 

파우스트

누구지.

 

미틸

앗, 안녕하세요. 파우스트 씨.

이런 시간에 죄송해요. 저기, 조금 얘기를 하고 싶어서...

 

파우스트

...문은 열려있다.

 

미틸

네, 네. 실례합니다.

...어라, 현자 님?

 

미틸은 내 얼굴을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어젯밤과 똑같은 상황에 왠지 우스워졌다. 파우스트도 희미하게 미소짓고 미틸을 맞이했다.

 

파우스트

오늘은 무슨 일이지. 약이라면 효과가 있었다.

몸상태도 이젠 괜찮아.

 

미틸

아뇨, 오늘은 피가로 선생님의 심부름이 아니라 제 용무로 왔어요.

파우스트 씨, 낮에 오웬 씨에게서 감싸주셔서 감사합니다.

 

파우스트는 한 순간 당황하고 민망한 듯이 모자를 내렸다.

 

파우스트

...감사받을 정도의 일은 아냐.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그렇게 말한 것 뿐이다.

 

미틸

네. 그래도 저는 무척 기뻤어서 어떻게든 감사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미틸은 한 번 고개를 숙이고, 조금 머뭇거리면서 얼굴을 들었다.

 

미틸

...실은 성로의 잼에 소원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몰래 파우스트 씨와 친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지금 이렇게 파우스트 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자고 생각한 게, 그 잼의 힘일지도 모르겠네요.

에헤헤. 그 돌은 정말로 제 소원도 이뤄줬다고 내일 시노 씨에게도 알려줘야겠어요!

 

쑥쓰러워하면서도 미틸은 용기를 내서 자신의 말을 마지막까지 전했다.

포근한 것을 보는 듯이 파우스트는 눈을 가늘게 하고, 상냥하게 미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파우스트

...그렇구나.

 

미틸

그래도 성로의 잼이 있는 장소를 알 수 없는 건 유감이었어요. 오웬 씨도 무척 원하는 것 같았고...

 

파우스트

너는... 그 돌을 원하는 건가?

이미 소원은 이뤘다고 말했는데...

 

미틸은 조금 생각하고 나서 끄덕였다.

 

미틸

가능하면 한 번 더 갖고 싶어요.

모두가 괴로워하는 <거대한 재앙>의 상처가 나을 수 있다면, 이번에야말로 그 소원에 사용하고 싶어요. 파우스트 씨의 상처도 나을지도 모르구요.

 

파우스트

.......

 

미틸

거기다 역시 진짜를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예쁜 돌이 있었다고 말하기만 해도 전해질지도 모르지만...

특히 리케와는 똑같은 걸 보고 같이 그 때의 기분을 나누고 싶어요. 소중한 친구니까요.

함께 본다면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때 아름다웠지'라며 나중에 둘이서 떠올릴 수 있잖아요?

 

파우스트

...후후. 자신의 소원이 아니라 타인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돌이 필요하다니, 넌 욕심이 없는건지, 욕심이 많은 건지 모르겠군.

 

미틸

어, 어떨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서...

 

파우스트

현자. 너도 이루고 싶은 소원이...

라니, 듣지 않아도 알겠군.

너의 소원은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겠지.

 

현자

그렇죠...

 

파우스트

현자, 미틸. 그 돌은 소원을 이뤄주지는 않아.

그래도 상관없다고 한다면... 소원을 이루고 싶어서가 아닌, 친구와 함께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다고 한다면.

성로의 잼의 원석을 찾으러 가자. 내가 안내하지.

흘러넘친 꿈의 스텔라토

 

시노

...미안, 미틸. 내가 써버린 탓이야.

 

미틸

그런, 신경쓰지 마세요...! 시노 씨 때문이 아니에요.

거기다 네로 씨의 레몬파이는 저도 엄청 좋아하니까요. 시노 씨의 소원이 이뤄져서 기뻐요!

 

방긋 웃는 미틸에게, 미안해하던 시노도 미소로 답한다.

그런 두 사람을 날이 선 목소리가 찔렀다.

 

오웬

바보아냐? 정말로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들이 고통받고 있는 기묘한 상처를 낫게하는 데 썼어야지.

헛되게 낭비해버리다니 멍청하네. 상처가 없는 놈들은 태평해서 좋겠어. 

 

미틸

앗...

죄송해요. 저, 전혀 깨닫지 못해서...

 

미틸은 냉수를 뒤집어쓴 것처럼 깜짝 놀라며 부끄러운 듯 작게 쭈그러들었다.

 

시노

어이, 오웬.

 

발끈하고 대꾸하려던 시노의 목소리를 파우스트가 막는다.

 

파우스트

사과하지 않아도 돼. 돌에 소원을 이뤄주는 힘이 있었다해도 처음부터 미틸의 것이었잖아.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 아이의 자유다.

 

오웬

허세부리지 마. 네 상처도 상당히 지독하잖아.

동쪽의 마법사는 비굴하고 음침하니까 본심은 어떨지 모르지. 사실은 미틸을 증오할지도.

 

파우스트

시끄러워.

애초에 이 돌에는 소원을 이뤄줄 정도의 효력은 없다. 아주 조금, 행운을 모을 뿐이다.

 

오웬

시노는 소원을 이뤘잖아?

 

파우스트

우연히겠지.

 

오웬

우연? 인간 행세를 하는 마법사의 변명 같아.

 

네로

인간 행세를 하는 마법사는 더 변명을 잘한다고.

 

라스티카

재밌네. 소량의 행운을 모으는 돌 행세를 한 소원을 이뤄주는 돌도, 우연히 빛을 잃었을지도 모르지.

 

오웬

역시 소원을 이뤄주는 돌이지?

 

시노

혼란해졌어...

 

네로

...저기, 현자 씨. 새삼스럽지만 이거, 도대체 무슨 상황인거야?

 

현자

그게, 가게 주인에게서 받은 상품이 소원을 이뤄준다고하는, 엄청난 돌이었던 것 같아서...

 

네로

진짜로? 소원을 이뤄주는 돌 말이지...

그런걸 그냥 주다니, 대단히 호기로운 점주구나.

 

우리의 대화를 듣고있던 오웬의 눈이 번뜩이는 것처럼 빛난다.

 

오웬

그 돌을 팔았던 가게를 알려줘. 내가 전부 빼앗아올게.

 

라스티카

오웬도 가보고 싶은거니? 무척 멋진 가게여서 말이지, 중앙의 수도 어딘가에 있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오웬

중앙의 수도? 그럼 금방이잖아.

안내해.

 

파우스트

마법사 전용인 수상한 노점 같았다. 그 무서워하던 모습으로 봐선 진작에 가게를 접고 사라졌겠지.

 

오웬

이 놈도 저 놈도 쓸모없어...

 

기묘한 상처로부터 해방될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일까, 오웬은 초조해하면서도 전에 없이 적극적이었다.

평소에 귀찮아하던 모습을 봐왔던 마법사들은 조금 의외인 듯이 그를 보았다.

 

라스티카

꽤 흥미를 보이네, 오웬. 그러고보니 네 상처 이야기는 아직 들은 적이 없었는데, 도대체 어떤 상처야?

 

오웬은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오웬

별로... 내 상처따윈 아무래도 좋잖아.

난 그저 상처로 고통받는 불쌍한 북쪽의 마법사들을 도와주고 싶을 뿐이야.

미스라는 잘 수가 없고, 브래들리는 재채기 할 때마다 날아가버려. 그런 상태,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동정심이 생기잖아.

 

파우스트

네가 동정심...?

 

현자

(...오웬, 그런 거짓말은 상당히 괴로운 게...)

 

의혹이 씻겨지지 않는 발언을 순수하게 기뻐한 것은, 스노우와 화이트였다.

 

스노우

호오, 그건 좋은 마음가짐이로구먼.

 

화이트

아름다운 우정이로구먼.

 

오웬

뭐 그렇지. 그 둘하고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니까.

가끔은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스노우・화이트

오웬, 장~하다! 동료를 생각하다니~!

무척 착하구나~~!

 

오웬

시끄러워.

그래서, 성로의 잼 원석이 있는 장소는 어디야? 이놈도 저놈도 믿을 수 없으니까 이젠 내가 직접 다녀오겠어.

 

스노우와 화이트는 사랑스럽게 웃으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스노우・화이트

글쎄, 모른다네.

 

오웬

뭐?

 

화이트

존재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것뿐일세. 성로의 잼이 있는 곳까지는 공교롭게도 파악하지 못했다네.

 

스노우

우리는 무언가를 탐하던 때에는 힘으로 어떻게든 했으니까. 

 

오웬

....... 여기엔 도움 안 되는 것들만 있는거야?

 

결국 오웬의 기분이 안 좋아진다. 위험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한다고 생각할 때, 라스티카가 느긋하게 목소리를 냈다.

 

라스티카

성로의 잼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고싶다는 얘기일까?

그거라면 알지도 모르겠어.

 

파우스트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이 라스티카를 돌아봤다.

 

파우스트

....... 어떻게?

 

라스티카

나를 따라와.


 

라스티카가 모두를 데리고 온 곳은 샤일록의 바였다.

카운터에서 글라스를 닦고있던 샤일록은 우리들 일행을 보고 신기한 듯이 미소를 띠웠다.

 

샤일록

이런, 여러분 어쩐일로.

 

현자

죄송해요, 샤일록. 준비중인데.

 

네로

나도 모르게 따라와버렸지만, 어이. 이런 시간부터 바에 가냐고.

 

파우스트

술의 힘을 빌리자는 건 아니겠지. 아이가 있으니까.

 

라스티카

그것도 재밌을 것 같지만, 지금 빌리고 싶은 건 지혜자 무르의 힘이예요.

 

파우스트

무르?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라스티카

샤일록. 이전에 무르가 고쳐준 과일경은 있나요?

 

샤일록

있어요. 여긴 창고가 아니라고 그에게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말이죠.

 

미틸

과일경...?

 

샤일록

무르의 발명품 중 하나예요. 『사물』이 보고온 기억을 영상으로 비춰주는 마법과학 장치예요.

 

전에 나도 과일경을 본 적이 있다. 서쪽의 마법사들이 자갈을 이용해서 오래된 거리의 기억을 영화처럼 즐긴 적이 있다.

그때 고장나버렸지만, 나중에 무르가 수리해서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스노우

호오.

 

화이트

『사물』의 과거를 볼 수 있는 장치인가.

 

오웬

도움이 되는 일도 있구나, 그 괴짜. 평소에는 얼빠진 짐승인데.

 

샤일록

후후. 동감이예요.

 

시노

그런가. 그 마법과학 장치로 성로의 잼의 출처를 찾는 거군.

 

라스티카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이 돌에게 물어보면 가장 좋으니까 말이야.

 

네로

근데 무르 녀석은 없는거지?

 

현자

주인이 없는 곳에서 장치를 사용하는 건 좀 그렇죠...

 

샤일록은 미소를 띠웠다.

 

샤일록

과일경이라면 특별히 문제 없을거예요.

수리할 때는 열중해서 마구 들쑤셨지만, 끝났더니 흥미를 잃었는지 마음대로해도 상관없다며 내팽개친 건 그였으니까요.

 

파우스트

뭐어, 책임자가 그렇다면야...

 

샤일록

무엇의 책임자인가요?

 

파우스트

장치의?

 

네로

무르의?

 

샤일록

그건 거절할게요.

 

현자

(어느 쪽의 대답일까...)

 

시노

어쨌든 얼른 해보자고.

흘러넘친 꿈의 스텔라토

 

파우스트

이건...

 

한 눈에 봐도 마음이 사로잡히는 아름다운 돌이었다. 별의 반짝임을 가둬둔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라스티카

멋지죠? 이걸 준 주인은 성로의 잼이라고 불렀어요.

 

현자

성로의 잼...

 

미틸

멋지다...! 정말, 별처럼 예뻐요.

 

미틸이 흥미로운 듯 말하자, 라스티카는 생긋 웃으며 돌이 놓인 손을 내밀었다.

 

라스티카

지금부터 이 돌은 네 거란다.

 

미틸

네? 그래도 라스티카 씨가 받은건데...

 

라스티카

나는 지금 똑같을 정도로 아름답게 빛나는 미틸의 눈을 봤으니까. 그 답례란다.

 

미틸

...! 네, 네.

감사합니다.

 

성로의 잼을 건네받은 미틸은 기쁜 듯이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현자

잘됐네요, 미틸.

 

미틸

에헤헤. 돌아가면 리케에게 보여줄거예요.

물론 형님들에게도!

 

시노

떨어뜨리지 않게 꽉 붙잡고 있으라고.

 

아름다운 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렇게 느끼는 미틸의 마음씨는 그가 손에 들고있는 돌처럼 아름답고도, 신기하게도 자랑스러워진다.

그대로 발걸음도 가볍게, 우리는 목적지인 가게로 향했다.

 


 

중앙의 거리에서 차를 마신 우리는 만족한 채로 마법관에 돌아왔다.

모두들 담화실로 향하자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온다.

 

스노우

...그러자 벽에 비친 거대한 그림자가 부르짖는 것이었습니다.

 

화이트

어흥-!

 

오웬

와앗. 무서워...!

 

화이트

이런, 너무 놀라게 해버렸나.

 

오웬

으응, 재밌었어. 한 번 더 해줘, 방금 거.

 

스노우・화이트

어흥-!

 

오웬

아하하. 어흥-!

 

스노우와 화이트 사이에 있던 오웬에게, 두 사람은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다.

그 모습은 밝고 천진난만해서, 평소의 차가운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다.

 

현자

(...저건 상처의 오웬?)

 

<거대한 재앙>의 상처를 짊어진 오웬은 때때로 기사에게 동경을 품은 순진무구하게 어린 인격이 된다.

또한 어린 인격으로 변했을 때 일어난 일은 그의 기억 속에 남지 않는다는 것 같다.

 

라스티카

스노우 님과 화이트 님, 오웬, 셋이서 사이좋게 얘기하고 계셨군요.

 

파우스트

쌍둥이는 그렇다쳐도, 오웬이...?

 

미틸

기분탓일까요. 평소와는 분위기가 다른 듯한...

 

현자

그, 그런가요?

 

모두의 이상하다는 시선에 나는 속으로 당황했다.

북쪽 마법사의 자부심일지, 무방비한 상태를 걱정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오웬은 자신의 상처를 숨기려하고 싶어한다.

그가 어떤 상처를 짊어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마법사 중에 일부 뿐이다. 

 

오웬

저기, 다음 거 빨리 읽어줘...

.......?

 

어떻게 얼버무려야할지 식은 땀을 흘리고 있으니, 갑자기 오웬이 미소를 잃었다. 급속히 눈이 떠진 것처럼 멍하게 있다.

 

스노우

오오, 돌아와버렸나.

 

화이트

착한 아이의 시간은 끝나버렸구먼.

 

그림책을 덮는 두 사람을 보고 사태를 파악한 것이겠지. 오웬은 질린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오웬

최악이야. 무슨 상황이었는지 상상하기도 싫어.

 

현자

(위, 위험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자, 쌍둥이가 동그란 눈동자를 굴리며 이쪽을 향했다.

 

스노우

이런, 그대들도 와 있었구먼.

 

화이트

또다시 참으로 드문 조합일세.

 

오웬

.......

 

환영하는 분위기인 쌍둥이와는 정반대로 오웬은 경계심을 나타내며 노려본다.

침착하지 않을 마음 속이 짐작되어, 나는 엄지손가락을 세워가면서 어필했다.

 

현자

(오웬, 괜찮아요...! 안 들켰어요...!)

 

오웬

...칫.

 

찝찝한 듯이 혀를 찼지만, 뜻은 전달된 듯했다.

 

화이트

오호, 미틸. 특이한 걸 갖고 있구먼.

 

미틸

무척 예쁜 돌이죠! 아까 라스티카 씨에게서 받았어요.

 

라스티카

마법도구 가게의 주인이 친분의 표시로 저에게 선물해준 것이랍니다.

 

파우스트

미묘하게 얘기가 바뀌지 않았나?

 

시노

성로의 잼이라고 하는 돌이다.

 

그것을 들은 스노우와 화이트는 '오오'하며 감탄했다.

 

스노우

그거 참 운이 좋았구먼!

 

화이트

성로의 잼은 주인의 소원을 이뤄준다는, 옛날부터 전해져오는 희귀한 돌이라네!

 

현자

소원을 들어준다?

 

라스티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대단한 힘을 간직한 돌이었군요.

 

시노

미틸. 시험삼아서 아무거나 빌어보면 어때?

그 얘기가 진짜라면 이뤄질지도 모른다고.

 

미틸

소원이라...

 

미틸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곤란한듯이 어깨를 축 떨어뜨렸다.

 

미틸

당장은 생각나지 않아요. 시노 씨라면 어떤 소원을 빌 건가요?

 

시노

난 돌에는 빌지 않아. 내 소원은 나 스스로 이루는 거니까.

 

미틸

머, 멋있어...!

 

시노

굳이 말하자면 레몬파이를 먹고싶다. 그 정도다.

 

파우스트

가게에서 그만큼이나 과자를 먹어놓고 또 먹는거냐...

 

시노

레몬파이는 없었잖아!

 

그때, 발소리와 함께 두둥실 달콤한 향기가 담화실로 풍겨온다.

 

네로

오, 있었네.

아까 갑자기 레몬파이를 만들고 싶은 기분이어서 만들어봤는데, 괜찮으면 먹을래?

내 입으로 말하는 건 그렇지만 딱 맞게 구워져서 바삭바삭하고 맛있을거라고.

 

전원

!

 

스노우

레몬파이라고?

 

미틸

정말인가요!?

 

네로

어, 뭐야...? 이 분위기.

나, 뭔가 잘못 말했어?

 

현자

(화이트의 말대로 소원이 이루어졌다...?)

 

성로의 잼의 효과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우리는 웅성거렸다.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하는 전설은 진짜인가라며, 돌을 바라보는 모두의 눈이 돌연 진지함을 띤다.

 

미틸

...앗.

 

하지만 아름답게 빛나던 잼은 우리의 눈앞에서 그 빛을 잃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회색으로 바뀌더니 미틸의 손 위에서 단순한 돌처럼 변하고 그대로 침묵했다.

그것은 마치 소원을 이루어줌으로써 힘을 다한 것처럼 보였다.

흘러넘친 꿈의 스텔라토

 

시노

방금 엄청 큰 말 조각상 봤어? 분명 왕자의 증표일거라고.

사서 마법관에 장식하자.

 

파우스트

안 살거다.

 

시노

왜지. 멋있는데.

두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지?

 

미틸

엑? 확실히 멋지긴 한데요...

 

현자

가지고 가기에는 좀 크다고 할까...?

 

시노

크니까 좋은거다. 적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어.

 

파우스트

뭐냐 그 용도는... 됐으니까 간다.

오늘은 뭘 사러 온 게 아니니까.

 

파우스트의 방을 방문한 다음 날.

어제의 보답이라며 파우스트에게 권유받은 미틸과 나는 차를 대접받기 위해 중앙의 수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중에 복도에서 시노와 딱 마주쳐, 그도 다과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시노

그렇다 쳐도, 파우스트가 스스로 외출하다니 별일이네.

 

파우스트

시끄러. 나도 가끔은 외출 정도는 해.

 

파우스트는 시노에게 응수하며 긴장한 기색으로 걷는 미틸을 봤다.

 

파우스트

너는 희귀한 차에 흥미가 있었지.

지금 갈 가게는 어젯밤 내가 마셨던 것 같은 차나, 다른 데선 볼 수 없는 독특한 찻잎 같은 것도 취급하고 있어. 마음대로 시험해봐도 된다.

 

미틸

...네! 감사합니다, 파우스트 씨.

 

미틸의 얼굴이 파앗 빛났다.

자신에게 맞춰서 가게를 골라준 것이 기뻤던 것이겠지. 어제 미틸이 차에 흥미를 보인 것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자

(배려가 세심하달까... 진지하고 상냥한 파우스트다워)

 

시노

차만? 먹을 건 없는건가.

 

파우스트

정말이지, 너는 먹을 생각 뿐이로군... 다과 정도는 있겠지.

 

시노

레몬파이는?

 

파우스트

글쎄. 그것까진 기억 안 나는군.

 

시노

흐응. 뭐 됐어.

파우스트와 차를 마시고 왔다고 나중에 히스에게 자랑해주지.

 

미틸

히스클리프 씨는 마법관에 안 계신가요?

 

그 순간, 시노는 어린애처럼 입을 삐죽 내밀었다.

 

시노

그 녀석은 본가에 용무가 있어서 블랑솃으로 돌아갔어.

나도 갈 생각이었는데 딱히 필요없다고 거절당했다. 호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해도 히스 녀석, 혼자서도 괜찮다고 무뚝뚝하게 말해서...

 

현자

싸운건가요...?

 

시노

싸운 게 아냐. 의견 차이라는 거다.

좀 심한.

 

파우스트

싸운 거잖아, 그건.

 

시노

그 녀석은 화를 잘 내는데다 고집이 너무 세.

...나도 좀 심하게 말하긴 했지만.

 

풍선이 쪼그라드는 것처럼 시노의 말이 약해진다. 화는 이미 없어졌고 지금은 단지 삐진 것뿐이라고, 그 목소리가 말하고 있었다.

 

미틸

그럼 히스클리프 씨가 돌아올 때를 위해서 맛있는 과자를 준비해두지 않을래요?

힘들게 돌아왔을 때 달콤한 게 있으면 행복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니까요.

 

시노

좋네, 그거. 좋은 생각이다!

 

미틸

저도 리케랑 싸웠을 때는 간식을 가지고 사과하러 가거든요.

 

시노

우선 과자로 회유하는 건가. 꽤 하는 걸, 미틸.

리케는 달콤한 걸 엄청 좋아하니까 말이지.

 

미틸

아, 아니예요! 화해의 증표라구요.

시노 씨도 화해를 위해 힘내도록 하죠.

 

시노

...그렇지. 맛있는 과자를 골라보자고.

 

소중한 친구를 가진 동지라서일까. 성격은 전혀 다른데도 시노와 미틸은 상성이 좋아 보였다.

어리면서도 순수한 그들의 대화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파우스트

.......

 

파우스트도 똑같이 느낀 것인지, 흐뭇한 듯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현자

오늘 외출, 시노가 함께해서 다행이네요.

 

파우스트

그럴지도 모르지.

 

현자

그러고보니 피가로를 부르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요? 미틸은 두 사람이 친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던데요.

 

파우스트

일단 권유는 했지만 자기는 됐으니까 미틸과 재밌게 다녀오라더군.

 

현자

앗, 그랬군요. 뭔가 달리 용무라도 있었던 걸까요.

 

파우스트

글쎄. 단순히 나 같은 저주상과 외출하는 게 싫었던 것뿐일지도 모르지.

 

현자

(조금 목소리가 차가워졌어...)

죄, 죄송해요.

 

파우스트

아, 아니 그게... 사과하지 않아도 돼.

나도 어른스럽게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라스티카

자, 두 사람도 같이 웃자. 악수를 하고 화해하도록 하죠.

 

파우스트・미틸・시노

!?

 

놀라서 뒤돌아보자 라스티카가 서 있었다. 마법관의 복도에서 마주친 것처럼, 우아하고 자연스럽게 미소짓는다.

 

라스티카

그런데 다과회라면 나도 함께해도 될까?

 

현자

라, 라스티카?

 

시노

혼자라니 별일이네.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라스티카

좋아하는 가게에 홍차를 사러 왔어요.

멋진 의상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클로에가 아침부터 작업에 몰두하고 있어서 저는 맛있는 홍차를 내려서 응원하자고 생각했거든요.

 

현자

그랬었군요.

 

미틸

라스티카 씨는 상냥하시네요.

 

라스티카

후후, 고마워.

그보다도 오늘은 정말 멋진 날이야.

설마 운명의 만남을 이룬 뒤에 이렇게 현자 님 일행과 만나다니.

 

파우스트

...운명의 만남?

 

우리는 조건반사처럼 라스티카가 손에 들고 있는 새장을 봤다. 안에는 한 마리의 작은 새가 있다.

 

현자

그, 그건...?

 

라스티카

네. 제 신부예요.

 

현자

(똑같은 패턴이다...!)

 

시노

또 저질러버렸나, 사람 잘못 보고.

 

미틸

라, 라스티카 씨. 그 새는 정말로 신부가 맞나요?

 

파우스트

내 직감이 정확하다면, 백 퍼센트 아니다.

 

라스티카

그런가요? 말하고 보니 다른 것 같네요.

자, 나오렴. 《아모레스트 뷔엣세》

 

라스티카가 경쾌하게 주문을 외우자 작은 새는 금세 남성의 모습이 되었다.

 

남성

...!

 

미틸

괜찮으세요?

 

남성

히익...!

 

남성은 백발이 섞인 노인으로, 마법사처럼 로브를 몸에 걸치고 있었다. 새로 변했어서 그런지 매우 무서워한다.

 

현자

라스티카, 이 분은 누구...?

 

라스티카

제가 아까 들렀던 마법도구를 취급하는 가게의 마법사 주인이예요.

지나가는 길에 상품을 보고 있었더니 저에게만 특별하게 해준다고 손짓하며 비장의 상품을 추천해주셨어요.

그게 한 눈에 보고 기뻐할 정도로 아름다운 물건이었어서...

 

남성

『이렇게나 멋진 걸 골라주시다니, 분명 제 신부가 틀림없군요!』라며, 눈 깜짝할 사이에 나를 새로 만들었어!

그, 그렇게나 원한다면 줄 테니까, 목숨만은 살려줘...!

 

창백해진 남성은 손에 쥐고있던 무언가를 라스티카에게 떠맡기듯이 건네고 쏜살같이 도망쳐버렸다.

 

미틸

가버렸네요...

 

라스티카

제 신부가 아닌데도 선물을 주다니, 무척 친절한 분이네요.

 

파우스트

서쪽 나라에서는 저걸 선물이라고 해석하는 건가...?

 

시노

뭘 받은거지?

 

라스티카

이거야.

 

라스티카가 손바닥을 펼치자 거기에는 작은 돌이 있었다. 우리는 무심코 숨을 삼켰다.

 

시노・미틸

...!

흘러넘친 꿈의 스텔라토

 

미틸

아, 안녕하세요.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파우스트는 문을 열었다.

 

현자

미틸?

 

미틸

앗... 현자 님도 계셨네요.

 

조금 긴장한 모습의 미틸은 파우스트의 뒤에 있는 내 얼굴을 보고 안심한 듯이 표정을 풀었다.

 

파우스트

무슨 용무라도?

 

미틸

피가로 선생님에게서 약을 맡아 가지고 왔어요. 저녁 시간 때 파우스트 씨의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면서.

 

파우스트

...약?

...윽.

 

건네받은 종이봉투를 의심스러운 듯이 들여다본 파우스트는,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바로 돌이라도 씹은 듯한 얼굴이 되었다.

 

파우스트

.......

 

미틸

파우스트 씨?

 

파우스트는 퍼뜩 종이봉투의 입구를 닫았다. 곧바로 그답게 차분하고 상냥한 분위기로 돌아갔다.

 

파우스트

...고맙다. 밤 늦게 미안하구나, 현자도.

 

현자

아뇨, 그런.

 

미틸

도움이 됐다면 기뻐요.

 

예상치 못하게 목소리가 겹쳐서 미틸과 나는 에헤헤하며 민망한 듯이 웃었다.

 

미틸

앗, 예쁜 꽃이...

 

파우스트

꽃?

 

미틸

예쁜 유리병을 장식해 둔 게 보여서...

병 안에 있는 거 꽃이죠? 파우스트 씨는 꽃을 좋아하시나요?

 

미틸의 시선을 좇아 파우스트가 돌아본다. 테이블에 놓인 유리 항아리 속에는 수조의 금붕어처럼, 예쁜 꽃이 피어 있었다.

 

파우스트

아아. 이건 꽃이라기 보단 차다. 기분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자기 전에 마시는 일이 많아서...

 

미틸

와아, 차인가요? 그런 차가 있다니 몰랐어요.

편안하게 잘 수 있는 효과가 있다면 약 대신에도 좋을 것 같네요! 일어나거나 수면에 효과가 있는 차는 저도 가끔 만들지만요...

앗. 죄송해요.

파우스트 씨는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 시끄럽게 떠들어서...

 

파우스트

...아냐.

 

미틸

현자 님도, 파우스트 씨의 상태가 걱정돼서 오신거죠.

 

현자

아... 네. 맞아요.

신경 쓰여서, 조금 상태를 보러.

(좀 다르지만, 틀리진 않으니...)

 

파우스트

난 괜찮으니까 두 사람은 방으로 돌아가도 돼. 벌써 잘 시간이니.

 

현자

그렇네요. 미틸, 돌아가죠.

 

미틸

네. 저, 현자 님을 방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현자

고마워요. 그럼 파우스트.

안녕히 주무세요.

 

미틸

파우스트 씨, 몸조심 하세요.

 

파우스트

그래. 잘 자라.


 

미틸

...저기, 현자 님.

제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약을 건넸을 때 파우스트 씨, 좀 놀란 것 같아 보여서...

어떤 약을 건넸는지 제대로 피가로 선생님에게 확인하는 편이 좋았던 걸까요.

피가로 선생님은 수완이 좋은 의사 선생님이고, 파우스트 씨가 곤란해할 만한 물건을 주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요...

 

현자

(확실히 방금 파우스트의 반응은 나도 조금 신경 쓰였어.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예요. 만약 무슨 일이 있다면 파우스트는 그 자리에서 말할거라 생각하구요.

분명 미틸에게도 피가로에게도 고마워하고 있을 거예요.

 

미틸

그, 그런가요...? 그럼 다행이예요.

 

안심한 것인지 미틸에게 웃음이 돌아온다.

 

미틸

그러고보니 현자 님과 파우스트 씨는 친하시죠. 아까도 왠지 친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현자

정말인가요? 그렇게 보였다면 기뻐요.

 

미틸

레노 씨나 시노 씨하고도, 파우스트 씨는 사이가 좋아 보였어요. 같이 있는 모습을 가끔 보거든요.

피가로 선생님과 파우스트 씨도 사이가 좋아지면 좋을텐데...

피가로 선생님이 말을 걸면 화를 내게 만드는 것 같아서...

 

현자

(피가로...)

 

미틸

거기다 저도 파우스트 씨와 사이가 좋아지고 싶어요.

시노 씨나 히스클리프 씨가 좋은 선생님이라고 항상 말하시거든요. 그러니까 제대로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막상 눈이 마주치면 긴장해버려서... 아까도 잘 얘기 못했어요.

 

현자

미틸다운 페이스로 말을 걸면 괜찮을 거예요. 천천히해도 분명 친해질 수 있어요.

 

미틸

네...!


 

파우스트

.......

젠장, 그 자식... 신면수의 향나무라니, 이거라면 불평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거기다 친절하게 슈가까지 동봉하다니...

.......

《사틸크나트 물크리드》

어쨌든 이걸로 결계 걱정은 없어졌군. 동쪽 나라에 가지 않고 끝낼 수 있겠어.

오늘 밤은 별이 가득하군.

...그리운 꿈을 꿨어.

흘러넘친 꿈의 스텔라토

 

현자

구름이 없어서 그런가 오늘 밤은 하늘이 예쁘네...

 

창밖은 완전히 밤이었다. 반짝이는 별들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혼자서 조용한 밤을 보내고 있으면 때때로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고 싶어진다.

맑은 밤하늘은 곁에 있지만 과묵해서 무엇이든 들어주는 것 같다. 별에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현자

(...지금 별에 소원을 빈다면 어떤 걸 빌까)

(역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아니면...)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 있자, 문득 시선 끝에 기묘하게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현자

...응?

 

시선을 향하니 창밖에 나풀나풀 불티 같은 것이 바람을 타고 날아온다.

 

현자

엑. 이거...

 

고개를 갸웃하다가, 확 떠올랐다.

 

현자

(...설마 파우스트!?)

 

그는 꿈이 밖으로 흘러나와 버린다는 <거대한 재앙>의 상처를 짊어지고 있다.

밤에 흩날리는 빛의 입자는 이전에 본 적이 있는, 파우스트의 꿈의 단편과 닮았다.

 

현자

(꿈이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도록 방에 결계를 둘렀다고 말했었는데...)

(그러고보니 파우스트는 한 숨도 안 자고 임무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지)

 

어쩌면, 그때 그의 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고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낀 나는 파우스트의 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현자

파우스트, 있어요!? 아키라예요!

 

노크해도 응답은 없다. 반사적으로 문 손잡이를 돌리자 의외로 잠겨있지 않은 채, 시원하게 돌아갔다.

 

현자

죄송해요, 들어갑니다...!

 

마음을 굳히고 문을 연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예상치 못한 풍경이었다.

 

현자

...응?

 

방 안에 펼쳐져 있던 것은 타오르는 불티가 아닌, 반짝반짝 빛나는 수많은 별들.

아까 올려다봤던 밤하늘보다도 훨씬 더 빛이 흘러넘치고 있다. 마치 보석을 흩뿌린 듯 눈부셨다.

 

현자

(이건 대체...?)

 

당황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에 멍하니 넋을 놓게 된다.

 

파우스트

....

 

하지만 테이블에 엎드려 있던 파우스트가 눈에 들어온 순간, 제정신이 들었다.

 

현자

파우스트!

 

달려가서 그의 몸을 크게 흔든다. 그러자 방을 뒤덮고 있던 별이 가득한 하늘은 사라졌다.

 

현자

(...사라졌어!?)

파... 파우스트, 눈을 뜨세요!

 

파우스트

...으응.

 

현자

괜찮아요!?

 

파우스트

현자...! 네가 왜 여기에...

 

현자

죄송해요, 말도없이 방에 들어와버려서.

실은 아까 파우스트의 꿈이 새어나온 것 같아서, 무슨 일이 있었나 걱정이 돼서...

 

파우스트

꿈이 새어나왔다? 넌 무언가 본 것인가?

 

현자

아름다운 별들이 수놓인 하늘을 봤어요. 하늘 가득한 별들의...

 

파우스트

별이 수놓인 하늘...? 아아, 너에게는 그렇게 보인 건가...

 

현자

네?

 

파우스트

...아무것도 아니다, 잊어줘.

그렇군. 확실히 방금까지 꾸었던 꿈이다.

하지만 네가 방에 들어온 기척도 눈치채지 못했다니... 매개를 사용해 결계를 둘러놨는데도...

 

현자

몸이 안 좋은 건 아닌가요? 테이블에 엎드려서 쓰러져 있었으니까요.

 

파우스트

.......

 

안색을 살피듯 묻자 파우스트는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파우스트

...무슨 일이 있었던 게 아니다. 그...

단순히, 잠이 든 것 뿐이다.

 

현자

네?

 

파우스트

한심한 얘기지만 책을 읽던 사이에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린 것 같다.

 

부끄러운 듯이 파우스트가 어깨를 으쓱인다. 그걸로 간신히 나는 안심했다.

 

현자

그랬었군요...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예요.

 

파우스트

놀래켜서 미안하다.

 

현자

신경쓰지 마세요. 분명 임무 때문에 지쳐서 그런 거예요.

 

파우스트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긴장을 놓고 있었던 것 같아.

 

아무렇지도 않은 파우스트의 말에 나는 놀랐다.

마법관에서 살기 시작했던 당초, 그렇게나 쌀쌀맞던 그의 입에서 『긴장을 놓고 있었다』라는 말이 나온 것에.

조금씩 평온하게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무심코 잠에 든 것도, 나쁜 일은 아니지 않을까.

 

파우스트

하지만 꿈이 새어나왔다는 건 문제로군. 결계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건...

 

선반에 다가간 파우스트는 오래된 동물의 뿔 같은 것에 손을 올리고 작게 주문을 외웠다.

 

파우스트

...그랬던 거로군. 아무래도 결계에 사용하는 매개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

 

현자

엇... 그거 괜찮은 건가요.

 

파우스트

괜찮다면 괜찮지만... 괜찮지 않다고 하면 괜찮지 않다.

 

현자

어, 어느 쪽이예요?

 

파우스트

결계가 작동되지 않았다는 의미라면 괜찮아. 고치면 어떻게든 작동하니까.

하지만 길게 보면 그닥 좋진 않아. 어디까지나 응급처치니까.

가까운 시일 내에 동쪽 나라에 매개를 조달하러 가는 게 좋겠군.

 

현자

그렇군요. 파우스트에게 있어서 결계는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니...

 

그때, 노크 소리가 났다. 무심코 둘이서 문쪽을 본다.

 

파우스트

오늘은 손님이 많군. ...누구지?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자샤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 교회에는 우리들만이 남았다.

새벽이 오기 전까지 시노와 히스클리프도 꽤 회복해 있었다.

마을 주변에 마법진 준비를 갖춘 파우스트와 네로도 돌아왔다.

성스러운 축제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파우스트

그럼 시작하지. 무슨 일이 생길 때는 부탁하겠다.

 

미스라

알겠습니다.

 

파우스트는 눈을 감았다.

 

파우스트

《사틸크나트 물크리드》

 

현자

.......!

 

세상에서 빛이 사라지고, 쿵하며 몸이 무거워졌다.

느껴본 적 없는, 거친 충격이 엄습한다.

몸이 산산이 부서질 것 같은, 쭈욱 길게 늘려지는 것 같은, 작은 폭발이 여러개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엄청나게 무서워져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무척 외로워져서 고립된 불안감과, 초연한 단단함을 느꼈다.

 혼자만의 시간에서만 알 수 있는, 갈고닦인 자신의 감각이 강해져간다. 자신과 비슷한 기척이 가까이 다가온다.

 

현자

.......!

 

확 눈을 뜨자, 그곳은 신전이었다.

별과 달빛밖에 없는 고독한 신전이다. 그런데도 들어본 적 없는 음색이 들려온다.

성스러운 축제의 음색이다.

동쪽의 마법사들이 소리 높이 주문을 외우자 그들의 몸이 희미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시노

《맛차 스디파스》

 

히스클리프

《레프세바이블프 스노스》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파우스트

《사틸크나트 물크리드》

 

어느새 나타난 북쪽의 마법사들도 동쪽이 마법사들을 지원하듯 주문을 외운다.

 

미스라

《아르시무》

 

오웬

《크레 메미니》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슴》

 

스노우・화이트

《노스콤니아》

 

그러자 별들의 빛보다도 눈부시게 태고의 신전이 빛나기 시작했다.

커다란 빛의 기둥이 신전 중앙에 우뚝 선다.

마법사들을 감싸는 희미한 빛이 반짝반짝 빛나며, 유성처럼 커다란 기둥으로 빨려들어갔다.

번쩍거리는 눈부심에 시야가 하얗게 희미해져간다...

이렇게해서, 동쪽 나라의 성스러운 축제는 끝났다.

 


 

네로

하아... 드디어 마법관으로 돌아갈 수 있어...

 

파우스트

시노, 히스, 부상은 괜찮아졌나?

 

시노

아아.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

 

히스클리프

자샤도 사과했고, 괜찮아요.

 

파우스트

...부상을 입게해서 미안했다. 너희들을 위험한 임무에 데려가는 건 앞으로 보류하도록 하지.

 

히스클리프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다음부터는 더욱 열심히 할 테니까...

 

시노

너는 선생이잖아. 그럼 좀 더 우리에게 훈련을 시켜서, 우리를 강하게 만들라고.

 

파우스트

.......알겠다.

다음 수업부턴 더욱 엄하게 하지.

 

네로

난 쉬운 쪽이 좋은데...

 

스노우

마을 사람들도 마을로 돌아왔다네! 하지만 몇 번이나 설명해도 현자의 마법사라는 걸 믿어주지 않아.

 

화이트

자기들이 <거대한 재앙>으로부터 세상을 지켜냈다고 굳게 믿어버린 모양일세.

 

스노우

지금도 저렇게, 멀찍이 둘러싸서 우리들을 보고 있다네.

 

네로

.......

저기, 당신들!

 

촌장

...뭐, 뭐냐...

 

네로

지금까지 고생했어. 당신들 덕분에 살았다고.

세상을 구해줘서 고마워.

 

촌장

........

 

네로

하지만 앞으로는 우리들이 맡게 됐어. 더이상 무서운 생각은 안 해도 돼.

당신들은 자유야. 이 마을을 개척하는 것도, 이 마을을 나가 자유롭게 사는 것도 가능해.

 

촌장

...미... 믿을 것 같냐... 마법사의 말 따윌...

 

자샤

믿어요!

 

촌장

...자샤...

 

자샤

전 믿어요... 현자의 마법사 분들...

마을을 구해줘서 고마워요.

 

시노

또 보자, 자샤. 중앙 나라에 올 일이 생기면 마법관을 방문해.

 

히스클리프

블랑솃에도 놀러와.

 

시노와 히스클리프가 자샤에게 손을 흔든다. 맑은 눈동자로 자샤도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다.

 

브래들리

그러면, 돌아가볼까.

 

미스라

그런데 오웬. 강한 마력의 기척이 당신의 트렁크에서 납니다만, 희소가치가 높은 마나석이라도 들어있나요?

 

오웬

몰라. 기분 탓 아냐?

너야말로 그 커다란 물고기의 시체는 어떡하게?

 

미스라

마법관에서 구워볼까해서.

 

네로

어이어이, 부엌은 쓰지 말라고...

 

힘들었던 임무가 끝난 직후이지만, 화목한 대화에 나는 무심코 웃었다.

올려다보니 선명한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되살려야 하는 태고의 신전은 앞으로 2개...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현자

시노! 시노, 정신 차려요...!

 

시노

...윽, 히스는...?

 

현자

무사해요. 오웬, 시노를 도와주세요!

 

오웬

헤에. 이 마법사의 돌, 대단한 마력이잖아.

왜 부서지지 않았을까? 죽기 직전에 마법으로 형태를 유지한걸까?

혼자서 돌이 되는 건 외로우니까 누군가가 눈치채주길 바란 걸지도 모르겠네. 후후.

나, 여기서 죽었어 라고.

 

현자

오웬...! 시노가...!

 

자샤

...저, 상처를 지혈할게요. 시노...

시노, 힘을 내.

 

현자

자샤... 고마...

.......!

...물고기 머리가, 3개나 나타났어...!

 

자샤

...헉, 이... 이젠 끝났어...

 

오웬

다수의 레모라... 마력이 약해져서 마법사의 돌을 노리고 왔구나.

안 줄 거야. 이건 내 거니까.

 

현자

어디 가는 건가요, 오웬!

 

오웬

이 돌을 숨길거야. 미스라가 보면 빼앗을테니까.

그런 건 절대로 싫으니까 말이지.

 

현자

부탁드려요! 도와주세요!

지금은 그럴 때가...

 

내 말을 듣지 않은 채 돌이 된 마법사와 함께 오웬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그가 사라진 장소를 바라보며, 나는 망연히 서 있는다.

 

현자

...자, 장난이지...?

 

자샤

.......! 이쪽을 향해 온다...!

 

현자

.......!

 

나는 순간적으로 떨어져있던 시노의 대낫을 주웠다.

 

현자

자샤, 물러나세요! 여... 여긴 제가...!

 

자샤

다, 당신도 마법을 쓸 수 있는건가요!?

 

현자

못 써요! 하지만 어떻게든 될 거예요!

이건 영웅의 대낫이니까...!

 

영웅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말했던 시노를 떠올리며, 기도하듯 대낫의 자루를 쥐었다.

그러자...

 

시노

...으윽, ...그 말대로다...

 

쓰러질 듯 하면서도 시노가 일어섰다. 볼이 선혈로 물들었어도 생기를 잃지 않은, 예리한 눈동자로 괴어를 노려본다.

 

시노

그걸 넘겨줘... 당신은 내가 지킨다.

그게 내 역할이야.

 

히스클리프

...현자 님... 위험해요, 도망치세요...

 

시노에 이어 히스클리프도 몸을 일으킨다. 너덜너덜하게 상처입었으면서도, 두 사람은 우리를 지키려고 했다.

가슴이 꽉 조여온다. 하지만 고맙다고도, 도망가라고 말할 틈도 없이 세 마리 거대어의 머리가 쫓아왔다.

찰나, 어둠에 달빛이 스며들듯이 늠름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파우스트

《사틸크나트 물크리드》

 

눈을 뜨자, 마도구인 거울을 공중으로 치켜든 파우스트가 우리를 감싸듯이 서 있었다.

거대어들은 거울에서 흘러나온 빛에 맞아, 어떠한 힘에 짓눌린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현자

파우스트...!

 

파우스트

늦어서 미안하다.

 

파우스트는 상처투성이인 시노와 히스클리프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을 질책하듯이 괴로운 얼굴을 한다.

 

파우스트

시노... 히스...

내가 있었는데도, 이런 꼴로...

...마무리 해주지! 지옥의 괴어놈들!

 

네로

파우스트!

 

네로의 목소리가 울리고 나는 얼굴을 들었다. 빗자루로 하늘을 날면서 네로는 파우스트의 옆에 내려선다.

상처투성이인 시노와 히스클리프를 지키듯이 등을 맞대는, 파우스트와 네로의 모습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동쪽의 마법사들은 홀로 있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상처입은 동료가 있을 때면, 동료가 위험할 때면, 망설이지 않고 달려나가서 하나로 뭉친다.

혼자서 도망치는 것도, 혼자서 숨을 수 있는데도.

그들의 그런 점이 좋다.

 

시노

...파우스트, 네로...

 

네로

열심히 했어. 이젠 괜찮아.

집으로 돌아가면 비장의 레몬파이를 구워줄게.

 

시노

...좋았어...

 

파우스트

이걸로 끝이다.

《사틸크나트 물크리드》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용솟음치는 눈부신 빛 속에서 무서운 거대어의 머리가 순식간에 검은 먼지가 되어 사라져간다.

시노의 상처를 지혈하면서 자샤는 숨 죽이며 그 광경에 넋을 놓았다.


 

거대어 세 마리가 소멸한 무렵, 남은 북쪽의 마법사들도 교회로 달려왔다.

 

스노우

마을 사람들은 안전한 장소로 피난시켰다! 현자여, 괜찮은가!?

 

미스라

다른 물고기들도 한꺼번에 죽여뒀습니다.

 

화이트

시노! 히스클리프!

아아, 이렇게 크게 다쳐선... 안타깝구나...

지금 낫게해주마.

 

시노

...꼴불견이었어...

 

쌍둥이의 치유마법을 받으면서 시노가 작게 중얼거린다. 시노는 피를 많이 흘려서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시노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현자

멋있었어요. 줄곧.

지켜줘서 고마워요, 시노...

 

시노가 살짝 웃는다. 시노가 걱정하듯이 바라본 끝에는, 히스클리프도 새파래진 얼굴로 미소짓고 있다.

 

히스클리프

나, 폐 끼친 걸까...

도중부터 기억이 애매해서...

 

시노

도끼에 베여서 의식을 잃었어.

 

히스클리프

...그것 뿐이야? 뭔가...

기묘한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

 

시노

그것 뿐이다.

 

시노는 아직 말하지 않을 듯하다.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현자

시노! 시노...!

 

기분 나쁜 거대어에게 물려서 어딘가로 끌려가는 시노를, 나는 필사적으로 뒤쫓았다.

 

시노

...큭, 도망쳐, 현자...

 

현자

싫어요...! 시노, 마법을 써요...!

 

시노

《맛차-...》

...윽, 크윽...

 

물보라와 작은 돌을 흩뿌리면서 시노를 문 거대어가 엄청난 속도로 교회 바닥 아래로 기어들어가려 한다.

나는 있는 힘껏 달렸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이제 곧, 시노에게 손이 닿을 것 같다.

 

현자

(분명 시노를 구할 수 있을거야. 지금까지 마법사에게 닿았더니 신비한 힘을 얻은 적이 있잖아)

(난 시노를 구할 수 있어! 그러지 않으면, 안 돼...!)

 

손끝을 필사적으로 시노에게 뻗는다.

그러나 닿을 것 같던 순간, 등 뒤에서 충격을 받아 나는 넘어졌다.

 

현자

...윽. ...히스...

 

내 위에 올라탄 히스클리프가 차가운 두 눈으로 입맛을 다신다.

금발이 반대로 검게 변해간다.

 

시노

...현자...! 히스...

 

괴로워하는 시노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더이상 안 될 것 같다, 라고 생각했다.

그 때...

사납게 우는 개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현자

.......!

 

3개의 머리를 가진 커다랗고 늠름한 개가, 옅은 어둠을 빠져나가 거대어의 목덜미를 물었다.

 

현자

(뭐야!? 저 개...!?)

 

거대어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격렬하게 몸을 뒤틀었다. 그리고 커다란 입을 쩌억 벌린다.

피투성이의 시노가 그곳에서 굴러떨어졌다.

 

시노

...으, 으윽...!

 

현자

시노...!

 

시노의 곁으로 달려가려고 해도, 히스클리프에게 눌려있었기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 때에, 탁하는 소리를 울리면서 내 머리 옆에 검은 구두가 보였다.

뒤이어 털썩 트렁크가 놓인다.

그 트렁크를 나는 알고 있었다.

오웬의 마법도구다.

 

현자

...오웬...!

 

오웬은 기분 좋아보이는 듯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웬

안녕, 현자 님. 도와줄까?

 

나는 번개같은 속도로 끄덕였다. 오웬은 시시한 듯이 눈썹을 치켜뜬다.

 

오웬

그렇게 쉽게 부탁받으면 재미없어.

 

그 순간 목구멍에서 울음소리를 내지른 히스클리프가 오웬에게 뛰어들었다.

오웬은 가볍게 모습을 감췄다가 다시 나타나서, 히스의 손목을 잡았다. 예리한 발톱을 확인하고 재밌는듯이 웃는다.

 

오웬

다시 짐승이 되었구나. 동쪽의 귀공자는.

하지만 아직 나랑 놀기에는 이르려나. 다음에 또 보자.

《크레 메미니》

 

주문을 듣자마자 히스클리프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털썩하고 바닥 위에 무너져내린다.

 

현자

히스...!

 

쓰러진 히스클리프의 반대편에는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개가 게걸스럽게 거대어의 머리를 먹고있다.

세 머리 중 하나가 오웬을 돌아보며 크르릉하며 울기 시작한다. 이윽고 다른 두 머리도 엄니를 드러내고 위협했다.

 

현자

어... 어째서 오웬을 위협하는 건가요?

 

오웬

내가 싫은거야. 항상 트렁크에 가두니까.

잡아먹히기 전에 빨리 끝내버리자.

 

무서운 포효를 울리며 오웬에게 덤벼든다. 오웬은 트렁크 뚜껑을 열면서 다시 주문을 외웠다.

 

오웬

《크아레 모리트》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개는 환상처럼 트렁크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마을 사람

꺄아아아악!

 

네로

빨리 도망쳐! 지반이 두꺼운 곳으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

 

마을 사람

으아아아악! 여기에도...!

 

네로

...이런! 또 한 마리가...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슴》 !

흥! 별 거 아닌 놈이구만!

 

네로

브래드...

 

브래들리

여어.

 

네로

....... 그쪽을 맡길게! 난 마을 녀석들을 유도한다!

 

브래들리

그래, 맡겨두라고!


 

미스라

이런이런. 앞으로 몇 마리나 더 남은 건가요?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귀찮네요...

...응?

 

촌장

그만둬라! <거대한 재앙>의 분노에 닿아선 안 돼!

이대로면 세상이 멸망...

 

마을 사람

촌장 님! 촌장 님의 바로 뒤에 거대한 입을 연 <거대한 재앙>의 화신이!

 

촌장

.......!

 

마을 사람

촌장 님을 노리고 있어요! 움직이지 마세요...!

 

촌장

...으으...

 

미스라

어쩔까요? 죽일까요? 죽이지 않아도 괜찮나요?

당신은 먹힐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촌장

.......으윽.

구... 구해주게...

 

미스라

《아르시무》

 

촌장

하... 하아...

거... <거대한 재앙>이...

 

미스라

이거, 먹을 수 있을까요. 흙냄새가 날 것 같은데.

........? 살아남은 레모라가 교회 쪽으로 모여서...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마을 사람

꺄아아아악!

<거대한 재앙>이 나타났어...! 마을이 멸망할거야...!

 

그림 속의 스노우

이 무슨...! 마을 연못에 살고있던 것은, 여러 마리의 레모라였던 것인가!

 

그림 속의 화이트

미스라에게 머리 중 한 마리가 죽어서, 마을 전체에서 날뛰기 시작한 것 같다네!

 

그림 속의 스노우

이 정도로 거대한 레모라가 땅에서 머리를 내민 모습을 보게 되다니... 잘도, 훌륭하게 자랐구먼.

 

마을 사람

살려줘...!

 

그림 속의 화이트

걱정하지 말거라! 우리가 함께 있지 않느냐...!

그림 속에서 나가자, 스노우.

 

그림 속의 스노우

알겠네. 그림자가 있는 범위밖에 돌아다니지 못하지만, 마을 사람들을 지키도록 합세.

아저씨, 잘 부탁하겠네.

 

그림을 안은 마을 사람

...알겠습니다...

 

그림 속의 스노우˙화이트

하낫 둘... 으으읏...

《노스콤니아》

 


 

히스클리프

...윽, 크윽...

 

시노

히스...! 자샤!

잘도 히스를...!

 

자샤

...윽, 너희들이...! 너희들이 나쁜 거야...!

 

현자

괜찮아요? 히스...!

 

나는 재빨리 히스클리프에게 달려갔다.

어깨부터 가슴 근처에 걸쳐 흠뻑 젖어있다.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가슴을 감싸안은 채로 괴롭게 웅크려있었다.

 

히스클리프

...으, 으윽...

 

현자

히스클리프! 히스! 이걸...

 

지혈하기 위해 상의를 벗기고 그의 상처를 압박하려고 했다.

그러자, 히스클리프는 난폭하게 내 손을 뿌리쳤다.

 

현자

...읏, 히스...?

 

그 답지 않은 행동은 통증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고통을 참는 숨결도 점차 신음하는 듯한 목소리로 변해간다.

쓸쓸하고도 상냥한, 비가 오는 날의 창문같은 히스클리프의 파란 눈동자가, 야수같은 냉정함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털을 곤두세우는 짐승처럼, 부들부들 전신을 떨면서, 그는 피투성이인 손바닥을 바닥에 대었다.

이상할만큼 손톱이 길었다.

 

현자

(...설마...)

(검은 짐승이 된다던, 기묘한 상처...)

히... 히스클리프!

시노! 히스가...!

 

자샤를 압박하던 시노가 우리를 돌아본다.

그때, 격렬한 땅울림이 일었다.

 

시노

...읏, 뭐지...?

 

자샤

<거대한 재앙>을 화나게 한 거야... 이제 이 세상은 끝이야...

 

시노

칫...

 

시노는 혀를 차고 자샤의 손에서 도끼를 빼앗았다.

마법으로 도끼를 태워 질척질척한 철로 만들고, 우리 곁으로 달려온다.

 

시노

도끼가 녹슬었다. 감염 될지도 몰라.

마법약으로 치료를...

 

달려가던 시노를 견제하듯, 히스클리프는 목 깊은 곳에서 신음했다.

그의 이변을 눈치챈 시노도 말문이 막힌다.

 

시노

...히스...

 

히스클리프

......윽.

 

현자

...아...!

 

직후, 나는 히스클리프에게 덮쳐졌다.

가슴께에 툭하고 가차없이 강하게 쥔 주먹을 내리누른다.

 

현자

...윽...

 

시노

현자...!

 

흉포하고 냉정하며, 강렬한 두 눈이 사냥감을 내려다보듯 나를 바라보고 있다. 상처를 입은 어깨는 새빨갛게 피로 물들어 있다.

고상하게 미소짓던 그의 입매에서는, 날카롭고 무서운 이빨이 나타나 있었다.

확 새파랗게 질려가는 나에게, 시노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노

현자, 괜찮아!?

 

현자

괘... 괜찮아요...

 

시노

다행이다. 반드시 구해낼게.

...움직이지 마. 히스를 자극하지 마.

 

공포와 긴장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 와중에 침착한 시노의 목소리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격해지는 땅울림이 불길했다.

그르르르 하고 히스클리프의 목 깊은 곳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섞여서...

고오오...하며 몸 아래에서 무서운 기세의 물소리가 들려온다.

 

현자

(물...? 왜...?)

 

시노

히스, 착하지... 그래, 내 눈을 봐.

한 방에 잠들게 해주...

 

그 순간---.

대량의 물보라가 바닥에서 뿜어올랐다.

 

현자

.......!

 

자샤

우와아아아악...!

 

자샤가 비명을 지른다. 물보라와 함께 나타난 것은 시노의 몸 정도 크기인, 물고기의 얼굴이었다.

마름모꼴 입에는 빽빽하게 이빨이 나 있어, 보름달 같은 금색의 눈알이 크게 떠 있다.

 

시노

무...!

 

물이 튀어오를 속도로 물고기의 머리는 이동했다.

시노의 반을 물고서.

 

시노

...큭.

 

현자

...시노...!

 

옅은 어둠 속에서 히스클리프의 눈알도 물고기처럼 빛났다.


 

마을 사람

우와아아아악!

 

마을 사람

꺄아아아악!

 

미스라

여기저기서 비명이. 왠지 큰일난 것 같네요.

 

파우스트

큭...

 

미스라

와...앗.

 

파우스트

그러니까 말했을텐데! 무턱대고 자극하지 말라고!

 

미스라

당신, 알고 있나요? 동쪽의 마법사 주제에, 누구의 옷깃을 붙잡고 있는지...

 

파우스트

그게 어쨌단거야!? 저 중에는 현자와 시노, 히스도 있다!

혹시라도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천 년 치로 저주해서 네놈을 죽여주겠어!

 

미스라

.......

역시, 원한이 좀 길지 않나요...?

 

파우스트

알까보냐! 네로, 그들을 찾으러 간다.

너도 분담해서 찾아줘!

 

네로

알겠어!

 

브래들리

이 몸도 도와주지. 뭘 먹고 커졌든 걸리적거리는 놈들이구만.

이리와, 네로. 옛날처럼 한 번 날뛰어주자고.

 

네로

.......

 

브래들리

뭐야. 따라와.

 

네로

이젠 옛날이 아냐. 난 같이 안 가.

 

브래들리

.......

 

네로

그 녀석들을 찾으면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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