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자샤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 교회에는 우리들만이 남았다.

새벽이 오기 전까지 시노와 히스클리프도 꽤 회복해 있었다.

마을 주변에 마법진 준비를 갖춘 파우스트와 네로도 돌아왔다.

성스러운 축제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파우스트

그럼 시작하지. 무슨 일이 생길 때는 부탁하겠다.

 

미스라

알겠습니다.

 

파우스트는 눈을 감았다.

 

파우스트

《사틸크나트 물크리드》

 

현자

.......!

 

세상에서 빛이 사라지고, 쿵하며 몸이 무거워졌다.

느껴본 적 없는, 거친 충격이 엄습한다.

몸이 산산이 부서질 것 같은, 쭈욱 길게 늘려지는 것 같은, 작은 폭발이 여러개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엄청나게 무서워져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무척 외로워져서 고립된 불안감과, 초연한 단단함을 느꼈다.

 혼자만의 시간에서만 알 수 있는, 갈고닦인 자신의 감각이 강해져간다. 자신과 비슷한 기척이 가까이 다가온다.

 

현자

.......!

 

확 눈을 뜨자, 그곳은 신전이었다.

별과 달빛밖에 없는 고독한 신전이다. 그런데도 들어본 적 없는 음색이 들려온다.

성스러운 축제의 음색이다.

동쪽의 마법사들이 소리 높이 주문을 외우자 그들의 몸이 희미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시노

《맛차 스디파스》

 

히스클리프

《레프세바이블프 스노스》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파우스트

《사틸크나트 물크리드》

 

어느새 나타난 북쪽의 마법사들도 동쪽이 마법사들을 지원하듯 주문을 외운다.

 

미스라

《아르시무》

 

오웬

《크레 메미니》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슴》

 

스노우・화이트

《노스콤니아》

 

그러자 별들의 빛보다도 눈부시게 태고의 신전이 빛나기 시작했다.

커다란 빛의 기둥이 신전 중앙에 우뚝 선다.

마법사들을 감싸는 희미한 빛이 반짝반짝 빛나며, 유성처럼 커다란 기둥으로 빨려들어갔다.

번쩍거리는 눈부심에 시야가 하얗게 희미해져간다...

이렇게해서, 동쪽 나라의 성스러운 축제는 끝났다.

 


 

네로

하아... 드디어 마법관으로 돌아갈 수 있어...

 

파우스트

시노, 히스, 부상은 괜찮아졌나?

 

시노

아아.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

 

히스클리프

자샤도 사과했고, 괜찮아요.

 

파우스트

...부상을 입게해서 미안했다. 너희들을 위험한 임무에 데려가는 건 앞으로 보류하도록 하지.

 

히스클리프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다음부터는 더욱 열심히 할 테니까...

 

시노

너는 선생이잖아. 그럼 좀 더 우리에게 훈련을 시켜서, 우리를 강하게 만들라고.

 

파우스트

.......알겠다.

다음 수업부턴 더욱 엄하게 하지.

 

네로

난 쉬운 쪽이 좋은데...

 

스노우

마을 사람들도 마을로 돌아왔다네! 하지만 몇 번이나 설명해도 현자의 마법사라는 걸 믿어주지 않아.

 

화이트

자기들이 <거대한 재앙>으로부터 세상을 지켜냈다고 굳게 믿어버린 모양일세.

 

스노우

지금도 저렇게, 멀찍이 둘러싸서 우리들을 보고 있다네.

 

네로

.......

저기, 당신들!

 

촌장

...뭐, 뭐냐...

 

네로

지금까지 고생했어. 당신들 덕분에 살았다고.

세상을 구해줘서 고마워.

 

촌장

........

 

네로

하지만 앞으로는 우리들이 맡게 됐어. 더이상 무서운 생각은 안 해도 돼.

당신들은 자유야. 이 마을을 개척하는 것도, 이 마을을 나가 자유롭게 사는 것도 가능해.

 

촌장

...미... 믿을 것 같냐... 마법사의 말 따윌...

 

자샤

믿어요!

 

촌장

...자샤...

 

자샤

전 믿어요... 현자의 마법사 분들...

마을을 구해줘서 고마워요.

 

시노

또 보자, 자샤. 중앙 나라에 올 일이 생기면 마법관을 방문해.

 

히스클리프

블랑솃에도 놀러와.

 

시노와 히스클리프가 자샤에게 손을 흔든다. 맑은 눈동자로 자샤도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다.

 

브래들리

그러면, 돌아가볼까.

 

미스라

그런데 오웬. 강한 마력의 기척이 당신의 트렁크에서 납니다만, 희소가치가 높은 마나석이라도 들어있나요?

 

오웬

몰라. 기분 탓 아냐?

너야말로 그 커다란 물고기의 시체는 어떡하게?

 

미스라

마법관에서 구워볼까해서.

 

네로

어이어이, 부엌은 쓰지 말라고...

 

힘들었던 임무가 끝난 직후이지만, 화목한 대화에 나는 무심코 웃었다.

올려다보니 선명한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되살려야 하는 태고의 신전은 앞으로 2개...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현자

시노! 시노, 정신 차려요...!

 

시노

...윽, 히스는...?

 

현자

무사해요. 오웬, 시노를 도와주세요!

 

오웬

헤에. 이 마법사의 돌, 대단한 마력이잖아.

왜 부서지지 않았을까? 죽기 직전에 마법으로 형태를 유지한걸까?

혼자서 돌이 되는 건 외로우니까 누군가가 눈치채주길 바란 걸지도 모르겠네. 후후.

나, 여기서 죽었어 라고.

 

현자

오웬...! 시노가...!

 

자샤

...저, 상처를 지혈할게요. 시노...

시노, 힘을 내.

 

현자

자샤... 고마...

.......!

...물고기 머리가, 3개나 나타났어...!

 

자샤

...헉, 이... 이젠 끝났어...

 

오웬

다수의 레모라... 마력이 약해져서 마법사의 돌을 노리고 왔구나.

안 줄 거야. 이건 내 거니까.

 

현자

어디 가는 건가요, 오웬!

 

오웬

이 돌을 숨길거야. 미스라가 보면 빼앗을테니까.

그런 건 절대로 싫으니까 말이지.

 

현자

부탁드려요! 도와주세요!

지금은 그럴 때가...

 

내 말을 듣지 않은 채 돌이 된 마법사와 함께 오웬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그가 사라진 장소를 바라보며, 나는 망연히 서 있는다.

 

현자

...자, 장난이지...?

 

자샤

.......! 이쪽을 향해 온다...!

 

현자

.......!

 

나는 순간적으로 떨어져있던 시노의 대낫을 주웠다.

 

현자

자샤, 물러나세요! 여... 여긴 제가...!

 

자샤

다, 당신도 마법을 쓸 수 있는건가요!?

 

현자

못 써요! 하지만 어떻게든 될 거예요!

이건 영웅의 대낫이니까...!

 

영웅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말했던 시노를 떠올리며, 기도하듯 대낫의 자루를 쥐었다.

그러자...

 

시노

...으윽, ...그 말대로다...

 

쓰러질 듯 하면서도 시노가 일어섰다. 볼이 선혈로 물들었어도 생기를 잃지 않은, 예리한 눈동자로 괴어를 노려본다.

 

시노

그걸 넘겨줘... 당신은 내가 지킨다.

그게 내 역할이야.

 

히스클리프

...현자 님... 위험해요, 도망치세요...

 

시노에 이어 히스클리프도 몸을 일으킨다. 너덜너덜하게 상처입었으면서도, 두 사람은 우리를 지키려고 했다.

가슴이 꽉 조여온다. 하지만 고맙다고도, 도망가라고 말할 틈도 없이 세 마리 거대어의 머리가 쫓아왔다.

찰나, 어둠에 달빛이 스며들듯이 늠름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파우스트

《사틸크나트 물크리드》

 

눈을 뜨자, 마도구인 거울을 공중으로 치켜든 파우스트가 우리를 감싸듯이 서 있었다.

거대어들은 거울에서 흘러나온 빛에 맞아, 어떠한 힘에 짓눌린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현자

파우스트...!

 

파우스트

늦어서 미안하다.

 

파우스트는 상처투성이인 시노와 히스클리프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을 질책하듯이 괴로운 얼굴을 한다.

 

파우스트

시노... 히스...

내가 있었는데도, 이런 꼴로...

...마무리 해주지! 지옥의 괴어놈들!

 

네로

파우스트!

 

네로의 목소리가 울리고 나는 얼굴을 들었다. 빗자루로 하늘을 날면서 네로는 파우스트의 옆에 내려선다.

상처투성이인 시노와 히스클리프를 지키듯이 등을 맞대는, 파우스트와 네로의 모습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동쪽의 마법사들은 홀로 있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상처입은 동료가 있을 때면, 동료가 위험할 때면, 망설이지 않고 달려나가서 하나로 뭉친다.

혼자서 도망치는 것도, 혼자서 숨을 수 있는데도.

그들의 그런 점이 좋다.

 

시노

...파우스트, 네로...

 

네로

열심히 했어. 이젠 괜찮아.

집으로 돌아가면 비장의 레몬파이를 구워줄게.

 

시노

...좋았어...

 

파우스트

이걸로 끝이다.

《사틸크나트 물크리드》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용솟음치는 눈부신 빛 속에서 무서운 거대어의 머리가 순식간에 검은 먼지가 되어 사라져간다.

시노의 상처를 지혈하면서 자샤는 숨 죽이며 그 광경에 넋을 놓았다.


 

거대어 세 마리가 소멸한 무렵, 남은 북쪽의 마법사들도 교회로 달려왔다.

 

스노우

마을 사람들은 안전한 장소로 피난시켰다! 현자여, 괜찮은가!?

 

미스라

다른 물고기들도 한꺼번에 죽여뒀습니다.

 

화이트

시노! 히스클리프!

아아, 이렇게 크게 다쳐선... 안타깝구나...

지금 낫게해주마.

 

시노

...꼴불견이었어...

 

쌍둥이의 치유마법을 받으면서 시노가 작게 중얼거린다. 시노는 피를 많이 흘려서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시노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현자

멋있었어요. 줄곧.

지켜줘서 고마워요, 시노...

 

시노가 살짝 웃는다. 시노가 걱정하듯이 바라본 끝에는, 히스클리프도 새파래진 얼굴로 미소짓고 있다.

 

히스클리프

나, 폐 끼친 걸까...

도중부터 기억이 애매해서...

 

시노

도끼에 베여서 의식을 잃었어.

 

히스클리프

...그것 뿐이야? 뭔가...

기묘한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

 

시노

그것 뿐이다.

 

시노는 아직 말하지 않을 듯하다.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현자

시노! 시노...!

 

기분 나쁜 거대어에게 물려서 어딘가로 끌려가는 시노를, 나는 필사적으로 뒤쫓았다.

 

시노

...큭, 도망쳐, 현자...

 

현자

싫어요...! 시노, 마법을 써요...!

 

시노

《맛차-...》

...윽, 크윽...

 

물보라와 작은 돌을 흩뿌리면서 시노를 문 거대어가 엄청난 속도로 교회 바닥 아래로 기어들어가려 한다.

나는 있는 힘껏 달렸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이제 곧, 시노에게 손이 닿을 것 같다.

 

현자

(분명 시노를 구할 수 있을거야. 지금까지 마법사에게 닿았더니 신비한 힘을 얻은 적이 있잖아)

(난 시노를 구할 수 있어! 그러지 않으면, 안 돼...!)

 

손끝을 필사적으로 시노에게 뻗는다.

그러나 닿을 것 같던 순간, 등 뒤에서 충격을 받아 나는 넘어졌다.

 

현자

...윽. ...히스...

 

내 위에 올라탄 히스클리프가 차가운 두 눈으로 입맛을 다신다.

금발이 반대로 검게 변해간다.

 

시노

...현자...! 히스...

 

괴로워하는 시노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더이상 안 될 것 같다, 라고 생각했다.

그 때...

사납게 우는 개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현자

.......!

 

3개의 머리를 가진 커다랗고 늠름한 개가, 옅은 어둠을 빠져나가 거대어의 목덜미를 물었다.

 

현자

(뭐야!? 저 개...!?)

 

거대어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격렬하게 몸을 뒤틀었다. 그리고 커다란 입을 쩌억 벌린다.

피투성이의 시노가 그곳에서 굴러떨어졌다.

 

시노

...으, 으윽...!

 

현자

시노...!

 

시노의 곁으로 달려가려고 해도, 히스클리프에게 눌려있었기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 때에, 탁하는 소리를 울리면서 내 머리 옆에 검은 구두가 보였다.

뒤이어 털썩 트렁크가 놓인다.

그 트렁크를 나는 알고 있었다.

오웬의 마법도구다.

 

현자

...오웬...!

 

오웬은 기분 좋아보이는 듯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웬

안녕, 현자 님. 도와줄까?

 

나는 번개같은 속도로 끄덕였다. 오웬은 시시한 듯이 눈썹을 치켜뜬다.

 

오웬

그렇게 쉽게 부탁받으면 재미없어.

 

그 순간 목구멍에서 울음소리를 내지른 히스클리프가 오웬에게 뛰어들었다.

오웬은 가볍게 모습을 감췄다가 다시 나타나서, 히스의 손목을 잡았다. 예리한 발톱을 확인하고 재밌는듯이 웃는다.

 

오웬

다시 짐승이 되었구나. 동쪽의 귀공자는.

하지만 아직 나랑 놀기에는 이르려나. 다음에 또 보자.

《크레 메미니》

 

주문을 듣자마자 히스클리프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털썩하고 바닥 위에 무너져내린다.

 

현자

히스...!

 

쓰러진 히스클리프의 반대편에는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개가 게걸스럽게 거대어의 머리를 먹고있다.

세 머리 중 하나가 오웬을 돌아보며 크르릉하며 울기 시작한다. 이윽고 다른 두 머리도 엄니를 드러내고 위협했다.

 

현자

어... 어째서 오웬을 위협하는 건가요?

 

오웬

내가 싫은거야. 항상 트렁크에 가두니까.

잡아먹히기 전에 빨리 끝내버리자.

 

무서운 포효를 울리며 오웬에게 덤벼든다. 오웬은 트렁크 뚜껑을 열면서 다시 주문을 외웠다.

 

오웬

《크아레 모리트》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개는 환상처럼 트렁크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마을 사람

꺄아아아악!

 

네로

빨리 도망쳐! 지반이 두꺼운 곳으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

 

마을 사람

으아아아악! 여기에도...!

 

네로

...이런! 또 한 마리가...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슴》 !

흥! 별 거 아닌 놈이구만!

 

네로

브래드...

 

브래들리

여어.

 

네로

....... 그쪽을 맡길게! 난 마을 녀석들을 유도한다!

 

브래들리

그래, 맡겨두라고!


 

미스라

이런이런. 앞으로 몇 마리나 더 남은 건가요?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귀찮네요...

...응?

 

촌장

그만둬라! <거대한 재앙>의 분노에 닿아선 안 돼!

이대로면 세상이 멸망...

 

마을 사람

촌장 님! 촌장 님의 바로 뒤에 거대한 입을 연 <거대한 재앙>의 화신이!

 

촌장

.......!

 

마을 사람

촌장 님을 노리고 있어요! 움직이지 마세요...!

 

촌장

...으으...

 

미스라

어쩔까요? 죽일까요? 죽이지 않아도 괜찮나요?

당신은 먹힐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촌장

.......으윽.

구... 구해주게...

 

미스라

《아르시무》

 

촌장

하... 하아...

거... <거대한 재앙>이...

 

미스라

이거, 먹을 수 있을까요. 흙냄새가 날 것 같은데.

........? 살아남은 레모라가 교회 쪽으로 모여서...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마을 사람

꺄아아아악!

<거대한 재앙>이 나타났어...! 마을이 멸망할거야...!

 

그림 속의 스노우

이 무슨...! 마을 연못에 살고있던 것은, 여러 마리의 레모라였던 것인가!

 

그림 속의 화이트

미스라에게 머리 중 한 마리가 죽어서, 마을 전체에서 날뛰기 시작한 것 같다네!

 

그림 속의 스노우

이 정도로 거대한 레모라가 땅에서 머리를 내민 모습을 보게 되다니... 잘도, 훌륭하게 자랐구먼.

 

마을 사람

살려줘...!

 

그림 속의 화이트

걱정하지 말거라! 우리가 함께 있지 않느냐...!

그림 속에서 나가자, 스노우.

 

그림 속의 스노우

알겠네. 그림자가 있는 범위밖에 돌아다니지 못하지만, 마을 사람들을 지키도록 합세.

아저씨, 잘 부탁하겠네.

 

그림을 안은 마을 사람

...알겠습니다...

 

그림 속의 스노우˙화이트

하낫 둘... 으으읏...

《노스콤니아》

 


 

히스클리프

...윽, 크윽...

 

시노

히스...! 자샤!

잘도 히스를...!

 

자샤

...윽, 너희들이...! 너희들이 나쁜 거야...!

 

현자

괜찮아요? 히스...!

 

나는 재빨리 히스클리프에게 달려갔다.

어깨부터 가슴 근처에 걸쳐 흠뻑 젖어있다.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가슴을 감싸안은 채로 괴롭게 웅크려있었다.

 

히스클리프

...으, 으윽...

 

현자

히스클리프! 히스! 이걸...

 

지혈하기 위해 상의를 벗기고 그의 상처를 압박하려고 했다.

그러자, 히스클리프는 난폭하게 내 손을 뿌리쳤다.

 

현자

...읏, 히스...?

 

그 답지 않은 행동은 통증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고통을 참는 숨결도 점차 신음하는 듯한 목소리로 변해간다.

쓸쓸하고도 상냥한, 비가 오는 날의 창문같은 히스클리프의 파란 눈동자가, 야수같은 냉정함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털을 곤두세우는 짐승처럼, 부들부들 전신을 떨면서, 그는 피투성이인 손바닥을 바닥에 대었다.

이상할만큼 손톱이 길었다.

 

현자

(...설마...)

(검은 짐승이 된다던, 기묘한 상처...)

히... 히스클리프!

시노! 히스가...!

 

자샤를 압박하던 시노가 우리를 돌아본다.

그때, 격렬한 땅울림이 일었다.

 

시노

...읏, 뭐지...?

 

자샤

<거대한 재앙>을 화나게 한 거야... 이제 이 세상은 끝이야...

 

시노

칫...

 

시노는 혀를 차고 자샤의 손에서 도끼를 빼앗았다.

마법으로 도끼를 태워 질척질척한 철로 만들고, 우리 곁으로 달려온다.

 

시노

도끼가 녹슬었다. 감염 될지도 몰라.

마법약으로 치료를...

 

달려가던 시노를 견제하듯, 히스클리프는 목 깊은 곳에서 신음했다.

그의 이변을 눈치챈 시노도 말문이 막힌다.

 

시노

...히스...

 

히스클리프

......윽.

 

현자

...아...!

 

직후, 나는 히스클리프에게 덮쳐졌다.

가슴께에 툭하고 가차없이 강하게 쥔 주먹을 내리누른다.

 

현자

...윽...

 

시노

현자...!

 

흉포하고 냉정하며, 강렬한 두 눈이 사냥감을 내려다보듯 나를 바라보고 있다. 상처를 입은 어깨는 새빨갛게 피로 물들어 있다.

고상하게 미소짓던 그의 입매에서는, 날카롭고 무서운 이빨이 나타나 있었다.

확 새파랗게 질려가는 나에게, 시노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노

현자, 괜찮아!?

 

현자

괘... 괜찮아요...

 

시노

다행이다. 반드시 구해낼게.

...움직이지 마. 히스를 자극하지 마.

 

공포와 긴장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 와중에 침착한 시노의 목소리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격해지는 땅울림이 불길했다.

그르르르 하고 히스클리프의 목 깊은 곳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섞여서...

고오오...하며 몸 아래에서 무서운 기세의 물소리가 들려온다.

 

현자

(물...? 왜...?)

 

시노

히스, 착하지... 그래, 내 눈을 봐.

한 방에 잠들게 해주...

 

그 순간---.

대량의 물보라가 바닥에서 뿜어올랐다.

 

현자

.......!

 

자샤

우와아아아악...!

 

자샤가 비명을 지른다. 물보라와 함께 나타난 것은 시노의 몸 정도 크기인, 물고기의 얼굴이었다.

마름모꼴 입에는 빽빽하게 이빨이 나 있어, 보름달 같은 금색의 눈알이 크게 떠 있다.

 

시노

무...!

 

물이 튀어오를 속도로 물고기의 머리는 이동했다.

시노의 반을 물고서.

 

시노

...큭.

 

현자

...시노...!

 

옅은 어둠 속에서 히스클리프의 눈알도 물고기처럼 빛났다.


 

마을 사람

우와아아아악!

 

마을 사람

꺄아아아악!

 

미스라

여기저기서 비명이. 왠지 큰일난 것 같네요.

 

파우스트

큭...

 

미스라

와...앗.

 

파우스트

그러니까 말했을텐데! 무턱대고 자극하지 말라고!

 

미스라

당신, 알고 있나요? 동쪽의 마법사 주제에, 누구의 옷깃을 붙잡고 있는지...

 

파우스트

그게 어쨌단거야!? 저 중에는 현자와 시노, 히스도 있다!

혹시라도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천 년 치로 저주해서 네놈을 죽여주겠어!

 

미스라

.......

역시, 원한이 좀 길지 않나요...?

 

파우스트

알까보냐! 네로, 그들을 찾으러 간다.

너도 분담해서 찾아줘!

 

네로

알겠어!

 

브래들리

이 몸도 도와주지. 뭘 먹고 커졌든 걸리적거리는 놈들이구만.

이리와, 네로. 옛날처럼 한 번 날뛰어주자고.

 

네로

.......

 

브래들리

뭐야. 따라와.

 

네로

이젠 옛날이 아냐. 난 같이 안 가.

 

브래들리

.......

 

네로

그 녀석들을 찾으면 부탁할게.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네로

.......!

모습을 드러냈구나...! 괴물 같이 생긴 엄청 큰 놈이구만!

 

파우스트

레모라다! 예리한 이빨을 가졌고 뱀처럼 길어.

피가로의 집에서 표본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크진 않았어. 아마도 교회에 있는 마법사의 돌의 힘을 어떠한 수단으로 얻어서 거대화한 거겠지.

빗자루에 올라 타! 이 놈은 독을 뿜는다. 조심해.

 

네로

알겠...

.......! 이렇게나 높이 뛰어오르는건가!

 

파우스트

네로...!

 

브래들리

《아도노포텐슴》

 

네로

...브래드...!

 

브래들리

네로, 무사하냐!?

 

네로

....... 어어... 덕분에 살았...

 

브래들리

이 자식, 사람이 멋있는 대사를 할 때에 후추 뿌리지 말라고! 도중에 끊겨버렸잖아. 진짜.

 

네로

.......

 

브래들리

뭘 말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렸지만 말이야! 그거, 뭐였던 거냐?

화났던거냐? 뭐에 화가 났었던거야, 네 주제에 말이야.

 

네로

진~짜로, 네놈과는 손절해서 다행이야... 아까의 감정적이었던 나를 죽이고 싶어졌어...

 

브래들리

엉? 뭐라고?

 

네로

시끄러, 좀 꺼져.

...안고 있는 그 그림은 스노우와 화이트인가?

 

그림 속의 스노우

그렇다네! 파우스트! 네로!

무사했는가!?

 

파우스트

늦어.

 

그림 속의 화이트

늦어서 미안하네! 우리는 마을 사람들을 다른 장소로 유도하겠네.

성스러운 축제는 사람이 있어선 안 돼!

 

그림 속의 스노우

오거라, 브래들리!

 

브래들리

나한테 지시하지 마. 네놈들의 운반역할이 필요하면 지금 골라주지.

---어이, 너.

 

마을 사람

힉... 히이...!?

 

브래들리

아하하! 그래. 쫄았구만.

네놈의 주인은 나다. 나한테 쫄아서 새파래지고, 내 명령만을 듣는 목각인형이 되어라.

《아도노포텐슴》

 

마을 사람

.......

 

브래들리

이 그림을 옮기고 이 놈들의 말에 따라라.

 

마을 사람

...알겠습니다...

 

브래들리

그럼 안녕, 할아범들.

 

그림 속의 스노우

사람을 조종하다니, 나쁜 애구나, 브래들리--.

 

그림 속의 화이트

나쁜 애일세.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미안해. 아저씨, 저쪽으로 가주겠어?

 

마을 사람

...알겠습니다...

 

파우스트

기다려! 축제 준비를 할 셈인가!?

여기 있는 거대화한 레모라는!?

 

미스라

금방 정리해드리죠.

 

파우스트

...미스라...

 

미스라

기다리셨습니다.

 

마을 사람

.......!? 무... 무슨 소리지...!?

어째서 이런 데서 잠들어서...

 

마을 사람

저길 봐...! 수면이 파도치고 있어...!

연못 위에 빨간 머리의 남자가...!

 

미스라

안녕하세요. 북쪽의 마법사 미스라입니다.

안심하세요. 호숫가에서 자라서 낚시는 특기거든요.

《아르시무》

 

마을 사람

...우와아악...! 물보라가...!

 

브래들리

대충대충 하긴. 엄청 큰 괴어를 공중으로 끌어낼 셈이냐고.

 

마을 사람

연못에서 그런 짓을 하면 안 돼...! <거대한 재앙>의 화신의 분노를 건드린다고!

<거대한 재앙>의 화신은 평소엔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한 번 화가 나면 무서운 물고기의 모습으로 변해버려...!

그리고, 마을 전체의 수원에서 날뛴다고...!

 

파우스트

<거대한 재앙>의 화신 같은 건 없어. 레모라와 교회에 있는 강력한 마법사의 돌은 전부 별개다.

너희들은 마법사의 돌에서 힘을 얻어 사는, 이 괴어를 <거대한 재앙>이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마을 사람

...그, 그런 바보같은... 우리들이 제물을 바치고 있던 상대는, 단순한 괴물이었다는 말인가...!?

 

파우스트

...잠깐. 마을 전체의 수원에서 날뛰기 시작한다고?

혹시 지하에서 수원이 연결되어 있는 건가?

 

마을 사람

그래... 비가 내리면 산비탈 여기저기에서 물이 흘러넘쳐.

 

파우스트

...설마...

 

네로

어이! 파우스트, 어디 가는거야!?

 

미스라

...꽤 몸통이 기네. 공중으로 올릴 수가 없어.

이거, 정말로 레모라인가요?

 

파우스트

미스라...!

 

미스라

파우스트...

 

파우스트

무리하게 공격하는 건 그만둬! 괴어 레모라에게는 기묘한 생태가 있다!

 

미스라

기묘한 생태?

 

파우스트

레모라는 쇠약해졌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 복수의 개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다수의 레모라로 변한다.

그 형태 그대로 강력한 마나석의 힘을 얻은 데다, <거대한 재앙>의 영향을 받아서 거대화한 거라고 하면...

 

미스라

하아...?

잘 모르겠지만, 죽이면 될 뿐이라는 거죠?

 

파우스트

미스라...!

 

미스라

《아르시무》

머리를 날려버렸다. 이걸로 끝...

.......? 무언가에 끌어당겨진 것처럼, 레모라가 수중으로 가라앉았다...?

 

브래들리

미스라 놈, 레모라의 머리를 날려버렸군.

 

네로

.......!? ...땅울림이...

 

마을 사람

아앗, 저길 봐...! 산비탈 여기저기에서 일제히 물이 넘쳐흐르고 있어...!

이제 끝이야...! <거대한 재앙>이 분노했어...!

이 세상은 멸망하는거야...

 

네로

........!

 

브래들리

저건 뭐야!?

물보라가 치솟은 장소에서 몇 마린가 레모라가 머리를 내밀었어!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녹슨 날이 피 같아서 무섭다. 그것보다도 핏발 선 자샤의 눈빛이 더 무서웠다.

 

자샤

너희들은 역시 거짓말쟁이인 마법사야! 마을 연못에 던져버리고 기적의 돌로 만들어주마!

아아, 그걸로 부디 용서해주세요...

 

시노

자샤, 그만둬. 도끼를 내려놔.

 

자샤

시끄러...!

 

시노

잘 들어! 세상을 지키는 건 우리들이야.

너희가 아니라.

 

자샤

우리들의 역할이야...!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목숨 걸고 해 왔어! 마법사를 제물로 삼아 기적의 돌을 재앙에 바쳐서...

 

시노

아냐! 이건 <거대한 재앙>의 화신이 아니야. 너희들은 의미없는 확신으로 마법사를 죽여온 것 뿐이다!

 

자샤

그럴 리가 없어...! ...윽, 그럴 일이 있을까보냐!

그럼, 이 마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거잖아!

 

시노

그래. 버려진 묘지같은 마을.

그저 그 뿐이다.

 

히스클리프

시노...

 

자샤

...으윽, 너...!

 

시노

나도 그랬어! 부모에게 버림받고 세상에 잊혀졌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너 같은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 혼자서 살고, 혼자만의 세상에 있었다.

세상을 분리시키고 고독 속에 있으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걸 잊은 채로, 내가 주인공일 수 있으니까.

 

자샤

.......

 

시노

나 이외의 놈들은 전부 멍청하고 약하고 시시하고 가치가 없어.

나도 가치가 없지만 너에게도 없다라고 하면서.

이 마을은 고독을 더욱 악화시키고 닫힌 세상에 망상을 더해왔다. 하지만, 자샤는 다르잖아.

히스를 보고 흥미를 가졌다. 귀족이나, 바깥 세상에 대해서.

 

자샤

...윽, ...아냐...

 

시노

도끼를 내려. 이 마을에서의 역할이 끝나면 너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주겠다.

내가 블랑솃에 다다랐던 것처럼, 너도 어딘가로 이르게 해주지. 자샤!

 

히스클리프

...자샤. 부디, 우리를 믿어주지 않을래.

 

히스클리프의 목소리에 자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돌이 된 마법사처럼, 히스클리프는 자샤를 향해 손을 내민다.

 

히스클리프

나는 마법사이지만 절대로 너에게 거짓말 하지 않아. 절대로 상처입히지 않을테니까.

 

자샤

.......

 

울기 시작한 얼굴로 자샤가 천천히 히스클리프에게 걸어온다.

히스클리프는 안도하고, 부은 자샤의 뺨을 바라보면서 애처로운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

 

히스클리프

...너무한걸... 대체 누구에게 맞은거야...?

 

그렇게 묻는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것처럼 움찔한 자샤는 어깨를 떨었다.

갑자기 시노가 소리친다.

 

시노

위험해, 히스...!

 

히스클리프

어?

 

히스클리프가 시노를 돌아본다.

그 순간, 자샤가 고쳐쥔 도끼를 세차게 히스클리프에게 내려찍었다.

 

자샤

마법사의 암시에 걸릴까보냐...!

 

히스클리프

.......!


 

마을 사람

좋아... 마법사들을 연못에 던져넣으...

...아...

짐수레에 마법사들이 없어...!?

 

네로

하아... 어깨 아파.

파우스트 선생, 연기 잘 하던데.

 

파우스트

시끄러워.

 

마을 사람

...아, 너희들...!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마을 사람

으으... 갑자기 졸려...

 

네로

이 녀석들... <거대한 재앙>에서 세상을 지킨다고 믿고 있었을 줄이야...

 

파우스트

<거대한 재앙>을 마법사들이 물리치고 있다는 건 내가 태어났던 시대부터 상식이었다.

어째서 이런 오해가 생긴거지? 그들이 일으킨 참극은 그들의 헌신이기도 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었다면...

 

네로

당신과 똑같이 은둔형 외톨이였던 거겠지. 바깥 세상을 차단하고 생활하는 사이에 거짓이 진짜처럼 여겨지게 된 거야.

고립되어도 머릿속까지 비게 되는 건 아냐. 공허하게 끝없이 생각하는 건 죽을 맛이니까 말이지.

...거기다 이렇게나 쓸쓸한 마을이야... 살아갈 보람이 될 역할이 필요했던 걸지도 모르겠어...

역할이라는 건 때론 달콤하니까. 아무것도 없는 녀석에게는, 특히나 말이야.

 

파우스트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네로

그야 당신은 말이야. 지금은 꽤나 배배 꼬이고, 토라지고, 주눅 들어서 틀어박혀 있지만...

 

파우스트

누가 배배 꼬이고 토라졌다는 거야.

 

네로

뿌리가 지도자의 기질이야. 태어난 곳이 중앙이었으니 말이지.

자신이 없었던 적 같은 건 없잖아.

 

파우스트

.......

 

네로

난 자신없는 남자였으니까... 요구되고, 역할이 주어지면 침을 흘리며 기뻐했어.

내가 하는 말은 무엇 하나도 듣지 않는 상대라는 걸 깨닫고 참을 수 없어지거나...

내가 없으면 곤란하다는 말에 꼬리를 흔들며 감격해버렸지.

...정말이지, 꼴사나웠어...

 

파우스트

......

옛날 이야기인가?

 

네로

옛날 이야기야. 선생은 즐기지 않는 음식이지.

 

파우스트

그렇지. 접시 끝으로 피하도록 해주지.

먼저 연못에 있는 저 놈부터 손 보도록 하고.

 

네로

...여기 있는 놈에게, 마을 녀석들은 잘도 먹히지 않았네.

 

파우스트

마법사를 데려오는 걸 이해하고 있었겠지. 물고기 주제에 성가신 놈이군.

괴어라고 하는 게 맞으려나.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시노

자샤, 왜 도망쳤어!? ...너, 상처 투성이잖아!?

누군가에게 맞은 건가!?

 

자샤

...윽, 외지인을 교회에 들이면 안 되는데...

당장 나가! 제발 나가 줘!

 

히스클리프

...대체 여기에 뭐가 있는거야?

《레프세바이블프 스노스》

 

히스클리프가 주문을 외우자 그가 쥐고있던 회중시계가 랜턴처럼 희미한 금색의 빛을 밝혔다.

암흑에 묻혀있던 교회의 벽이 어렴풋하게 비춰지고, 점차 명확해져간다.

 

시노

...뭐야, 이건...!?


 

파우스트

.......

 

네로

.......

 

마을 사람

마법사들은 일어나지 않는군... 이제 다왔어...

마을의 성지가... 연못이 보인다...

저 연못에 마법사들을 집어던지면 기적의 돌이 손에 들어온다... 기적의 돌을 그 분께 바치지 않으면...

 

마을 사람

그렇지... 작년에는 제물이 부족했었지... 그 분의 분노가 심했어서 심한 피해가 왔었어...

두 번 다시는 그런 비극을 일으켜선 안 돼... 그것이 <거대한 재앙>으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우리들의 사명인 것이다...

 

네로

(...이 녀석들... 자기들이 <거대한 재앙>으로부터 세상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 건가)

 

마을 사람

자, 도착했다... 마법사들을 던지자...

교회에 계시는 그 분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기적의 돌을 바치는 거다...

 

파우스트

(교회에 계신 그 분...? 교회에는 아무것도 없을텐데...

강한 마력은 느껴졌지만 살아있는 기척은 없었다)

(거기 있는 것은 아마도...)


 

교회의 교단 윗부분에서 발견한 그것을, 나는 처음에 석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석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한 표정을 하고 있다.

마치 산 채로 결정화된 것처럼.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괴로운 눈빛으로, 어딘가로 손을 뻗은 청년은 히스클리프를 연상케하는 아름다운 용모였다.

그의 발밑에는 그를 위해 바쳐진 듯한 대량의 마나석이 쌓여있었다.

마나석이란, 마법의 힘을 지닌 고가의 광석이다.

나의 세계로 말하자면, 작은 마을의 석상에 다이아몬드가 쌓여있는 것 같은, 이상한 광경이었다.

 

히스클리프

...돌이 된 마법사...

 

현자

...돌이 된 마법사? 죽은 마법사라는 건가요...?

 

히스클리프

...네. 마법사는 죽으면 돌이 됩니다.

보통이라면 부서져서 파편이 되지만...

분명 이 마법사는 무슨 일이 있어서 돌이 된 후에도 부서지지 않았던 것이겠죠...

 

시노

...돌이 된 마법사는 처음 봤다. 히스는 본 적이 있나?

 

묻고난 뒤에, 시노는 깨달은 것 같았다. 히스클리프는 동료를 절반 잃게 된 <거대한 재앙>과의 전투에 참가했다는 것을.

슬픈 듯 눈썹을 찡그리면서 히스클리프는 희미하게 끄덕였다.

 

히스클리프

...전에 전투에서 봤어. 우리의 스승도 이렇게 돌이 됐어.

 

시노

.......

그런가...

 

할 말을 찾지 못한 모습으로 시노가 침묵한다.

그 때, 분노에 떠는 자샤의 목소리가 울렸다.

 

자샤

무슨 짓을 한 거야...

 

히스클리프

자샤...

 

자샤

외부인에게 모습을 보이면 <거대한 재앙>의 화신은 노하실텐데!

 

시노

<거대한 재앙>의 화신? 이게?

 

자샤

이거라고 하지 마...! <거대한 재앙>의 무서움을 모르는거야!?

전에도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어!

우리들은 엄격한 규율을 지키면서 <거대한 재앙>에 제물을 바치는 걸로, 이 세상을 지켜왔다고!

 

자샤의 서슬 퍼런 모습에 우리는 곤혹스러웠다. <거대한 재앙>과 싸우는 역할을 짊어지고 있는 것은 우리들일 터다.

선택받은 현자의 마법사... 백합 문장... 기묘한 상처...

다양한 것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그런데도 자샤의 분노한 모습에, 우리들이 틀린 것은 아닐까하고 기세에 눌리게 된다.

 

현자

아... 아니예요, 자샤. <거대한 재앙>과 싸우고 있는 건 저희고, 이 석상은 죽은 마법사...

 

자샤

무슨 말을 하는거야!? 우리들의 고생도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자기들이 <거대한 재앙>과 싸우고 있다고!?

하늘에 있는 <거대한 재앙>은 이 분의 영혼이다! 여기 계신 육체를 손에 넣으려고 <거대한 재앙>은 이 마을을 향해 오는 거라고!

그 증거로 <거대한 재앙>이 다가오면 마을의 연못은 물결치고, <거대한 재앙>의 화신은 빛나기 시작한다고!

너희들은 그런 것도 모르잖아!?

 

자샤는 우리에게 소리치고는, 교회의 한쪽 구석에 놓인 도끼를 손에 들었다.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그림 속의 스노우

드디어 전원 모였군! 정말이지, 그대들과 오면...!

벌써 밤이 되어버렸잖은가!

 

그림 속의 화이트

동쪽의 마법사들이 걱정일세! 미스라여, 공간의 문을 열어서 서둘러 가는게야!

 

미스라

하아...

 

그림 속의 스노우˙화이트

미스라!!

 

미스라

그림 속에서 거만하게 구셔봤자...

딱히 협력 같은 거 필요없지 않나요? 그들도 필요로 하지 않았고요.

 

오웬

필요하다고 하면 안 갈거야. 필요없다고 했는데 가는 게 재밌잖아.

 

브래들리

변함없이 오웬은 청개구리구만... 난 뭐, 미스라의 주장은 알 것 같다고.

동쪽 놈들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 개입하는 걸 싫어하고 무서워 해.

도움을 줘도 얼굴을 찡그릴 뿐이야.

구두를 핥고 아양 떨라는 말은 안 하겠어. 하지만, 난 나를 환영하는 놈에게 힘을 빌려주고 싶다고.

 

그림 속의 스노우

동쪽의 마법사들은 감사를 모르는 게 아닐세. 고독을 좋아하며 교류를 꺼리지만, 본질적으로는 경건하고 예의 바른 자들이야.

 

그림 속의 화이트

그들은 조심성 많고 경계심이 높아. 세세하고 신중한 전투 방법은 그대들에게도 공부가 될 것이야.

 

미스라

그들은 어째서 고독을 좋아하는 거죠? 나도 혼자서 맘대로 하는 걸 좋아하지만 나와는 다른 느낌입니다.

그들은 고독을 좋아하면서도 고독한 자신을 싫어하고, 타인을 싫어하면서도 타인을 신경씁니다.

좀, 까다로워요.

 

그림 속의 스노우

타인에게 상처받고, 그 이상 타인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일세. 아픔을 아는 만큼 주의 깊고, 애정이 깊은 자들이야.

 

오웬

애정이 깊은 걸까?

 

브래들리

원한이 깊은 걸 착각한 거 아니냐?

 

그림 속의 화이트

그대들도 머지않아 알게 될 거야. 함께 행동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말일세.

미스라여, 부탁해도 되겠나?

 

미스라

...알겠습니다.

《아르시무》


 

자샤

.......

 

촌장

자샤, 뭘 하고 있지...

 

자샤

촌장 님은 가까이서 보셨나요? 금발 마법사의 얼굴...

 

촌장

아아.

 

자샤

교회에 계신 그 분과, 닮은 것 같아서...

 

촌장

바보 같은 소릴... 그 분께선 밖으로 나오시지 않아.

우리들이 그 분의 충실한 부하인지 아닌지 조용히 지켜보고 계실 뿐이지.

놈들은 단순한 마법사일 뿐이다... 그 분께 바치기 위한 공물이어야만 해.

그것이 세상이 이 마을에게 허락한 사명인 것이다.

 

자샤

...그렇지만...

 

촌장

...아직 망설임이 있는 건가... 마법사들에게 홀린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네 부모처럼 조종당하게 된 것인가...

 

자샤

아... 아니예요. 촌장 님...

전 조종 같은 건...

 

촌장

괜찮다... 마법사의 암시는 고통으로 없앨 수 있다.

지금, 제정신으로 돌려놔주마.

 

자샤

......! 그만하세요, 촌장 님...!


 

히스클리프

...선생님 일행, 꽤 늦네...

 

시노

그렇네... 아...

 

현자

무슨 일 있나요?

 

시노

자샤다. ...다친 것 같아 보여...

비틀거리면서 교회로 가고 있다.

 

히스클리프

정말이다...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새까맣게 어두워서 나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다. 어렴풋이 검은 덩어리 같은 것이 움직이다가 픽 쓰러진 것처럼 비쳤다.

 

히스클리프

...넘어졌어. 움직이지 않네.

못 움직이는 걸까...

 

시노와 히스클리프는 걱정하듯 어둠 속을 집중한 채 바라보았다. 둘이서 동시에 묻듯이 나를 돌아본다.

 

시노

저 녀석을 도울 뿐이다.

 

히스클리프

심한 상처가 아니라면 금방 이곳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가도 될까요?

 

여기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던 파우스트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다친 소년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현자

...알겠습니다. 충분히 조심하면서 가보죠.

 

히스클리프

네.

 

시노

그래.


 

우리는 빗자루를 타고 새까만 산비탈을 달려나갔다.

가까워지면서 웅크린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자샤

...으, ...흐윽...

 

시노

자샤!

 

자샤

.......! ...윽, 마법사...

 

무서워하듯 소리를 지르고, 자샤는 달려나갔다. 비틀거리면서 교회를 향한다.

 

시노

기다려, 자샤! 왜 도망치는 거야...!?

 

자샤

...목소릴 들으면 안 돼... 마법사에게 홀릴거야... 으윽...

 

히스클리프

자샤! 도망치지 말아줘!

다친거지!?

 

자샤

......윽.

 

어둠 속을 빠져나가는 자샤의 숨결은 격한데도, 우는 것처럼 가느다랬다.

교회로 뛰어든 자샤가 무거워 보이는 낡은 문을 닫으려고 한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우리는 교회 내부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우리는 마을과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해가 저물기를 기다렸다.

네로가 전해주었던 정보는 불쾌하고 무서운 이야기였다.

 

네로

마을 연못으로 향하는 비탈길에 그게 여러 개나 꽂혀 있었어.

 

현자

그거라니?

 

네로

마법사의 빗자루야. 마치 묘지라는 것처럼 흔들렸어.

부러진 빗자루도, 피투성이인 빗자루도, 녹슨 빗자루도 말이야.

 

어두운 밤에 습한 바람이 불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빗자루 수만큼의 마법사가 방문했고, 어떠한 이유로 버렸다는 것이 된다.

 

현자

(살해당해서...? 그래도 인간이 마법사를 어떻게?)

 

답답함을 느끼며 하늘을 올려다봐도 두터운 구름에 덮여서 달빛조차 보이지 않는다.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듯한 어둠이 무서웠다.

<거대한 재앙>의 빛이 그립다는 생각이 든다.

 

현자

(달을 그리워하다니, 무르 같아.

다른가... 무르는 줄곧 달을 좋아했어. 무서워하거나 싫어하지는 않아.)

(아까 그 아이... 자샤도 그랬어.

히스클리프에게 동경을 품어도 마법사라는 걸 듣고 금방 깬 얼굴이었어.)

(갖고 싶어하거나, 무서워하거나, 우리는 참 편리하네...

전에 파우스트가 말한 것처럼...)

 

파우스트

냄새와 소리에 익숙해져서 감각이 돌아왔다. 교회에서 강한 마력이 느껴져.

마법사의 것이 아닌 느낌이 들지만...

 

히스클리프

신비한 생물인가요?

 

파우스트

아니... 살아있는 기척은 아니지만...

일단 상황을 보고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라.

 

시노

나도 갈게.

 

네로

내가 갈게. 시노와 히스는 여기서 현자 씨를 지켜줘.

마을 사람이 다가오면 모습을 숨겨.

 

시노

기다려. 마물 퇴치라면 내 특기 분야다.

 

파우스트

너희는 대기해라. 어떤 게 숨어있을지 몰라.

 

시노

그렇다면 더더욱 사람이 많은 편이 좋겠지. 나도 따라 가겠다.

 

파우스트

내 말을 안 듣는거냐.

 

시노

내 말을 듣지 않는 건 당신이야. 내가 있는 편이 좋아.

도움이 돼.

 

파우스트

알겠다. 지금 당장 마법관으로 돌아가.

 

냉엄한 파우스트의 목소리에 시노는 침묵했다. 어둠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시노의 상심과 안타까움이 전해져온다.

파우스트는 조용히 시노를 타일렀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평소의 우울함뿐만이 아니라, 위엄과 진지함이 감돌고 있었다.

 

파우스트

너는 영웅이 될 수 있는 남자다. 하지만 공에 목매서 용기를 헛되게 하면 목숨을 잃는다.

그런 자들을 몇 사람이나 봐왔다.

네 능력과 미래를 헛되게 만들고싶지 않아. 네 힘이 필요할 때는, 내가 명령 하겠다.

다시 한 번 묻지. 내 말을 들을 수 있겠나?

 

시노

...알았어.

 

파우스트

좋아.

 

파우스트는 숨을 내뱉고, 시노의 머리에 스윽 아무렇게나 손을 두었다.

 

파우스트

히스, 시노와 현자를 부탁한다.

 

히스클리프

아... 알겠습니다. 조심하세요.

 

떠나려는 순간에 네로가 쓴웃음을 지었다.

 

네로

엿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구만. 혁명군의 지도자였다던가 하는, 옛날의...

 

파우스트

사람 잘못 본 거다. 가지.

 

어둠에 녹아들듯 두 사람은 사라져갔다.

 

현자

괜찮을까요, 두 사람 다...

 

히스클리프

파우스트 선생님과 네로라면...

...시노. 너도 주눅 들지 마.

 

시노

주눅든 거 아냐.

 

시노는 등을 돌리고 어둠을 눈여겨보았다.

 

시노

처음 들어봤어.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네로

당신도 과보호구만.

 

파우스트

너에게 들을 정도는 아니다.

...저 곳이 교회로군. 조금 전에는 말하지 않았지만 교회에 있는 건, 아마...

 

네로

...! 마을 녀석들이다...

 

마을 사람

...마법사들은? 벌써 마을에서 벗어난 건가?

 

마을 사람

아직 어딘가에 있을지도 몰라. 그 놈들을 붙잡아서 마을의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거대한 재앙>에게서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파우스트

<거대한 재앙>에게서, 세상을 지킨다고...?

너희들, 대체 무슨 짓을... 으웁웁.

 

네로

쉿. 나한테 맡겨.

잘 맞춰달라고.

 

파우스트

잘 맞춰달라니...

 

네로

---어이! 저 마을 사람이야?

 

마을 사람

...!

 

네로

들고왔던 식료품이 떨어져버려서... 저녁 식사를 거절해서 미안한데, 물 만이라도 나눠줄 수 없을까?

 

마을 사람

무... 물론입니다. 마침 물통이 있습니다.

이쪽으로...

 

파우스트

...! 이런 걸 마실 리가 없잖아.

이 물에는...

 

네로

이것 참 고마워!

 

파우스트

네로!

 

네로

...후아, 맛있어! 목이 바싹 말랐었거든, 잘 마셨어!

당신도 마셔봐, 파우스트.

 

파우스트

......알겠다.

 

마을 사람

...

 

네로

...윽...! 뭐야...!? 모, 몸이... 갑자기 저려서...

으윽, 움직일 수가...

........

 

파우스트

네로...!

 

마을 사람

.......

 

파우스트

...어이, 웃기지마. 잘 맞춰달라고?

절대로 안 할 거다. 난 그런 일 해본 적이 없다고.

일어나. 어이, 네로!

 

네로

.......

 

마을 사람

.......

 

파우스트

.......

으... 으으, 몸이...

.......

 

마을 사람

.......

다행이다... 독이 이제야 돈 모양이야.

꽤 효과가 늦어졌지만...

남은 두 명을 놓친 건 아쉽지만, 그들을 짐수레에 태워서 성지로 옮기도록 하자...

<거대한 재앙>에서 세상을 지키는, 우리들의 신을 위해서...

기적과 축제의 프렐류드~동쪽 나라&북쪽 나라~

 

간신히 마을에 다다르자 소년에게서 소식을 들었는지 마을 사람들이 입구에 모여 있었다.

감정을 품지 않은 검은 구멍 같은 눈으로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마을 사람

아아, 정말이네... 왔어...

신기하네에... 손님이 오다니...

 

마을 사람들은 동시에 미소를 띠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마을 사람

무슨 일이시죠? 길을 잃으신 건가요?

 

파우스트

동쪽의 마법사 파우스트다. 현자의 마법사로서 왔다.

동쪽 땅의 태고의 신전을 찾고있다.

 

마을 사람

마법사...

 

동쪽 나라의 사람들은 마법사를 기피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싫어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마을 사람

그런가요... 아무것도 없는 마을이지만 환대를 해드려도 될까요?

식사부터 하시죠. 저쪽에...

 

네로

아니, 괜찮아. 맘대로 마을을 조사하게 해줘.

 

마을 사람

.......

그럼 안내인을 붙여드리겠습니다. 자샤, 부탁한다.

 

자샤라고 불린 것은 아까 전에 봤던 소년이었다. 마을 사람의 말에 끄덕이고 우리 앞으로 나온다.

 

자샤

이쪽으로 오세요.

 

그 말만 하고는 걷기 시작하는 그의 등 뒤를 우리는 쫓았다.

느닷없이 네로가 나에게 귓속말을 한다. 

 

네로

도중에 모습을 감출거야. 알아서 잘 넘겨줘.

 

현자

네로...?

 

네로

이 마을 녀석들은 입이 무거워 보이니까 말이야. 정공법 이외로 조사해볼게.

 

현자

...나쁜 짓은 안 하는 거죠?

 

네로

바보구나, 현자 씨.

 

네로는 안심시키려는 듯 씨익 웃었다. 시원스런 표정과는 정반대의 말을 하면서.

 

네로

나쁜 짓은 할거야. 마법사니까 말이지.

 

자샤

저기가 마을의 저장고예요. 저쪽이 마을의 가축 막사...

...여기가 끝이예요. 이 앞으로는 아무것도 없어요.

 

파우스트

좁은 마을이군... 뭘로 생계를 꾸리지?

 

자샤

사냥을 해서 가끔 가죽이나 뼈를 팔러 가요. 고가인 돌을 채취한 적도...

어라...? 또 한 명 있었지 않나요?

 

시노

볼일을 보러 갔다. 저 교회는? 마을 교회가 아닌건가?

 

자샤

네.

 

시노

안내해줘.

 

자샤

죄송해요... 중요한 신이 계신 곳이라 마을 사람 이외에는 못 들어가요.

 

파우스트

.......

어떤 신을 모시지?

 

자샤는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순수한 눈동자를 깜빡였다.

 

자샤

어떤 신이라니, 신은 신이예요. <거대한 재앙>에게서 우리들을 지켜주셔요.

 

스노우와 화이트에게 들었던 적이 있지만, 이 세계의 신앙은 제각각이다.

신비한 힘을 가져오는 것을 정령이라고 하거나 신이라고 부른다. 부르는 방법은 다르지만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현자

(어쩌면 동쪽 태고의 신전과 무언가 관련되어 있을지도 몰라...)

 

문득 깨닫고 보니, 자샤가 물끄러미 히스클리프를 바라보고 있다.

 

시노

히스가 신경 쓰이나?

 

자샤

앗...

 

자샤는 얼굴을 붉히고 눈을 돌렸다. 소년다운 행동은 그를 친근하게 느끼게 했다.

 

자샤

죄송해요... 도시의 귀족 같은 사람, 처음 봐서요.

 

시노

상관없어. 히스는 예쁘고 멋지고 현명하니까 말이지.

내 주군이다. 대단하지.

 

자샤

아... 네...

 

시노

흐흥. 얘기 하게 해줄게.

히스, 자샤에게 뭐라도 말 해줘. 자, 만져봐도 된다고.

 

히스클리프

장난감 빌려주듯이 말하지 마!

 

자샤는 긴장과 동경을 띤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히스클리프가 압도된 듯이 망설인다. 화려하고 눈에 띄는 용모를 했지만 그는 낯을 가리는 것이다.

히스클리프는 긴장을 떨쳐버리듯이 숨을 내쉬고 나서, 웃음을 머금으며 손을 내밀었다.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야. 분명 귀족이지만 대단한 건 아니야.

마을 일을 도와주는 네가 더 훌륭해.

 

자샤는 히스클리프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쭈뼛쭈뼛 손가락 끝을 움켜쥐었다. 악수를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샤

당신도 마법사...?

 

히스클리프

맞아.

 

아주 잠시, 자샤는 슬픈 듯이 눈을 가늘게 했다. 하지만 곧바로 체념한 듯이 눈꺼풀을 감는다.

 

자샤

그래...

 

그것을 마지막으로 자샤는 히스클리프에게 동경의 눈빛을 보내는 일은 없었다. 담담하게 안내를 끝내고 원래의 장소로 돌아간다.

도중에 네로도 합류했다. 네로에게 무언가 귓속말을 들은 파우스트가 자샤와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한다.

 

파우스트

시간을 뺏어서 미안했다. 우리의 착각이었던 것 같아.

이대로 돌아가도록 하겠다.

 

마을 사람

벌써 해가 저뭅니다. 저녁이라도...

 

파우스트

아니, 필요없어. 그럼 실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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