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이 걸린 다리의 랩소디~중앙 나라&북쪽 나라~

 

헤이갈

현자 님의 말씀대로군요. 무서운 소문을 몰고다니는 북쪽의 마법사들도, 마치 천진난만한 멋진 청년들 같았습니다.

 

현자

(천진난만한 멋진 청년이라니, 너무 좋게 말해주신 거 아닌가...?)

 

헤이갈

저도, 성에 사는 자들도, 아서 전하처럼 차별 없는 마음을 배워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이 멋진 그랑벨 성에서 건강히 성장해가는 아서 전하께 공부를 가르쳐드리며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차가운 북쪽 나라에서 씩씩하게 자라셨기 때문에야말로, 지금의 아서 전하가 계신 것이겠지요.

 

헤이갈 씨는 나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눈가에 깊이 주름진 미소인데도 어쩐지 소년 같았다.

 

헤이갈

현자 님. 저는 마법사들이 좋습니다.

그들은 말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니까요.

 

궁정학자이며 국문학자인 헤이갈 씨의 말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헤이갈

아서 전하의 말씀은 깨끗하고 아름답습니다. 왕궁의 책상 앞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로 가득 빛나고 있습니다.

오즈의 침묵이나, 말꼬리로 새어나오는 한 마디의 말조차도 깊고 올곧은 철학을 연상케 하여 아름답습니다.

겨우 백년도 살지 못하는 저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나 교훈을, 북쪽의 대지와 오즈가 전하께 가르친 것이겠지요.

 

현자

헤이갈 씨...

 

헤이갈

아서 전하의 실종사건에서 마법사에 대한 편견의 마음이 싹트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하께서 그랑벨 성으로 돌아오시고 인간과 마법사에 차별 없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말을 자신의 손발 다루듯이 중요하게 여기는 마법사들에 대한 친애와 존경의 마음이 생겼습니다.

아서 전하와 오즈의 만남은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기까지 말하고나서 헤이갈 씨는 뜻밖에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헤이갈

...그렇다고 해서 저의 죄가 줄어들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현자

...헤이갈 씨의 죄?

 

되묻자, 헤이갈 씨는 퍼뜩 표정을 바꾸었다. 상냥히 웃으며 희미하게 고개를 젓는다.

 

헤이갈

...답지 않게 부주의했군요. 면목 없습니다.

그럼, 현자 님. 나중에 다시 뵙겠습니다...

 


 

성에서 준비해준 차와 과자는 고급스럽고 섬세한 맛이라 몇 개라도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리케

잘 먹었습니다! 전부 무척 맛있었어요.

파티에서의 요리도 기대되네요.

 

카인

아하하, 벌써 저녁 식사를 생각하는거야?

 

아서

맞다, 리케. 노트는 잘 챙겨왔어?

 

현자

노트?

 

리케

네. 제가 공부할 때 쓰고있는 노트를 헤이갈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그런데 갑작스러운 부탁인데도 봐주실까요?

 

아서

물론 괜찮을거야. 그는 네가 언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마음을 결코 헛되게할 사람이 아니야.

 

카인

나조차도 그 분과 얘기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경어가 나오니까 말이지. 가르치는 것도 분명 잘하실 거야.

 

현자

확실히, 무척 정중한 언행을 사용하셨죠.

 

아서

현자 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저도 기뻐요.

그러고보니 아까 헤이갈과 무슨 얘기를 하신 건가요?

 

현자

그게... 아서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었어요.

헤이갈 씨는 지금도 아서를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파티에서 많이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서

현자 님...

네, 그와는 쌓인 얘기가 많아요. 최근 성에서 있었던 일이나 제가 아주 좋아하는 친구에 대해서...

그리고 『별의 노래』의 이야기도.

 

리케

별의 노래?

 

아서

내가 어릴 때 무척이나 좋아했던 말장난이야. 분명, 밤하늘의 별을 세는 노래였어.

헤이갈에게서 배웠지만 지금은 희미하게밖에 기억나지 않아서... 정말 어릴 때였으니까.

그래서 작별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알려주지 않을지 부탁해볼 생각이야.

 

그렇게 말하고 아서는 작게 미소 짓는다. 지금은 아직 없는 별을 찾듯이, 창문 밖의 맑은 푸른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차를 마신 후 아서 일행이 먼저 식당을 나가자, 나는 오즈와 둘만 남게 되었다.

헤이갈 씨의 말을 떠올린다. 그는 오즈가 아서를 납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과묵하고 쌀쌀맞은 얼굴인 오즈는 확실히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가 있다. 마왕이라 불린 과거도 납득이 된다.

그렇지만 아서에 관한 일에서는, 오즈는 악한 자가 아니라 생명의 은인일 터였다.

내 시선을 눈치채고 오즈가 얼굴을 든다. 시선만으로 『뭐지』라고 그는 물었다.

눈 딱 감고, 나는 입을 연다.

 

현자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까요. 어릴 적 아서가 이 성에서 사라진, 그 사건에 관해서.

 

오즈가 한 쪽 눈썹을 움직인다. 희미하게 흥미를 보이고, 그는 끄덕였다.

 

현자

성 사람들 중에는 오즈가 아서를 납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저는 당신이 아서의 생명의 은인인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걸 듣고 슬펐어요.

아서도 분명 슬프다고 생각할 거예요. 오해를 풀 생각은 없나요?

 

내 이야기가 끝날 무렵, 처음에는 흥미를 보인 오즈였지만 지금은 완전히 관심을 잃은 얼굴이었다.

그는 자신을 향한 인간들의 평가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냉혹하고 잔인한 마왕의 소문이 부풀어지게 된 것은 그의 무관심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현자

...오즈.

제대로 들어주시지 않겠어요. 범인과 생명의 은인은 차이가 크니까요.

 

오즈는 귀찮은 듯이 나를 한 번 보았다. 이러한 태도는 임무를 싫어하는 북쪽의 마법사와 똑같았다.

 

 

오즈

민중들이 나에 관해 어떠한 얘길 하든, 나에겐 아무런 영향이 없다.

 

현자

오즈는 그럴지도 모르지만요... 아서는 슬퍼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아서는 오즈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소중한 사람이 오해받는 건, 분명 괴로울거예요.

 

오즈

...너는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거지.

 

현자

...다시 한 번 질문할게요. 오해를 풀 생각은 없는 건가요?

아서를 납치한 것이 아니라, 아서를 도운 거라고.

 

오즈

구한 적 따위 없다. 키우고 돌로 만들어서 먹을 생각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완강한 대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민감한 주제에 너무 간섭한 것일지도 모른다.

 

현자

...알겠어요. 이상한 이야기를 해서 죄송해요.

 

오즈

.......

아니다...

 

현자

그래도 오즈가 성 사람들에게 악담을 듣고 아서가 슬퍼하는 모습은 별로 보고싶지 않아요...

당신이 악담을 듣지 않도록 조금만, 정말 조금만, 신경 써주는 건 불가능한가요?

 

오즈

...예를 들면?

 

현자

마왕같지 않은 일... 사람들을 도와본다던가...

 

오즈

.......

 

오즈가 약간 눈썹을 찌푸린다. 한 소리 들을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움츠렸다.

 

현자

...죄송해요, 함부로 말해서.

 

오즈

아니... 생각해두지.

 

의외의 대답에 고개를 든다. 정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오즈는 어딘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현자

감사합니다, 오즈.

 

짧게 끄덕이고, 오즈는 눈을 내리깔았다.

유성이 걸린 다리의 랩소디~중앙 나라&북쪽 나라~

 

헤이갈

처음에는 상인의 소문이었습니다. 아서 님을 잡아간 것은 북쪽 끝의 성에 사는 마왕 오즈라고.

 

헤이갈 씨는 복잡한 듯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주변의 공기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그때, 바람을 타고 드높은 주문이 들려왔다.

 

아서

《파르녹턴 닉스지오》 !

 

다리 방향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무심코 시선을 향한다. 헤이갈 씨도 똑같이 고개를 들고 중얼거렸다.

 

헤이갈

아서 님...

 

다리 기슭에 아주 작은 등뿐이었지만, 훈련을 하는 중앙의 마법사들이 보인다.

아서의 곁에 서서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마법을 가르치는 오즈의 행동은, 가족과도 같이 학생을 지켜보는 선생님처럼 보였다.

다시 한 번 아서가 주문을 외운다.

부드러운 빛이 퍼진 뒤, 그는 오즈를 돌아보고 기쁜 듯이 웃는다.

웃음소리가 다시 바람을 타고 뺨을 간질였다. 

 

헤이갈

.......

 

헤이갈 씨는 천천히 고개를 젓고 다시 시선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망설이듯이 입을 연다.

 

헤이갈

...북쪽 나라로 가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마왕의 성으로 향하는 길까지 이르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국왕 폐하께서 병으로 쓰러지시고, 한눈에 아서 전하를 보고싶다고 바라는 폐하의 마음에 결사대가 모여...

천년에 한 번의 기적을 일으켜서 마왕 오즈의 성으로부터 아서 님을 데리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현자 님... 저, 저는...

오즈를 스승이라 받드는 아서 님께, 마주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아서 전하께서 고난의 나날을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전부 제가...

 

현자

헤이갈 씨...?

 

헤이갈 씨가 작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필사적으로 입술이 떨린다. 그렇지만 그는 심호흡을 하고 안타까운 듯한 눈으로 작게 고개를 저었다.

 

헤이갈

...죄송합니다, 현자 님. 저도 늙은지라, 옛날 기억을 떠올리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부디, 잊어주십시오...

 

나는 그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조금 전의 헤이갈 씨처럼 성을 올려다본다. 수십년 전, 왕자님을 잃은 이 성은 천지를 뒤흔든 듯한 소동이었을 것이다.

역사의 이면을 바라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발밑의 화단에는 아서의 눈동자와 비슷한 색의 꽃이 흔들리고 있었다.

 


 

리케

오즈, 봐주세요! 아까보다도 수호 마법이 잘 걸렸어요!

이번엔 오즈에게도 깨지지 않을거라 생각해요! 시험삼아 조금만 마법으로 힘을 줘보면...

 

미스라

《아르시무》

 

리케

와앗!? 깨, 깨졌다... 미스라에게...

 

카인

미스라. 무슨 일이야.

봉사활동을 하고있던 거 아니었어?

 

미스라

질렸습니다.

그보다 아까부터 오즈가 약한 마법사의 수호 마법을 콕콕 파괴하면서 놀고 있으니까 나도 시험해 봤습니다만...

이거, 재밌나요? 대단히 성격이 나빠졌네요. 오즈.

 

오즈

.......

《복스노크》

 

미스라

위험...!? 갑자기 평소같은 짓 하지 마세요!

 

오즈

닥쳐라.

 

아서

.......

 

카인

뭐야, 아서. 웃고있다고.

 

아서

아하하, 그래? 설마 이 성에서 이런 식으로 떠들썩한 시간을 보내게 될 줄은 몰랐거든.

 

카인

그러게. 수년 전엔 생각할 수도 없는 광경이지.

이 성의 분위기도 꽤나 바뀌었네. 오즈나 북쪽의 마법사들까지 성내에 있는 게 허용되다니 말이야.

 

아서

...그렇네. 성에 막 돌아왔을 무렵에는 오즈 님이 나를 조종해서 이 나라를 빼앗으려 한다는, 근거없는 소문도 있었어.

 

카인

당시 왕실에서 성 사람들에게 알려준 건, 아서 왕자가 그랑벨 성으로 돌아왔다라는 것 뿐이었어.

누구도 아서 님이 없어진 진짜 이유를 알지 못했던거야.

그 이상의 일을 물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도 있었고 말이지...

 

아서

듣지 못한 건 나를 배려해줬기 때문일거야.

하지만 지금은 오즈 님께서 성에 계셔도, 마법을 써도, 다들 아무말 하지 않고 지켜봐주고 있어.

 

카인

그래. 이전보다도 훨씬 마법사가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나도 느끼고 있어.

 

아서

물론, 아직 마법사와 마주하기 어려워하는 자들도 있어. 그래도...

 

카인

...? 아서, 뭘 보고...

 

아서

.......

 

카인

(저건 왕비 님의 방인가...)

괜찮다고. 언젠가 왕비 님도 너를 이해해주실 거야.

 

아서

...맞아. 고마워, 카인.

그런데 현자 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카인

어라, 진짜네. 방금까지 근처에 있었는데...

 


 

아서

현자 님, 여기 계셨군요!

 

현자

아서! 찾으러 와준 건가요?

 

아서

네. 훈련이 일단락 되어서 휴식하는 김에 다같이 차라도 마실까 생각해서요.

헤이갈도 함께였구나. 혹시 현자 님의 안내를 해준 건가?

 

헤이갈

네, 우연히 만나 정원 산책을 함께하던 참이었습니다.

성을 떠난다면 이 풍경도 마지막이 되어서...

 

아서

...그렇군.

 

브래들리

오, 거기 있는 건 현자에 중앙의 왕자랑... 누구야 이 할아범.

 

아서

어릴 적 내 가정교사야. 오늘 성에서 행해지는 송별회는, 퇴직하는 그를 배웅하기 위한 거야.

 

헤이갈

처음 뵙겠습니다, 궁정학자인 헤이갈이라 합니다.

 

브래들리

...헤에, 가정교사 말이지.

 

아서

그런데 브래들리, 왜 여기에?

 

브래들리

쌍둥이에게 불려서 미스라와 오웬을 찾으러 온 거다. 그놈들, 땡땡이치는 것만으로도 짜증나 죽겠는데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고.

 

아서

그랬군... 미스라라면 오즈 님과 함께 있어.

 

브래들리

뭐? 오즈?

그놈 뭘 놀고자빠진 거야... 목적을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뭐 됐어, 그럼 다음은 오웬인가. 귀찮구만...

어이, 중앙의 왕자, 마침 잘됐으니 안내해.

 

아서

내가? 앗... 기다려줘!

현자 님, 나중에 식당으로 와주세요. 저도 오웬을 찾으면 가겠습니다!

헤이갈도 괜찮으면...!

 

브래들리가 아서를 데리고 오웬을 찾으러 향한다.

아서의 뒷모습을 헤이갈 씨는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헤이갈

활기차게 달려나가시는 전하의 모습을 이렇게 다시 볼 수 있게 되다니...

그것도 북쪽의 마법사와 함께 계시다니... 참으로 신기하군요.

 

현자

북쪽의 마법사들은 난폭하고 성질 급한 부분도 있지만,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부분도 아주 많아요.

아서는 차별 없는 사람이니까 감각적으로 알고있는 게 아닐까요. 그... 오즈에 대해서도...

 

무심코 북쪽의 마법사들을 지지해버린 나를 향해, 헤이갈 씨는 상냥히 웃었다.

유성이 걸린 다리의 랩소디~중앙 나라&북쪽 나라~

 

현자

(셋을 돌보는 건 스노우와 화이트가 봐줄 것 같으니 중앙의 마법사들이 있는 곳으로 가볼까)

 

그때, 나는 헤이갈 씨를 발견했다.

이후 파티의 주인공인데도 혼자서 감회가 깊은 듯이 성을 올려다본다.

오랫동안 일한 성을 떠나는 것이다. 내가 상상도 못할 만큼의, 다양한 추억이 마음을 떠돌고 있는 거겠지.

 

현자

(그러고보니, 헤이갈 씨는 아서의 모습이 사라진 건 자신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이유를 들어보고 싶네... 지금 말을 거는 건 무례할지도 모르지만,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고)

 

내가 쉽게 발을 들여도 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걸로 오해가 풀린다고 한다면, 말을 걸어보자고 생각했다.

자신을 책망한 채로 아서와 성을 떠난다면, 쓸쓸할테니까.

 

현자

헤이갈 씨, 안녕하세요.

 

헤이갈

현자 님.

 

헤이갈 씨는 나를 돌아보자, 진지하고 온화한 인품 그대로 상냥한 웃음을 띠워주었다.

 

현자

오늘은 바쁘신 와중에 저희의 송별회를 위해 파티에 참석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헤이갈

현자 님께서 배웅해주신 것은 죽을 때까지 아이들이나 자손들에게 계속 이야기되어, 긍지가 될 것입니다.

 

현자

그런, 과찬이세요.

제 배웅은 관계없이 헤이갈 씨는 무척이나 훌륭하시니까요.

오랫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는 총명해 보이는 눈동자를 눈부신 듯이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주름진 눈가에는 천재 학자라고 불린 무르와는 달리, 겸허하고 건실한 지성이 깃들어 있었다.

내 말을 음미하듯이 한 번 끄덕이고 헤이갈 씨는 천천히 정중한 인사를 한다.

 

헤이갈

감사합니다, 현자 님. 현자 님의 따뜻한 말씀에, 오랫동안의 고생도 보답받는 기분입니다.

애당초 고생이라 말씀드렸습니다만, 쑥스러울 정도로 멋진 일에 힘을 쓰게 되었습니다.

유일하게 마음에 걸렸던 아서 님의 무사한 모습도, 4년 전에 뵐 수 있게 되어서...

 

헤이갈 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망설이면서 신중하게 입을 연다.

 

현자

아서를, 줄곧 걱정하고 계셨군요.

 

헤이갈

그럼요. 저 총명하고 사랑스러운 왕자님의 무사를 바라지 않을 수 있을까요...

 

현자

그렇네요... 왕자 님이 갑자기 그대로 사라져버리면, 나라 전체가 큰 소동이었을테고요...

 

뜻밖에도 헤이갈 씨는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망설이듯, 사려 깊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표정을 바라보면서 그의 말을 계속 기다렸다.

 

헤이갈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성에 오랫동안 일한 자라면 다들 알고있는 것입니다.

아서 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그 사실을 알게된 사람은 왕궁에 있는 극히 일부의 자들뿐이었습니다.

왕족 분들, 일부의 높은 귀족들, 그리고 아서 님을 모시던 시종들만이 알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특별히 알게되었다기 보단, 저도 용의자 중 한 명이었겠지요.

 

현자

아서는 유괴되었다고 여겨지고 있었나요?

 

헤이갈

물론이죠.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자니까요.

도적들이 몸값을 요구하는 건 아닐까, 여러 외국에서 꼭두각시로 길러져 침략전쟁의 구실이 되는 건 아닐까.

혹은 무서운 마법사가 아서 전하를 납치하러 온 것은 아닐까... 다들, 의심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아서 전하께서 마법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고있는 극히 일부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개구쟁이에 용감한 아서 전하가 하늘을 나는 새를 순진무구한 시선으로 올라다보고, 아무것도 모른 채 그 모습에 이끌려...

마법으로 날아가버린 것은 아닐까라며... 무사하게 계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시의 일을 떠올린 것인지 헤이갈 씨의 눈가가 빨갛게 번졌다.

총명하고 사랑스러운 왕자님... 유괴나 사건으로 목숨에 위협을 받기보다는, 새와 함께 하늘을 여행하길 바란다.

그렇게 바라는 헤이갈 씨에게서는 아서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현자

(이렇게나 아서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어째서 아서에 대해 조심스러운 걸까...)

(심지어 헤이갈 씨는 아서의 실종을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니...)

...아서 수색의 전말은 어떻게 되었나요?

아서는 13살 때까지 돌아오지 못했을텐데...

 

헤이갈 씨는 희미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헤이갈

결국 국내외에 공표하여 대규모로 수색대를 출발시킬 예정을 수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갑자기 국왕 폐하의 명령으로 아서 님의 수색 건은 소규모로 비밀리에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현자

어째서...

 

묻고나서 나는 아차 싶었다. 어린 아서가 사라진 이유를, 나는 알고있다.

적국에 붙잡힌 것도, 새를 쫓아서 실종된 것도 아니다.

아서는 왕비 님에게 버려진 것이었다.

 

헤이갈

당시 폐하의 심중에 어떠한 변화가 찾아왔는지는, 지금도 저에겐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는 직접 수색 지휘를 하셨는데, 갑작스럽게 태도도 모호해지셔서...

 

현자

태도가 모호해 졌다...

왕비 님은 어떤 상태셨나요?

 

헤이갈 씨는 슬픈듯이 눈썹을 찌푸리고 주저하듯이 입을 열었다.

 

헤이갈

...그 무렵부터 왕비 님께서는 방에 틀어박혀 계셨습니다.

무리도 아니었습니다. 아서 님의 실종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왕비 님께서는 터무니없는 소문에 휩싸여 계셨습니다.

아서 님이 마법사인 건, 왕비 님의 정체도 국왕 폐하를 속인 마녀가 틀림없다는...

중앙 나라를 빼앗기 위해서 마법사인 아이를 갖기 위해 이상한 약을 먹었다던가...

 

마법사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로부터 왕비 님에게 던져진 잔혹한 말들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서를 버린 왕비 님을, 마음 속 어딘가에서 지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관점을 바꿔보면...

처음 아이를 낳은 젊은 여성이 영문도 모른채 다수에게 비난받은 것이다.

눈의 대지에 아이를 버리는 잔혹한 어머니가 되어버린 것은, 그녀를 책망한 잔혹한 말들 때문일 것이다.

소년이면서도 왕자의 품격이 있는, 관대하고 상냥한 아서가 왕비 님을 탓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 때문일까.

 

현자

(왕비 님이 아서를 버린 것을 다들 알고있다고 생각했어...)

(쿡로빈 씨나 드라몬드 씨, 마법부 사람들과 중신들은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잘 생각해보면 국민의 어머니라고도 불리는 왕비 님이 자식을 버렸다니, 알려지면 좋을 게 아니었네...)

 

헤이갈

국왕 폐하께서는 아서 전하의 실종 사건에 관해 공표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수년이 지나, 왕태자 전하가 왕궁의 의식에 참석하지 않는 것에서 다양한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몸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이미 돌아가신 건 아닌지, 왕비 님이 탑에서 던져버린 건 아닌지.

저는 아서 전하의 무사를 기도하기 위해 모든 짓을 했습니다. 그러던 사이 신기한 소문이 들려온 것입니다.

 

현자

...신기한 소문?

유성이 걸린 다리의 랩소디~중앙 나라&북쪽 나라~

 

미스라

오즈는 오늘 왜인지 중앙의 성에 수호 마법을 걸러 갔다는 듯해요.

 

브래들리

그건 중앙 마법사들의 훈련 때문인 게...

 

오웬

---수수께끼가 풀렸어.

 

미스라

---나도 풀었어요.

 

브래들리

너희 둘이 동시에 푼 수수께끼? 듣기 전에 단정지어서 미안하지만, 틀린 거 아니냐...?

 

미스라

하아... 이래서 머리가 덜떨어진 도적 같은 건...

 

오웬

정말이지... 이러니까 감옥에 들어가는 거야.

 

브래들리

언젠가 꼭 죽일거다, 이 놈들...

그래서, 수수께끼가 풀렸다는 건?

 

미스라

오즈는 중앙의 성에 영혼 파편을 숨긴겁니다.

 

오웬

그걸 뺏기지 않으려고 수호 마법을 걸러 간 거야.

어때? 이 아이디어?

 

브래들리

.......

그렇게 알기 쉬운 짓을 하겠냐?

 

미스라

오즈라고요? 알기 어려운 일 따위,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요. 

 

오웬

그렇다니까. 마력 자랑만 하는 무능력하고 단순한 괴물이니까.

거기다 브래들리. 어때?

괴도단의 두목 님은 오즈의 수호 마법을 깨고, 죽기 전에 영혼 파편을 훔칠 수 있어?

 

미스라

당신이 힘들다면 내가 오즈의 수호 마법을 깨버릴 겁니다만.

당신은 오즈의 영혼 파편을 발견하고 훔쳐내는 일에 전념하세요. 그 정도쯤, 할 수 있죠?

 

브래들리

너희의 추리를 신용할 리가 없지만...

좋다고. 이 계획, 가담해주지.

 


 

며칠 후. 중앙의 성에서의 송별회 당일 아침.

 

현자

아서. 파티에서 헤이갈 씨와 만나게 돼서 다행이에요.

 

아서

네. 성의 사람들도 파티 개최를 희망해주었어요.

헤이갈은 누구에게나 신뢰 두터운 인물이었으니까요.

이렇게 날씨도 좋아서, 잊혀지지 않을 하루가 될 것 같아요.

 

카인

하지만 파티 전에는 수호 마법 훈련을 이어서 해야하기도 해. 우선은 그걸 열심히 해야겠지.

 

리케

강력한 수호 마법을 걸어서 오즈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어요!

 

다들 들뜬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자, 넓은 방 안쪽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스노우

다들, 성으로 향한다면 우리들과 동행하는 건 어떤가.

 

화이트

출발 전에 늦지 않아서 다행이구먼.

 

미스라・오웬・브래들리

.......

 

북쪽의 마법사들이 다같이 모였다. 아침 일찍 마이페이스인 그들이 모이는 건 왠지 드문 일처럼 느껴졌다.

 

오즈

...무슨 일이지.

 

오웬

하하, 쌀쌀맞네에. 우리들은 성에서 봉사활동을 하고싶은 것 뿐이라고.

 

오즈

봉사활동이라고?

 

브래들리

내 사면을 위해서다. 이 녀석들은 옆에서 나를 도울거고.

오늘 하루 오웬과 미스라를 실컷 부려먹어줄 생각이라고.

 

스노우

어제 셋이서 승부를 해서, 브래들리 혼자 이겼다고 했다네.

 

화이트

그래서 그랑벨 성에서 사면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아침 일찍부터 얘길 꺼내서 말일세.

 

스노우

달갑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들도 북쪽의 선생으로서 학생의 의지를 존중하고 싶고...

 

화이트

하지만 셋만 보내는 건 솔직히 엄청나게 불안할 수밖에 없어. 고로 우리는 이놈들의 감시자로서 동행하겠네.

 

미스라

뭐어 그렇게 돼서, 잘 부탁드립니다.

 

카인

그건 좋은 마음가짐이네. 하지만 왜 굳이 성에서 하는거야?

마을에서 하는 편이 곤란한 사람들도 많을 것 같은데...

 

미스라

인간의 사정 같은 건 잘 몰라요. 성이 더 넓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잖아요.

 

오즈

무슨 꿍꿍이지.

 

스노우

잠깐잠깐, 그런 시비조는 말아주게.

 

화이트

만약 무언가 수상한 기색을 보인다면 그때는 그대의 마법으로 처벌해도 좋다네.

 

스노우

오즈여, 이러면 되겠는가?

 

오즈

.......

 

화이트

그런데 그대들은 아서의 가정교사 송별회에 참석하는 거였지. 그렇다면...

 

스노우・화이트

《노스콤니아》

 

현자

왓...!

 

그들이 주문을 외우자 순식간에 우리들의 의상이 크게 변했다.

 

스노우

이 정도 특별한 의상을 입는 편이 파티의 추억이 더욱 깊어지지 않겠나?

 

리케

와아...! 특별할 때의 정장 같아서 무척 멋져요!

 

아서

정말 그렇네. 차분한 색 조합이라서 자연스럽게 자세를 똑바로하게 되요.

스노우 님, 화이트 님, 감사합니다. 헤이갈과의 이별에 이 이상 어울리는 의상은 없을 거예요.

 

카인

잘 어울린다고, 아서. 파티 전의 훈련에서 더럽히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네.

 

스노우

호호호, 기뻐해주어서 다행이구먼!

 

화이트

파티를 만끽하게나!

 

미스라

네, 알겠습니다.

 

오즈

네놈들을 파티에 부른 적은 없다. 맡은 일이 끝난 다음, 즉각 돌아가라.

 

오웬

쌀쌀맞네에, 오즈 선생은.

안심해. 쌍둥이 선생이 이렇게나 멋진 옷을 선물해줬는 걸.

제대로 착한 아이로 있을 생각이야.

 

브래들리

그렇다고. 뭣하면 그 파티라는 곳에서 고기를 뒤집는 역할 정도라면 해주도록 할까.

뭐어, 구운 고기도 전부 먹어버리겠지만 말이지.

 

오즈

.......

 

미스라

내 고기를 위해 일부러, 감사합니다. 

 

브래들리

네놈을 위해서가 아니라고! 고기보다 먼저, 네놈을 구워줄까.

 

미스라

헤에, 나랑 해볼 생각인가요.

 

오즈

...출발 전부터 옷을 더럽힐 짓은 하지 마라.

 

아서

그러면 가볼까요. 다함께 그랑벨 성으로!

 


 

성에 도착하자 중앙의 마법사들은 마법 훈련, 북쪽의 마법사들은 봉사활동을 위해 둘로 나뉘게 되었다.

먼저 마법 훈련을 견학하러 향한다. 세 명은 의욕 가득한 얼굴로 오즈의 이야기에 끄덕이고 있다.

 

오즈

그러면 훈련을 시작한다.

 

아서

잘 부탁드립니다!

 

오즈

...너희는 수호 마법의 기본은 되어있다.

하지만 더욱 강한 마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금방 풀려버리고 말 거다.

 

리케

그럼 어떡하면 좋을까요?

 

오즈

정령의 기척을 의식하고 힘을 부여하는 거다.

그렇게 하면 더욱 강고한 수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카인

정령의 기척인가... 해보자.

 

저번 수업과 똑같이 다리 위에서 아서 일행은 배운 것을 의식하며 마법의 성과를 오즈에게 보였다.

 

아서

《파르녹턴 닉스지오》 !

 

아서가 주문을 외우자 다리를 중심으로 빛의 막 같은 것이 주변을 감쌌다.

 

아서

어떻습니까?

 

오즈

....... 나쁘지 않다.

이전보다도 강고한 수호 마법이 걸렸군.

 

아서

감사합니다! 오즈 님.

 

카인

잘했네, 아서! 그러면, 다음은 내 차례인가.

 

현자

(무척 열심히고 재밌어 보여. 진지하게 끊임없이 몰두하는 건 중앙 마법사들의 장점이겠지)

(북쪽의 마법사들이 있는 쪽에서 들려오네. 상태를 보러 가볼까...)

 


 

현자

스노우, 화이트. 여기에 있었군요!

 

스노우

오오, 현자여. 봉사활동하는 걸 보러 와줬구먼.

 

현자

네. 아까 싸우는 듯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괜찮나요?

 

스노우

늘 있는 일일세. 지금은 저렇게 장작패기를 이렇게나 열심히...

...아니, 어떻게 봐도 땡땡이치는 중이구먼.

 

화이트

이보게, 그대들! 사면을 원한다면 더 열심히 일해야하지 않겠나.

 

브래들리

시끄러워. 마법을 써도 이런 귀찮은 짓을 혼자서 할 수 있겠냐고.

그보다 미스라, 오웬. 네놈들 뭐하러 온 거냐!

멍하니 서있지 말라고.

 

미스라

《아르시무》

 

브래들리・오웬

!?

 

미스라가 천천히 주문을 외우자, 브래들리와 오웬의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도끼가 지나가고 그의 손으로 빨려들어갔다.

 

현자

(위, 위험...!)

 

브래들리

이 자식... 위험하잖아!

무슨 생각이냐, 임마!

 

 

미스라

당신이 하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장작 패기를 하면 되는거죠?

 

오웬

그럼 나도 똑같은 걸 해줄게. 거기서 절대로 움직이지 마.

 

스노우

이놈들! 그만 싸우거라!

 

화이트

이런이런, 곤란한 애들일세. 앞날이 막막하구먼...

 

현자

아하하... 으, 응원할게요...!

유성이 걸린 다리의 랩소디~중앙 나라&북쪽 나라~

 

아서

내가 북쪽 나라에서 성으로 돌아오고부터는 소원해지게 된 거야.

오늘 대화한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고...

 

리케

그런 거였나요?

 

아서

응. 옛날엔 더 친했다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내가 마법사라는 걸 알게 되어서, 그를 당황하게 만든 걸지도 모르겠어.

 

현자

마법사라는 걸 알아서...?

 

아서

네. 오즈 님의 성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제가 마법사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던 것 같았거든요.

...저는, 그의 수업이 좋았습니다. 그에게서 배운 아름다운 말들도.

분명, 그에게서 배운 말장난이 있어서...

 

살짝 쓸쓸한 듯이 말하는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담화실 밖에서 탁탁 가벼운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그림 속의 스노우・화이트

아서쨩 찾았다!

 

오즈

.......

 

구두 소리의 주인은 오즈였다. 왜인지 스노우와 화이트의 그림을 옆에 끼고 있다.

 

아서

오즈 님. 스노우 님과 화이트 님도, 무슨 일이신가요?

 

그림 속의 스노우

가끔은 그대와 느긋하게 대화를 하고싶어서 말이야. 요 근래 계속 공무나 의뢰로 바빴잖는가.

 

그림 속의 화이트

함께 오즈의 방에서 차라도 어떤가?

 

그림 속의 스노우・화이트

오즈 쨩도 '꼭 같이가자'고 말하고 있고~~!

 

오즈

...역시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다.

 

그림 속의 스노우

호호호. 그대도 평소 바쁜 아서를 신경쓰고 있었지 않나.

거기다 아까, 아서의 은사가 중앙의 성을 떠난다고 투덜댄 것도 그대일세.

아서가 슬퍼하진 않는지 걱정됐던 것이지?

 

아서

오즈 님, 감사합니다...

 

카인

하하, 잘됐네 아서. 모처럼의 권유야.

다녀오라고.

 

리케

저희들은 신경쓰지 마세요.

 

현자

네, 느긋하게 다녀오세요.

 

아서

감사합니다. 그럼, 감사히 호의를 받겠습니다.

 

아서는 한결 마음을 푼 듯이 웃으며 오즈 일행과 함께 담화실을 나갔다.

아서가 없어지자 방은 조금 조용해졌다. 이 틈을 타서 나는 조금 전의 대화에서 생긴 의문점에 대해 물어보았다.

 

현자

저기, 카인. 방금 전의 대화에서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헤이갈 씨는 마법사를 대하는 걸 힘들어 하시나요?

 

카인

아니...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마법사를 차별 없이 대해주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리케

그런건가요? 그럼, 어째서 아서 님과 헤이갈 선생님은 소원해지게 된 걸까요.

 

카인

그건 나도 신경 쓰였어. 그래서 똑같은 질문을 헤이갈 경에게 한 적이 있어.

어째서 아서 님을 피하는지, 당신은 아서 님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말이지.

 

현자

엄청나게 직설적으로 물어봤네요!

 

카인

물론, 나 개인으로서는 그를 좋아하고, 그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렇지만 아서 님의 신변에 부자연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녀석이 있으면 그 이유를 확인하는 게 내 일이니까 말이야.

아서 님에게는 말하지 말아달라고 입막음 당해서 전하진 못했지만...

 

카인은 말을 끊은 뒤, 조금 망설이면서도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카인

아무래도 헤이갈 경은 어린 아서 님이 실종됐던 건,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듯해.

 

현자

자기 책임...?

(확실히, 아서는 왕비 님의 지시로 북쪽 나라에 버려졌을 터. 아서 본인에게서도 그렇게 들었는데...)

 

주제가 주제인만큼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카인은 이해한 듯이 끄덕였다.

 

카인

헤이갈 경의 주장은 이거야. 그는 아서 님이 실종되기 전에 마귀를 쫓아내는 부적을 건넸다는 듯해.

오즈의 영혼 파편이라 불리는 건데, 그 때문에...

 

오웬

오즈의 영혼 파편이 뭐야?

 

카인

우왓!?

 

리케・현자

!?

 

깨닫고보니, 어느샌가 오웬이 카인의 뒤에 서 있었다.

 

카인

깜짝 놀랬어... 기척을 지우고 가까이 오지 말라고.

 

오웬

그것보다 오즈의 영혼 파편이라니 뭘 말하는 거야.

살짝 알려줘. 나한테만.

 

브래들리

다 들린다고, 오웬. 뭐야 그 불길한 이름은.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하기 짝이 없다고.

 

미스라

나도 듣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요. 독차지할 생각인가요?

죽고 난 다음 뺏기는 게 좋나요?

 

오웬

칫... 기사 님이 늦장부리니까 귀찮은 것들한테 잡혀버렸어.

 

카인

내 탓이 아니잖아...

 

브래들리와 미스라까지 계속 모여들더니, 흥미진진한 얼굴로 카인을 둘러싼다.

 

현자

(뭐라고 할까... 행실 나쁜 불량배들한테 걸린 듯한 구도인걸...)

 

카인

오즈의 영혼 파편이라는 건, 어린 아서에게 가정교사가 건네준 마귀 퇴치의 부적을 말하는거야.

다만, 오즈의 영혼 조각이라 말해도 아마...

 

미스라

그거, 어디에 있는 건가요?

 

브래들리

어이, 나도 알고싶은걸.

 

오웬

있지... 안내해줄 거지, 기사 님.

 

카인

잠...! 너희들 정말 내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있는거야!?

 

브래들리가 카인의 팔을 끌어올리고 그대로 문 쪽을 향한다.

미스라와 오웬도 주변을 둘러싸더니, 도망칠 틈도 없이 카인은 세 사람에게 끌려가버렸다.

 

리케

가버렸네요...

 

현자

괘, 괜찮을까...

 

리케

...현자 님. 아서 님이 버려졌던 사건은 모두가 알고 있던 게 아닌 걸까요?

 

현자

그렇네요... 헤이갈 씨도 착각하고 있었고, 모르는 사람이 많을지도 몰라요.

 

이 화제를 들을 기회도 적은데다 아서가 없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인식이 다른 것 같다.

 

현자

(아서 본인에게는 역시 물어보진 않겠지만, 다음 번에 성에서 누군가에게 물어볼까...)

 


 

브래들리

결국 중앙의 기사에게서는 쓸만한 정보 같은 건 안 나왔구만.

 

미스라

못 써먹겠네요, 브래들리.

 

브래들리

뭐? 죽여버린다.

애초에 오즈의 영혼 파편이 어떤 마물이든 물리칠 수 있는 마귀퇴치의 부적이라고? 믿을 리가 없잖아.

마물을 끌어들인다면 모를까. 어차피 그 녀석이 말한대로 가짜겠지.

오즈의 손톱이라느니, 오즈의 슈가라느니 하는 것과 똑같아.

 

오웬

그럼 오즈가 아서를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신경쓰는 이유는 뭐야?

분명히 오즈는 영혼을 어딘가에 숨기려고 했을 때 아서에게 들켜서 뺏긴거야. 그러니까 오즈는 아서에게 거스를 수 없는거고.

 

미스라

아니면 무심코 어떤 약속이라도 한 걸지도 모르죠. 정말로 무심코, 그만, 흐름상.

그래서 마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 영혼의 일부를 마귀 대신에 아서에게 건넨 건 아닐까요.

 

브래들리

어느 쪽도 느낌이 팍 안 오는데. 확실히, 아서에 대해 다른 녀석들과는 태도가 다른 부분도 있어.

하지만 마왕이라 불린 그놈이 자신의 일부를 타인에게 맡기고 태연하게 있을리가 없어.

자신의 운명을 타인에게 맡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오즈는 마법으로 최강인 거다.

오즈가 약속? 설령 진짜라 해도 어이가 없어.

스스로 약점을 만드는 거잖아.

그렇게까지 오즈가 자신의 팔다리를 잘랐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미스라

《아르시무》

 

브래들리

무슨 짓이야!? 위험했잖냐!?

 

미스라

약속을 한 마법사에 대해 악담하는 건 거기까지입니다.

 

브래들리

왜?

 

오웬

그렇네...

만약 영혼의 파편을 빼앗겼다고 해도, 어딘가에 숨겼다고 해도, 두터운 수호 마법을 걸어뒀을 게 틀림없어.

빼앗은 놈이 어딘가에서 객사하거나, 숨긴 장소가 소멸하거나 해서 영원히 없어지면 곤란한 법이야.

 

미스라

아, 그러고보니...

 

브래들리

뭐냐고.

유성이 걸린 다리의 랩소디~중앙 나라&북쪽 나라~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새들이 지저귀는 날의 일.

중앙의 마법사들과 나는 그랑벨 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즈

《복스노크》

 

오즈가 주문을 외우자 부드러운 빛이 퍼지며 다리 전체를 감쌌다.

 

카인

대단한걸... 이걸로 다리에 강력한 수호 마법이 걸린건가.

 

오즈

다리는 적들이 침입하기 쉽다. 주의해서 지켜야 할 필요가 있어.

이걸로 어떤 공격을 해오더라도 쉽게 뚫릴 일은 없겠지.

 

리케

저기, 오즈! 시험삼아 마법으로 공격해봐도 될까요?

 

카인

나도 어느 정도의 공격까지 버틸 수 있는지, 걸려있는 수호 마법의 강도를 봐두고 싶어.

 

오즈

그렇다면 너희들 셋이서 시험해봐라.

 

아서

알겠습니다. 그럼...

《파르녹턴 닉스지오》 !

 

리케

《산레티아 에디프》 !

 

카인

《그라디아스 프로세라》 !

 

세 사람의 주문이 울린 순간, 눈앞에서 거대한 회오리가 일기 시작해, 쌩쌩 소리를 내며 다리로 향했다.

 

아서・리케・카인

아...!

 

하지만 회오리는 다리에 닿자마자, 무언가 강한 벽에라도 부딪친 것처럼 튕겨지며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현자

정말로 조금의 공격도 통하지 않는, 이게 바로 오즈의 수호마법이군요...

 

카인

맞아. 우리들이 사용한 마법은 저 다리를 날려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는데...

그걸 아주 간단히 튕겨내다니, 역시 오즈의 마력은 대단하구나.

 

아서

거기다 오즈 님께서 마법을 건 장소는 공기도 팽팽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걸로 다리의 수호는 완벽해.

 

리케

오즈, 이번엔 저도 도전하게 해주세요!

 

오즈

해봐라.

 

오즈는 수호 마법을 푼 듯했다. 리케가 침착하게 심호흡한다.

 

리케

《산렌티아 에디프》 !

 

리케가 주문을 외우자 유리를 손톱으로 튕긴 듯한, 높고 맑은소리가 들려왔다.

 

리케

아싸, 해냈어요!

 

오즈

.......

 

상태를 살피던 오즈가 천천히 다리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현자

으왓!

 

리케

아...!

오즈, 왜 제 수호 마법을 깬 거예요!

 

오즈

끊어진 곳은 없으나 아직 수호의 힘이 약하다. 마력을 긴밀하게 잇는 것을 의식해라.

 

리케

제대로 해냈다고 생각했는데...

 

카인

자자, 그렇게 초조해하지 말라니까. 다음번엔 더 강한 수호 마법을 걸 수 있도록 같이 힘내자고.

 

아서

아직 훈련은 막 시작한 참이니까. 하지만 리케의 수호 마법은 확실하게 걸려 있었어.

이대로라면 분명 금방 숙달해서...

 

그 때, 성 쪽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카인

헤이갈...? 헤이갈 경이잖아.

 

헤이갈

...! 카인, 그리고 아서 님도.

오랫동안 격조했습니다.

본래라면 제가 먼저 인사를 드리러 찾아뵀어야 하는데... 대단히 죄송합니다.

 

카인

그런가. 성을 떠나신다고 하셨죠.

 

아서

신경쓰지 마. 정말로 오랜만이야.

다시 얼굴을 보게 돼서 기뻐.

 

리케

어어, 이 분은...?

 

오즈

.......

 

아서

아아. 현자 님과 리케, 그리고 오즈 님도, 그를 보는 건 처음이셨죠.

그는 궁정학자 헤이갈입니다. 어릴 때 이 성에서 가정교사를 했던 제 은사입니다.

무척 우수한 국문학자이자 언어학자이기도 하며, 저도 학문의 기본은 그에게서 배웠습니다.

 

헤이갈

그런... 과분한 말씀을 해주시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흰 머리가 섞인 회색 머리카락에 옅은 갈색 눈동자를 가진 헤이갈 씨가 부드러운 언행으로 우리에게 인사한다.

 

헤이갈

현자 님, 리케 님... 오즈 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헤이갈이라고 합니다.

 

오즈

아아.

 

리케

아서 님의 가정교사를 하셨었군요. 그렇다면 저도, 헤이갈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리케

헤이갈 경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거야? 오즈는?

 

오즈

.......

 

리케

오즈에게는 마법을 배우고 있지만, 제가 그를 인도하는 입장인 건 변하지 않아요. 카인이야말로 헤이갈 경이라는 건 뭔가요?

 

카인

그거야, 아서 님의 은사니까 말이지.

 

헤이갈

전하의 가정교사를 분부받은 것은 벌써 오래전의 일입니다.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 주십시오.

 

아서

갑자기 불러세워서 미안했어. 어딘가로 나가려던 거지.

시간은 괜찮나?

 

헤이갈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딸 부부가 근처에 와 있어서 만나려던 참이었습니다.

아서 님께서 계신다는 걸 알지 못한 채, 이런 장소에서 보고드리게 되어 대단히 죄송합니다.

요전에 몸상태가 조금 좋지 않아져서... 크게 관계는 없지만 나이가 있기도 하여, 이를 기회로 은거해서 중앙의 수도를 떠날까 합니다.

 

아서

그런가... 유감이긴 하지만, 그대가 결정한 일을 나는 존중하고 싶어.

 

헤이갈

감사합니다, 아서 님. ...지금까지 정말 신세 많이 졌습니다.

 

아서

오히려 신세를 진 건 나인걸. 그대가 내 가정교사라서 다행이었어.

 

헤이갈

저에게는 과분한 말씀입니다. 오히려 저는...

 

현자

(오히려...?)

 

무척 작게 이어진 말은 나에게밖에 닿지 않은 것 같다. 그 뒷얘기를 듣기 전에, 아서는 웃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아서

맞다, 헤이갈. 그대가 성을 떠나기 전에 송별회를 열어도 괜찮을까?

관련된 자들을 불러서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게 했으면 해.

 

헤이갈

아서 님...

 

아서의 의견에 헤이갈 씨는 눈웃음을 지으며 기쁜 듯한 표정을 보인다.

하지만 금방 무언가를 떠올린 것인지, 슬픈 듯한 시선으로 눈을 피했다.

 

헤이갈

그런 말씀을 해주셔서 무척이나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서 님도 바쁘실테니 부디 마음만으로...

 

헤이갈 씨는 깊이 절을 하고 떠나간다. 아서는 그 모습을, 어딘지 쓸쓸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오즈

.......

 


 

마법관에 돌아와 저녁을 먹은 후. 담화실에 가자 오즈를 제외한 중앙의 마법사들이 조용히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현자

좋은 밤이에요. 혹시 오늘 훈련의 반성회인가요?

 

카인

맞아. 결국 우리가 건 수호 마법은 전부 오즈에게 깨져버렸으니까 말이지.

 

리케

다음번에야말로 오즈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수호 마법을 걸고 싶어요!

 

현자

리케라면 분명 할 수 있을거예요. 저도 응원할게요!

맞다, 혹시 괜찮다면 다음 훈련도 견학할 수 있을까요?

 

아서

네, 부디! 현자 님이 계신 것만으로도 무척 힘이 되니까요.

 

카인

다음 훈련에도 헤이갈 경을 만나면 좋을텐데. 중앙의 마을을 떠난다고 하니.

 

아서

아아. 그 일 말인데...

헤이갈은 나를 걱정해 주었지만, 역시 파티를 열고 싶어.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민폐이진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

 

카인

그렇진 않아. 너와 얘기하던 헤이갈 경은 기뻐보였어.

분명 기뻐할거야.

 

현자

헤이갈 씨는 아서의 가정교사였죠.

 

아서

네. 헤이갈에게서 학문의 기본이나 왕족으로서의 언행을 배웠습니다.

국사와 전승을 어린 저에게도 알기 쉽게 들려주기도 해서...

헤이갈의 수업은 항상 재밌었고, 어렴풋하지만 그를 무척 따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카인

그러고보니 나도 자주 드라몬드 님에게 헤이갈 경의 정중한 언행을 배우라고 한소리 들었었지.

헤이갈 경은 학자여도 까다롭지 않고, 언제나 친절하게 말을 걸어줬어.

 

리케

멋진 선생님이네요... 저도 배워보고 싶었어요.

 

아서

맞아, 그렇기 때문에 파티를 열어서 성대하게 배웅하고 싶었어.

단지...

 

아서는 복잡한 듯한 얼굴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모정이 타오르는 바닷마을의 랩소디~서쪽 나라&남쪽 나라~

 

루틸

이게 어머니가 자주 마시던 칵테일인가요?

 

샤일록

네. 이곳을 방문하셨을 때 항상 드셨습니다.

 

루틸

아름다운 색이네요... 햇님이 바다에 잠겼을 때 같아요.

 

샤일록

역시 피는 못 속이는군요. 그녀도 똑같은 말을 했어요.

 

 

루틸

정말이에요? 후후, 기뻐요.

...앗, 들떠서 한 번에 다 마셔버렸어요!

 

샤일록

그러고보니, 치렛타의 대주가 피도 물려받았었죠. 오늘은 마음껏 솜씨를 발휘하도록 하죠.

 

무르

현자 님! 여기야 여기!

뭐 마시고 있어?

 

현자

논알코올 칵테일이예요! 과즙의 신맛이 나서 맛있어요.

 

무르

어디어디? ...진짜다, 셔!

 

현자

(어, 엄청 자연스럽게 다 마셔버렸어...)

 

무르

나도 샤일록에게 만들어달라고 해야지!

 

샤일록

맛있게 드셨나요?

 

카운터 안쪽에서 나타난 샤일록이 칵테일을 무르에게 내민다.

 

샤일록

여기요. 현자 님께 만들어드린 걸 칵테일로 어레인지한 거예요.

제가 드리는 사소한 답례예요. 당신의 지혜에는 도움을 받았으니 말이죠.

 

무르

아싸-! 샤일록이 사주는 거!

 

샤일록

무르가 마셔버린 현자 님의 것도 새로 만들어드릴게요.

 

현자

감사합니다.

 

무르

음, 맛있어! 마법사들의 잡담을 바라보면서, 엎드려 마시는건 정말 최고야.

 

현자

그 소파가 무르가 좋아하는 거였군요. 그렇게 있으니 이 가게의 오너 같아요.

 

 

무르

샤일록은 여기 사는 길고양이라고 말했어. 그래서 손톱 갈거야.

냐앙-!

 

현자

아하하. 기분 좋은가봐요.

 

무르

그렇게 보인다면, 그럴지도!

마을이 불타지 않았기에 나는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어.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몰라.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오늘은 특별한 날! 아마 내일도 그 다음 날도 그럴테지만.

자, 한 번 더 건배하자. 여기서 술을 마실 수 있는 것에!

 


 

바에서 즐겁게 술을 마시고 한밤중이 지났을 무렵, 바다를 보러 다같이 해변으로 왔다.

반짝반짝 빛나던 해질녘의 색은 그곳에 없지만, 조용한 파도소리를 내며 밤바다가 펼쳐진다.

 

피가로

어두우니까 발밑 조심해. 그건 그렇고, 미틸이 이렇게 밤늦게까지 깨 있다니 별일이네.

 

미틸

확실히 그럴지도 몰라요. 그래도 오늘 밤은 무척 즐거웠으니까 잠드는 게 왠지 아까워서...

 

루틸

그 기분 알아. 나도 이 멋진 밤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걸.

 

클로에

봐, 루틸, 미틸! 저기, 바다가 무척 아름다워.

 

루틸

정말이다. 해질녘과는 또 다르네.

 

라스티카

샤일록이 말한대로야. 밤의 풍경도 조용해서 실로 아름다워.

 

샤일록

마음에 드셨나요?

이 시간에 바라보는 바다는 조용하고 신중해서... 마치 시 낭독 중에 길을 헤매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해변에는 우리들 외에는 아무도 없다. 이젠 조사를 위해 긴장하면서 주위를 감시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순수하게 즐겨도 되는 시간이다. 젊은 마법사들은 신발을 벗고 물가로 달려나갔다.

 

클로에

차가워!

 

미틸

기분 좋아!

 

루틸

좀 더 깊은 곳까지 가볼까.

 

클로에

다른 사람들은 안 와?

 

레녹스

우리는 산책 좀 하고 올게.

 

피가로

술을 깨는 데 딱 좋은 바람이라서 말이지.

 

미틸

그럼 나중에 꼭 와주세요. 같이 놀아요!

 

피가로

하하, 미틸도 아까까지 눈이 살짝 졸린 것 같았는데 완전히 활기넘치네.

 

라스티카

.......

 

레녹스

라스티카, 눈을 감고 뭐하는 거야?

 

피가로

혹시 너도 과음한 사람? 그렇게 보이진 않지만.

 

라스티카

아뇨, 음악을 듣고 있었어요. 여기서밖에 느낄 수 없는 바다의 노랫소리를.

 

레녹스

노랫소리...?

 

피가로

아아, 파도소리 말인가. 귀를 기울여보면 확실히 음악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네.

 

라스티카

네. 바다가 연주하는, 다른 곳엔 없는 선율이예요.

오늘밤에 어울리는 상냥하고 기분좋은, 그런데도 어딘지 외로운 듯한...

 

피가로・레녹스 

.......

 

라스티카

저 노랫소리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요.

 

모두와 조금 떨어진 물가에 무르의 등이 보인다. 유달리 빛나는 달을 황홀하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르

하아... 사랑스러운 그대. 오늘밤도 다시 만났네.

바다를 내려다보는 모습도 무척이나 아름다워. 수면에 비치는 그대의 모습에 밤이 밝을 때까지 취해있고 싶어.

이대로 바다에 가라앉아도 분명 해저에서 그대가 보이겠지.

 

파도에 말을 걸거나, 조용한 바다를 만끽하거나... 제각각의 시간이 기분 좋게 흘러간다.

편안한 마음으로 있을 수 있는 특별한 하루. 그런 경계심을 푼 분위기가, 밤바다에는 있었다.

 

현자

좋다아, 리조트에서의 휴가라는 느낌...

(예정과는 조금 다른 휴식이었지만 다들 좋은 기분전환이 되면 좋겠네...)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모래사장을 걷고 있으니, 샤일록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만을 이쪽으로 향하고 미소짓는다.

안녕하세요, 라고 말한 기분이 들어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샤일록

마침 잘 됐군요. 마나석 파편을 바다로 돌려보려던 참이었거든요.

그가 좋아하던 칵테일과 함께.

 

샤일록의 손에는 마나석 파편과 바다색의 아름다운 칵테일이 있었다.

 

현자

앗, 죄송해요... 소중한 시간이었네요.

 

샤일록

아뇨. 가능하면 현자 님도 배웅해주셨으면 했어요.

그가 원하던대로 풍경의 일부가 되는, 그 시간을.

 

 

천천히 샤일록은 손바닥을 펼쳤다. 똑하고 작은 파문을 만들며 마나석 파편이 파도 사이에 사라진다.

그리고 오른손의 잔을 상냥히 붓는다. 연푸른 칵테일은 별빛과 달빛에 비춰져 반짝반짝하게 바다를 녹여간다.

이윽고 파편과 칵테일은 섞여서 소리도 없이 가라앉아, 밤바다로 사라졌다.

 

샤일록

...파도소리만은 옛날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네.

현자 님. 조금만 더 여기에 계셔주시겠어요.

이 경치를 바라보는 동안만이라도.

 

현자

...네. 여기 있을게요.

 

샤일록은 작게 끄덕이고 바다를 바라본다. 나도 조용히 다가가서, 아직 아침이 오지 않은 경치를 바라보았다.

다음에 보는 바다는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다른 경치로 바뀌어있을까.

밤의 저편에서, 몇 번이나 파도가 다가온다.

모정이 타오르는 바닷마을의 랩소디~서쪽 나라&남쪽 나라~

 

무르가 충고했던대로 병기는 금방 되살아났다.

끓는 주전자처럼 총구가, 기체가, 급속히 빨갛게 물든다.

병기를 붙잡고있던 얼음은 그 열에 의해 한여름의 아이스크림처럼 순식간에 녹아갔다.

 

루틸

안 돼. 점점 얼음이...!

 

액체로 돌아간 바닷물이 폭포처럼 흘러 모래사장과 샤일록을 적셔간다.

기체에 생긴 금은 차례로 넓어지고 있었지만, 마나석은 병기에 삼켜진 그대로였다.

 

샤일록

...윽.

 

이윽고 얼음은 모두 녹아버렸다. 해방된 병기가 포효와도 같은 커다란 작동음을 낸다.

 

클로에

샤일록!

 

미틸

샤일록 씨, 도망치세요!

 

샤일록은 물러나려고 하지 않았다.

열을 품은 총구를 향한 그대로, 붙잡으려는 듯이 손을 뻗어 다시 한 번 강하게 주문을 외웠다. 

 

샤일록

《인비벨》 !

 

순간, 새하얀 빛이 팽창하여 폭죽처럼 터진다.

어렴풋이 날카로운 비명을 들은 것 같다.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샤일록의 목소리도 함께 들렸다.

그것은 해질녘의 잔물결처럼 매우 부드러운 소리였다.

 

샤일록

...그럼, 있어야할 장소로 돌아갈까요.

 

빛이 사라졌을 때, 우리들이 본 것은 땅 위에 추락해가는 병기의 모습이었다.

몇 개의 부품이 흩어진 채로, 힘이 다한 것처럼 침수한 채 모래사장으로 떨어져간다.

 

현자

샤일록...!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는 샤일록의 곁으로 우리들은 달려갔다.

 

클로에

괜찮아? 다치진 않았어?

 

무르

아팠어? 무서웠어?

어떤 기분이었는지 나한테 알려줘!

 

녹은 얼음을 가까이서 뒤집어썼기 때문이겠지. 샤일록은 흠뻑 젖어서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샤일록

여러분, 협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를 끼쳐드렸군요.

 

라스티카

소중한 친구와는 만났어?

 

샤일록은 미소 지으며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그곳에는 바다의 색과 비슷한, 돌의 파편이 빛나고 있었다.

 

샤일록

...꽤나 작아져버렸지만요.

 

그렇게 말하며, 모래사장에 떨어져있는 병기의 말로를 바라본다.

녹은 얼음은 주변 일대를 적셨다. 왠지, 누군가가 울고난 후처럼 보였다.

분명 샤일록은 돌아갈 방법을 잃어버려 울고있던 친구를 맞이하러 가준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마을에 남아있던 마법사들과 협력해 불을 끄러 다니거나, 건물을 고치면서 마을 수복작업을 진행했다.

원흉인 개발자는 마법과학병단으로 넘겼다. 원인불명 화재의 원인은 병기의 폭주라는 보고를 한 것으로 겨우 오해가 풀렸다는 듯하다.

마을로 발령되었던 마법사에의 진입금지 명령도 철회되어, 쫓겨났던 인간들도 조금씩 마을로 돌아왔다.

 

주민

저기, 연속 화재사건은 마법사의 짓이 아니었다는 듯해.

 

주민

그래? 틀림없이 그놈들일 거라고...

 

서쪽의 마법사들은 서서히 활기를 회복해가는 마을을 감개무량하단 듯이 바라보았다.

 

라스티카

잘됐네, 마을에 미소가 돌아와서.

 

클로에

응. 물론, 습격당한 마법사들은 아직 응어리가 남아있는 것 같지만...

 

샤일록

네. 그렇지만 그들 또한 인간들의 음모를 의심했어요.

 

무르

그런 법이야! 인간도 마법사도 똑같아.

불안할 때야말로 어울리는 적을 원하는 법이지.

 

샤일록

그것이 이 마을이 살아가는 방식이겠죠. 서로가 매일 타협해가는 수밖에 없어요.

대화재가 되기 전에 작은 불을 끄고 다니도록 말이죠.

 


 

소동이 일단락되고 며칠 후. 드디어 샤일록의 가게가 열리게 되었다.

우리들은 물론, 개점을 기대하던 마을의 마법사들도 모여서 가게 안은 성황이었다.

 

피가로

다들, 잔은 준비 됐어?

 

현자

네!

 

클로에・무르

오케이-!

 

샤일록

그럼 사건 해결을 축하하며 건배.

 

남쪽의 마법사들

건배!

 

서쪽의 마법사들

건배!

 

드높은 목소리와 유리잔을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린다.

바 여기저기에서 단골같은 손님들이 재회를 기뻐하거나, 사건에 협력했던 마법사들이 서로 수고했다고 하거나, 모두들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오늘은 특별히 마법사들이 갖고 온 램프의 불빛을 켜서, 어른스러운 바를 평소보다 좀 더 화려하게 비추었다.

 

피가로

하아~ 일을 끝낸 후의 이 한 잔은 각별하단 말이야.

 

레녹스

오늘은 축하하는 자리니까, 평소보다 많이 마셔도 괜찮습니다. 미틸과 루틸의 허락을 받았어요.

 

피가로

진짜? 이야, 일한 보람이 있었어.

병으로 마셔야지.

 

레녹스

마음껏 마셔도 된다는 건 아니니까요.

 

피가로

뭐 어때, 축배이고 오늘 정도는 레노도 행실 나쁘게 마시자구. 만취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레녹스

도발에 응해드리죠.

 

마녀

어라, 귀여운 손님. 어디에서 왔니?

친분의 표시로 한 잔 사줄까?

 

미틸

네? 그게...

 

 

라스티카

안녕하세요, 멋진 아가씨. 그는 술보다는 음악을 더 좋아하니 제가 한 곡 연주해드려도 될까요.

 

마녀

어머, 좋아요.

꼭 들려줘요!

 

클로에

우리들이 좋아하는 샤일록이, 아주 좋아하는 마을이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기쁘다, 기뻐!

미틸도 함께 춤 추면서 축하하자!

 

 

미틸

가, 감사합니다. 저, 이런 장소에 익숙하지 않아서...

 

클로에

괜찮아, 나도 그랬어서 잘 알아. 어른의 은신처 같아서 긴장되지.

...그래도 말이야, 그만큼 즐거운 기분이지 않아?

 

미틸

네...! 어른이 된 것 같아서 신나는 듯한, 두근두근하는 듯한.

 

클로에

그런 기분, 정말 최고지!

 

 

라스티카

클로에, 미틸. 너희들도 이리 오렴.

 

마녀

같이 춤 추자!

 

클로에・미틸

네에-!

 

모정이 타오르는 바닷마을의 랩소디~서쪽 나라&남쪽 나라~

 

마을로 돌아온 우리들을 맞이한 것은 눈을 의심할 광경이었다.

 

현자

...!

 

달처럼 새하얗고 무거워보이는 구체가 무차별하게 밤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개발자가 말한 것처럼 병기의 표면에는 몇 개인가의 총구가 내밀어져, 마을의 사방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그 모습은 흡사 비행하는 화염방사기 같았다.

 

클로에

여기저기서 불이...!

 

루틸

맙소사... 너무한걸.

 

남자

이, 이런 위력은 처음 봤어. 지금까지는 이렇게까지 심각하진 않았어...!

 

무르

만월이니까 말이야! 달에 홀린 상태에서는 더욱 애태우게 되는, 특별한 밤이니까.

 

레녹스

그렇단 말은, 병기의 폭주 원인은 예상대로 <거대한 재앙>인가.

 

샤일록

...개발자가 말한 것처럼, 병기에 넣은 마나석도 영향을 주고 있는 걸까요.

 

미틸

마나석?

 

샤일록

네. 아마도 사용된 건 경치의 일부가 되고싶어서 바다에 가라앉은 마법사의 마나석일 거예요.

병기를 폭주하게 만든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죠.

어쨌든 그는 돌로 전락해버렸지만, 이 마을의 아름다운 경치를 사랑해서 몸도 마음도 바쳤으니까요.

 

샤일록이 중얼거린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그가 지금의 이 마을을 본다면 대체 무슨 말을 할까.

격렬한 작동음을 비명처럼 연주하며, 병기가 마을 상공을 날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며 피가로는 중얼거렸다.

 

피가로

믿고있던 마을이 변한 것도, 사랑하던 풍경을 빼앗긴 것도 슬퍼서 견딜 수 없어. 그렇다면 차라리 내 손으로 없애버리자.

...그렇게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네.

 

루틸

그럴까요... 남쪽의 마법사인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만요...

슬픈 생각을 했기 때문에 무언가를 부순다고 하는 건, 서쪽의 마법사 분들 답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해요.

 

샤일록

루틸...

 

루틸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어도 서쪽의 마법사 분들은 항상, 그것 조차도 즐기셨어요.

그런 서쪽의 마법사 분들이 저는 정말 좋아요.

저라면 사랑하는 풍경이 있어도, 풍경의 일부가 될 정도로 깊게 사랑할지는 모르겠어요.

그런 독특함으로, 시인과도 같은 사랑을 가진 사람이...

사랑했던 풍경을 잃었다는 절망으로, 사랑했던 마을을 부순다는 건 생각할 수 없어요.

 

샤일록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풍경의 일부가 되고싶다고 바랐고 결국 해저에 가라앉은 마법사 튜발.

그 한결같은 마음을 생각하니 왠지 다들 차분해졌다.

사랑했던 풍경에게서 떨어져버려, 바라지도 않던 병기의 일부가 되어, 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르

흥미로운 시점이네. 사후의 현상일 뿐인 마나석을 고인의 혼으로서 애도하다니.

사람도 마법사도 죽으면 그걸로 끝이야. <거대한 재앙>의 영향으로 폭주하는 건 단순히 폭주일 뿐이야!

 

라스티카

그래도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서쪽의 마법사들은 깜짝 놀랐을 때 일부러 크게 당황할 때도 있으니까.

'어이, 큰일났다고. 누가 어떻게 좀 해줘'라면서, 날아다니고 있을지도 몰라.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듣고보니 무섭게 보이던 것도 곤란해하는 친구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샤일록이 미소짓는다.

 

샤일록

그럼 도와주지 않을 수 없겠군요. 그는 멋진 마법사이자, 제 친구였어요.

 

클로에

...응! 어려운 건 잘 모르겠지만 빨리 멈춰주자.

비록 옛날과는 달라져버렸지만 사랑했던 것을 자신의 손으로 부수다니, 그건 너무하잖아.

나라도 괴로울거야. 도와주자, 샤일록.

단순히 돌이라고 해도 샤일록의 친구였던 사람이라면 나도 분명 엄청 좋아했을거야!

 

샤일록

클로에...

 

끄덕이는 클로에의 어깨에, 라스티카가 손을 살짝 얹었다.

 

라스티카

우리들이 구해주자. 그 사람 자신이, 그의 사랑을 후회하게 만들어선 안 돼.

 

샤일록

...그렇네요.

세계정복을 했던 때의 오즈조차 이 마을에는 손을 대지 않았어요.

그의 전쟁의 불길에서도 지켜왔던 마을을, 스스로 불을 질러 쫓아내는 도구로 전락하고, 가장 상처받은 건 분명 그 사람일테죠.

 

현자

무르, 어떻게하면 병기를 멈출 수 있나요?

 

무르

가장 빠른 방법은 오즈처럼 힘으로 산산조각 분해하는 거!

 

남자

그런! 저건 내...

 

무르

너를 산산조각나게 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지 않아?

 

남자

새, 생각합니다!

 

샤일록

확실히, 부숴버리면 멈출 수 있겠습니다만...

고집을 부리자면, 병기 안의 마나석을 꺼내고 싶어요. 가능할까요?

 

무르

헤에, 네가 그렇게까지 그에게 열정적이라니 몰랐어.

 

샤일록

무르.

 

무르

불가능하진 않아! 병기의 움직임을 멈추면 돼.

불에 강한 거라면 물이지. 다행히 여긴 바다가 가까워.

마음껏 바닷물을 사용하자!

 


 

클로에

루틸, 그쪽을 부탁해!

 

루틸

응! 가운데에 두고 바다로 가자!

 

적에게서 도망치는 본능은 마법과학병기에도 대비되어 있다고 한다.

마법사들이 가까이 가면, 잡힐 때마다 도망치듯이 날아간다.

그 움직임을 이용해서 클로에와 루틸 두 사람은 병기의 뒤를 쫓아, 순서대로 해변 방향으로 몰아넣는다.

 

루틸

이대로 날아가면 금방이야...!

 

클로에

좋아, 바다가 보여! 루틸!

 

루틸

알았어!

 

클로에

《스이스피시보 보이팅고크》 !

 

루틸

《올토닉 세토마오제》 !

 

두 사람이 주문을 외우자 조명탄처럼 병기 주변만이 환해진다.

 

무르

신호야! 바닷물을 가득 떠올려!

《에아뉴 랑브루》 !

 

라스티카

《아모레스트 뷔엣세》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미틸

《올토닉 세아르시스필체》 !

 

네 명의 마법사에 의해 바닷물이 거인의 양손으로 뜨는 것처럼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솟아오른다.

곧바로 병기를 향해 던져졌다.

바닷물을 뒤집어쓴 병기는 화염을 잃어, 순간 물에 빠진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피가로

간다, 미틸.

 

미틸

네, 네!

 

피가로

《폿시데오》

 

미틸

《올토닉 세아르시스필체》 !

 

직후, 피가로와 미틸이 주문을 외운다. 병기는 자신을 삼킨 바닷물과 함께 눈 깜짝할 새 얼어붙기 시작했다.

 

미틸

해냈다!

 

클로에

멈췄어!

 

무르

오래는 못 가. 금방 체내에서 열을 발산해서 녹기 시작할거야!

샤일록, 기회는 단 한 번이라구! 즐기고 와!

 

샤일록

그러도록 하죠.

 

얼어붙은 병기 방향으로 샤일록은 빗자루로 뛰어들었다.

총구 같은 것과 마주보는 위치에서, 얼음의 표면에 손을 갖다대었다.

 

샤일록

《인비벨》

 

주문을 외우자 그의 손바닥이 빛났다. 호응하듯 병기 내부도 빛나기 시작한다.

병기 안의 마나석을 끌어내기 위해, 샤일록은 한번 더 주문을 외웠다.

 

샤일록

《인비벨》

 

강하게 빛나며 기체에 크게 금이 생겼다.

하지만 그 직후, 병기가 윙윙거리는 소리를 냈다.

 

레녹스

...! 위험해!

모정이 타오르는 바닷마을의 랩소디~서쪽 나라&남쪽 나라~

 

남겨진 발자국을 더듬어가자, 파도가 흘려보낸 것인지 도중부터 발자국은 끊어져있었다. 분담해서 해변을 찾기로 했다.

그 후로 머지않아, 무르가 큰소리로 우리들을 불렀다.

 

무르

발견했어! 이거봐, 여기!

 

남자

히익...

 

바위 표면에 한 남자가 숨어있었다. 나이는 40대 정도일까. 여윈 뺨과 흠칫흠칫 떠는 눈이 신경질적인 인상을 준다.

 

무르

아저씨, 인간이지? 왜 이런 데 있어?

 

무르가 얼굴을 들여다보자 남자는 크게 뒷걸음질 쳤다.

 

남자

수... 숨어있었어. 마법사에게 발견되면 마을에서 쫓겨날거라 생각해서...!

 

남자는 새파래진 채, 벌벌 떨고있다. 마법사들을 무서워한다고 해도 어딘지 과한 반응으로 보였다.

자연스럽게 마법사들의 증언이 머리에 떠오른다. 『해안가 근처에서 본, 거동이 수상한 인물』

 

남자

부탁해, 제발... 제발, 죽이지 말아줘...

 

샤일록

자, 어떡할까요?

 

두려움을 부추기는 것처럼 샤일록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웠다.

 

샤일록

당신이 말재주 좋은 착한 아이라면, 생각해보지 않을 것도 없습니다만.

 

피가로

말재주가 좋지 않아도 괜찮다구. 머릿속을 꺼내서 알아보는 것도 가능하니까.

 

남자

힉...!

 

남자는 더욱더 공포로 안색을 잃었다. 기겁한 것인지,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이를 딱딱 울린다.

 

남자

아, 알겠어, 말할게. 뭐든 말할게...!

나는, 단순한 개발자야. 마법과학병기의...

 

서쪽의 마법사들

!?

 

피가로・레녹스

개발자?

 

루틸・미틸

마법과학병기라면...

 

이마를 식은땀으로 적시면서 남자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자

군의 연구소에서 일하고있던 나는 군용 병기를 다루면서, 독자적으로 마법과학병기를 개발하고 있었어.

이번에 개발한 건 불을 뿜는 마법과학병기였어. 그걸 가지고, 나는 이 마을로 온거야.

 

클로에

불을 뿜는, 마법과학병기...

 

피가로

독자적으로 개발했단 건, 군의 관여는 없었나보네.

 

레녹스

군의 지시가 아니라면 어째서 이런 위험한 물건을 이 마을로 갖고 온 거지?

 

남자

상품이야. 귀족들이 사는거지.

적을 실추시키는 데도, 몸을 지키는 데도, 쉽게 힘이 필요해져.

 

보통 허가받지 않은 무기의 거래도 뒤에서는 빈번하게 행해지고 있다고 남자는 전했다.

불을 내뿜는 마법과학병기도, 아까 말했듯이 귀족층에게 팔기 위해 가지고 왔다는 듯하다.

 

남자

...하지만 달이 밝은 밤의 일이야. 병기의 위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해달라고 해서, 손님 앞에서 병기에 마나석을 넣었어.

그랬더니 병기가 갑자기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격렬한 불꽃을 내뿜으면서 날아가버렸어...!

 

클로에

...어어, 즉, 마을이 이렇게 된 건 당신의 무기 때문이란 거야?

 

--하늘을 나는 무언가가 마을에 불을 내뿜고 있다.

마을에서 일어났던 원인불명 화재의 증언과 남자의 이야기 속 내용은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남자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남자

아냐! 난 비행기능 같은 건 단 적이 없는 데다, 화력도 그 정도로 강하게 나올리가 없어!

 

현자

...하지만 그 원인 모를 화재는 병기의 소행이라고, 당신은 알고 있었던거죠?

 

남자

...윽.

 

레녹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걸 알고 있었으면서 그들이 의심받고 있을 때도, 인간들이 마을에서 쫓겨날 때도, 줄곧 가만히 있었던 건가?

 

남자

아, 알까보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잖아!

 

루틸

그런... 죄 없는 마법사들이 비난받고, 많은 인간들이 집에서 쫓겨나고, 다들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게 무서운 것인지, 우리들의 비난의 목소리에서 도망치듯 남자는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남자

아냐. 난 나쁘지 않아, 난 나쁘지 않다고...

 

레녹스

...구제불능이군.

 

라스티카

안타까운 사람이야.

 

남자

젠장... 이럴거면 그런 마나석을 쓰는 게 아니었어.

전부 그 마나석 때문이야. 분명 그건 저주받은 돌이었던 거라고!

 

무르

저주받은 돌?

 

남자

우연히 이 해변에서 주운 돌이야.

이 바다와 닮은 신기한 색깔이었어. 병기에 넣으면 좋은 연료가 될거라 생각했는데...

 

샤일록이 작게 숨을 삼킨 소리가 났다.

 

샤일록

설마, 그건...

 

미틸

저기, 그 병기는 아직 마을에 있는거죠?

내버려두면 또다시 어딘가에서 화재가 일어나는 건...

 

클로에

그래 맞아. 이 이상 피해가 커지기 전에 멈춰야해...!

무기는 지금 어디에 있어?

 

남자

몰라.

 

피가로

몰라?

 

남자

힉. 정말이야, 거짓말이 아니라고.

뇌를 뽑지 말아줘...!

내가 아는 건, 반드시 달밤에 원인불명의 화재가 일어난다는 것 정도야. 달이 아름답게 보이는 날에만 그게 날뛰기 시작해.

 

달밤. 그 말에, 전원이 눈을 깜빡였다.

 

현자

...설마 <거대한 재앙>의 영향으로...?

 

샤일록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달에 이끌려 발현한다면 <거대한 재앙>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레녹스

요인이 뭐든, 병기가 폭주하고 있는 건 틀림없어. 빨리 찾아내자.

그 병기의 특징을 알고싶어. 어떤 형태를 하고 있지?

 

남자

크, 크기는 저 바위 정도고 둥그런 형태다. 사방을 불태울 수 있도록 총구가 몇 개나 내밀어져 있어.

 

피가로

저 바위 정도라고 하면 레노가 아슬아슬하게 들 수 있을 정도? 비교적 큰 편이네.

의외로 빨리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루틸

네. 다른 마법사 분들에게도 부탁해서, 다같이 마을을 찾아보면 분명...

 

무르

찾으러 갈 필요는 없는 거 아냐?

그야, 오늘은 사랑스러운 달이 이렇게나 커다랗게 빛나고 있다구!

 

무르가 가리킨 지붕의 위에는 떡하니 둥근 달의 모습이 있었다. 어느샌가 마을은 밤의 어두운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현자

달밤...!

 

클로에

위험해, 빨리 마을로 돌아가자!

 

피가로

그래야겠네. 너도 같이 가도록 할까.

 

남자

으악!

 

개발자 남자를 연행하는 모양으로 마법사들은 곧장 빗자루에 올라 마을 중심부로 향한다.

 

샤일록

...어쩌면.

 

가는 도중, 샤일록은 앞을 응시한 채로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다.

 

샤일록

그 인간이 마법과학병기에 넣었다는 마나석은, 그의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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