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남쪽 나라&동쪽 나라~

 

침대에 눕혀도 아기는 불에 데인 것처럼 계속 울었다.

 

피가로

좋아좋아. 착하지.

 

피가로는 아기를 달래면서 목구멍과 눈의 색을 관찰하고 상태를 확인했다.

 

피가로

...응. 어디가 아픈 건 아니야.

 

피가로는 작은 몸에 손을 대고 마법을 걸었다.

그러자 흐느껴 울던 아이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져갔다.

 

피가로

조금 나쁜 게 들어간 것 같아. 회복 마법을 걸어뒀으니 금방 좋아질거야.

오늘 밤 푹 자고나면 내일 아침에는 분명 건강해져 있을거야.

 

남성

정말인가요!?

 

여성

아아, 다행이다...!

 

눈물을 흘리며 부부는 아이를 안아올렸다. 몇 번이나 머리를 숙인다.

 

여성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는 이 아이에게 큰 일이 생겼으면 어쩌지 싶어서... 

 

피가로

괜찮아. 쉽게 지지 않는 강한 애야.

그렇지? 아가씨.

 

아기의 코를 상냥하게 쿡 찔렀다. 아기가 웃자 부부도 긴장이 풀린 것인지 따라 웃었다.

 

남성

맞다, 피가로 선생님. 일이 끝나시면 꼭 저희 마을에 들러주세요.

마을 녀석들을 불러서 환영해드릴테니까요.

 

여성

맞아요. 꼭 대접하게 해주세요.

제 어머니도 선생님께 진료 받고나서 복통이 좋아졌다고, 저에게 몇 번이나 말씀하세요. 선생님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세요.

 

피가로

아하하. 고마워.

다음에 천천히 들를게.

 

왔을 때는 불안해 보였던 부부는 이제 완전히 밝은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이를 안은 손에서도 안도감이 느껴진다.

피가로를 신뢰하는 그 모습을 눈앞에 두고, 나는 미틸의 말을 떠올렸다.

 

현자

(...든든하고 소중한 장소...)

 

오늘뿐만 아니라 부부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피가로에게 도움을 받아온 것이겠지.

그것은 분명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현자

(이곳은 모두에게 있어서 안심을 주는 소중한 장소구나...)

 

부부가 진료소를 떠나고 드디어 진정된 무렵.

 

피가로

그럼 본격적으로 조사를 진행해볼까.

 

미틸

피가로 선생님, 뭘 하면 될까요?

 

루틸

저희, 뭐든 할게요!

 

피가로

응. 두 사람에게 맡기고 싶은 일이 있어.

그리고 시노와 히스클리프와 네로에게도.

다섯명은 우선 이 주변을 날아서 뭔가 눈에 띄는 이변이 없는지 확인해줬으면 좋겠어. 그 동안 우리도 조금 조사하고 싶은게 있어서.

 

루틸・미틸・히스클리프

네!

 

시노・네로

알겠어.

 

현자

여러분, 조심하세요.

 

루틸

감사합니다. 그럼, 다녀올게요.

 

다섯명이 타다닥 밖으로 나가고 진료소의 문이 닫힌다.

적당한 때를 기다리던 것처럼 파우스트가 말을 꺼냈다.

 

파우스트

...너, 벌써 이 이변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챈 거 아닌가?

 

현자

어... 그런가요?

 

피가로는 어깨를 으쓱였다.

 

피가로

짐작일 뿐이지만, 이 지진의 원인은 산의 늪이야.

 

레녹스

...산의 늪?

 

피가로

풀과 나무는 물론, 닿는 건 뭐든 녹여버리는 귀찮은 늪이야. 남쪽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생물에게 맹독 그 자체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지반은 안정되지 않고 다양한 재해를 일으켜. 처치 곤란하단 말이지.

 

현자

그런 무서운 늪이 있다는 건가요...?

 

피가로

정확하게는 있었다, 라고 할까. 아주 먼 옛날에 덮어버렸으니까.

개척하기 시작했던 무렵의 오래된 이야기인데, 덮어버리기 전, 산의 늪 주변에는 다양한 이변이 일어났었어.

커다란 지진이 자주 일어나거나, 지면에 갑자기 구멍이 뚫리거나 말이야.

 

파우스트

이번 이변과 거의 똑같군.

 

피가로

그래. 우연의 일치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매립한 늪이 이제와서 장난을 치고 있어.

 

현자

.......

 

무의식 중에 시선을 발밑으로 떨어뜨린다. 땅 밑에 묻힌 꺼림칙한 늪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그런 위험한 장소에 이 진료소를 세운 겁니까?

 

피가로

설마!

 

섭섭하다고 말하듯이 피가로는 크게 고개를 저었다.

 

피가로

산의 늪이 있었던 건 여기가 아니야. 아주 먼, 사람이 사는 곳에서 떨어진 장소야.

애초에 생물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토지였지만 그냥 놔두는 것도 위험하니까. 지하 깊숙히 묻고 봉쇄한거지.

그래서 지금은 안전하고,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 있는 진료소 주변까지 영향 같은 건 있을 리가 없어.

 

파우스트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이변이 발생하고 있어. 짚이는 게 있을텐데.

 

아주 잠깐 난처한 듯이 피가로는 팔꿈치를 긁었다.

 

피가로

나에 대한 복수이려나.

 

레녹스

복수, 말인가요.

 

피가로

그래. 당시 사람을 속이거나, 마법으로 도둑질을 하는 마음가짐이 나쁜 마법사가 있어서 말이지.

돌로 만들어서 늪과 함께 묻어버렸어. 한꺼번에 처리했다고나 할까.

 

피가로의 말에 나는 철렁했다.

 

현자

처, 처리?

 

시원스러운 말투는 주눅 든 기색도 없다.

 

현자

(평소 분위기로 보면 금방 잊어버렸을 것 같은데...)

 

피가로는 수천 년을 살아온 마법사다. 낙숫물이 목덜미에 떨어진 것처럼 오싹한 감각이 들었다.

 

레녹스

그럼 이번 이변은 그 마법사가 일으켰다는 건가요.

 

피가로

그렇다고 생각해. 방아쇠는, 아마 〈거대한 재앙〉이겠지.

저 달의 영향으로 마법사가 남긴 원한이 무언가에 깃들어 산의 늪의 정령과 결합된 게 아닐까.

약한 만큼, 집념이 강한 남자였으니까 말이야.

자아 같은 건 벌써 사라졌을텐데도, 나를 찾으러 지맥을 기어다니고 이 진료소 지하까지 이동해 온 거겠지.

정말이지, 한결같은 놈이야.

 

그렇게 말하고 피가로는 주문을 외웠다.

 

피가로

《폿시데오》

 

현자

...우왓?

 

또다시 커다랗게 지면이 흔들렸다.

동시에 검은 안개 같은 것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현자

(...어? 뭐지...?)

 

레녹스

이건...

 

갑자기 낮은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음산한 소리가 울리고, 무심코 귀를 막았다.

온몸에 휘감기는듯한 불안감. 듣는 것만으로 기분이 안 좋아진다.

실제로 목소리가 들린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 소리에서 강한 원망과 증오가 느껴졌다.

괴로워하고 발버둥쳐라... 뭐든 빼앗아주겠다, 라고.

 

피가로

미안해, 무섭게해서.

 

딱, 하고 피가로의 손가락이 울린다.

그러자 검은 안개도, 원망하던 느낌도 꿈처럼 확 사라졌다.

 

현자

...방금 그건...

 

파우스트

아까 느낀 저주의 기운은 이거였나...

 

레녹스

파우스트 님. 눈치채고 계셨습니까?

 

파우스트

왠지 불온함을 느끼고 있던 정도다. 이 남자처럼 뭐든 알고있는 건 아냐.

 

파우스트는 힐끗 피가로를 보았다.

 

파우스트

거기까지 알고 있었으면 해결책도 있는 거겠지.

 

피가로

그렇네...

이변을 일으키고 있는 집념의 대상은 나야. 나와 토지의 결합이 강한 걸 매개로 하면 금방이라도 소멸시킬 수 있어.

즉, 이 진료소야.

 

현자

어...

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남쪽 나라&동쪽 나라~

 

피가로

자, 도착이야. 다들 고생했어.

 

현자

여기가 피가로의 진료소...

 

커다란 호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러셀 호수는 호반을 중심으로 마을이 군집해 있는 것 같았다.

주민들의 집들이 호수 주변에 모여있었다.

피가로의 진료소는 그 호수를 마주하고 서 있었다. 소박한 모습은 친숙해지기 쉬운 분위기가 있다.

 

미틸

왠지 오랜만에 온 기분이에요.

 

루틸

최근엔 올 기회가 없었지. 그래도 하나도 변한 게 없는 것 같아.

 

그리운 풍경에 둘러싸여 루틸과 미틸은 기쁜 듯했다. 그래서 그런지 레녹스도 표정이 부드럽다.

 

현자

레녹스도 역시 반가운 기분인가요?

 

레녹스

그렇군요. 저도 오는 건 오랜만이라.

 

시노

호수랑 가깝네. 나쁘지 않아.

 

히스클리프

경치가 아름다워. 몸을 돌보기엔 딱 좋은 환경인 것 같아.

 

루틸

무척 예쁜 곳이죠? 피가로 선생님의 진료소에는 옛날부터 쭉 신세를 지고 있어요.

저희뿐만 아니라, 여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 피가로 선생님을 의지하고 있거든요.

 

미틸

약을 받거나, 다친 곳을 봐주시거나, 아플 때 상담하거나...

모두에게 무척 든든하고 소중한 장소예요.

 

피가로

그렇게 칭찬하면 부끄러운걸.

 

피가로가 바라보자, 미틸과 루틸은 웃으며 가슴을 폈다.

그것은 고향인 구름의 거리로 돌아왔을 때, 그들이 보인 표정과 같은 것이었다. 자랑스럽고 마음이 편안한 듯했다.

 

현자

(미틸과 루틸에게 있어서 이곳은 또 하나의 집 같은 곳일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한 직후, 현기증 같은 감각이 엄습했다.

 

현자

...윽!

 

시노・미틸・히스클리프

!?

 

네로

우왓?

 

파우스트

지진인가...!

 

진동은 생각보다 컸다. 몸서리 치는 지면에 몸이 휘둘린다.

갑작스러웠기 때문인지 다들 크게 휘청거렸다. 나도 비틀거리며 넘어질 것 같았지만 레녹스가 받쳐주었다.

 

레녹스

현자 님, 저를 잡으세요.

 

현자

가, 감사합니다...!

 

곧 진동은 멎었다. 다들 크게 숨을 내쉬었다.

 

루틸・미틸

깜짝 놀랐어...!

 

시노

히스, 괜찮아!?

 

히스클리프

으, 응. 괜찮아...!

 

파우스트

...지진이 빈발한다는 얘기는 아무래도 진짜인 것 같군.

 

네로

도착하자마자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네. 거기다 꽤 크잖아.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야기를 듣기만 해서는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그 무서움을 알지 못한다.

우리들은 직접 이변의 심각함을 실감했다.

 

레녹스

이 정도 규모의 지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난다면 피해가 상당할 것 같습니다.

 

루틸

이미 무너진 건물도 있다고 해요. 이대로 지진이 계속되면 진료소도 무사하지 못할지도...

 

미틸

그럴수가... 빨리 어떻게든 해야겠어요.

이 이상 큰 일로 번지기 전에 저희가 이변을 막죠!

 

루틸

응! 모두의 소중한 장소는 우리가 지켜야지.

 

친숙한 토지라는 것도 있어서인지 미틸과 루틸은 평소보다도 의욕이 가득했다.

한편, 피가로는 웅크려 앉은 채 지면에 손을 댔다.

일어났다고 생각했으나, 금방 묘한 얼굴로 생각에 잠긴다.

 

피가로

.......

 

현자

피가로?

 

파우스트

...어이, 이 토지는.

 

피가로

파우스트.

우선 진료소 안에서 이후의 조사 방침을 정하고 싶어.

거기다 모처럼 여기까지 오게 했잖아. 일부러 멀리서 찾아온 손님을 환영해주고 싶어.

 


 

피가로에게 이끌려, 일단 진료소에 들어가기로 했다.

건물은 그렇게 넓지 않았다. 한정된 공간에, 오래된 책상과 의자, 침대와 약을 늘어놓은 서랍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어떤 곳도 햇볕이 잘 들고 깨끗했다. 약해진 심신에 좋은 공간일 것이다.

 

피가로

좁은 곳이지만 편하게 쉬어도 돼.

 

현자

피가로, 차까지 내주시다니 감사해요.

 

히스클리프

이거, 무척 향이 좋네요.

 

피가로

마음에 든다니 기뻐. 약초를 달인, 피로회복에 도움이 되는 차야.

다들 여기까지 이동하느라 피곤하잖아?

 

네로

그거 고맙네.

 

히스클리프

잘 마실게요.

 

현자

...쓰....

 

시노

써!!

 

루틸

오랜만이네, 피가로 선생님의 쓴 차.

 

미틸

으으... 이 차, 맨날 마셔도 쓰네요.

 

다들 고전하고 있는 와중, 파우스트와 레녹스는 조용히 차를 마셨다.

 

네로

두 사람 다 잘도 태연하게 마시는구나. 쓰지 않아?

 

파우스트

쓴 맛의 차는 익숙하니까.

 

히스클리프

레녹스도?

 

레녹스

아니, 써.

 

현자

(쓰구나...)

 

미틸

맛은 조금 개성적일지도 모르지만, 이 쓴 차는 정말로 몸에 좋아요. 이걸 마시고 하룻밤 자면 엄청나게 건강해져요.

 

루틸

맞아맞아. 거기다 계속 마시면 이 맛이 중독된다고나 할까...

미틸과 자주 차를 마시러 여기 오곤 했어요.

 

미틸

네, 반갑네요!

 

피가로

어, 혹시 두 사람이 여기 자주 왔던 건 이 차가 목적이었던 거야?

피가로 선생님을 만나러 와줬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서럽네에.

 

루틸・미틸

아하하, 농담이에요.

 

미틸

전... 피가로 선생님도, 이 진료소도 엄청 좋아해요.

병이나 상처를 입으면 왠지 불안해지잖아요. 여긴 그걸 '괜찮아, 안심하렴'하며 받아주는 장소니까요.

그래서 커서는 선생님의 진료소에서 약사로 도우며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피가로

미틸...

 

미틸

실은 그런 공부도 겸해서 진료소에 왔던 것도 있어요.

앗. 물론 피가로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예요!

 

피가로

아하하. 고마워, 미틸의 마음 무척 기뻐.

그럼 네 책상을 여기에 두는 건 어떠니?

 

미틸

어...? 괘, 괜찮나요?

제가 여기서 일해도...

 

피가로

물론. 약장과 작업대도 옆으로 이동시키면 일하기 편해지려나.

 

미래의 일을 이야기하며 온화하게 웃는 피가로에게, 미틸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핀다.

그것을 지켜보는 다른 마법사들의 얼굴에도 자연스레 웃음이 번졌다.

 

현자

(이 진료소는 남쪽의 마법사들에게 있어 무척이나 소중한 장소구나...)

 

남성

저기, 실례합니다...!

 

여성

피가로 선생님 계신가요!?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진료소의 문이 두드려졌다.

방문해온 것은 젊은 부부처럼 보이는 남녀. 남성의 팔에는 아기가 안겨 있다.

두 사람은 피가로의 얼굴을 보고 명백하게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남성

다행이다, 계셔서...! 여러분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고 혹시나 싶어 찾아왔습니다...!

 

여성

선생님, 부디 이 아이를 진료해 주세요! 어젯밤부터 계속 우는 데다 우유를 먹여도 자꾸 토해내요.

 

피가로

정말이네, 괴로운 듯이 울고있어. 자, 안으로 들어와요.

 

부부는 이 근처 마을에 사는 듯했다. 마을에는 의사가 없기 때문에 이곳이 가장 가까운 진료소가 되는 듯했다.

 

남성

그야말로 하늘이 도우셨어. 피가로 선생님이 우연히 계시다니.

젊은 선생님이 있는 구름의 거리의 진료소를 찾아가는 게 좋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좀 멀어서...

 

현자

젊은 선생님? 구름의 거리에도 의사가 있는 건가요?

 

미틸

네. 젊은 선생님은 크라크 씨를 말씀하시는 거죠?

 

여성

맞아맞아. 그 분이야.

때때로 피가로 선생님 대신 이 진료소에 와서 진찰해주기도 하셨지.

그래서 젊은 선생님이 여기 오는 걸 기다릴지, 기다리지 않고 구름의 거리로 갈지 남편과 상의했는데...

일단 호수 근처까지 와보니 피가로 선생님의 모습이 보여서 급하게 달려왔어.

 

피가로

그거 잘 됐네. 병은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그 애도 바쁜 몸이니까 그렇게 자주는 여기 오지 못할거야.

 

레녹스

구름의 거리 환자 분들께서 많이 의지하시는 것 같네요. 젊은데다 수완이 좋다는 평판이라 하더군요.

 

루틸

역시 피가로 선생님의 제자 분이시네요!

 

파우스트

...제자?

 

시노

제자라는 건, 그 녀석도 마법사인 건가?

 

피가로

아니, 인간이야. 의사가 되고싶어 하길래 내가 첫걸음을 떼게 해준 것 뿐이야.

자, 그보다...

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남쪽 나라&동쪽 나라~

 

피가로

생각해보면 마법관에서 살기 시작한 뒤로 제법 시간이 흘렀네.

두 사람과 얘기하니까 나도 그리워졌어.

지금은 의뢰가 별로 없기도 하니까 다음에 남쪽의 마법사들끼리 남쪽 나라로 돌아갈까. 거기서 한동안 느긋하게 지내보자.

 

미틸

어, 그래도... 저희는 현자의 마법사로서의 역할이...

 

피가로

역할이 있기 때문에야말로, 란다. 항상 긴장하고 있는 만큼 휴식도 확실하게 취해줘야 해.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만전의 상태로 움직일 수 없을테니까.

마법사는 마음으로 마법을 사용하지.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마음에 무리를 가게 하면 안 돼.

 

미틸

...네, 선생님. 알겠어요.

 

피가로

착하구나.

아직 몸이 나른할거야. 조금 쉬어 두렴.

 

미틸

네...

.......

 

레녹스

...잠든 것 같습니다.

 

피가로

약 기운이 돌 때가 됐으니까 말이야.

이번에 아픈 건 지친 것뿐만이 아니라 이 아이의 마음에도 원인이 있는 것 같아.

아마 가벼운 향수병이 컨디션에도 영향을 미친 거겠지.

 

레녹스

그래서 남쪽 나라로 돌아가자는 제안을 하셨군요.

 

피가로

뭐 그렇지. 지금의 미틸에게는 고향의 공기가 가장 도움이 될거야.

본인은 자각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애착있는 토지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건 상의를 벗어버리는 것과 같은 거야.

왠지 추운 것 같고 가끔씩 마음이 기침을 하거든. 토지의 정령에 깊게 관련된 마법사라면 더욱 그렇지. 

 

레녹스

그렇군요...

아무튼 오늘 일은 루틸에게도 나중에 얘기해 두겠습니다.

 

피가로

...이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레녹스

누군가 눈치채고 루틸에게 미틸이 아픈 걸 알려준 게 아닐까요.

 

피가로

그럴지도.

안녕, 루틸. 어서와.

마침 잘 됐어.

 

루틸

아, 피가로 선생님.

 

현자

미틸의 상태는 어떤가요?

 

피가로

어라, 현자 님? 혹시 네가 루틸에게 알려준거야?

 

현자

네. 방금 루틸과 복도에서 만나서.

 

나와 루틸의 얼굴을 보고 피가로는 안심시키듯이 미소지었다.

 

피가로

이제 안정됐으니까 괜찮아. 금방 좋아질거야.

 

레녹스

방금 피가로 선생님의 약을 먹고 막 잠든 참입니다.

 

루틸

정말인가요? 다행이다...

 

우리는 휴하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뺨은 긴장한 상태 그대로 좀처럼 웃어지지 않는다.

 

현자

피가로. 실은 상담하고 싶은 게 있어서...

 

피가로

.......

느긋하게 보내는 건 잠시 보류해둘까.

 

무언가 짐작한 듯이 피가로는 우리를 방으로 들였다.

 


 

레녹스

남쪽 나라에서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현자

네. 두 사람이 도서실에서 떠난 뒤 조사의뢰가 도착했어요.

루틸에게는 이미 설명했지만...

 

의뢰서에 의하면 최근, 남쪽 나라의 어떤 지역에서 지진이 빈발한다고 한다.

절벽이 무너지고, 건물이 무너지며, 땅에 묘한 구멍이 뚫리면서 피해는 점차 확대되어 부상자도 늘고 있다고 한다.

 

현자

피해 상황도 상당히 심각하지만, 심지어 그 지역이...

 

루틸

피가로 선생님의 진료소가 있는 장소와 아주 가까운 것 같아요.

 

피가로・레녹스

.......

 

피가로와 레녹스의 눈이 커졌다.

 

레녹스

진료소 근처에서 지진이...?

 

피가로

으음... 그 주변은 지진 같은 게 일어날 장소가 아닐텐데...

어쩌면 〈거대한 재앙〉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 발생한 것일지도 모르겠어.

 

루틸

아무튼 가서 조사해보죠.

 

레녹스

그렇네. 우선 현장의 상황을 확인해보고 싶어.

 

피가로

현자 님. 출발은 미틸의 회복을 기다리고나서 해도 괜찮겠어?

 

현자

물론이에요. 준비가 필요하기도 하고, 미틸의 상태가 만전이 되면 조사하러 가도록 할까요.

그리고 이번엔 피해 규모가 큰 것 같으니까 서포트로서 다른 나라의 마법사에게 동행을 부탁할 생각이지만...

 

그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잘 아는 목소리가 들렸다.

 

파우스트

피가로, 있나.

 

피가로

파우스트?

별일이네, 네가 방문해주다니. 무슨 일 있어?

 

의외라는 시선을 받고 파우스트는 민망한듯이 모자를 내렸다.

 

파우스트

미안하군, 환자가 있을 때.

 

피가로

괜찮아. 지금은 약을 먹고 쉬고 있어.

 

파우스트

그런가.......

 

퉁명스러운 대답 속에 희미하게 안도의 기색이 있었다.

 

파우스트

아까 살짝 들렸는데, 남쪽의 마법사 앞으로 의뢰가 도착했다지.

혹시 일손이 필요하다면 동쪽의 마법사가 동행해도 좋아. 그걸 전하러 왔다.

 

담담하게 고한 파우스트는 한순간 침대 쪽을 훔쳐보았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기피하는 그가 스스로 동행을 자청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아픈 미틸을 신경쓰고 있다는 것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해졌다.

 

현자

파우스트...

 

레녹스

파우스트 님...

 

루틸

파우스트 씨...

 

파우스트

뭐, 뭐야. 다가오지 마.

필요하다면, 이라는 얘기일 뿐이야.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면 별로...

 

피가로

아니, 꼭 부탁할게.

고마워, 파우스트. 너희가 와준다니 엄청 든든해.

 

파우스트

.......

 

기쁜 듯한 피가로에게 파우스트는 미묘한 표정을 띄웠다.

 


 

며칠 후. 미틸의 회복을 확인하고 조사를 나간 남쪽과 동쪽의 마법사들은 남쪽의 탑에 도착했다.

 

레녹스

여기서부터는 빗자루로 이동합니다.

 

루틸

저희가 안내할테니 동쪽의 마법사 분들은 따라와주세요.

 

네로

그래, 알겠어. 따라갈 수 있을 스피드로 부탁한다고.

 

파우스트

그건 그렇고, 의뢰 때문인지 의사 집단처럼 보이는군.

 

현자

진료소에 출입할테니까 환자 분들이 낯설어하지 않도록 클로에가 준비해줬어요.

 

피가로

좋은 애란 말이야. 배려가 세심하달까.

 

미틸

오늘 의상도 엄청 멋져요. 나중에 클로에 씨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러 가야겠어요.

 

시노

미틸, 몸은 괜찮아?

 

히스클리프

혹시 상태가 안 좋아지면 걱정말고 말해줘.

 

미틸

감사합니다. 이제 완전히 좋아졌어요.

그때는 두 분께 걱정 끼쳐드려 죄송해요. 병문안도 와주시고...

죽 엄청 맛있었어요!

 

히스클리프

천만에요.

 

시노

흐흥. 그렇지.

하지만 무리는 하지 말라고.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 약초 달인 약을 가지고 왔으니까.

 

히스클리프

아, 그거... 전에 시험에 나온 약이지.

 

시노

그래. 마시면 피로가 회복된다고 하던데.

파우스트가 말한 대로 이론 공부도 가끔은 도움이 되는군.

 

루틸

후후. 미틸에게 상냥한 형들이 무척 많이 생겼네요.

 

네로

저 녀석들, 미틸을 계속 걱정했으니까 말이야.

 

세 사람의 교류를 지켜보던 루틸과 네로는 보호자의 시선으로 미소지었다.

젊은 마법사들이 친근하게 미틸을 돌보는 모습은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는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진다.

 

피가로

슬슬 출발해볼까. 미틸은 막 나은 참이니까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선생님과 함께 날자.

 

미틸

네!

 

레녹스

현자 님은, 여기 제 빗자루로.

 

현자

감사해요, 잘 부탁드려요.

 


 

피가로의 진료소가 있는 러셀 호수는 구름의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빗자루로 날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마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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