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0 / 유리로 된 달 - 프롤로그

 

깨닫고보니 병원 침대에 있었다.

 

커튼이 펄럭펄럭 흔들리고 있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쌀쌀한 바람이 흘러들어온다.

제멋대로인 색깔에 무심코 눈을 가늘게 뜨고 만다.

 

이곳이 어디인가, 지금이 언제인가,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가.

머리가 쫓아가지 못한다.

 

일어나려고 손에 힘을 주자 손보다 먼저 몸이 움찔거렸다.

숨을 멈추고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뻐끔 거린다.

 

이런 것을 '눈에서 불꽃이 튄다'라고 말하는 거겠지.

딱딱한 침대에 손을 올린 순간, 찢기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휩쓸었다.

 

「―――、―――」

깊게 숨을 들이쉬고, 누운 채로 자신의 몸을 관찰한다.

 

양손은 둘둘 붕대가. 왼발도 하얀 깁스가 둘러져있다.

이마 주변이 매우 갑갑했기에, 분명 머리에도 붕대가 감겨있을 것이다.

가슴에는 보기 싫은 것을 감추듯, 커다랗고 두꺼운 반창고 같은 것이 붙어있었다.

 

왼팔에는 튜브가 하나 꽂혀있다.

그것이 정맥주사인 것을, 나는 왠지 모르게 깨달았다.

 

이렇게 잠에서 깨기 전에 비몽사몽하게 주변을 보았던 덕분이겠지.

 

이곳보다 어둡고 약품 냄새가 나던 방도, 가슴의 반창고에서 늘어뜨린 몇 개인가의 튜브도,

병문안 왔던 무서운 양복차림의 어른도, 그 어른에게 혼나면서도 와주었던 동생의 모습도,

아이처럼 떠드는 박사님의 모습도,

전부, 마치 꿈을 꿨던 것처럼 기억한다.

 

「어? 너, 눈을 떴구나......!?」

익숙하지 않은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에게는 대답할 체력도 없었다.

 

여자애는 허둥대면서도 의사 선생님을 부르러 방 밖으로 달려갔다.

탁탁탁탁.

서두르는 건 알겠지만, 병원에선 뛰면 안 돼.

 

「―――――」

몸은 일으킬 수 없어서 고개를 돌려 창문을 올려다본다.

찌릿하고 안구가 쪼개지는 것 같다.

머릿속을 날붙이로 휘젓는 느낌.

 

정말――거짓말처럼 푸른 하늘.

새하얀 햇살보다도, 얼룩 한 점 없는 푸른색이 너무 잔혹해서 눈이 아팠다.

 

그로부터 며칠후.

눈을 뜨고나서 한동안 나는 침대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올려다본 창밖은 변함없이 드높은 하늘. 펄럭펄럭 흔들리는 커튼.

뺨에 닿는 건조한 바람. 얼룩 하나 없는 푸른색은 눈을 어질어질하게 만들었다.

 

이곳이 어디인지, 지금이 언제인지,

어째서 병원에 있는 것인지는, 조금씩이지만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가지.

눈물이 날 것 같은 약속을,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잊어버린 느낌이 들어 창밖을 계속 바라보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토오노 시키 군. 회복 축하해.」

처음 보는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며 악수를 구해왔다.

 

웃는 얼굴은 무척 상냥했고 말투도 온화한, 잘 만든 어른의 인상.

분명 스위치 하나로 미소와 정색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다.

깔끔해 보이는 새하얀 옷도, 이 아저씨에게는 딱 맞았다.

 

「시키 군? 선생님이 하는 말, 알아듣겠니?」

「......아뇨. 전 왜 병원에 있는 건가요」

「기억 못하는구나. 넌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에 휩쓸렸단다. 가슴에 유리파편이 박혀서 말이지, 어떻게해도 살릴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어」

 

하얀 아저씨는 방긋방긋 웃는 모습으로 왠지, 의사 선생님답지 않은 것을 말한다.

"어떻게해도 살릴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다"

그 표현에, 참고있던 구역질이 올라왔다.

 

「......졸려요. 자도 되나요」

「그래, 그러렴. 지금은 무리하지 말고 쉬어야 해」

 

의사 선생님은 웃는 얼굴 그대로였다.

분명하게 말하자면, 정말 못 봐주겠다.

 

「선생님,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뭐니, 시키 군」

 

「왜 몸 전체에 낙서를 칠한 건가요. 이 방도 군데군데 금 투성이라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은 아주 잠깐 동안 웃는 얼굴을 무너뜨렸지만, 금방 방긋방긋한 얼굴로 돌아와 의자에서 일어섰다.

터벅터벅 바닥을 울리며 커튼 너머로 사라지고,

 

「.......역시 뇌에 이상이 있는 것 같아. 뇌외과의 아시야 선생에게 연락해. 그리고 시신경 손상이 의심되는군. 오후는 안과로 가서 검사를 하도록」

의사 선생님은 다른 사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몰래 간호사 선생님에게 말했다.

 

「.......이상해. 다들 몸에 낙서를 칠했어」

 

엉망진창으로 칠해진 선이 병원 전체에 달라붙어 있었다. 잘 모르겠지만, 보고있는 것만으로 엄청 기분이 안 좋다.

 

「...뭘까, 이거」

침대에도 낙서가 있다.

손가락을 갖다대었더니 손끝이 움푹 들어갔다.

 

――아

좀 더 가느다란 물건이면 깊이 들어갈 것 같았다.

선반에 있던 플라스틱 나이프로 낙서를 따라 그었다.

조금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는데, 나이프는 끝까지 낙서 속으로 들어갔다.

 

재미있었기에 그대로 낙서를 따라 침대에 나이프를 미끄러뜨렸다.

우당탕.

무거운 소리를 내며 침대는 깔끔하게 갈라져버렸다.

 

「꺄아아아아!

 

뒤에서 울린 목소리에 돌아보았다.

문 앞에는 굳은 얼굴로 간호사 선생님이 서 있었다.

 

「어떻게 침대를 부순거니, 시키 군

의사 선생님은 침대를 부순 이유가 아닌, 그 방법을 집요하게 물었다.

 

「저 선을 따라 그었더니 잘렸어요. 대체 왜 이 병원은 금 투성이인 거예요?

 

「적당히 하지 않겠니, 시키 군. 그런 선 같은 건 없어. 그래서 어떻게 침대를 부순거니. 혼내지 않을 테니까 알려줄래?

 

――그러니까, 선을 따라 그었을 뿐이라니까요

......알겠어. 이 얘기는 내일 또 하자

 

한숨을 쉬는 의사 선생님.

낙서 얘기를 하고나서부터 그 상냥한 웃음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분명 스위치가 고장난 것이겠지.

이 병원은 부서지기 쉬운 것들 뿐이니까.

 

결국, 누구 하나 내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저 낙서를 나이프로 자르면, 그것이 무엇이든 깨끗하게 잘린다.

힘 따위 필요없다. 종이를 가위로 자를 때처럼 간단히 자를 수 있었다.

 

침대도. 의자도. 책상도. 벽도. 바닥도.

......시험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 분명, 사람도.

 

낙서는 모두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나에게만 보이는 선.

 

저것은 분명, 누더기 같은 것이다.

상처를 꿰멘 자국.

내 가슴처럼 수술을 해도 아직 낫지 않은, 만지기 해도 너덜너덜 흩어지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렇지라도 않으면 어린애의 힘으로 벽을 자를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

또 간호사 선생님이 외쳤다.

올록볼록하게 잘린 벽을 보고 나를 노려본다.

 

쇳소리가 울려퍼진다, 울려퍼진다.

내 귀는 이상해져서 별로 시끄럽다고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그치지 않는 소리는 불이 붙은 매미 같아서 불안해졌다.

 

모든 것이 너덜너덜했다.

눈을 뜨고있는 것만으로, 살아있는 것만으로, 사라지고 싶을 정도로 끔찍하다.

 

......아아, 지금까지 알지 못했다.

세상은 이렇게나 누더기 투성이에,

무척이나 부서지기 쉬운 곳이었다니.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것이겠지.

이 이상한 세계를 눈치채지도 못한다. 이 상처투성이인 일상을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보인다.

두렵고 무서워서 걸을 수가 없다.

 

그러고보면 그 후로 귀는 얼어붙은 채로, 소리는 나는데도 무척이나 조용했다.

가슴의 상처만이 사이렌처럼 울렸다.

그런데 『그 후』는 『언제』인 걸까.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박박 머리를 긁어봐도 꺼내어지지 않았다. 분명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서 버려버린 게 틀림없다. 잠궈도 잠궈도 물이 흘러나오는 수도꼭지 같이.

 

......아아, 그렇구나.

그렇다면 전부 설명이 된다. 거울이 없는 건 당연했다. 그야 있었다면 제일 먼저 ■였을 것이다.

분명 웃으면서 머리를 쪼갰을 것이다. 즉, 부서질 것 같은 건 주변이 아니라, 고장난 건 나였을 뿐인 이야기라는 것 같다.

 

그래서이겠지.

그 후로 2주나 지났는데도,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

그 후로 2주나 지났는데도, 아무도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

그 후로 2주나 지났는데도, 나는 홀로 누더기 투성이인 세상에 살고있다―――

 

병실에는 있고싶지 않다. 낙서 투성이인 곳에 있고싶지 않다.

이곳에서 도망쳐서 아무도 없는, 먼 곳에 가기로 했다.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이 세상이 이상한 거라고, 나 자신에게 들려주듯이 뛰쳐나갔다.

 

하지만 가슴의 상처가 아파서 조금밖에 달리지 못했다.

깨닫고보니. 그곳은 병원 옆에 있던 들판으로, 조금도 먼 장소엔 가지 못했다.

 

「......커헉」

가슴이 아파서, 무척 슬퍼서, 지면에 웅크려 캑캑거렸다.

 

어디에도 갈 수 없고, 가서는 안 된다.

누더기가 보이는 인간은 분명 어디에도 있어선 안 된다.

 

콜록, 콜록. 아무도 없다.

여름의 끝자락, 풀숲 투성이의 바닷속.

이대로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직전에.

「너. 이런 곳에서 웅크려있으면 위험해」

분명하게 귀에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났다.

 

 

「어.........?」

「어, 가 아니지. 안 그래도 작으니까 풀숲에서 웅크리고 있으면 안 보이잖아. 조심해, 하마터면 걷어차일 뻔했으니까」

 

여자는 언짢은 듯이 나를 가리켰다

.......왠지 조금 화가 났다.

나는 반에서도 앞에서 네번째니까, 그렇게 키가 작은 편은 아닌데.

 

「걷어차인다니, 누구한테?」

「바보구나, 당연하잖아. 여기 있는 건 나랑 너 뿐이니까, 나 말고 누구라고 생각하는거야?」

여자는 팔짱을 끼고 자신만만하게 그리 말했다.

 

「뭐, 여기서 만난 게 인연 같기도 하니, 조금 말상대가 되어줄래? 나는 아오자키 아오코라고 하는데, 너는?」

 

친구 같은 가벼움으로 여자는 손을 내밀어왔다.

거절할 이유도 없는 것 같아서, 나는 토오노 시키라 이름을 대고 휩쓸리듯 손바닥을 마주잡았다.

 

여자와의 수다는 무척 재밌었다.

이 사람은 내가 하는 말을 『어린애니까』라고 무시하지 않았다. 제대로 한 명의 인간으로서 내 말을 들어주었다.

 

여러 일들을 얘기했다.

우리집에 대한 것. 역사가 있는 오래된 가문으로, 예의범절에 까다롭고, 아버지가 엄격한 사람이라는 것.

 

아키하라는 여동생이 있고, 무척 어른스럽고, 항상 내 뒤를 따라오던 것.

 

넓은 저택이었기에 숲처럼 넓은 마당에서 항상 아키하와 함께 친구들과 놀았던 것.

 

다락방이 비밀 아지트였던 것. 끝말잇기를 잘 못하게 된 것. 키는 아직 앞으로도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좋아했던 병원 냄새가 어느새 싫어지게 된 것.

구름이 없는 푸른하늘은 이렇게나 아름다운데도, 보고 있으면 울고싶어지게 되는 것.

그래도 살아간다는 것은 멋진 일이고, 그 억지 웃음이 서툰 의사 선생님도,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것.

 

―――정말로.

나는 열에 들뜬 것처럼 여러 일들을 얘기했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미안해, 시키. 나 볼 일이 좀 있어서 얘기는 여기까지 하자」

 

여자는 떠나간다.

......'또 혼자가 되는 건가'하고 생각하자 외로워졌다.

 

「그럼 또 내일,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너도 병실로 돌아가서 의사가 하는 말 잘 지켜야 해」

 

「아――

여자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떠나갔다.

 

「......또, 내일

또 내일, 오늘처럼 이야기 할 수 있다.

기쁘다. 사고 후 눈을 뜨고 처음으로 사람다운 감정이 돌아왔다.

 

오후가 되면 들판에 가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여자는 아오코라고 부르면 화를 냈다. 자신의 이름이 싫다고 했다.

고민한 끝에, 왠지 모르게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서 『선생님』이라 부르기로 했다.

 

선생님은 어떤 이야기라도 진지하게 들어주고 내 고민을 한 마디로 해결해주었다.

 

사고 후, 사람과의 대화가 어려워진 나는 선생님 덕분에 조금씩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들판에 있을 때만큼은 원래의 나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어디 사는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선생님은 정말로 어딘가의 학교 선생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와는 관계 없는 이야기이다.

선생님과 있으면 즐겁다. 중요한 것은 그런 단순한 것이었다.

 

「있지, 선생님. 저 이런 것도 할 수 있어요

살짝 놀래키고 싶어서 병원에서 가져온 나이프를 사용해 들판에 있는 나무를 잘랐다.

 

저 낙서 같은 선을 따라그어서 종이를 찢듯이 한가운데에서 절반을 잘라냈다.

 

「굉장하죠? 낙서가 보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단하게 자를 수 있어요. 이런 거, 다른 사람들은 못하잖아요

 

――――

선생님은 놀랐다.

나는 신이 나서 이번에는 나무 뿌리에 일직선으로 나있는 선을 따라 나이프를 밀어넣어,

 

「시키―!

달려온 선생님의 손에 찰싹 뺨을 맞았다.

 

「선......생님?

「그만둬. 넌 방금, 무척 경솔한 짓을 했어

 

선생님은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가차없는 눈. 나쁜 사람을 벌하는 흔들림 없는 눈.

 

아아, 어쩜 이리도 바보 같을까.

너무나 이 시간이 즐거워서, 나는 스스로를 잊고 있었다.

 

이 낙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그것을 보는 나는 살아있어서는 안 되는 인간이라는 것을.

 

가슴에 번지는 피같은 후회. 자신의 어리석음에 죽고싶었다.

저 나무는 단 한 그루만 남은, 이 들판이 숲이었을 무렵의 기록이었는데.

나는 선생님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그것을 의미 없이 망쳐버린 것이다.

 

「......죄송해요

깨닫고보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우는 건 비겁하고 남자답지 않다는 걸 아는데도, 후회를 멈출 수가 없었다.

 

―시키

사뿐히 내려앉는 감각.

선생님은 당연하다는 것처럼 나이프를 쥔 나를 끌어안았다.

 

「사과할 필요는 없어. 응 뭐어, 확실히 시키는 혼날 짓을 했지만 그건 결코 너만이 잘못돼서가 아니야

「......? 잘못한 건, 나뿐만이 아니야......?

「맞아. 그래도 말이야, 시키. 그것보다도 지금 누군가가 너를 혼내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게 될거야. 그래서 나는 너를 한 명의 인간으로서 봤어. 같은 인간으로서 타이르고, 화내고, 진심으로 때렸어. 힘 조절을 잘못했다면 내가 시키를 죽였을지도 모를 정도로, 진심으로

 

그 말은 정말로 무서웠다.

자신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만약"이 아닌, 이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하게 만든 것이 무척이나 슬펐던 것이다.

 

「울지마, 시키. 나도 사과하지 않을거야. 네가 그 정도의 일을 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으니까. ......응. 그 대신, 시키는 나를 싫어해도 괜찮아

 

「......아니. 선생님을 싫어하지 않아요

―그래. 정말로, 다행이다. ......내가 너를 만난 건 이것 때문이었던 것 같아

 

그렇게. 선생님은 조용히 내 후회를 녹여주듯이 내가 보던 낙서에 관해 물었다.

선이 보이는 것을 얘기하자, 선생님은 더욱 강하게,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시키, 네가 바라보는 건 현실이야. 결코 보여선 안 되는 것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그 선은 환상이 아닌, 너에게만 보이는 또다른 현실」

 

「......그렇구나. 그럼 역시 이상한 건 나 혼자구나

「그래, 넌 이상해. 그건 틀림없어

 

울컥하는 스스로를 참는다.

의사 선생님이 믿어주지 않았을 때보다 몇 배나 더 아파서 꺾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알고있던 일이다.

처음부터―자신이 있어서는 안 되는 아이라는 것은 눈이 떠졌을 때부터, 줄곧 줄곧 알고있었다.

 

「조급해하지 마. 그 비정상은 이상할 뿐이고, 설명할 수 없는 게 아냐. 도리가 통한다면 인간은 무엇이든 향할 수 있다― 이거, 내 경험이야. 아무리 바보같이 터무니없는 일이 찾아와도 지혜와 용기로 극복하는 게 우리 인간이야

 

교훈 그 첫 번째, 라고 부끄러운 듯이 선생님은 말했다.

이상하더라도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문제인 것은, 그것을 어떻게 대하는 것인가 라고.

 

「그러면 이 낙서도, 설명할 수 있어요......?

「물론이지. 사물에는 말야, 망가지기 쉬운 부분이 있어

 

「언젠가 망가질 우리들은, 망가지기 때문에 완전하지 않아. 너의 눈은 그런 사물의 말로...... 다시 말하자면 미래를 보게 되어버리는 거야

「......미래를......본다고요?

 

「그래. 지금은 그 이상은 몰라도 돼. 만약 네가 그 흐름에 휩쓸리게 되는 때가 온다면, 필연적으로 나름의 이치를 알게 될거야

 

「......선생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맞아, 알면 안 돼. 지금 중요한 건 한 가지. 그 선은 절대 장난으로 잘라선 안 돼. ―너의 눈은, 사물의 생명을 너무나 가볍게 만들어버리니까

 

「응. 선생님이 그렇다면 안 할게요. 그리고 왠지 가슴이 아파요. ......죄송해요, 선생님.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짓은 하지 않을게요

 

「......다행이다. 시키, 지금 이 감정을 절대로 잊지 마. 그렇게 한다면 너는 반드시 행복해질거야

 

끌어안고 있던 팔이 풀렸다. 차갑지만 따뜻했던 감촉이 멀어져간다.

 

「하지만 선생님. 이 낙서가 보이면 불안해요. 이 선을 그으면 끊어지잖아요? 그럼 제 주변은 항상 산산조각나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 문제는 내가 어떻게든 할게. 아무래도 그게, 내가 여기 온 이유인 것 같으니까

 

선생님은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고나서 태양처럼 방긋 미소지었다.

 

「시키. 내일 너에게 특별한 선물을 줄게. 내가 너를 예전의 삶으로 되돌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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