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네로

.......!

모습을 드러냈구나...! 괴물 같이 생긴 엄청 큰 놈이구만!

 

파우스트

레모라다! 예리한 이빨을 가졌고 뱀처럼 길어.

피가로의 집에서 표본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크진 않았어. 아마도 교회에 있는 마법사의 돌의 힘을 어떠한 수단으로 얻어서 거대화한 거겠지.

빗자루에 올라 타! 이 놈은 독을 뿜는다. 조심해.

 

네로

알겠...

.......! 이렇게나 높이 뛰어오르는건가!

 

파우스트

네로...!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슴》

 

네로

...브래드...!

 

브래들리

네로, 무사하냐!?

 

네로

....... 어어... 덕분에 살았...

 

브래들리

이 자식, 사람이 멋있는 대사를 할 때에 후추 뿌리지 말라고! 도중에 끊겨버렸잖아. 진짜.

 

네로

.......

 

브래들리

뭘 말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렸지만 말이야! 그거, 뭐였던 거냐?

화났던거냐? 뭐에 화가 났었던거야, 네 주제에 말이야.

 

네로

진~짜로, 네놈과는 손절해서 다행이야... 아까의 감정적이었던 나를 죽이고 싶어졌어...

 

브래들리

엉? 뭐라고?

 

네로

시끄러, 좀 꺼져.

...안고 있는 그 그림은 스노우와 화이트인가?

 

그림 속의 스노우

그렇다네! 파우스트! 네로!

무사했는가!?

 

파우스트

늦어.

 

그림 속의 화이트

늦어서 미안하네! 우리는 마을 사람들을 다른 장소로 유도하겠네.

성스러운 축제는 사람이 있어선 안 돼!

 

그림 속의 스노우

오거라, 브래들리!

 

브래들리

나한테 지시하지 마. 네놈들의 운반역할이 필요하면 지금 골라주지.

---어이, 너.

 

마을 사람

힉... 히이...!?

 

브래들리

아하하! 그래. 쫄았구만.

네놈의 주인은 나다. 나한테 쫄아서 새파래지고, 내 명령만을 듣는 목각인형이 되어라.

《아도노포텐슴》

 

마을 사람

.......

 

브래들리

이 그림을 옮기고 이 놈들의 말에 따라라.

 

마을 사람

...알겠습니다...

 

브래들리

그럼 안녕, 할아범들.

 

그림 속의 스노우

사람을 조종하다니, 나쁜 애구나, 브래들리--.

 

그림 속의 화이트

나쁜 애일세.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미안해. 아저씨, 저쪽으로 가주겠어?

 

마을 사람

...알겠습니다...

 

파우스트

기다려! 축제 준비를 할 셈인가!?

여기 있는 거대화한 레모라는!?

 

미스라

금방 정리해드리죠.

 

파우스트

...미스라...

 

미스라

기다리셨습니다.

 

마을 사람

.......!? 무... 무슨 소리지...!?

어째서 이런 데서 잠들어서...

 

마을 사람

저길 봐...! 수면이 파도치고 있어...!

연못 위에 빨간 머리의 남자가...!

 

미스라

안녕하세요. 북쪽의 마법사 미스라입니다.

안심하세요. 호숫가에서 자라서 낚시는 특기거든요.

《아르시무》

 

마을 사람

...우와아악...! 물보라가...!

 

브래들리

대충대충 하긴. 엄청 큰 괴어를 공중으로 끌어낼 셈이냐고.

 

마을 사람

연못에서 그런 짓을 하면 안 돼...! <거대한 재앙>의 화신의 분노를 건드린다고!

<거대한 재앙>의 화신은 평소엔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한 번 화가 나면 무서운 물고기의 모습으로 변해버려...!

그리고, 마을 전체의 수원에서 날뛴다고...!

 

파우스트

<거대한 재앙>의 화신 같은 건 없어. 레모라와 교회에 있는 강력한 마법사의 돌은 전부 별개다.

너희들은 마법사의 돌에서 힘을 얻어 사는, 이 괴어를 <거대한 재앙>이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마을 사람

...그, 그런 바보같은... 우리들이 제물을 바치고 있던 상대는, 단순한 괴물이었다는 말인가...!?

 

파우스트

...잠깐. 마을 전체의 수원에서 날뛰기 시작한다고?

혹시 지하에서 수원이 연결되어 있는 건가?

 

마을 사람

그래... 비가 내리면 산비탈 여기저기에서 물이 흘러넘쳐.

 

파우스트

...설마...

 

네로

어이! 파우스트, 어디 가는거야!?

 

미스라

...꽤 몸통이 기네. 공중으로 올릴 수가 없어.

이거, 정말로 레모라인가요?

 

파우스트

미스라...!

 

미스라

파우스트...

 

파우스트

무리하게 공격하는 건 그만둬! 괴어 레모라에게는 기묘한 생태가 있다!

 

미스라

기묘한 생태?

 

파우스트

레모라는 쇠약해졌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 복수의 개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다수의 레모라로 변한다.

그 형태 그대로 강력한 마나석의 힘을 얻은 데다, <거대한 재앙>의 영향을 받아서 거대화한 거라고 하면...

 

미스라

하아...?

잘 모르겠지만, 죽이면 될 뿐이라는 거죠?

 

파우스트

미스라...!

 

미스라

《아르시무》

머리를 날려버렸다. 이걸로 끝...

.......? 무언가에 끌어당겨진 것처럼, 레모라가 수중으로 가라앉았다...?

 

브래들리

미스라 놈, 레모라의 머리를 날려버렸군.

 

네로

.......!? ...땅울림이...

 

마을 사람

아앗, 저길 봐...! 산비탈 여기저기에서 일제히 물이 넘쳐흐르고 있어...!

이제 끝이야...! <거대한 재앙>이 분노했어...!

이 세상은 멸망하는거야...

 

네로

........!

 

브래들리

저건 뭐야!?

물보라가 치솟은 장소에서 몇 마린가 레모라가 머리를 내밀었어!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녹슨 날이 피 같아서 무섭다. 그것보다도 핏발 선 자샤의 눈빛이 더 무서웠다.

 

자샤

너희들은 역시 거짓말쟁이인 마법사야! 마을 연못에 던져버리고 기적의 돌로 만들어주마!

아아, 그걸로 부디 용서해주세요...

 

시노

자샤, 그만둬. 도끼를 내려놔.

 

자샤

시끄러...!

 

시노

잘 들어! 세상을 지키는 건 우리들이야.

너희가 아니라.

 

자샤

우리들의 역할이야...!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목숨 걸고 해 왔어! 마법사를 제물로 삼아 기적의 돌을 재앙에 바쳐서...

 

시노

아냐! 이건 <거대한 재앙>의 화신이 아니야. 너희들은 의미없는 확신으로 마법사를 죽여온 것 뿐이다!

 

자샤

그럴 리가 없어...! ...윽, 그럴 일이 있을까보냐!

그럼, 이 마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거잖아!

 

시노

그래. 버려진 묘지같은 마을.

그저 그 뿐이다.

 

히스클리프

시노...

 

자샤

...으윽, 너...!

 

시노

나도 그랬어! 부모에게 버림받고 세상에 잊혀졌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너 같은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 혼자서 살고, 혼자만의 세상에 있었다.

세상을 분리시키고 고독 속에 있으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걸 잊은 채로, 내가 주인공일 수 있으니까.

 

자샤

.......

 

시노

나 이외의 놈들은 전부 멍청하고 약하고 시시하고 가치가 없어.

나도 가치가 없지만 너에게도 없다라고 하면서.

이 마을은 고독을 더욱 악화시키고 닫힌 세상에 망상을 더해왔다. 하지만, 자샤는 다르잖아.

히스를 보고 흥미를 가졌다. 귀족이나, 바깥 세상에 대해서.

 

자샤

...윽, ...아냐...

 

시노

도끼를 내려. 이 마을에서의 역할이 끝나면 너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주겠다.

내가 블랑솃에 다다랐던 것처럼, 너도 어딘가로 이르게 해주지. 자샤!

 

히스클리프

...자샤. 부디, 우리를 믿어주지 않을래.

 

히스클리프의 목소리에 자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돌이 된 마법사처럼, 히스클리프는 자샤를 향해 손을 내민다.

 

히스클리프

나는 마법사이지만 절대로 너에게 거짓말 하지 않아. 절대로 상처입히지 않을테니까.

 

자샤

.......

 

울기 시작한 얼굴로 자샤가 천천히 히스클리프에게 걸어온다.

히스클리프는 안도하고, 부은 자샤의 뺨을 바라보면서 애처로운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

 

히스클리프

...너무한걸... 대체 누구에게 맞은거야...?

 

그렇게 묻는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것처럼 움찔한 자샤는 어깨를 떨었다.

갑자기 시노가 소리친다.

 

시노

위험해, 히스...!

 

히스클리프

어?

 

히스클리프가 시노를 돌아본다.

그 순간, 자샤가 고쳐쥔 도끼를 세차게 히스클리프에게 내려찍었다.

 

자샤

마법사의 암시에 걸릴까보냐...!

 

히스클리프

.......!


 

마을 사람

좋아... 마법사들을 연못에 던져넣으...

...아...

짐수레에 마법사들이 없어...!?

 

네로

하아... 어깨 아파.

파우스트 선생, 연기 잘 하던데.

 

파우스트

시끄러워.

 

마을 사람

...아, 너희들...!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마을 사람

으으... 갑자기 졸려...

 

네로

이 녀석들... <거대한 재앙>에서 세상을 지킨다고 믿고 있었을 줄이야...

 

파우스트

<거대한 재앙>을 마법사들이 물리치고 있다는 건 내가 태어났던 시대부터 상식이었다.

어째서 이런 오해가 생긴거지? 그들이 일으킨 참극은 그들의 헌신이기도 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다면...

 

네로

당신과 똑같이 은둔형 외톨이였던 거겠지. 바깥 세상을 차단하고 생활하는 사이에 거짓이 진짜처럼 여겨지게 된 거야.

고립되어도 머릿속까지 비게 되는 건 아냐. 공허하게 끝없이 생각하는 건 죽을 맛이니까 말이지.

...거기다 이렇게나 쓸쓸한 마을이야... 살아갈 보람이 될 역할이 필요했던 걸지도 모르겠어...

역할이라는 건 때론 달콤하니까. 아무것도 없는 녀석에게는, 특히나 말이야.

 

파우스트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네로

그야 당신은 말이야. 지금은 꽤나 배배 꼬이고, 토라지고, 주눅 들어서 틀어박혀 있지만...

 

파우스트

누가 배배 꼬이고 토라졌다는 거야.

 

네로

뿌리가 지도자의 기질이야. 태어난 곳이 중앙이었으니 말이지.

자신이 없었던 적 같은 건 없잖아.

 

파우스트

.......

 

네로

난 자신없는 남자였으니까... 요구되고, 역할이 주어지면 침을 흘리며 기뻐했어.

내가 하는 말은 무엇 하나도 듣지 않는 상대라는 걸 깨닫고 참을 수 없어지거나...

내가 없으면 곤란하다는 말에 꼬리를 흔들며 감격해버렸지.

...정말이지, 꼴사나웠어...

 

파우스트

......

옛날 이야기인가?

 

네로

옛날 이야기야. 선생은 즐기지 않는 음식이지.

 

파우스트

그렇지. 접시 끝으로 피하도록 해주지.

먼저 연못에 있는 저 놈부터 손 보도록 하고.

 

네로

...여기 있는 놈에게, 마을 녀석들은 잘도 먹히지 않았네.

 

파우스트

마법사를 데려오는 걸 이해하고 있었겠지. 물고기 주제에 성가신 놈이군.

괴어라고 하는 게 맞으려나.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시노

자샤, 왜 도망쳤어!? ...너, 상처 투성이잖아!?

누군가에게 맞은 건가!?

 

자샤

...윽, 외지인을 교회에 들이면 안 되는데...

당장 나가! 제발 나가 줘!

 

히스클리프

...대체 여기에 뭐가 있는거야?

《레프세바이블프 스노스》

 

히스클리프가 주문을 외우자 그가 쥐고있던 회중시계가 랜턴처럼 희미한 금색의 빛을 밝혔다.

암흑에 묻혀있던 교회의 벽이 어렴풋하게 비춰지고, 점차 명확해져간다.

 

시노

...뭐야, 이건...!?


 

파우스트

.......

 

네로

.......

 

마을 사람

마법사들은 일어나지 않는군... 이제 다왔어...

마을의 성지가... 연못이 보인다...

저 연못에 마법사들을 집어던지면 기적의 돌이 손에 들어온다... 기적의 돌을 그 분께 바치지 않으면...

 

마을 사람

그렇지... 작년에는 제물이 부족했었지... 그 분의 분노가 심했어서 심한 피해가 왔었어...

두 번 다시는 그런 비극을 일으켜선 안 돼... 그것이 <거대한 재앙>으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우리들의 사명인 것이다...

 

네로

(...이 녀석들... 자기들이 <거대한 재앙>으로부터 세상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 건가)

 

마을 사람

자, 도착했다... 마법사들을 던지자...

교회에 계시는 그 분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기적의 돌을 바치는 거다...

 

파우스트

(교회에 계신 그 분...? 교회에는 아무것도 없을텐데...

강한 마력은 느껴졌지만 살아있는 기척은 없었다)

(거기 있는 것은 아마도...)


 

교회의 교단 윗부분에서 발견한 그것을, 나는 처음에 석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석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한 표정을 하고 있다.

마치 산 채로 결정화된 것처럼.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괴로운 눈빛으로, 어딘가로 손을 뻗은 청년은 히스클리프를 연상케하는 아름다운 용모였다.

그의 발밑에는 그를 위해 바쳐진 듯한 대량의 마나석이 쌓여있었다.

마나석이란, 마법의 힘을 지닌 고가의 광석이다.

나의 세계로 말하자면, 작은 마을의 석상에 다이아몬드가 쌓여있는 것 같은, 이상한 광경이었다.

 

히스클리프

...돌이 된 마법사...

 

현자

...돌이 된 마법사? 죽은 마법사라는 건가요...?

 

히스클리프

...네. 마법사는 죽으면 돌이 됩니다.

보통이라면 부서져서 파편이 되지만...

분명 이 마법사는 무슨 일이 있어서 돌이 된 후에도 부서지지 않았던 것이겠죠...

 

시노

...돌이 된 마법사는 처음 봤다. 히스는 본 적이 있나?

 

묻고난 뒤에, 시노는 깨달은 것 같았다. 히스클리프는 동료를 절반 잃게 된 <거대한 재앙>과의 전투에 참가했다는 것을.

슬픈 듯 눈썹을 찡그리면서 히스클리프는 희미하게 끄덕였다.

 

히스클리프

...전에 전투에서 봤어. 우리의 스승도 이렇게 돌이 됐어.

 

시노

.......

그런가...

 

할 말을 찾지 못한 모습으로 시노가 침묵한다.

그 때, 분노에 떠는 자샤의 목소리가 울렸다.

 

자샤

무슨 짓을 한 거야...

 

히스클리프

자샤...

 

자샤

외부인에게 모습을 보이면 <거대한 재앙>의 화신은 노하실텐데!

 

시노

<거대한 재앙>의 화신? 이게?

 

자샤

이거라고 하지 마...! <거대한 재앙>의 무서움을 모르는거야!?

전에도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어!

우리들은 엄격한 규율을 지키면서 <거대한 재앙>에 제물을 바치는 걸로, 이 세상을 지켜왔다고!

 

자샤의 서슬 퍼런 모습에 우리는 곤혹스러웠다. <거대한 재앙>과 싸우는 역할을 짊어지고 있는 것은 우리들일 터다.

선택받은 현자의 마법사... 백합 문장... 기묘한 상처...

다양한 것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그런데도 자샤의 분노한 모습에, 우리들이 틀린 것은 아닐까하고 기세에 눌리게 된다.

 

현자

아... 아니예요, 자샤. <거대한 재앙>과 싸우고 있는 건 저희고, 이 석상은 죽은 마법사...

 

자샤

무슨 말을 하는거야!? 우리들의 고생도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자기들이 <거대한 재앙>과 싸우고 있다고!?

하늘에 있는 <거대한 재앙>은 이 분의 영혼이다! 여기 계신 육체를 손에 넣으려고 <거대한 재앙>은 이 마을을 향해 오는 거라고!

그 증거로 <거대한 재앙>이 다가오면 마을의 연못은 물결치고, <거대한 재앙>의 화신은 빛나기 시작한다고!

너희들은 그런 것도 모르잖아!?

 

자샤는 우리에게 소리치고는, 교회의 한쪽 구석에 놓인 도끼를 손에 들었다.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그림 속의 스노우

드디어 전원 모였군! 정말이지, 그대들과 오면...!

벌써 밤이 되어버렸잖은가!

 

그림 속의 화이트

동쪽의 마법사들이 걱정일세! 미스라여, 공간의 문을 열어서 서둘러 가는게야!

 

미스라

하아...

 

그림 속의 스노우˙화이트

미스라!!

 

미스라

그림 속에서 거만하게 구셔봤자...

딱히 협력 같은 거 필요없지 않나요? 그들도 필요로 하지 않았고요.

 

오웬

필요하다고 하면 안 갈거야. 필요없다고 했는데 가는 게 재밌잖아.

 

브래들리

변함없이 오웬은 청개구리구만... 난 뭐, 미스라의 주장은 알 것 같다고.

동쪽 놈들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 개입하는 걸 싫어하고 무서워 해.

도움을 줘도 얼굴을 찡그릴 뿐이야.

구두를 핥고 아양 떨라는 말은 안 하겠어. 하지만, 난 나를 환영하는 놈에게 힘을 빌려주고 싶다고.

 

그림 속의 스노우

동쪽의 마법사들은 감사를 모르는 게 아닐세. 고독을 좋아하며 교류를 꺼리지만, 본질적으로는 경건하고 예의 바른 자들이야.

 

그림 속의 화이트

그들은 조심성 많고 경계심이 높아. 세세하고 신중한 전투 방법은 그대들에게도 공부가 될 것이야.

 

미스라

그들은 어째서 고독을 좋아하는 거죠? 나도 혼자서 맘대로 하는 걸 좋아하지만 나와는 다른 느낌입니다.

그들은 고독을 좋아하면서도 고독한 자신을 싫어하고, 타인을 싫어하면서도 타인을 신경씁니다.

좀, 까다로워요.

 

그림 속의 스노우

타인에게 상처받고, 그 이상 타인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일세. 아픔을 아는 만큼 주의 깊고, 애정이 깊은 자들이야.

 

오웬

애정이 깊은 걸까?

 

브래들리

원한이 깊은 걸 착각한 거 아니냐?

 

그림 속의 화이트

그대들도 머지않아 알게 될 거야. 함께 행동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말일세.

미스라여, 부탁해도 되겠나?

 

미스라

...알겠습니다.

《아르시무》


 

자샤

.......

 

촌장

자샤, 뭘 하고 있지...

 

자샤

촌장 님은 가까이서 보셨나요? 금발 마법사의 얼굴...

 

촌장

아아.

 

자샤

교회에 계신 그 분과, 닮은 것 같아서...

 

촌장

바보 같은 소릴... 그 분께선 밖으로 나오시지 않아.

우리들이 그 분의 충실한 부하인지 아닌지 조용히 지켜보고 계실 뿐이지.

놈들은 단순한 마법사일 뿐이다... 그 분께 바치기 위한 공물이어야만 해.

그것이 세상이 이 마을에게 허락한 사명인 것이다.

 

자샤

...그렇지만...

 

촌장

...아직 망설임이 있는 건가... 마법사들에게 홀린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네 부모처럼 조종당하게 된 것인가...

 

자샤

아... 아니예요. 촌장 님...

전 조종 같은 건...

 

촌장

괜찮다... 마법사의 암시는 고통으로 없앨 수 있다.

지금, 제정신으로 돌려놔주마.

 

자샤

......! 그만하세요, 촌장 님...!


 

히스클리프

...선생님 일행, 꽤 늦네...

 

시노

그렇네... 아...

 

현자

무슨 일 있나요?

 

시노

자샤다. ...다친 것 같아 보여...

비틀거리면서 교회로 가고 있다.

 

히스클리프

정말이다...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새까맣게 어두워서 나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다. 어렴풋이 검은 덩어리 같은 것이 움직이다가 픽 쓰러진 것처럼 비쳤다.

 

히스클리프

...넘어졌어. 움직이지 않네.

못 움직이는 걸까...

 

시노와 히스클리프는 걱정하듯 어둠 속을 집중한 채 바라보았다. 둘이서 동시에 묻듯이 나를 돌아본다.

 

시노

저 녀석을 도울 뿐이다.

 

히스클리프

심한 상처가 아니라면 금방 이곳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가도 될까요?

 

여기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던 파우스트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다친 소년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현자

...알겠습니다. 충분히 조심하면서 가보죠.

 

히스클리프

네.

 

시노

그래.


 

우리는 빗자루를 타고 새까만 산비탈을 달려나갔다.

가까워지면서 웅크린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자샤

...으, ...흐윽...

 

시노

자샤!

 

자샤

.......! ...윽, 마법사...

 

무서워하듯 소리를 지르고, 자샤는 달려나갔다. 비틀거리면서 교회를 향한다.

 

시노

기다려, 자샤! 왜 도망치는 거야...!?

 

자샤

...목소릴 들으면 안 돼... 마법사에게 홀릴거야... 으윽...

 

히스클리프

자샤! 도망치지 말아줘!

다친거지!?

 

자샤

......윽.

 

어둠 속을 빠져나가는 자샤의 숨결은 격한데도, 우는 것처럼 가느다랬다.

교회로 뛰어든 자샤가 무거워 보이는 낡은 문을 닫으려고 한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우리는 교회 내부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우리는 마을과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해가 저물기를 기다렸다.

네로가 전해주었던 정보는 불쾌하고 무서운 이야기였다.

 

네로

마을 연못으로 향하는 비탈길에 그게 여러 개나 꽂혀 있었어.

 

현자

그거라니?

 

네로

마법사의 빗자루야. 마치 묘지라는 것처럼 흔들렸어.

부러진 빗자루도, 피투성이인 빗자루도, 녹슨 빗자루도 말이야.

 

어두운 밤에 습한 바람이 불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빗자루 수만큼의 마법사가 방문했고, 어떠한 이유로 버렸다는 것이 된다.

 

현자

(살해당해서...? 그래도 인간이 마법사를 어떻게?)

 

답답함을 느끼며 하늘을 올려다봐도 두터운 구름에 덮여서 달빛조차 보이지 않는다.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듯한 어둠이 무서웠다.

<거대한 재앙>의 빛이 그립다는 생각이 든다.

 

현자

(달을 그리워하다니, 무르 같아.

다른가... 무르는 줄곧 달을 좋아했어. 무서워하거나 싫어하지는 않아.)

(아까 그 아이... 자샤도 그랬어.

히스클리프에게 동경을 품어도 마법사라는 걸 듣고 금방 깬 얼굴이었어.)

(갖고 싶어하거나, 무서워하거나, 우리는 참 편리하네...

전에 파우스트가 말한 것처럼...)

 

파우스트

냄새와 소리에 익숙해져서 감각이 돌아왔다. 교회에서 강한 마력이 느껴져.

마법사의 것이 아닌 느낌이 들지만...

 

히스클리프

신비한 생물인가요?

 

파우스트

아니... 살아있는 기척은 아니지만...

일단 상황을 보고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라.

 

시노

나도 갈게.

 

네로

내가 갈게. 시노와 히스는 여기서 현자 씨를 지켜줘.

마을 사람이 다가오면 모습을 숨겨.

 

시노

기다려. 마물 퇴치라면 내 특기 분야다.

 

파우스트

너희는 대기해라. 어떤 게 숨어있을지 몰라.

 

시노

그렇다면 더더욱 사람이 많은 편이 좋겠지. 나도 따라 가겠다.

 

파우스트

내 말을 안 듣는거냐.

 

시노

내 말을 듣지 않는 건 당신이야. 내가 있는 편이 좋아.

도움이 돼.

 

파우스트

알겠다. 지금 당장 마법관으로 돌아가.

 

냉엄한 파우스트의 목소리에 시노는 침묵했다. 어둠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시노의 상심과 안타까움이 전해져온다.

파우스트는 조용히 시노를 타일렀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평소의 우울함뿐만이 아니라, 위엄과 진지함이 감돌고 있었다.

 

파우스트

너는 영웅이 될 수 있는 남자다. 하지만 공에 목매서 용기를 헛되게 하면 목숨을 잃는다.

그런 자들을 몇 사람이나 봐왔다.

네 능력과 미래를 헛되게 만들고싶지 않아. 네 힘이 필요할 때는, 내가 명령 하겠다.

다시 한 번 묻지. 내 말을 들을 수 있겠나?

 

시노

...알았어.

 

파우스트

좋아.

 

파우스트는 숨을 내뱉고, 시노의 머리에 스윽 아무렇게나 손을 두었다.

 

파우스트

히스, 시노와 현자를 부탁한다.

 

히스클리프

아... 알겠습니다. 조심하세요.

 

떠나려는 순간에 네로가 쓴웃음을 지었다.

 

네로

엿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구만. 혁명군의 지도자였다던가 하는, 옛날의...

 

파우스트

사람 잘못 본 거다. 가지.

 

어둠에 녹아들듯 두 사람은 사라져갔다.

 

현자

괜찮을까요, 두 사람 다...

 

히스클리프

파우스트 선생님과 네로라면...

...시노. 너도 주눅 들지 마.

 

시노

주눅든 거 아냐.

 

시노는 등을 돌리고 어둠을 눈여겨보았다.

 

시노

처음 들어봤어.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네로

당신도 과보호구만.

 

파우스트

너에게 들을 정도는 아니다.

...저 곳이 교회로군. 조금 전에는 말하지 않았지만 교회에 있는 건, 아마...

 

네로

...! 마을 녀석들이다...

 

마을 사람

...마법사들은? 벌써 마을에서 벗어난 건가?

 

마을 사람

아직 어딘가에 있을지도 몰라. 그 놈들을 붙잡아서 마을의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거대한 재앙>에게서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파우스트

<거대한 재앙>에게서, 세상을 지킨다고...?

너희들, 대체 무슨 짓을... 으웁웁.

 

네로

쉿. 나한테 맡겨.

잘 맞춰달라고.

 

파우스트

잘 맞춰달라니...

 

네로

---어이! 저 마을 사람이야?

 

마을 사람

...!

 

네로

들고왔던 식료품이 떨어져버려서... 저녁 식사를 거절해서 미안한데, 물 만이라도 나눠줄 수 없을까?

 

마을 사람

무... 물론입니다. 마침 물통이 있습니다.

이쪽으로...

 

파우스트

...! 이런 걸 마실 리가 없잖아.

이 물에는...

 

네로

이것 참 고마워!

 

파우스트

네로!

 

네로

...후아, 맛있어! 목이 바싹 말랐었거든, 잘 마셨어!

당신도 마셔봐, 파우스트.

 

파우스트

......알겠다.

 

마을 사람

...

 

네로

...윽...! 뭐야...!? 모, 몸이... 갑자기 저려서...

으윽, 움직일 수가...

........

 

파우스트

네로...!

 

마을 사람

.......

 

파우스트

...어이, 웃기지마. 잘 맞춰달라고?

절대로 안 할 거다. 난 그런 일 해본 적이 없다고.

일어나. 어이, 네로!

 

네로

.......

 

마을 사람

.......

 

파우스트

.......

으... 으으, 몸이...

.......

 

마을 사람

.......

다행이다... 독이 이제야 돈 모양이야.

꽤 효과가 늦어졌지만...

남은 두 명을 놓친 건 아쉽지만, 그들을 짐수레에 태워서 성지로 옮기도록 하자...

<거대한 재앙>에서 세상을 지키는, 우리들의 신을 위해서...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간신히 마을에 다다르자 소년에게서 소식을 들었는지 마을 사람들이 입구에 모여 있었다.

감정을 품지 않은 검은 구멍 같은 눈으로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마을 사람

아아, 정말이네... 왔어...

신기하네에... 손님이 오다니...

 

마을 사람들은 동시에 미소를 띠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마을 사람

무슨 일이시죠? 길을 잃으신 건가요?

 

파우스트

동쪽의 마법사 파우스트다. 현자의 마법사로서 왔다.

동쪽 땅의 태고의 신전을 찾고있다.

 

마을 사람

마법사...

 

동쪽 나라의 사람들은 마법사를 기피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싫어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마을 사람

그런가요... 아무것도 없는 마을이지만 환대를 해드려도 될까요?

식사부터 하시죠. 저쪽에...

 

네로

아니, 괜찮아. 맘대로 마을을 조사하게 해줘.

 

마을 사람

.......

그럼 안내인을 붙여드리겠습니다. 자샤, 부탁한다.

 

자샤라고 불린 것은 아까 전에 봤던 소년이었다. 마을 사람의 말에 끄덕이고 우리 앞으로 나온다.

 

자샤

이쪽으로 오세요.

 

그 말만 하고는 걷기 시작하는 그의 등 뒤를 우리는 쫓았다.

느닷없이 네로가 나에게 귓속말을 한다. 

 

네로

도중에 모습을 감출거야. 알아서 잘 넘겨줘.

 

현자

네로...?

 

네로

이 마을 녀석들은 입이 무거워 보이니까 말이야. 정공법 이외로 조사해볼게.

 

현자

...나쁜 짓은 안 하는 거죠?

 

네로

바보구나, 현자 씨.

 

네로는 안심시키려는 듯 씨익 웃었다. 시원스런 표정과는 정반대의 말을 하면서.

 

네로

나쁜 짓은 할거야. 마법사니까 말이지.

 

자샤

저기가 마을의 저장고예요. 저쪽이 마을의 가축 막사...

...여기가 끝이예요. 이 앞으로는 아무것도 없어요.

 

파우스트

좁은 마을이군... 뭘로 생계를 꾸리지?

 

자샤

사냥을 해서 가끔 가죽이나 뼈를 팔러 가요. 고가인 돌을 채취한 적도...

어라...? 또 한 명 있었지 않나요?

 

시노

볼일을 보러 갔다. 저 교회는? 마을 교회가 아닌건가?

 

자샤

네.

 

시노

안내해줘.

 

자샤

죄송해요... 중요한 신이 계신 곳이라 마을 사람 이외에는 못 들어가요.

 

파우스트

.......

어떤 신을 모시지?

 

자샤는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순수한 눈동자를 깜빡였다.

 

자샤

어떤 신이라니, 신은 신이예요. <거대한 재앙>에게서 우리들을 지켜주셔요.

 

스노우와 화이트에게 들었던 적이 있지만, 이 세계의 신앙은 제각각이다.

신비한 힘을 가져오는 것을 정령이라고 하거나 신이라고 부른다. 부르는 방법은 다르지만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현자

(어쩌면 동쪽 태고의 신전과 무언가 관련되어 있을지도 몰라...)

 

문득 깨닫고 보니, 자샤가 물끄러미 히스클리프를 바라보고 있다.

 

시노

히스가 신경 쓰이나?

 

자샤

앗...

 

자샤는 얼굴을 붉히고 눈을 돌렸다. 소년다운 행동은 그를 친근하게 느끼게 했다.

 

자샤

죄송해요... 도시의 귀족 같은 사람, 처음 봐서요.

 

시노

상관없어. 히스는 예쁘고 멋지고 현명하니까 말이지.

내 주군이다. 대단하지.

 

자샤

아... 네...

 

시노

흐흥. 얘기 하게 해줄게.

히스, 자샤에게 뭐라도 말 해줘. 자, 만져봐도 된다고.

 

히스클리프

장난감 빌려주듯이 말하지 마!

 

자샤는 긴장과 동경을 띤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히스클리프가 압도된 듯이 망설인다. 화려하고 눈에 띄는 용모를 했지만 그는 낯을 가리는 것이다.

히스클리프는 긴장을 떨쳐버리듯이 숨을 내쉬고 나서, 웃음을 머금으며 손을 내밀었다.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야. 분명 귀족이지만 대단한 건 아니야.

마을 일을 도와주는 네가 더 훌륭해.

 

자샤는 히스클리프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쭈뼛쭈뼛 손가락 끝을 움켜쥐었다. 악수를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샤

당신도 마법사...?

 

히스클리프

맞아.

 

아주 잠시, 자샤는 슬픈 듯이 눈을 가늘게 했다. 하지만 곧바로 체념한 듯이 눈꺼풀을 감는다.

 

자샤

그래...

 

그것을 마지막으로 자샤는 히스클리프에게 동경의 눈빛을 보내는 일은 없었다. 담담하게 안내를 끝내고 원래의 장소로 돌아간다.

도중에 네로도 합류했다. 네로에게 무언가 귓속말을 들은 파우스트가 자샤와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한다.

 

파우스트

시간을 뺏어서 미안했다. 우리의 착각이었던 것 같아.

이대로 돌아가도록 하겠다.

 

마을 사람

벌써 해가 저뭅니다. 저녁이라도...

 

파우스트

아니, 필요없어. 그럼 실례하지.

파우스트

여기에 동쪽의 태고의 신전이...

 

네로

울창한 산기슭에 있는 마을이구만... 지도를 보면 틀림없는 것 같은데...

 

시노

이런 곳에 인간이 살고 있는 건가?

 

파우스트

수원이 많아. 발 밑의 흙도 축축하고 저기에도 작은 폭포가 있다.

물만 있다면 인간은 살 수 있을거다.

 

히스클리프

그래도... 깨끗한 물이 아닌 것 같아요.

...이상한 냄새가 나... 동물의 시체가 썩은 듯한...

 

현자

...!? 지금 건...

 

시노

비명처럼 들렸다. 사람인가, 동물의...

 

파우스트

아냐.

 

현자

파우스트...

 

파우스트

...주의해라. 여기엔 마법사를 죽이는 데 익숙한 인간이 살고 있다.

 

현자

마법사를 죽이는 데 익숙한...?

 

시노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우리가 인간 따위에게...

 

네로

쉿... 무슨 소리가...

 

히스클리프

.......

감각을 집중할 수가 없어... 기척을 읽기 힘들어...

 

현자

.......! 히스, 안색이 안 좋아요.

 

히스클리프

왠지 이상해요... 평소대로라면 사람인지 마법사의 기척인지 알 수 있었을텐데...

 

시노

단순히 동물이겠지. 보고 와주지.

 

파우스트

시노. 멋대로 움직이지 마.

 

시노

너무 겁이 많아. 그러니까 북쪽 놈들이 얕보는 거다.

그 놈들이 오기 전에 끝내주...

......!

 

시노의 눈앞에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파우스트가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고 순식간에 시노의 곁으로 다가간다. 시노의 팔을 당기며 감싸듯이 그의 앞에 섰다.

두 사람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시노와 비슷한 키의 소년이었다.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 진흙 투성이에 비린내가 난다. 새까맣게 더러워진 얼굴에 푸른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소년

...아...

 

파우스트

...어린애인가...

 

시노

봐, 말했잖아. 별 일 아니라고.

너, 이 근처 마을의 아이인가.

 

소년

...그런데... 당신들은...?

 

시노

우리는 현자의 마법사다. 나는 동쪽의 마법사 시노.

저게 현자. 히스클리프에, 파우스트, 네로다.

 

소년

...현자의, 마법사...?

 

시노

그런 것도 모르는건가. 시골사람이구나.

뭐, 됐어. 마을까지 안내해줘.

 

파우스트

안내는 필요없어. 장소를 알려주면 된다.

 

시노

파우스트.

 

파우스트

나중에 설명하지. ---자네, 알려주게.

 

소년은 겁 먹은 듯이 어깨를 움츠리며 산의 표면 위쪽을 가리켰다.

 

소년

저쪽... 한동안 가면 연못이 있고...

더 올라가면 마을의 교회가 보여.

 

파우스트

알겠다. 고맙다.

 

소년은 끄덕이고 허둥지둥 몸을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무언가에 시선을 사로잡힌 듯이 멈춰선다.

히스클리프였다. 히스클리프도 시선을 눈치채고 창백한 얼굴에 미소를 띠운다.

소년은 물을 뒤집어 쓴 듯이 놀라며 울창한 산중으로 사라져버렸다.

 

네로

하하... 천사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이었네.

...히스. 너 괜찮아?

 

히스클리프

괜찮아... 묘한 냄새랑 비명 같은 소리 때문에 기운이 없어서...

 

시노

빨리 마을로 가서 쉬자. 그러니까 저 녀석을 따라가면 좋았을텐데.

 

파우스트

마법사는 마음으로 마법을 사용한다. 마음이 혼란스럽게 되면 평소처럼 힘이 나오지 않아.

 

파우스트는 걱정되는 듯이 히스클리프의 얼굴을 보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파우스트

사람도 마법사도 동물도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면 불쾌한 건 똑같아.

시체 냄새와 절명의 소리는 특히나.

 

시노

절명의 소리라니, 아까의?

 

파우스트

저건 피리 소리다. 죽음의 피리라고 불리며, 일부러 절명의 외침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

마법사의 정신을 소모시키는 도구다. 인간들과 싸웠을 때 사용된 적이 있어.

히스, 눈을 감아라.

 

파우스트의 말에 히스클리프는 새파랗게 질린 눈꺼풀을 닫았다. 그의 이마를 만지며 파우스트가 주문을 외운다.

 

파우스트

《사틸크나트 물크리드》

 

히스클리프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기분 탓인지 안색도 좋아진 느낌이 든다.

 

히스클리프

냄새와 소리가 약해졌어... 감사합니다, 파우스트 선생님.

 

파우스트

감각을 약화시킨 것 뿐이다. 위험에 둔해지지 않도록 조심해라.

현자, 너도다.

 

파우스트의 손바닥이 눈앞에 다가오고, 나는 눈을 감았다.

그의 손 주위에서 은근하게 풍기는 향유 향기에 정신을 뺏긴 사이, 갑자기 불쾌한 소리와 냄새의 감각이 옅어져간다.

 

현자

아... 편해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파우스트. 다른 분들은 괜찮나요?

 

네로

지금은 그럭저럭. 나도 신경이 예민한 체질이니까 힘들기는 하지만...

 

파우스트

나도다... 동쪽의 마법사는 감각이 섬세하니까 말이지.

시노는 괜찮나?

 

시노

괜찮아.

 

파우스트 일행은 감탄한 듯이 시노를 바라보았다. 실제로 시노에게 약해진 기색은 없다.

산으로 발을 내딛으면서, 시노는 코를 킁킁거리며 날카로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시노

시체 냄새나 절규는 내가 태어난 곳이다. 블랑솃에 오기 전까지 내가 떠돌던 장소.

 

히스클리프

시노...

 

시노

나에게 있어선 단순히 옛 친구일 뿐이다. 가자.

 


 

산길을 올라가던 도중에도 생물이 부패한 것 같은 냄새는 강해지고 무서운 절규도 늘어갔다.

파우스트가 마법으로 줄여주지 않았더라면 나도 상태가 좋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현자

(냄새와 소리는 이렇게나 마음에 영향을 주는구나... 거기다 이 어슴푸레한 경치... 버려지고 잊혀진 무덤 같아...)

(어두컴컴하고 외로운데다 음산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고목조차 무언가를 원망하는 것처럼 보여...)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시노

중앙의 왕도에서 소동이 한창일 때 히스의 기묘한 상처를 알아냈다.

 

현자

정말인가요? 어떤...

 

시노

흉포한 검은 짐승이 된다.

 

현자

짐승...?

 

시노

그래. 우리를 습격해왔어.

히스 본인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해. 이 일은 나와 카인, 오웬만이 알고 있다.

 

현자

히스에게는 말하지 않았나요?

 

시노

........

카인에게도 말했지만, 히스는 지금도 자신이 마법사라는 걸 신경쓰고 있어. 짐승이 된다는 걸 안다면 더욱 속에 담아두고 끙끙 앓겠지.

상태를 보고 내가 말하겠다. 그 녀석이 동요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맡겨주겠어?

 

현자

...알겠어요. 부탁드릴게요.


 

현자

(민감한 문제니까 참견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거, 아직도 얘기 안 했구나...)

 

히스클리프

뭐야, 시노...

뭔가 알고 있어?

 

시노

아무것도 아냐. 오웬은 일부러 저러는 거다.

상대하지 마.

 

오웬

흐음. 그런 말 해도 되는거야?

 

시노

시끄러. 쓸데없는 말을 한다면 네 비밀도 말할거다.

 

오웬

.......

 

미스라

비밀? 당신에게 비밀이 있나요?

 

브래들리

약점인가? 나중에 알려달라고, 동쪽의 꼬맹이.

용돈 줄테니까.

 

오웬이 살기 띤 눈매로 날카롭게 노려본다.

오웬의 비밀이라는 것은 오웬의 기묘한 상처를 말하는 것이다.

갑자기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인격이 된다.

 

오웬

죽고싶니, 시노.

 

시노

다물고 있어. 똑같은 조건이니까.

 

히스클리프

네 비밀이라니...? 시노.

도대체 무슨 말을...

 

시노

괜찮으니까 가만히 있어.

 

날카로운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며, 나는 심장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현자

(...정말로 이번에는 괜찮을까...)

 

그 때 천천히, 미스라가 파우스트의 머리를 덥석 쥐었다.

 

파우스트

...!?

 

히스클리프

선생님!

 

시노

어이, 미스라!

 

네로

그만둬, 시노!

 

순식간에 동쪽의 마법사들이 털을 곤두세운 고양이처럼 경계한다.

미스라는 파우스트를 내려다보며 아무것도 아닌 듯이 고했다.

 

미스라

그 모자, 좋다고 생각해서.

 

동쪽의 마법사들

.......

 

맥 빠진 듯이 동쪽의 마법사들이 움직임을 멈춘다. 직후, 선생님이 모욕 당한 것에 분노를 드러냈다.

브래들리가 배를 붙잡고 웃기 시작한다.

 

브래들리

아하하하! 쫄게 하지 말라고, 미스라.

동쪽 녀석들은 음침한데다 겁쟁이니까 말이야.

 

시노

겁쟁이라고? 내가 겁쟁이인지 아닌지 보여줄까?

 

스노우

이거이거, 시노!

 

화이트

브래들리도 그만하거라!

 

브래들리

아하하! 재밌어.

파우스트, 부하가 귀여우면 응석받이 짓은 못하게 해두라고.

 

모자를 깊이 고쳐 쓴 파우스트는 브래들리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파우스트

스노우, 화이트. 우리만으로 동쪽 마을로 간다.

 

스노우

파우스트.

 

파우스트

너희 쌍둥이만이라면 동행을 인정해도 좋다. 어떤 마물보다도 그들과 함께 있는 편이 더욱 위험해.

 

오웬

싫어하니까 따라가고 싶어지네에. 히스클리프에게는 내가 필요할테고 말이야.

 

히스클리프

...무슨 의미인가요?

 

미스라

귀찮네에... 아무래도 좋으니까 빨리 끝내죠.

동쪽의 마법사들은 보고만 있으면 될 테고요.

 

스노우

미스라. 이건 동쪽 나라의 성스러운 축제일세.

 

화이트

원시 정령들의 성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건 동쪽의 마법사들일세. 우리가 그들에게 따라서 조력하는 게야.

 

브래들리

우리들, 북쪽의 마법사들이 따른다고? 그것도 격 낮은 동쪽 놈들에게?

아하하! 웃기지 말라고!

 

브래들리는 높게 웃으며, 홱하고 크게 양팔을 벌렸다.

박력과 자신감이 넘쳐난, 커다란 목소리를 울려댄다.

 

브래들리

알겠냐, 잘 들어라! 동쪽의 음침한 마법사 놈들아!

지금부터는 내가 네놈들의 보...

 

그 순간, 네로가 무언가를 집어든다. 작은 병 같은 것을 휘둘렀다.

후추였다.

 

브래들리

...에, 엣취!

 

브래들리는 홀연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현자

브래들리--! 재채기를 하면 사라져버리는 기묘한 상처 때문에...

 

스노우

네로! 어째서 후추 같은 걸 갑자기 뿌린 것이냐!?

 

네로는 핏대를 세우면서 분노를 가라앉히듯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네로

미안. 한계였어.

...정말이지, 저 녀석의 저런 점, 조금도 바뀌지 않았네...

 

미스라

...응? 돌아가도 되나요?

 

스노우

아니라네, 미스라!

 

화이트

안 된다네, 미스라!

 

미스라

그럼, 뒤는 맡기는 걸로.

 

스노우·화이트

미스라...!

 

미스라

《아르시무》

 

공간의 문을 열고 미스라도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돌아보면, 어느샌가 오웬도 없어져 있다.

 

스노우

정말이지, 저놈들...! 금방 데려오겠네.

그대들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게나.

 

파우스트

알까보냐.

 

화이트

파우스트! 동쪽의 자들, 사람을 싫어하는 이대로면 안 된다네.

타인과 협력하는 것을 배워야...

 

시노

북쪽 놈들과는 사양이다. 가자.

 

현자

저... 정말로 갈 건가요?

 

네로

조사든 뭐든 우리끼리 하는 편이 더 빨라. 만만치 않은 마물이라도 나온다면 녀석들에게 맡길게.

그 편이 저 녀석들에게도 좋겠지. 강하다든가 약하다든가, 그런 일로밖에 얘기가 통하질 않으니.

 

히스클리프

현자 님은 마법관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현자

...그렇다면 더더욱 갈게요.

 

히스클리프

현자 님...

 

현자

스노우, 화이트. 북쪽의 마법사들을 모아서 데리고 와주세요.

우리는 먼저 사전 조사를 하고 있을게요.

 

스노우

알겠네. 모쪼록 무리는 하지 말도록.

파우스트, 부탁하겠네.

 

파우스트

...애들과 현자가 위험해지게 하진 않을거야.

 

화이트

이건 클로에가 준비한 성스러운 축제용 의상일세. 미리 걸치고 가는 게 좋아.

 

스노우

조심하거라.

 

의상을 받아든 동쪽의 마법사들은 마법으로 순식간에 갈아입었다.


 

어두운 표정을 띠면서 그들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나는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무르

서쪽에 이어 중앙의 태고의 신전도 무사히 되살아난 것 같아서 다행이네!

 

카인

그러게. 겨우겨우 말이지.

 

미치루

카인 씨도 부상이 회복 되어서 다행이예요.

 

히스클리프

정말 다행이야... 카인이 실려 왔을 때는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어.

카인은 용감하지만 너무 무리는 하지 마.

 

카인

상냥하구나, 히스.

걱정 끼쳐서 미안해.

 

오웬

나도 병문안 가줄까.

이미 나았으니까, 한 번 더 다치게 만들고 병문안 가도 돼?

 

카인

사양할게.

 

무르

슬슬 다음 땅에서 성스러운 축제를 할 무렵이지 않아?

다음은 동쪽일까? 북쪽일까? 남쪽이려나?

 

미틸

혼란한 세상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성스러운 축제를 열고, 태고의 신전에 원시의 정령들을 소환하는 것 말이죠?

 

카인

맞아. 세상을 위한 중요한 임무야.

북쪽의 마법사들은 한 번도 참가하지 않았으니까, 슬슬 순서가 되지 않았나?

 

오웬

뭐어? 귀찮아...

 

미틸

북쪽의 마법사들과 함께인 임무라니, 왠지 무섭네요...

 

카인

무서운 일은 아니지만, 너희들 땡땡이 칠 것 같아. 서로 협력하는 것도 힘들 것 같네.

 

오웬

협력 같은 거 안 하니까 말이지.

 

히스클리프

북쪽의 마법사들과 조가 되면 힘들 것 같네...

 

무르

남 일처럼 말하지만 그런 힘든 일에 당첨되는 건 대부분 너희 아니야?

 

히스클리프

어?

 

스노우

히스클리프, 오웬. 잠깐 이쪽으로 와주게나.

 

화이트

다음 성스러운 축제의 예정이 정해졌다네!

동쪽 나라의 마법사들이, 동쪽 나라의 성스러운 축제를 열도록 하겠네!

 

스노우

북쪽의 마법사들은 그들의 서포트를 하는 것일세!

 

히스클리프

어...

 

오웬

뭐어?


 

동쪽의 마법사들이 큰 방에 모여있었다. 하지만 북쪽 마법사들의 모습은 없다.

그들이 나타난 것은 상당히 시간이 지난 뒤였다.

 

파우스트

늦어.

 

스노우

미안, 미안.

 

화이트

미스라를 찾고있던 사이에 브래들리가 없어져버려서, 그 사이에 오웬도 없어져서 말이지.

 

스노우

전원 모이는 것만으로도 고생이라네.

 

동쪽 마법사들의 스승인 파우스트는 질린 기색으로 북쪽의 마법사들을 응시했다.

북쪽의 마법사들은 힘은 강하지만, 난폭하고 제멋대로인 면이 있다.

한편, 동쪽의 마법사들은 사람을 싫어하고 폐쇄적이지만, 여차하면 진지하고 조직행동도 뛰어나다.

상성은 별로 좋지 않아 보인다.

즉시 서로 대화가 시작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파우스트가 나를 보며 말했다.

 

파우스트

이번 임무는 동쪽 마법사들만 가게 해줘.

 

시노

찬성.

 

네로

찬성.

 

히스클리프

나도... 가능하다면...

 

스노우

어이 어이 어이 어이.

 

화이트

그렇게 매정하게 굴지 않아도 되잖는가.

 

시노

나는 기다리는 게 싫다. 이후에도 무엇을 하든 너희들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는 건 사양이다.

 

시노도 북쪽의 마법사들을 노려본다. 북쪽의 마법사들은 마주 노려보는 일 없이, 미스라에 이르러서는 하품도 숨기지 않았다.

 

미스라

후아암... 졸려...

응? 뭐라고 말하셨습니까?

 

시노

죽여버린다, 이 자식...

 

히스클리프

시노! 상대는 북쪽의 마법사니까...

 

브래들리

그래. 얌전히 있는 게 동쪽 마법사들의 신변을 위한 거라고.

 

브래들리가 어깨를 으쓱인다. 그리고 무턱대고 친한 듯이 네로의 어깨에 팔꿈치를 올렸다.

 

브래들리

거기다 우리의 힘이 필요하다는 건, 그만큼 위험한 상대란 거잖아?

 

네로

팔걸이 하지 말라고...

 

브래들리

오? 뭐냐?

이 몸에게 거역할 셈인가?

 

네로

떨어져, 성가셔.

 

네로는 민폐인 듯이 얼굴을 찌푸리고, 브래들리를 밀어냈다. 브래들리는 신경쓰지 않고 껄껄 웃고 있다.

북쪽 마법사들의 불손한 태도에, 동쪽의 마법사들은 초조한 모습이었다.

 

현자

(이번에는 앞날이 불안한데...)

 

스노우

브래들리가 말한 대로 이번에 향할 장소에는 불길한 소문이 있어서 말일세.

우리들 북쪽 마법사들의 힘이 필요할 걸세.

 

시노

우리만으로는 해낼 수 없다, 이 말인가?

 

화이트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네. 만약을 위해서일세.

서쪽의 성스러운 축제도, 중앙의 성스러운 축제도 다른 마법사들과 협력하지 않았던가.

그대들도 서쪽의 마법사들에게 힘을 빌려주었을 게야. 사소한 것은 신경쓰지 말고 우리의 힘을 빌리면 돼.

 

네로

...그래서, 불길한 소문이란 건?

 

스노우

아무래도, 마법사가 들어가면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마을이 있다고 한다네.

 

시노

...마을? 마을이라면 인간이 상대인가?

인간 따위에게 질 리가 없잖아.

 

화이트

이상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 볼 필요가 있는 것이지.

어디, 지도를 봐보게나.

 

파우스트

...동쪽과 북쪽 사이의 산맥 옆이군. 나는 가 본 적이 없다.

히스클리프는?

 

히스클리프

저도 잘 모릅니다... 블랑솃에서도 먼 장소이고...

 

오웬

그러고보니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

.......

 

오웬이 말을 걸어서, 히스클리프는 움찔하고 긴장했다.

그 단정한 용모에, 심술궂은 차가운 미소를 띄우면서 오웬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오웬

또 나랑 놀지 않을래?

 

히스클리프

...무슨 의미인가요?

 

시노

아무것도 아냐, 히스. 오웬의 말에 휘둘리지 마.

 

시노는 히스클리프의 팔을 잡아당기며 오웬을 노려보았다.

오웬은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다.

 

현자

(설마, 그 때의 일...)

 

그들의 대화에 나는 중앙의 왕도에서 일어났던 소동 후, 시노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기사와 신의의 콘체르토~중앙 나라&동쪽 나라~

 

현자

...카인이 말한 대로 로랑은 멋진 기사였네요.

 

카인

하하, 그렇지?

 

아서의 손에 이끌려 원래의 장소로 돌아온 검은, 깨닫고 보니 원래의 녹슨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카인은 그 앞에 서서 검에 말을 건다.

 

카인

아주 먼 옛날, 이 땅에 살았던 기사 로랑. 한 때였지만 동경의 대상인 당신과 검을 겨룰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

당신은 앞으로도 내가 동경하는 기사야. 부디 편하게 잠들길.

 

카인의 말에 호응하듯 나무들이 흔들린다.

한 순간, 유달리 강한 바람이 빠져나가고, 카인은 덜컥 얼굴을 들었다.

 

카인

...!

방금 그건...

 

아서

왜그래, 카인?

 

카인

...목소리가, 들린 느낌이 들었어.

 

현자

목소리...?

 

카인

분명하게 들렸던 건 아니지만, 언젠가 나에게 힘을 빌려주겠다고...

어쩌면 그 녀석... 로랑의 목소리였을지도 모르겠네.

 

현자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분명 카인에게는 확실하게 들렸겠지.

동경하는 기사, 로랑의 목소리가.

카인은 존경의 마음을 전하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한순간 검이 예리하게 반짝였다.

그것은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대가 연결된 증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도적들을 마을로 연행하여 신병을 마을 관리에게 넘긴 후...

 

현자

여러분, 이번에도 수고하셨어요. 슬슬 마법관으로 돌아가도록 할까요.

 

카인

그래, 마을 녀석들에게도 웃음이 돌아와서 다행이야.

...맞다, 리케.

 

리케

네, 무슨 일... 으왓!?

카인! 갑자기 머리를 쓰다듬지 마세요!

 

카인

아키라에게서 들었다고. 이번에 내 힘이 되어주려고 엄청 열심히 했다며.

 

리케

혀, 현자 님! 카인에게 말하셨나요...?

 

현자

아, 죄송해요... 혹시 비밀이었나요...?

 

리케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아서

고마워, 리케. 도적들을 붙잡을 수 있었던 건 네 덕분이야.

 

리케

에헤헤... 현자 님과 둘이서 열심히 했어요!

 

루스타

어이, 당신들!

 

카인

루스타! 당신, 뛰어도 괜찮은거야?

상처가 심해지는 건...

 

루스타

고통은 괜찮아지고 있다고.

그리고 당신들의 동료가 걸어준 마법이 효과가 있었나봐.

저기, 정말로 고마워.

당신들이 포학의 기사를... 도적들을 퇴치해준 덕에 드디어 안심하고 지낼 수 있게 됐어.

 

카인

그건 다행이야. 물류도 조금씩 회복될 거야.

얼른 마을이 원래대로 돌아오면 좋겠네.

그래도, 루스타. 상처가 완치되기 전까진 너무 무모한 짓은 하지 말라고.

그리고...

 

카인은 말을 끊고, 루스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카인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로랑의 묘는 소중하게 모셔주면 안 될까?

도적들에게 오명을 뒤집어쓰였고, 이번 사건은 그 녀석도 피해자 같은 게 되어버렸으니 말야.

 

루스타

그래, 알겠어. 로랑은 앞으로도 전설의 기사로서 모실게.

그래도... 그건 로랑이 누명을 뒤집어썼기 때문이 아니야.

우리들은, 앞으로도 계속 전할거야.

전설의 기사 로랑의 이야기에도 지지 않을 정도로, 현자의 마법사들도 멋지다고 말이야.

정말 고마워, 현자의 마법사 님들!

 

루스타 씨의 말에 이어, 배웅하러 와준 다른 마을 사람들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들의 감사에 카인은 눈을 반짝이며...

 

카인

별말씀을.

 

그리고 자신의 검에 손을 갖다대고, 기사다운 늠름한 미소를 띄웠다.

그것은 무척이나 믿음직한 동료의, 멋지고 가장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현자

저기, 카인.

 

카인

응, 왜 그래?

 

현자

마법관에 돌아가면 로랑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카인이 동경하는 전설의 기사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알고싶어요.

 

리케

확실히. 저번에는 이야기 도중에 끊겼으니까요.

 

카인

아하하, 물론 좋지!

다만 밤새도록 얘기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시노

상관없어. 그리고 나는 그게 더 듣고싶군.

카인이 어릴 때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면서 기사놀이를 했던 이야기.

 

아서

기사놀이...? 그건 나도 자세히 듣고싶은걸.

 

카인

아니, 그건... 아서 님께 들려드리는 건, 역시 부끄러운데...

 

아서

부끄러워할 것 없어.

참고로 나는 어릴 적, 자주 오즈 님 놀이를 했었지.

그립네요. 그렇죠, 오즈 님?

 

오즈

........

 

히스클리프

오즈 님 놀이... 어떤 놀이일까...

 

카인

알겠어, 알겠어! 돌아가면 모두들 실컷 얘기하자.

그 대신, 너희들의 어릴 적 부끄러운 일들도 말해줘. 아키라도 말이야.

 

카인은 쑥스러운 얼굴이다.

이번에는 기사인 그가 아닌...

우리들의 소중한 친구인 카인 나이트레이로서,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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