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여기에 동쪽의 태고의 신전이...

 

네로

울창한 산기슭에 있는 마을이구만... 지도를 보면 틀림없는 것 같은데...

 

시노

이런 곳에 인간이 살고 있는 건가?

 

파우스트

수원이 많아. 발 밑의 흙도 축축하고 저기에도 작은 폭포가 있다.

물만 있다면 인간은 살 수 있을거다.

 

히스클리프

그래도... 깨끗한 물이 아닌 것 같아요.

...이상한 냄새가 나... 동물의 시체가 썩은 듯한...

 

현자

...!? 지금 건...

 

시노

비명처럼 들렸다. 사람인가, 동물의...

 

파우스트

아냐.

 

현자

파우스트...

 

파우스트

...주의해라. 여기엔 마법사를 죽이는 데 익숙한 인간이 살고 있다.

 

현자

마법사를 죽이는 데 익숙한...?

 

시노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우리가 인간 따위에게...

 

네로

쉿... 무슨 소리가...

 

히스클리프

.......

감각을 집중할 수가 없어... 기척을 읽기 힘들어...

 

현자

.......! 히스, 안색이 안 좋아요.

 

히스클리프

왠지 이상해요... 평소대로라면 사람인지 마법사의 기척인지 알 수 있었을텐데...

 

시노

단순히 동물이겠지. 보고 와주지.

 

파우스트

시노. 멋대로 움직이지 마.

 

시노

너무 겁이 많아. 그러니까 북쪽 놈들이 얕보는 거다.

그 놈들이 오기 전에 끝내주...

......!

 

시노의 눈앞에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파우스트가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고 순식간에 시노의 곁으로 다가간다. 시노의 팔을 당기며 감싸듯이 그의 앞에 섰다.

두 사람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시노와 비슷한 키의 소년이었다.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 진흙 투성이에 비린내가 난다. 새까맣게 더러워진 얼굴에 푸른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소년

...아...

 

파우스트

...어린애인가...

 

시노

봐, 말했잖아. 별 일 아니라고.

너, 이 근처 마을의 아이인가.

 

소년

...그런데... 당신들은...?

 

시노

우리는 현자의 마법사다. 나는 동쪽의 마법사 시노.

저게 현자. 히스클리프에, 파우스트, 네로다.

 

소년

...현자의, 마법사...?

 

시노

그런 것도 모르는건가. 시골사람이구나.

뭐, 됐어. 마을까지 안내해줘.

 

파우스트

안내는 필요없어. 장소를 알려주면 된다.

 

시노

파우스트.

 

파우스트

나중에 설명하지. ---자네, 알려주게.

 

소년은 겁 먹은 듯이 어깨를 움츠리며 산의 표면 위쪽을 가리켰다.

 

소년

저쪽... 한동안 가면 연못이 있고...

더 올라가면 마을의 교회가 보여.

 

파우스트

알겠다. 고맙다.

 

소년은 끄덕이고 허둥지둥 몸을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무언가에 시선을 사로잡힌 듯이 멈춰선다.

히스클리프였다. 히스클리프도 시선을 눈치채고 창백한 얼굴에 미소를 띠운다.

소년은 물을 뒤집어 쓴 듯이 놀라며 울창한 산중으로 사라져버렸다.

 

네로

하하... 천사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이었네.

...히스. 너 괜찮아?

 

히스클리프

괜찮아... 묘한 냄새랑 비명 같은 소리 때문에 기운이 없어서...

 

시노

빨리 마을로 가서 쉬자. 그러니까 저 녀석을 따라가면 좋았을텐데.

 

파우스트

마법사는 마음으로 마법을 사용한다. 마음이 혼란스럽게 되면 평소처럼 힘이 나오지 않아.

 

파우스트는 걱정되는 듯이 히스클리프의 얼굴을 보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파우스트

사람도 마법사도 동물도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면 불쾌한 건 똑같아.

시체 냄새와 절명의 소리는 특히나.

 

시노

절명의 소리라니, 아까의?

 

파우스트

저건 피리 소리다. 죽음의 피리라고 불리며, 일부러 절명의 외침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

마법사의 정신을 소모시키는 도구다. 인간들과 싸웠을 때 사용된 적이 있어.

히스, 눈을 감아라.

 

파우스트의 말에 히스클리프는 새파랗게 질린 눈꺼풀을 닫았다. 그의 이마를 만지며 파우스트가 주문을 외운다.

 

파우스트

《사틸크나트 물크리드》

 

히스클리프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기분 탓인지 안색도 좋아진 느낌이 든다.

 

히스클리프

냄새와 소리가 약해졌어... 감사합니다, 파우스트 선생님.

 

파우스트

감각을 약화시킨 것 뿐이다. 위험에 둔해지지 않도록 조심해라.

현자, 너도다.

 

파우스트의 손바닥이 눈앞에 다가오고, 나는 눈을 감았다.

그의 손 주위에서 은근하게 풍기는 향유 향기에 정신을 뺏긴 사이, 갑자기 불쾌한 소리와 냄새의 감각이 옅어져간다.

 

현자

아... 편해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파우스트. 다른 분들은 괜찮나요?

 

네로

지금은 그럭저럭. 나도 신경이 예민한 체질이니까 힘들기는 하지만...

 

파우스트

나도다... 동쪽의 마법사는 감각이 섬세하니까 말이지.

시노는 괜찮나?

 

시노

괜찮아.

 

파우스트 일행은 감탄한 듯이 시노를 바라보았다. 실제로 시노에게 약해진 기색은 없다.

산으로 발을 내딛으면서, 시노는 코를 킁킁거리며 날카로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시노

시체 냄새나 절규는 내가 태어난 곳이다. 블랑솃에 오기 전까지 내가 떠돌던 장소.

 

히스클리프

시노...

 

시노

나에게 있어선 단순히 옛 친구일 뿐이다. 가자.

 


 

산길을 올라가던 도중에도 생물이 부패한 것 같은 냄새는 강해지고 무서운 절규도 늘어갔다.

파우스트가 마법으로 줄여주지 않았더라면 나도 상태가 좋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현자

(냄새와 소리는 이렇게나 마음에 영향을 주는구나... 거기다 이 어슴푸레한 경치... 버려지고 잊혀진 무덤 같아...)

(어두컴컴하고 외로운데다 음산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고목조차 무언가를 원망하는 것처럼 보여...)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시노

중앙의 왕도에서 소동이 한창일 때 히스의 기묘한 상처를 알아냈다.

 

현자

정말인가요? 어떤...

 

시노

흉포한 검은 짐승이 된다.

 

현자

짐승...?

 

시노

그래. 우리를 습격해왔어.

히스 본인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해. 이 일은 나와 카인, 오웬만이 알고 있다.

 

현자

히스에게는 말하지 않았나요?

 

시노

........

카인에게도 말했지만, 히스는 지금도 자신이 마법사라는 걸 신경쓰고 있어. 짐승이 된다는 걸 안다면 더욱 속에 담아두고 끙끙 앓겠지.

상태를 보고 내가 말하겠다. 그 녀석이 동요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맡겨주겠어?

 

현자

...알겠어요. 부탁드릴게요.


 

현자

(민감한 문제니까 참견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거, 아직도 얘기 안 했구나...)

 

히스클리프

뭐야, 시노...

뭔가 알고 있어?

 

시노

아무것도 아냐. 오웬은 일부러 저러는 거다.

상대하지 마.

 

오웬

흐음. 그런 말 해도 되는거야?

 

시노

시끄러. 쓸데없는 말을 한다면 네 비밀도 말할거다.

 

오웬

.......

 

미스라

비밀? 당신에게 비밀이 있나요?

 

브래들리

약점인가? 나중에 알려달라고, 동쪽의 꼬맹이.

용돈 줄테니까.

 

오웬이 살기 띤 눈매로 날카롭게 노려본다.

오웬의 비밀이라는 것은 오웬의 기묘한 상처를 말하는 것이다.

갑자기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인격이 된다.

 

오웬

죽고싶니, 시노.

 

시노

다물고 있어. 똑같은 조건이니까.

 

히스클리프

네 비밀이라니...? 시노.

도대체 무슨 말을...

 

시노

괜찮으니까 가만히 있어.

 

날카로운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며, 나는 심장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현자

(...정말로 이번에는 괜찮을까...)

 

그 때 천천히, 미스라가 파우스트의 머리를 덥석 쥐었다.

 

파우스트

...!?

 

히스클리프

선생님!

 

시노

어이, 미스라!

 

네로

그만둬, 시노!

 

순식간에 동쪽의 마법사들이 털을 곤두세운 고양이처럼 경계한다.

미스라는 파우스트를 내려다보며 아무것도 아닌 듯이 고했다.

 

미스라

그 모자, 좋다고 생각해서.

 

동쪽의 마법사들

.......

 

맥 빠진 듯이 동쪽의 마법사들이 움직임을 멈춘다. 직후, 선생님이 모욕 당한 것에 분노를 드러냈다.

브래들리가 배를 붙잡고 웃기 시작한다.

 

브래들리

아하하하! 쫄게 하지 말라고, 미스라.

동쪽 녀석들은 음침한데다 겁쟁이니까 말이야.

 

시노

겁쟁이라고? 내가 겁쟁이인지 아닌지 보여줄까?

 

스노우

이거이거, 시노!

 

화이트

브래들리도 그만하거라!

 

브래들리

아하하! 재밌어.

파우스트, 부하가 귀여우면 응석받이 짓은 못하게 해두라고.

 

모자를 깊이 고쳐 쓴 파우스트는 브래들리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파우스트

스노우, 화이트. 우리만으로 동쪽 마을로 간다.

 

스노우

파우스트.

 

파우스트

너희 쌍둥이만이라면 동행을 인정해도 좋다. 어떤 마물보다도 그들과 함께 있는 편이 더욱 위험해.

 

오웬

싫어하니까 따라가고 싶어지네에. 히스클리프에게는 내가 필요할테고 말이야.

 

히스클리프

...무슨 의미인가요?

 

미스라

귀찮네에... 아무래도 좋으니까 빨리 끝내죠.

동쪽의 마법사들은 보고만 있으면 될 테고요.

 

스노우

미스라. 이건 동쪽 나라의 성스러운 축제일세.

 

화이트

원시 정령들의 성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건 동쪽의 마법사들일세. 우리가 그들에게 따라서 조력하는 게야.

 

브래들리

우리들, 북쪽의 마법사들이 따른다고? 그것도 격 낮은 동쪽 놈들에게?

아하하! 웃기지 말라고!

 

브래들리는 높게 웃으며, 홱하고 크게 양팔을 벌렸다.

박력과 자신감이 넘쳐난, 커다란 목소리를 울려댄다.

 

브래들리

알겠냐, 잘 들어라! 동쪽의 음침한 마법사 놈들아!

지금부터는 내가 네놈들의 보...

 

그 순간, 네로가 무언가를 집어든다. 작은 병 같은 것을 휘둘렀다.

후추였다.

 

브래들리

...에, 엣취!

 

브래들리는 홀연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현자

브래들리--! 재채기를 하면 사라져버리는 기묘한 상처 때문에...

 

스노우

네로! 어째서 후추 같은 걸 갑자기 뿌린 것이냐!?

 

네로는 핏대를 세우면서 분노를 가라앉히듯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네로

미안. 한계였어.

...정말이지, 저 녀석의 저런 점, 조금도 바뀌지 않았네...

 

미스라

...응? 돌아가도 되나요?

 

스노우

아니라네, 미스라!

 

화이트

안 된다네, 미스라!

 

미스라

그럼, 뒤는 맡기는 걸로.

 

스노우·화이트

미스라...!

 

미스라

《아르시무》

 

공간의 문을 열고 미스라도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돌아보면, 어느샌가 오웬도 없어져 있다.

 

스노우

정말이지, 저놈들...! 금방 데려오겠네.

그대들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게나.

 

파우스트

알까보냐.

 

화이트

파우스트! 동쪽의 자들, 사람을 싫어하는 이대로면 안 된다네.

타인과 협력하는 것을 배워야...

 

시노

북쪽 놈들과는 사양이다. 가자.

 

현자

저... 정말로 갈 건가요?

 

네로

조사든 뭐든 우리끼리 하는 편이 더 빨라. 만만치 않은 마물이라도 나온다면 녀석들에게 맡길게.

그 편이 저 녀석들에게도 좋겠지. 강하다든가 약하다든가, 그런 일로밖에 얘기가 통하질 않으니.

 

히스클리프

현자 님은 마법관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현자

...그렇다면 더더욱 갈게요.

 

히스클리프

현자 님...

 

현자

스노우, 화이트. 북쪽의 마법사들을 모아서 데리고 와주세요.

우리는 먼저 사전 조사를 하고 있을게요.

 

스노우

알겠네. 모쪼록 무리는 하지 말도록.

파우스트, 부탁하겠네.

 

파우스트

...애들과 현자가 위험해지게 하진 않을거야.

 

화이트

이건 클로에가 준비한 성스러운 축제용 의상일세. 미리 걸치고 가는 게 좋아.

 

스노우

조심하거라.

 

의상을 받아든 동쪽의 마법사들은 마법으로 순식간에 갈아입었다.


 

어두운 표정을 띠면서 그들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나는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무르

서쪽에 이어 중앙의 태고의 신전도 무사히 되살아난 것 같아서 다행이네!

 

카인

그러게. 겨우겨우 말이지.

 

미치루

카인 씨도 부상이 회복 되어서 다행이예요.

 

히스클리프

정말 다행이야... 카인이 실려 왔을 때는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어.

카인은 용감하지만 너무 무리는 하지 마.

 

카인

상냥하구나, 히스.

걱정 끼쳐서 미안해.

 

오웬

나도 병문안 가줄까.

이미 나았으니까, 한 번 더 다치게 만들고 병문안 가도 돼?

 

카인

사양할게.

 

무르

슬슬 다음 땅에서 성스러운 축제를 할 무렵이지 않아?

다음은 동쪽일까? 북쪽일까? 남쪽이려나?

 

미틸

혼란한 세상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성스러운 축제를 열고, 태고의 신전에 원시의 정령들을 소환하는 것 말이죠?

 

카인

맞아. 세상을 위한 중요한 임무야.

북쪽의 마법사들은 한 번도 참가하지 않았으니까, 슬슬 순서가 되지 않았나?

 

오웬

뭐어? 귀찮아...

 

미틸

북쪽의 마법사들과 함께인 임무라니, 왠지 무섭네요...

 

카인

무서운 일은 아니지만, 너희들 땡땡이 칠 것 같아. 서로 협력하는 것도 힘들 것 같네.

 

오웬

협력 같은 거 안 하니까 말이지.

 

히스클리프

북쪽의 마법사들과 조가 되면 힘들 것 같네...

 

무르

남 일처럼 말하지만 그런 힘든 일에 당첨되는 건 대부분 너희 아니야?

 

히스클리프

어?

 

스노우

히스클리프, 오웬. 잠깐 이쪽으로 와주게나.

 

화이트

다음 성스러운 축제의 예정이 정해졌다네!

동쪽 나라의 마법사들이, 동쪽 나라의 성스러운 축제를 열도록 하겠네!

 

스노우

북쪽의 마법사들은 그들의 서포트를 하는 것일세!

 

히스클리프

어...

 

오웬

뭐어?


 

동쪽의 마법사들이 큰 방에 모여있었다. 하지만 북쪽 마법사들의 모습은 없다.

그들이 나타난 것은 상당히 시간이 지난 뒤였다.

 

파우스트

늦어.

 

스노우

미안, 미안.

 

화이트

미스라를 찾고있던 사이에 브래들리가 없어져버려서, 그 사이에 오웬도 없어져서 말이지.

 

스노우

전원 모이는 것만으로도 고생이라네.

 

동쪽 마법사들의 스승인 파우스트는 질린 기색으로 북쪽의 마법사들을 응시했다.

북쪽의 마법사들은 힘은 강하지만, 난폭하고 제멋대로인 면이 있다.

한편, 동쪽의 마법사들은 사람을 싫어하고 폐쇄적이지만, 여차하면 진지하고 조직행동도 뛰어나다.

상성은 별로 좋지 않아 보인다.

즉시 서로 대화가 시작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파우스트가 나를 보며 말했다.

 

파우스트

이번 임무는 동쪽 마법사들만 가게 해줘.

 

시노

찬성.

 

네로

찬성.

 

히스클리프

나도... 가능하다면...

 

스노우

어이 어이 어이 어이.

 

화이트

그렇게 매정하게 굴지 않아도 되잖는가.

 

시노

나는 기다리는 게 싫다. 이후에도 무엇을 하든 너희들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는 건 사양이다.

 

시노도 북쪽의 마법사들을 노려본다. 북쪽의 마법사들은 마주 노려보는 일 없이, 미스라에 이르러서는 하품도 숨기지 않았다.

 

미스라

후아암... 졸려...

응? 뭐라고 말하셨습니까?

 

시노

죽여버린다, 이 자식...

 

히스클리프

시노! 상대는 북쪽의 마법사니까...

 

브래들리

그래. 얌전히 있는 게 동쪽 마법사들의 신변을 위한 거라고.

 

브래들리가 어깨를 으쓱인다. 그리고 무턱대고 친한 듯이 네로의 어깨에 팔꿈치를 올렸다.

 

브래들리

거기다 우리의 힘이 필요하다는 건, 그만큼 위험한 상대란 거잖아?

 

네로

팔걸이 하지 말라고...

 

브래들리

오? 뭐냐?

이 몸에게 거역할 셈인가?

 

네로

떨어져, 성가셔.

 

네로는 민폐인 듯이 얼굴을 찌푸리고, 브래들리를 밀어냈다. 브래들리는 신경쓰지 않고 껄껄 웃고 있다.

북쪽 마법사들의 불손한 태도에, 동쪽의 마법사들은 초조한 모습이었다.

 

현자

(이번에는 앞날이 불안한데...)

 

스노우

브래들리가 말한 대로 이번에 향할 장소에는 불길한 소문이 있어서 말일세.

우리들 북쪽 마법사들의 힘이 필요할 걸세.

 

시노

우리만으로는 해낼 수 없다, 이 말인가?

 

화이트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네. 만약을 위해서일세.

서쪽의 성스러운 축제도, 중앙의 성스러운 축제도 다른 마법사들과 협력하지 않았던가.

그대들도 서쪽의 마법사들에게 힘을 빌려주었을 게야. 사소한 것은 신경쓰지 말고 우리의 힘을 빌리면 돼.

 

네로

...그래서, 불길한 소문이란 건?

 

스노우

아무래도, 마법사가 들어가면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마을이 있다고 한다네.

 

시노

...마을? 마을이라면 인간이 상대인가?

인간 따위에게 질 리가 없잖아.

 

화이트

이상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 볼 필요가 있는 것이지.

어디, 지도를 봐보게나.

 

파우스트

...동쪽과 북쪽 사이의 산맥 옆이군. 나는 가 본 적이 없다.

히스클리프는?

 

히스클리프

저도 잘 모릅니다... 블랑솃에서도 먼 장소이고...

 

오웬

그러고보니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

.......

 

오웬이 말을 걸어서, 히스클리프는 움찔하고 긴장했다.

그 단정한 용모에, 심술궂은 차가운 미소를 띄우면서 오웬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오웬

또 나랑 놀지 않을래?

 

히스클리프

...무슨 의미인가요?

 

시노

아무것도 아냐, 히스. 오웬의 말에 휘둘리지 마.

 

시노는 히스클리프의 팔을 잡아당기며 오웬을 노려보았다.

오웬은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다.

 

현자

(설마, 그 때의 일...)

 

그들의 대화에 나는 중앙의 왕도에서 일어났던 소동 후, 시노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기사와 신의의 콘체르토~중앙 나라&동쪽 나라~

 

현자

...카인이 말한 대로 로랑은 멋진 기사였네요.

 

카인

하하, 그렇지?

 

아서의 손에 이끌려 원래의 장소로 돌아온 검은, 깨닫고 보니 원래의 녹슨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카인은 그 앞에 서서 검에 말을 건다.

 

카인

아주 먼 옛날, 이 땅에 살았던 기사 로랑. 한 때였지만 동경의 대상인 당신과 검을 겨룰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

당신은 앞으로도 내가 동경하는 기사야. 부디 편하게 잠들길.

 

카인의 말에 호응하듯 나무들이 흔들린다.

한 순간, 유달리 강한 바람이 빠져나가고, 카인은 덜컥 얼굴을 들었다.

 

카인

...!

방금 그건...

 

아서

왜그래, 카인?

 

카인

...목소리가, 들린 느낌이 들었어.

 

현자

목소리...?

 

카인

분명하게 들렸던 건 아니지만, 언젠가 나에게 힘을 빌려주겠다고...

어쩌면 그 녀석... 로랑의 목소리였을지도 모르겠네.

 

현자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분명 카인에게는 확실하게 들렸겠지.

동경하는 기사, 로랑의 목소리가.

카인은 존경의 마음을 전하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한순간 검이 예리하게 반짝였다.

그것은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대가 연결된 증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도적들을 마을로 연행하여 신병을 마을 관리에게 넘긴 후...

 

현자

여러분, 이번에도 수고하셨어요. 슬슬 마법관으로 돌아가도록 할까요.

 

카인

그래, 마을 녀석들에게도 웃음이 돌아와서 다행이야.

...맞다, 리케.

 

리케

네, 무슨 일... 으왓!?

카인! 갑자기 머리를 쓰다듬지 마세요!

 

카인

아키라에게서 들었다고. 이번에 내 힘이 되어주려고 엄청 열심히 했다며.

 

리케

혀, 현자 님! 카인에게 말하셨나요...?

 

현자

아, 죄송해요... 혹시 비밀이었나요...?

 

리케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아서

고마워, 리케. 도적들을 붙잡을 수 있었던 건 네 덕분이야.

 

리케

에헤헤... 현자 님과 둘이서 열심히 했어요!

 

루스타

어이, 당신들!

 

카인

루스타! 당신, 뛰어도 괜찮은거야?

상처가 심해지는 건...

 

루스타

고통은 괜찮아지고 있다고.

그리고 당신들의 동료가 걸어준 마법이 효과가 있었나봐.

저기, 정말로 고마워.

당신들이 포학의 기사를... 도적들을 퇴치해준 덕에 드디어 안심하고 지낼 수 있게 됐어.

 

카인

그건 다행이야. 물류도 조금씩 회복될 거야.

얼른 마을이 원래대로 돌아오면 좋겠네.

그래도, 루스타. 상처가 완치되기 전까진 너무 무모한 짓은 하지 말라고.

그리고...

 

카인은 말을 끊고, 루스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카인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로랑의 묘는 소중하게 모셔주면 안 될까?

도적들에게 오명을 뒤집어쓰였고, 이번 사건은 그 녀석도 피해자 같은 게 되어버렸으니 말야.

 

루스타

그래, 알겠어. 로랑은 앞으로도 전설의 기사로서 모실게.

그래도... 그건 로랑이 누명을 뒤집어썼기 때문이 아니야.

우리들은, 앞으로도 계속 전할거야.

전설의 기사 로랑의 이야기에도 지지 않을 정도로, 현자의 마법사들도 멋지다고 말이야.

정말 고마워, 현자의 마법사 님들!

 

루스타 씨의 말에 이어, 배웅하러 와준 다른 마을 사람들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들의 감사에 카인은 눈을 반짝이며...

 

카인

별말씀을.

 

그리고 자신의 검에 손을 갖다대고, 기사다운 늠름한 미소를 띄웠다.

그것은 무척이나 믿음직한 동료의, 멋지고 가장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현자

저기, 카인.

 

카인

응, 왜 그래?

 

현자

마법관에 돌아가면 로랑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카인이 동경하는 전설의 기사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알고싶어요.

 

리케

확실히. 저번에는 이야기 도중에 끊겼으니까요.

 

카인

아하하, 물론 좋지!

다만 밤새도록 얘기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시노

상관없어. 그리고 나는 그게 더 듣고싶군.

카인이 어릴 때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면서 기사놀이를 했던 이야기.

 

아서

기사놀이...? 그건 나도 자세히 듣고싶은걸.

 

카인

아니, 그건... 아서 님께 들려드리는 건, 역시 부끄러운데...

 

아서

부끄러워할 것 없어.

참고로 나는 어릴 적, 자주 오즈 님 놀이를 했었지.

그립네요. 그렇죠, 오즈 님?

 

오즈

........

 

히스클리프

오즈 님 놀이... 어떤 놀이일까...

 

카인

알겠어, 알겠어! 돌아가면 모두들 실컷 얘기하자.

그 대신, 너희들의 어릴 적 부끄러운 일들도 말해줘. 아키라도 말이야.

 

카인은 쑥스러운 얼굴이다.

이번에는 기사인 그가 아닌...

우리들의 소중한 친구인 카인 나이트레이로서, 웃어주었다.

기사와 신의의 콘체르토~중앙 나라&동쪽 나라~

 

네로

계속해서 나타나네... 끝이 없어.

 

히스클리프

《레프세바이블프 스노스》!

 

히스클리프가 마도구를 쥐고 주문을 외우자 시간이 멈춘 것처럼 망령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히스클리프

시노, 지금이야!

 

시노

맡겨둬!

 

날렵함을 무기로 대낫을 휘두르는 시노는 한 번에 많은 망령들을 베어넘기며, 히스클리프와 호흡을 맞춰 연계를 보였다.

하지만 얼마나 쓰러뜨려도 망령들이 나타나는 숫자는 멈추지 않는다.

 

네로

선생. 이거 어떻게 못 해?

이대로면 우리 마력이 먼저 바닥나겠어.

 

파우스트

.......

로랑이 이 장소에 존재하는 한, 망령들은 계속 늘어나겠지.

그러니 지금 당장 내가 없애주지. 망령의 기사 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망령들 전부 말이야.

 

카인

기다려줘!

 

로랑의 망령과 대치하던 카인은 파우스트의 말을 가로막듯 불렀다.

 

카인

이 녀석은 분명 긍지가 더럽혀져서, 자신의 중요한 걸 짓밟혀서 화가 났을 뿐이야!

내가 반드시 이 녀석을 멈출게. 그러니까 로랑을 없애는 건 조금만 더 기다려줘!

 

파우스트

하지만...

 

파우스트가 망설이듯 눈살을 찌푸린다.

대신 대답한 것은, 오즈였다.

 

오즈

하도록.

너의 진가를 보여주도록 해라. 중앙의 기사 카인이여.

 

망령의 신음소리와 도적들의 비명이 겹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결코 크지는 않을 터인 오즈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강하게 울린다.

그것을 들은 순간, 암흑 속에서 카인의 눈이 반짝 빛나듯 보였다.

 

카인

...그래!

 

파우스트

...그렇지만 기다리는 건 정말 조금만이다. 더이상 시간이 없어.

 

카인

괜찮아, 금방 끝낼게.

 

무겁게, 공기를 가르는 듯한 소리와 함께 로랑의 공격은 용서없이 카인을 겨냥한다.

하지만 휙 몸을 돌려 피한 뒤, 카인도 다시 민첩한 움직임으로 로랑에게 검을 휘두른다.

그 참격은 달빛조차 찢어버릴 듯이 예리했다.

 

현자

(대단해...)

 

끊임없이 검이 교차하는 소리가 울리고, 그들 주변에는 불꽃이 흩날렸다.

 

카인

...윽...! 로랑...!

 

멈추지 않는 검격을, 카인은 몇 번이나 피하고, 검을 휘두른다.

로랑의 마음에 강하게 외치듯, 카인은 큰 소리로 외쳤다.

 

카인

로랑! 당신은 기사잖아!

당신 자신의 바람을, 긍지를 떠올려내!

 

로랑

...!

 

카인의 말에 반응한 것일까, 한 순간 로랑의 움직임이 둔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카인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으로 크게 베어넘긴다.

 

카인

하아아아앗!!

 

리케

검이...!

 

로랑의 손에서 검이 날아간다. 그 검은 달빛을 반사하며 공중을 날며, 아서의 근처에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파우스트

아서, 검에 정화 마법을 걸고 묘로 돌려놓도록!

 

아서

알겠어!

 

아서가 검을 재빨리 손에 넣자, 로랑은 괴로워하며 혼이 찢긴 듯 절규를 내지른다.

그러자 호응하듯이 대지가 흔들리기 시작해, 다수의 덩굴과 망령들이 아서를 노리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현자

아서, 위험해...!

 

아서

윽...!

 

---그때, 아서의 앞에 뛰어든 그림자가 있었다.

 

카인

아서 님!

무사하십니까...!

 

아서

고마워, 카인! 덕분에 살았어!

 

아서는 카인에게 등을 향하며, 아래에 있는 묘석을 확인한다. 그리고 검을 겨누며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아서

옛 영웅, 기사 로랑이여. 지금, 다시금 땅에 잠들어라!

《파르녹턴 닉스지오》!

 

달빛 속에서, 아서가 다시 주문을 외운다.

그 순간, 커다란 바위에 깊이 꽂혀있는 검이 보였다.

순도 높은 금속이 부딪친 듯한 소리가 주변에 울려퍼진다.

 

현자

...!

 

그리고 순식간에 주변은 새하얀 빛에 둘러싸여, 눈부심에 무심코 눈을 감았다.

 

마을 사람

로랑 님! 저희들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로랑 님이 계셔서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병사

로랑 님은 저의 우상입니다! 아들도, 당신처럼 훌륭한 기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구요.

 

주군

로랑, 항상 고맙네.

자네가 옆에 있어서, 나는 안심할 수 있어.

자네 같은 기사가 곁에 있어주다니, 난 정말로 행복하다네. 앞으로도 내 옆에 있어주게나.

의지하고 있다네, 나의 기사 로랑.

 

눈부신 빛이 천천히 사라지자, 방금까지의 격렬함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침묵이 주변을 채우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자, 어느샌가 로랑의 망령은 모습을 감췄다.

아까까지 끊임없이 솟아나오던 망령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현자

방금 건...

 

파우스트

...생전의 로랑의 모습이겠지.

 

현자

(방금 게, 로랑의 진짜 모습...)

 

타오를 것 같던 붉은 머리와 눈을 한 장신의 청년은, 어딘지 카인과 비슷한 분위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기사와 신의의 콘체르토~중앙 나라&동쪽 나라~

 

네로

어이, 이 녀석은 진심이라고. 아직 말할 수 있는 입이 있을 때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낫지 않겠냐.

거기다 마법사가 동료로 있었으니 알잖아? 반항해봤자 쓸모없는 짓이야.

우리는 마법으로 기억을 무리하게 꺼내도 되는 걸 일부러 물어본 것 뿐이라고.

 

언변은 뛰어났지만, 네로의 눈에서는 위협이 느껴진다.

우리의 위협이 충분히 전해진 것일까. 도적들은 마지못한 모습으로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도적

...<거대한 재앙> 때문에 원래 살던 아지트가 무너져버려서 거점을 이 숲으로 바꿨어.

처음엔 그냥 얼굴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놈들, 웃길 정도로 좋은 반응을 해서 말야...!

 

도적들의 말로는, 갑옷을 입은 도적에게 습격받은 마을 사람은 그들을 기사 로랑의 망령이라고 굳게 믿어서 포학의 기사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그것이 도적들에게도 형편이 좋았기에 그대로 거짓으로 로랑이라 칭하며 금품을 빼앗아 마을 사람들을 놀리며 지냈다고 한다.

 

히스클리프

너무해...

 

파우스트

상상이상으로 악독하군.

 

도적

이걸로 만족했냐. 그럼 슬슬 집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시노

뭐? 뭐라는거...

 

도적

얘들아, 지금이다! 금발 꼬맹이랑 그 옆에 있는 놈을 인질로 잡아!

 

그 말과 함께 수풀의 그림자에서 두 사람의 도적이 뛰어들어 그대로 나를 향해 왔다.

 

현자

어...!?

 

리케

혀, 현자 님! 제 뒤로... 윽!

《산레티아...》

 

그러나 그 순간. 빛의 막 같은 것이 우리를 둘러싸듯 눈 앞에 펼쳐졌다.

 

도적

뭐야 이건!?

 

결계처럼 펼쳐졌던 빛에 도적이 닿은 순간 탁탁하는 전격 같은 소리가 터지며, 그들을 멀리 날려보냈다.

 

도적

크악...!?

 

현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죠...?

 

리케

아...! 분명 클로에와 오즈의 수호마법인 거예요, 현자 님.

그렇죠, 오즈! 감사합니다!

 

오즈

...아아.

 

도적

젠장...!

 

그들은 도망치듯 수풀 깊은 곳으로 향한다.

 

시노

로랑의 묘 방향으로 갔어! 쫓아간다!

 

네로

자, 잠깐 기다려...

으음, 이 포로들은 어쩌게? 방치해도 되나?

 

파우스트

어쩔 수 없지. 눈을 떼면 위험하다.

전원 데리고 간다.

 

네로

엑... 어떻게?

 

파우스트

너, 마법사잖냐. 마법을 써라.

귀찮게 굴지 마.

 

히스클리프

네로, 나도 도울게!


도적

젠장, 이쪽으로 오지 마!

 

수풀을 빠져나가자, 도적 한 명이 검처럼 보이는 무언가의 앞에 서서 우리들을 노려보았다.

 

도적

네놈들 전부, 이걸로 죽여주마!

 

시노

흥, 그런 걸로 우리에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거기다 겨우 두 명이서.

 

아서

단념해라. 너희들에게 승산은 없어.

 

도적들은 둘이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억지로 검을 뽑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 검은 커다란 바위에 꽂힌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도적

젠자앙...! 안 뽑히잖아 이거.

장난치냐고!

 

화풀이하듯 검에 침을 뱉는다. 그 순간---.

 

현자

어...!?

 

갑자기 중력이 증가한 것처럼 숲이 삐걱대고, 주변에서 단말마 같은 섬뜩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현자

(뭐야... 갑자기 공기가 무거워졌어...!?)

 

아서

이건...

 

이변을 눈치 챈 아서가 나를 감싸듯 한 걸음 물러섰다.

그 때, 녹슨 검이 꽂힌 곳에서 갑자기 검은 연기 같은 것이 뿜어져 솟아나와, 도적들은 허둥대며 검을 놓는다.

 

도적

힉...!

 

이윽고 연기가 묘 전체를 덮자, 안에서 한 순간 은색의 빛이 예리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오즈

검을 더럽힌 건 시작에 불과하다. 놈들은 오랫동안 죽은 자의 존엄을 모독해 왔다.

저건, 지금 강한 분노에 사로잡혀 있다. 틀림없이 포학의 기사다.

 

현자

그 말은...

 

카인

저건... 진짜 롤랑인건가...?

 

모두가 숨 죽인 가운데, 검은 연기가 흩어져간다.

그러자 그곳에는 불길한 안개를 두른 갑옷투구의 기사가 서 있었다.

 

도적

이, 이쪽으로 오지 마! 이 괴물!

 

도적은 필사적으로 로랑에게서 도망치려고 한다.

하지만 갑옷투구의 무거움 같은 건 전혀 느끼지 않는 듯한 속도로 그는 도적 가까이 서 있었다.

로랑은 짐승처럼 포효하며 주저 없이 검을 내려친다. 도적의 목숨이 지금이라도 끊어질 것 같을 때.

 

카인

멈춰!

 

카인은 투구갑옷 기사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받아내어 쳐 넘겼다.

 

망령

그아아아아....!

 

도적

우, 우와아악! 죽는다...! 도, 도와줘!

 

아서

이건...

 

히스클리프

검은 그림자가 지면에서 엄청나게 올라오고 있어...!

 

오즈

로랑의 사악한 기운에 이끌린 죽은 자들의 혼인가.

 

아서

큭... 《파르녹턴 닉스지오》 !

 

주문을 외우자 아서가 손에 든 단검이 밝은 빛을 내뿜는다.

그리고 그는 도적들이 다치지 않도록 민첩한 몸놀림으로 망령만을 베어넘겼다.

 

망령

그으으으으...

 

가냘픈 신음소리를 낸 망령은 아서에게 베인 부분부터 희미한 빛을 띠어간다.

그것은 서서히 망령의 몸에 스며들어, 이윽고 그들은 세빙처럼 반짝이며 조용히 사라져갔다.

 

리케

《산레티아 에디프》!

 

검에 빛을 휘감은 리케는 아서를 따라 검을 겨눈다. 그 동작은 약간 어설프고 그의 눈동자에는 두려운 기색도 섞여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른다. 그 모습에, 카인과 똑같이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기사와 신의의 콘체르토~중앙 나라&동쪽 나라~

 

리케

교단의 가르침에 따른다면, 폭력을 생업으로 하는 자는 근본부터 사악하다고 단정짓고 있었어요.

하지만 마법관에 오고서 기사의 일에 긍지를 가진, 모두를 지키려고 하는 카인의 모습을 보고...

기사는 제가 생각하던 것보다 나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하게 되었어요.

카인은 제 간식도 가끔 착각해서 먹어버리고, 방도 그닥 깨끗한 경우가 별로 없는 덜렁이이지만...

 

현자

(그 부분은 할 말이 많은 것 같네...)

 

리케

저도 카인처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자신이 되자고 생각하는 게 똑같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말에는 선망이 담겨있었고, 눈동자에는 강한 의지가 어려있었다.

 

현자

리케라면 분명 될 거예요. 왜냐면 지금도 우리를 이렇게나 지탱해주고 지켜주고 있잖아요.

 

리케

네! 전 말이나 기도, 저 나름의 방법으로 모두를 도와서 이끌어주고 싶어요.

 

우리가 얼굴을 마주보고 웃던 그 때---.

 

현자

...!

 

리케

지금 건...!

 

수풀에서 들려온 수상한 소리가 난 방향으로, 두 사람은 시선을 향했다.

 

현자

엇....

 

그러자 낡은 갑옷을 입은 커다란 그림자가 위압감을 내뿜으며 지그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까만 숲 속에 나타난 뚜렷한 이형의 존재. 그것은 틀림없이 무서운 망령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오오 오오오....

 

현자

(이, 이게 포학의 기사...!)

 

리케

...윽, 현자 님...!

 

맞잡은 손에 리케가 꽈악 힘을 준다. 눈치채니 서로의 손바닥에 흥건히 땀이 번지고 있었다.

 

현자・리케

........

 

팽팽한 상황 속에서 한 순간 리케와 아이컨택을 한다.

도적을 발견했을 때에 동료들에게 알릴 신호를, 우리는 여기 오기 전에 모두와 정해뒀었다.

 

???

내 이름은 포학의 기사, 로랑...

 

포학의 기사가 낮은 목소리로 이름을 대고, 손에 들고 있던 예리한 검을 이쪽으로 향했을 때---.

 

현자・리케

와아아악!

 

나와 리케는 깊이 숨을 쉬고, 힘껏 신호를 보냈다.

 

카인

《그라디아스 프로세라》 !

 

카인의 주문이 들린 순간, 우리의 방패가 되듯 격렬한 모래폭풍이 휘몰아쳤다.

 

???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카인

아키라, 리케! 괜찮아?!

 

현자・리케

네!

 

시노

나왔구나, 도적놈들. 당장 전원 토벌해주지!

 

???

우, 우왓...!?

 

시노가 휘두른 대낫을 피하려고 했기 때문일까, 포학의 기사의 자세가 무너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히스클리프가 주문을 외웠다.

 

히스클리프

《레프세바이블프 스노스》 !

 

그러자 마법이 걸린 나뭇가지들이 움직여, 그 투구를 벗김과 동시에 신체를 묶어 올렸다. 

 

???

크윽...! 이거 놔!

 

예상대로 갑옷을 입고 있던 것은 살아있는 인간이었다. 네로의 예상이 맞았던 것이다.

 

현자

(역시 로랑의 망령이 한 짓이 아니었어...)

 

시노

흥, 악당의 얼굴이네. 이 놈이 도적인 건 틀림없겠지.

 

네로

시노 군. 악당의 얼굴이란 건 동의하지만 편견은 좋지 않다고.

 

도적

뭘 느긋하게 이야기 하고 앉았냐!

얕보기는... 이놈들, 적이다! 싹 다 죽여버려!

 

도적들

우오오오옷!

 

그 목소리에 호응하듯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던 수풀에서 수십명의 도적들이 나타난다.

 

현자

이, 이렇게나 숨어 있었다니...

 

리케

현자 님, 저에게서 절대로 떨어지지 마세요!

 

담배를 피우던 몸집이 큰 장년의 도적이 아서의 앞을 가로막았다.

 

마법사 도적

네놈들 마법사냐? 재밌네, 이 은발 놈은 내가 상대해주지.

 

아서

너도 같은 마법사인 것 같네...

하지만 약한 자들을 상처 입히기 위해 신비한 힘을 사용하는 건, 결코 용서받을 일이 아냐.

대가를 치러줘야겠어.

 

마법사 도적

하, 대가라고? 그딴 거 알바냐!

 

도적이 주문같은 말을 외자, 아서의 옆에 있던 커다란 바위가 떠올랐다.

하지만---.

 

아서

《파르녹턴 닉스지오》!

 

마법사 도적

으아아악!

 

아서의, 벼락과도 같은 공격마법은 아주 간단히 상대 마법사에게 맞았다.

방금까지의 위세가 거짓인 것처럼 싱거웠다.

제어를 잃은 바위가 아무도 없는 장소로 떨어지고 커다란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도적

젠장, 저 놈, 마법사인 주제에 쉽게 지고 말이야...

 

오즈

《복스...》

 

도적

!

 

오즈

........

 

도적

크악!

 

히스클리프

이, 있는 힘껏 칼자루로 때리다니... 아프겠다...

 

시노

특이한 사용방법이군.

 

그 후에도 현자의 마법사들은 압도적으로 도적들을 쓰러뜨려 갔다.

도적들은 전원 기절해서, 승패가 결정되는 데에 그닥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노

이걸로 끝인가.

 

히스클리프

응. 제법 많은 숫자네...

마법사가 있었다고 해도, 잘도 지금까지 정체가 들키지 않았네.

 

로프로 둘둘 말린 채 욕지거리를 내뱉는 도적들 앞에서 아서가 냉엄한 시선을 향한다.

 

아서

너희들이 이 숲에서 한 일들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듣도록 하지.

 

도적들

.......

 

시노

싫다면 무리하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힘으로 말하게 해줄 테니까.

 

시노가 뻔뻔스럽게 웃으며 그들의 눈 앞에 아슬아슬하게 대낫을 휘둘러 꽂았다.

 

도적

힉...!?

기사와 신의의 콘체르토~중앙 나라&동쪽 나라~

 

카인

도적?

 

오즈

살아있는 자의 짓이란 말인가.

 

네로

그래. 인기척 없는 으슥한 곳에 몇 사람의 발자국을 지운 흔적이 있었어.

나무 뿌리에는 밟힌 듯한 흔적이 겨우 남아 있었을 뿐이야.

 

카인

그렇구나... 잘도 알아챘네.

 

네로

빈틈없이 숨기려고 한 흔적은 있었지만 완벽하게 숨기지는 못했다고.

그렇기 때문에 그건 도적의 소행이라고 가르쳐주는 것과 같은 거지.

 

아서

숲에 도적의 모습은 없었어?

 

시노

우리가 갔을 땐 인기척도 사람 그림자도 없었다.

 

네로

아마 훔친 물건을 팔러 간 것인지, 침묵의 숲에는 밤에만 오는 것 같아.

들은 얘기에 의하면, 포학의 기사는 밤에만 나타난다는 것 같아.

 

카인

네로. 다음에 그놈들이 움직인다면 언제일까.

 

네로

가장 빠르다면 오늘 밤이려나. 다만...

 

네로는 생각하듯 입가에 손을 갖다대었다.

 

네로

지금까지 피해가 많이 나와버렸어. 평범한 도적이라면 훨씬 전에 정체가 들켜서 더욱 소란스러워졌을 거야.

그런데도 지금까지 들키지 않은 걸 보면, 도적 중에 증거인멸이 특기인 마법사라도 있는 걸까.

 

현자

(도적 중에 마법사가...)

 

네로의 말에 긴장이 흐른다.

 

리케

그렇다고 해도, 저희가 반드시 잡겠어요.

 

시노

리케의 말대로다. 도적이든 마법사이든 관계없어.

전부 토벌해주지.

 

파우스트

토벌은 하지 마.

우선은 어떻게 도적을 붙잡을지가 관건이다. 어중간한 인원수로 마을을 돌아다니면 눈치채고 도망칠 가능성도 있어.

 

카인

마법으로 기척을 지워서 숲에 숨어서 매복하는 건 어떨까.

 

아서

아니, 도적 중에 마법사가 있다면 우리들이 마법으로 기척을 지운 시점에 눈치챌지도 몰라.

 

시노

그럼 간단하군. 미끼를 써서 도적을 유인하면 돼.

내가...

 

리케

미끼 역할은 제가 하게 해주세요!

 

리케가 씩씩한 얼굴로 이름을 댔다.

 

시노

네가? 그렇게나 약한데?

 

리케

야, 약하지 않아요! 오즈의 훈련으로 쓸 수 있는 마법도 꽤 많아졌으니까요.

 

시노

뭐어, 약한 녀석인 편이 미끼 역할에는 어울리긴 하지.

상대도 방심할테고.

 

히스클리프

시노! 그 이상 리케에게 실례되는 말 하지 마.

 

시노

사실일 뿐인걸. 그렇지, 오즈.

 

오즈

...적은 주저없이 네 목숨을 노리고 올 거다. 그래도 그 역할을 맡을건가.

 

리케

네. 저도 현자 님의 마법사이니까요.

다수의 위험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카인

.......

 

현자

(약한 편이 미끼에 알맞다... 그렇다면...)

저기! 저도 리케와 함께 가게 해주세요.

 

리케

현자 님...

 

현자

저는 평범한 인간이고, 도적들의 표적에 알맞다고 생각해요.

조금이라도 빨리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서, 저도 뭔가 힘이 되고 싶어요. 부탁드려요...!

 

곤혹스러운 분위기 속, 처음으로 끄덕여준 것은 카인이었다.

 

카인

 나는 맡기자고 생각해. 두 사람의 말도 각오도 믿음직해.

분명 작전도 잘 해낼거야.

 

리케

물론이예요! 현자 님과 함께 도적들을 멋지게 유인해낼게요.

 

파우스트

...알겠다. 그렇지만 두 사람 다 무모한 짓만은 하지 않도록.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우리를 부르고.

 

현자

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

 

오즈

《복스노크》

 

현자・리케

와앗...!?

 

그러자 나와 리케에게 걸쳐져 있던 옷이 한순간 강한 빛을 발산하고, 뒤덮듯이 가느다란 온기를 머금었다.

 

현자

오즈, 무슨 마법을 걸어준 건가요?

 

오즈

클로에가 옷에 건 수호마법을 강화했다. 결계와 똑같이 밤이 되어도 효과는 지속된다.

 

현자

그런 일도 가능하군요...!

 

리케

오즈, 감사합니다.

하지만 오즈도 좀 있으면 마법을 쓸 수 없게 되니까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오즈

.......

 

아서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리케. 오즈 님은 내가 지킬테니까.

그렇지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만약을 대비해 제 검을 들고 가 주세요.

 

아서가 공중에 손을 뻗자 단검이 나타난다. 싱긋 미소 지으며 그것을 오즈에게 건넸다.

 

시노

어이, 당신. 검을 쓸 줄 알아?

 

오즈

다소 물리공격을 할 수 있을 정도다. 아직 잘 다루진 못한다.

 

파우스트

당신 입에서 물리공격이라는 말을 들으니 왠지 신선하군...

 

네로

그래도 최강의 마법사가 검을 들면 심상치 않은 박력이 있네...

 

시노

흥. 분명히 내 대낫이 더 멋있다고.

 

히스클리프

넌 왜 오즈 님과 대결하고 있냐고...

 

그렇게해서 우리들은 도적 체포를 위해 몇 개인가의 작전을 세우고 밤이 오는 것을 숲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리케

현자 님, 길이 구불구불하니까 주의하세요.

 

현자

고마워요, 리케.

 

밤도 깊어지고 포학의 기사가 나온다고 하는 시각.

나와 리케는 도적을 유인하기 위해 울창한 침묵의 숲속을 그저 조용히 걷고 있었다.

 

현자

(리케의 랜턴이 없으면 새까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지도 몰라.

좀 무섭네...)

 

리케

현자 님. 떨어지지 않도록 제가 손을 잡아드릴게요.

 

꼬옥 내 손을 쥔 그 힘은, 평소보다 조금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서운 건 리케도 똑같을지도 모른다. 그런 리케의 버팀목이 되고 싶어서 손을 마주잡았다.

 

현자

힘내자구요, 리케...

 

리케

...네.

저어, 현자 님.

저, 어떻게 해서라도 이 이변을 해결하고 싶어요.

 

현자

그건 카인을 위해서인가요?

 

리케

아... 어떻게 아셨어요?

 

현자

이 의뢰를 받고나서 리케는 자주 카인을 보고 있던 것 같아서요.

거기다 저도 같은 마음이니까요.

 

리케

...로랑에 관해 나쁘게 말해서 카인이 슬퍼하는 건 싫었어요.

거기다 기사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할 때, 왠지 카인에게 악담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리케는 걱정하듯 눈썹을 찌푸리며 밤의 산길로 시선을 향했다.

기사와 신의의 콘체르토~중앙 나라&동쪽 나라~

 

아서

《파르녹턴 닉스지오》

 

루스타

...!

통증이 없어졌어...?

 

아서

일시적인 처치는 되었지만 통증을 완화시키는 마법을 걸었어.

 

루스타

...그렇군. 고맙다.

아주 좋아졌어.

 

아서

신경쓰지 않아도 돼. 그렇지만 당신에게는 확실한 치료가 필요해.

그 팔의 상처는 깊어보여.

 

루스타

.......

 

그는 망설이는 기색을 보인 뒤, 이윽고 머뭇거리며 왼팔을 보여준다.

방금 전까지 감겨있던 붕대는 길이가 부족한지 상처를 완전히 감싸지 못한 채,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리케

윽, 아프겠다...

 

현자

(엄청 심한 상처야...)

 

곪은 상처는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보기 힘든 것이었다.

 

오즈

그 상처는 포학의 기사에게 당한 건가.

 

씁쓸함과 괴로움이 번진 얼굴로 루스타 씨는 주저하며 말을 계속했다.

 

루스타

아아, 그래. 이건... 포학의 기사에게 당한 거야.

 

카인・리케・아서

.......

 

루스타

약을 사려고 해도 마을의 비축품은 이젠 없어. 다른 마을이나 도시와의 교류가 끊겼으니까 조달이 오는 것도 불가능해.

 

아서

그렇구나... 당신에게는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했구나.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이변을 해결해서 금방 물자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할게.

그러니까 부디 그때까지 버텨줘.

 

루스타

.......

 

아서의 진지한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루스타 씨는 아까보다 경계심이 풀어진 것 같았다.

 

루스타

저기 말이야... 당신들 나에게 포학의 기사에 대해서 듣고 싶었었지?

 

그리고 그는 무언가를 망설이듯 잠시 눈을 굴린 뒤, 천천히 우리를 본다.

 

루스타

.......

내가 알고 있는 거라도 괜찮다면 말할게.

 

카인

괜찮겠어?

 

루스타

더이상 두번 다시 떠올리기 싫은 건 진짜야.

그래도 이대로면 또다시 누군가가 습격받을지도 모르니까...

 

카인

루스타... 고마워.

 

루스타 씨는 카인의 말에 작게 끄덕이곤 띄엄띄엄 말하기 시작했다.

 

루스타

...그건 내가 마을에서 채집하는 수확물을 가까운 마을에 팔러 갔다가 돌아왔을 때의 일이야.

 


 

루스타

...응? 뭐야, 이 소리.

금속 같은... 우왓!?

 

포학의 기사

오오 오오오....

나는, 나야말로... 포학의 기사, 로랑...

...여주마... 죽여주마, 죽여주마...!

 

루스타

우와아아악!!


오즈

.......

 

루스타

처, 처음에, 나는 공포로 눈앞이 새까매져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어...

하지만 검에 베인 통증에 정신이 돌아온 나는 짐을 전부 버리고 미친듯이 도망쳤어.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면 죽었을거야.

 

카인

........

 

이야기 해준 처참한 사건에 말문이 막혔다.

루스타 씨는 왼팔에 손을 뻗으면서 모호한 말을 계속했다.

 

루스타

마을로 돌아왔을 때의 나는 피투성이어서 무척이나 핼쑥한 얼굴이었다더군...

마을 놈들에게 내가 망령이라고 착각될 정도로 말이야.

 

아서

그랬구나... 무척 괴로운 일이었겠네.

 

루스타

...나 뿐만이 아냐. 나보다 피해를 심하게 입은 녀석들도 많이 있어.

그 중엔 지금도 혼수상태인 녀석도 있어... 포학의 기사는 절대로 용서 못해.

 

루스타 씨의 목소리에서는 괴로움과 함께 강한 분노도 느껴졌다.

피해 입은 마을 사람들 중에는 그의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루스타

하지만 상대는 괴물이다. 내 힘으로는 어차피 이길 수 없어.

언젠가 그 놈에게 죽게 될 것을 기다릴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당신들은 포학의 기사를 쓰러뜨려 줄 건가...?

 

카인

그건...

 

리케

네. 저희가 반드시 포학의 기사를 쓰러뜨리겠습니다.

 

가슴이 아플 정도로 절실함이 흘러넘치던 루스타 씨의 말을 듣고 리케가 누구보다도 먼저 끄덕였다.

 

리케

사람들을 공포에 빠뜨리고 위해를 가하는 짓을, 신에 맹세코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거기다 제가 아는 기사란, 사람을 슬프게 하는 일 같은 건 절대로 하지 않으니까요.

 

아서

맞아. 리케의 말대로 진짜 기사는 고상하고 긍지 높은, 멋진 존재야.

그렇지, 카인?

 

카인

.......

 

두 사람의 말에 카인이 눈을 동그랗게 뜬 뒤, 햇살처럼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크게 끄덕였다.

 

카인

아아, 물론. 루스타, 실은 나도 기사야.

 

루스타

어...

 

카인

라고 말해도, 정확하게는 전 기사지. 전에는 중앙 나라의 기사단에 있었어.

그러니까 나는 로랑의 마음을 알 것 같아.

로랑이 어떤 최후를 맞았더라도, 가장 사랑하는 주군을 지켜냈다면 분명 망령따위 되지 않았을 거야.

 

카인은 흔들림 없는 신념을 담아 단언한다.

그것은 그가 기사단을 나온 지금도 기사라는 일에 긍지를 가지고,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루스타

.......

 

루스타 씨는 처음으로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리고 깊게 머리를 숙였다.

 

루스타

제발 부탁이야. 우리들에게 재앙을 가져온 저 두려운 망령을 물리쳐줘...

 

카인

그래, 맡겨줘!

 


 

히스클리프

현자님, 돌아왔습니다.

 

현자

어서오세요, 여러분.

 

리케

숲 속에 망령의 정체를 밝힐 단서가 있었나요?

 

시노

어. 커다란 수확이 있었던 것 같다고.

 

네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사 씨, 당신이 말했던 건 틀리지 않았던 것 같아.

 

카인

...무슨 소리야?

 

파우스트

포학의 기사의 정체는 로랑이 아냐.

 

현자・중앙의 마법사들

!!

 

파우스트

포학의 기사는... 아니, 숲 속에서 무차별하게 인간을 습격한 것의 정체는, 아마도 도적이 틀림없다.

기사와 신의의 콘체르토~중앙 나라&동쪽 나라~

 

네로

일단 좀 더 조사는 계속하는 게 좋겠네.

포학의 기사라는 놈을 토벌하려면 역시 실제로 포학의 기사를 만난 녀석의 이야기를 듣고싶어지잖아.

정체가 무엇이든, 그 위험한 망령을 토벌하기 위한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고.

 

파우스트

그럼 일단 두 팀으로 나뉘도록 하지. 로랑의 묘가 있는 숲의 조사와 주민들의 탐문조사다.

 

아서

그게 좋겠네. 그럼 중앙의 마법사들은 계속해서 주민들에게 탐문조사를 하자.

현자님께서도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현자

물론이죠!

 

아서

동쪽의 마법사들에게는 침묵의 숲 조사를 부탁해도 될까?

 

시노

알겠어. 큰 배에 탔다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히스클리프

나중에 또 합류하자. 카인 일행도 조심해.

 

시노를 선두로 숲을 향해 걸어가려는 동쪽의 마법사들.

그 맨 뒤를 걸어가던 파우스트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카인을 보았다.

 

파우스트

카인.

 

카인

응? 왜그래.

 

파우스트

...네가 동경하는 기사를 일부러 깎아내려던 건 아니다.

로랑이 긍지 높은 기사였다는 건 나도 들은 적 있다.

다만 때론 진실은 이야기나 전설따위보다 훨씬 괴롭고, 잔혹하다. 그것만은 기억해둬라.

 

카인

...그래, 알고있다고. 고마워, 파우스트.

걱정 끼쳐서 미안.

전부터 생각했지만 당신은 의외로 상냥한 녀석이구나!

 

파우스트

뭐? 착각 하지마라. 나는...

 

시노

파우스트, 빨리 와! 두고 간다.

 

카인

자, 부르고 있네.

 

파우스트

하아...

 


 

네로

그건 그렇고, 이름대로 정말 조용한 숲이구만. 울창하다곤 해도 생물의 기척도 별로 없고...

 

시노

그래도 묘한 냄새가 나.

 

파우스트

...우선은 로랑의 묘라는 게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해 두는 게 좋겠지. 가자.

 

네로

응?

 

히스클리프

왜그래? 네로. 저쪽에 뭔가...

 

네로

으음, 글쎄...

일단 난 잠깐 저쪽을 보고와도 될까.

 

파우스트

...나도 같이 가는게 낫나?

 

네로

아냐, 나 혼자서도 충분해. 선생 일행은 묘지 찾는 걸 부탁할게.

금방 합류할테니까.

 

파우스트

...알겠다. 다칠 일은 하지 말고.

 

네로

하하, 알고 있다니까. 나중에 보자.

 


 

히스클리프

꽤나 탁 트인 장소네요. 거기다 왠지, 아까와는 공기가 다른 듯한...

 

파우스트

그렇군. 히스, 상태는 괜찮나?

 

히스클리프

네. 이 주변은 신성 때문에 맑은데도, 카인이 검술 연습을 하던 때처럼 예리하고 팽팽한 느낌이 들어서...

침착해진달까, 왠지 안심되네요. 망령이 나타난다는 숲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요.

 

파우스트

...

 

시노

어이, 저기에 뭔가가 꽂혀있어. 저건, 검이군.

 

히스클리프

정말이다... 왜 이런 장소에...

 

시노

이 검, 꽤 녹슬고 풍화돼 있어. 한동안 손질된 흔적도 없고.

 

파우스트

시노, 함부로 만지지마라.

아마도 이게, 롤랑의 묘인 것 같다.

 

시노

이게...?

 

히스클리프

우왓, 뭐, 뭐야!?

 

네로

하아, 드디어 찾았다. 꽤 먼 곳까지 왔었구나.

 

히스클리프

네로였구나... 다행이다...

 

시노

망령이 아니라 다행이지?

 

히스클리프

시, 시끄러.

 

파우스트

자자, 싸우지 말고. 그럼, 네로.

뭔가 수확은 있었나?

 

네로

뭐어 그래. 그보다도 그 검 같이 생긴 건 설마...

 

파우스트

그래. 이게 롤랑의 묘다.

하지만 들었던 얘기랑은 좀 달라.

이 묘에 잠든 롤랑이 사람을 습격하는 망령이 되었다면 이 주위에서 좀더 사악한 느낌이 있었을 터.

그런데 오히려 반대다. 히스도 방금 말했지만 이 주변 일대에 신성하고 청아한 기운이 감돌고 있어.

 

네로

...과연. 그렇다면 퍼즐조각이 맞춰진 것 같네.

 

히스클리프

퍼즐조각?

 

네로

모두가 모이면 말해줄게. 우선 현자 님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동쪽의 마법사들과 두 팀으로 갈라진 후. 나는 중앙의 마법사들과 함께 주민들에게 탐문을 계속했다.

 

카인

다들 좀처럼 우리와 얘기해주질 않네.

 

리케

앗... 설마 오즈의 얼굴이 무서워서 그런걸까요.

 

오즈

......

주민들의 마음에 불안과 공포가 휘몰아치고 있다. 그 영향이다.

 

리케

아, 알고있어요. 방금 건 농담이예요.

 

오즈

그런가.

 

아서

전 처음부터 농담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오즈님께서는 무척이나 상냥한 얼굴이시니까요.

 

현자

아하하.

어라, 저쪽에 루스타 씨가 계시네요.

 

아서

그렇네요. 하지만 주저 앉아 있고, 조금 상태가 이상한 듯한...

 

리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몰라요. 가보죠!

 

그는 우리를 눈치채지 못한 모습으로, 아픈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왼팔의 붕대를 다시 감고 있었다.

 

현자

저기... 괜찮으신가요?

 

루스타

앗! 당신들은...!

 

거부하듯 시선을 돌리는 루스타 씨에게, 카인과 아서가 상냥히 말을 건다.

 

카인

아까는 미안했어. 당신의 마음도 모르고 무례한 태도를 취해서...

 

아서

하지만 우리는 너에게 상처를 줄 생각이 없어. 주저앉아 있는 것 같길래 걱정이 들었어.

 

루스타

그건...

 

루스타 씨는 망설이는 표정을 띠며 자신의 팔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리케

팔의 상처가 아픈가요?

 

루스타

...!

 

리케의 질문에 그는 숨을 삼킨다. 아서가 걱정하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그 손을 잡아서 주문을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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