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남쪽 나라&동쪽 나라~

 

히스클리프

앗, 스케치북이네.

 

루틸

응. 우리가 어렸을 때 여기서 자주 그림을 그렸어.

 

미틸

둘이서 다양한 걸 그렸었죠. 산과 호수, 물고기, 나비 등등.

물론 피가로 선생님과 레노 씨의 그림도.

 

시노

헤에. 물고기 그림은 이건가?

 

루틸

아니! 그건 피가로 선생님을 그린 거야.

 

히스클리프

어? 그럼 이건?

틀림없이 피가로 선생님을 그린 거라고...

 

루틸

그건 꽃이 춤추는 그림!

 

시노・히스클리프

.......

 

미틸

형님은 본 것을 그대로 그리지 않아요. 마음에서 느껴지는대로 그리니까, 좀 개성적이게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어떻게 아는지 신기하지만 피가로 선생님과 레노 씨는 가끔씩 맞추셨어요.

 

시노

그런거군. 심오하네.

 

히스클리프

아하하.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 알게 될지도 모르겠네.

 

피가로

약도 발랐고 치유마법도 걸어뒀으니까 문제 없을거야. 통증은 이제 없지?

 

레녹스

네. 감사합니다.

 

피가로

그 산성은 강력해. 많이 뒤집어쓴 건 아니지만 아주 고통스러웠을거야.

 

레녹스

그래서 다행이었습니다. 미틸이 그걸 맞지 않아서.

 

피가로

맞아, 고마워.

........

오늘은 레노의 완고함이 도움됐어. 그 애들을 울리지 않을 수 있어서.

 

레녹스

저야말로. 그 애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평생 후회했겠죠.

이번엔 선생님의 심려를 헤아리지 못하고 주제넘은 행동을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피가로

아냐. 또 비슷한 일이 있을 때면 오늘처럼 포기하지 말고 의견을 말해줘.

앞으로도 계속 싸우자고. 되도록 상냥하게 말이야.

 

현자

...괜찮은 것 같네요.

 

파우스트

그래.

 

네로

그런 것 같네.

 

레녹스의 부상과 두 사람의 화해. 양쪽 다 마음에 걸렸던 우리는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네로도 파우스트도 안도의 숨을 내쉬고 과실주를 꿀꺽 마신다. 동쪽의 마법사들은 걱정이 많은 데다 상냥하다.

 

현자

오늘은 여러분이 도와주러 오셔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파우스트

뭐어, 우연히 시간을 낼 수 있었으니까.

 

네로

어떻게든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야. 막 나은 참이던 미틸도 괜찮았던 것 같고.

아... 그러고보니 분위기가 안 좋을 때 선생 혼자만 두고 가버려서 미안했어.

 

파우스트

정말이지... 갑자기 혼자 남겨진 처지가 되어보라고.

 

현자

(확실히 미안한 일을 한 것 같네...)

 

피가로

누구의 처지가 되어보라고?

 

네로

우왓.

 

파우스트

멋대로 등 뒤에 서있지 마.

 

현자

피가로, 레녹스. 치료 고생했어요.

괜찮으면 여기 앉으실래요?

 

레녹스

감사합니다.

 

피가로

그럼 사양않고 현자 님의 옆에 앉아버릴까나.

그래서, 무슨 얘기했어?

 

현자

어, 어-으음, 동쪽의 마법사들이 와줘서 다행이라고...

 

레녹스

확실히 그 말대로입니다.

동쪽의 마법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번 이변은 막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피가로

딱딱하네-.

 

레녹스

그렇습니까...?

 

네로

딱딱해 딱딱해. 식전 연설 같은 것도 아니니까.

 

피가로

같은 현자의 마법사들이니까 '다들 고마워, 다음에도 잘 부탁해!' 정도면 괜찮지 않아?

 

파우스트

그것도 별로라고 생각한다만...

 

레녹스

감사합니다. 피가로 님과... 모두의 소중한 장소를 지키기 위해 힘을 빌려주셔서.

의외였습니다.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파우스트 님께서도, 피가로 선생님과 의견이 같을 거라 생각했어서.

 

현자

어? 그랬던 건가요?

 

파우스트

분명 나도 내 집이었다면 매개로 사용하는 방법을 골랐을 것 같군.

하지만 그때는 누구의 주장도 조금씩 이해가 됐어. 관계자가 아닌 자는 끼어들지 않았을 뿐이야.

 

네로

그래그래. 남쪽의 마법사들끼리 정해줘서 다행이었다고.

 

모두가 가벼운 어조로 평화롭게 이야기한다.

볼과 옷에 진흙을 묻히고 땀에 젖은 머리카락도 그대로였지만, 긴장이 풀린 모습에 출발 전의 날카롭던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조금 상상했다. 사람들의 생활에 뒤섞여 개척하는 데 힘을 빌려준, 이 풍경을 키워온 피가로의 모습을.

 

현자

(...지키고 싶은 건 분명 똑같았던 거야)

 

지금까지 피가로는 그런 식으로 남쪽 나라를 쭉 지켜와준 것이겠지.

모두를 위해서 조금씩 무언가를 잘라버리며.

그것이 때로는 자신에게 소중한 것일지라도.

 

미틸

피가로 선생님! 레노 씨!

 

피가로・레녹스

응?

 

미틸

지금 형님의 어릴 적 스케치북을 봤는데요,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이 그림이래요.

뭘 그린 건지 아시겠어요? 현자 님도, 모두도 생각해보고 말씀해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미틸은 스케치북을 우리들에게 보이도록 내걸었다. 중앙에 선명하고 신선한 그림이 그려져있다.

 

현자

...이, 이건...

 

네로

...뭐야? 휘어진 야채...?

 

파우스트

마법생물이 아닌가?

 

피가로・레녹스

.......

...낮잠자는 개?

 

루틸

정답입니다!

 

시노・히스클리프

진짜로 맞췄어...!?

 

현자

두 분 다 잘 아셨네요!?

 

네로

어떻게 안 거야?

 

레녹스

옛날에 이 근처에서 발견한 개와 함께 미틸과 루틸이 자주 놀았던 것 같아서...

 

피가로

맞아맞아. 그 다음에 대충 때려맞췄다고나 할까?

 

시노

그럼 이것도 알겠어?

 

히스클리프

이 그림도?

 

그대로 테이블에 스케치북을 펼쳐 다함께 그림 맞추기가 시작되었다.

그러고 미틸의 스케치북과 추억의 작품도 놓여지면서, 옛날 이야기 꽃이 핀다.

 

피가로

현자 님. 잔이 비었어.

나랑 똑같이 주스로 할래?

 

현자

네, 감사해요. ...어라? 피가로, 술이 아니네요.

 

피가로

응. 오늘 밤은 취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서.

 

놀라거나 웃거나 수많은 목소리가 들리는 와중, 피가로는 계속 기쁜 것 같았다.

진료소를 지킬 수 있어서 안심한 것은 분명 미틸 일행뿐만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도 이 장소는 날개를 쉴 수 있는 커다란 나뭇가지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현자

(이 장소가 없어지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웃음소리는 끊어지는 일 없이, 즐거운 밤이 계속된다.

시노의 요청에 응한 네로가 식후 디저트를 오븐에서 꺼내어, 파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무렵.

 

네로

자, 레몬파이가 구워졌다고. ...어라.

 

루틸・미틸

...쿨...

 

시노・히스클리프

쿨쿨...

 

레몬파이의 완성을 기다리던 네 사람은 어느샌가 잠들어 있었다.

테이블에 엎드리고 평화롭게 숨소리를 낸다.

 

피가로

결국 잠들어버렸나.

 

레녹스

오늘 하루종일 고생한 피로가 몰려온 것이겠죠.

 

파우스트

한나절 내내 구멍을 팠으니까. 무리도 아니지.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네 명의 자는 얼굴은 막 태어난 것처럼 평온하다.

 

네로

하지만 이 녀석들 꽤 사이가 좋네. 다같이 똑같은 모습으로 자고 있어.

 

현자

아하하. 일어나면 어떤 얼굴일까요.

 

파우스트

왜 깨워주지 않았냐고 분개하는 사람은 있겠지.

 

피가로

애들은 잠들면 순해진단 말이지. 더 놀고 싶었는데.

 

네로

심지어 오늘은 갓 구운 레몬파이를 먹을 기회를 놓쳤구만.

 

레녹스

미틸은 아쉬워하겠고 시노는 억울해하겠네.

 

숨소리가 넷, 각각 다른 음악처럼 들려온다. 그것이 끊기지 않도록 어른들은 조심스레 소리죽여 웃음을 흘린다.

 

현자

또 하나, 새로운 추억이 생겼네요.

 

네로

확실히 오늘 일은 잊을 수 없겠네.

 

파우스트

이 아이들이 잠기운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녹초가 돼서 지켜낸거야.

 

레녹스

네. 여긴 더이상 우리 남쪽의 마법사들뿐만이 아닌, 모두에게 소중한 장소입니다.

 

피가로

...응. 그렇네.

 

밤의 시간이 느긋하게 내일로 흘러간다. 언젠가 오늘의 일을 웃으며 돌아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는 나도 보물을 하나씩 보여주듯이 얘기하고 싶다.

소중한 보물이, 소중한 누군가의, 새로운 추억이 되는 것처럼.

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남쪽 나라&동쪽 나라~

 

균열에서 흘러나온 산성은 머물지 않고 주변을 침식해간다.

그뿐 아니라 기어올라와서, 지면 그 자체가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휩쓸린 바위와 돌이 얼음처럼 쉽게 녹아가는 모습은 위에서 보아도 오싹했다.

 

피가로

큰일인걸. 기세를 몰아 지상으로 나가려고 하네.

얼른 원흉인 마도구를 없애버리자.

 

파우스트

그러고는 싶지만 산의 늪이 방해하는군. 마도구를 지키듯이 둘러싸고 온다고.

 

피가로

막무가내로 봉인하는 건 리스크가 높아. 일단 저게 좀 얌전해지게 만들어볼까.

 

끄덕인 파우스트는 뒤에서 날고있는 네로와 레녹스를 돌아보았다.

 

파우스트

네로, 레녹스. 산의 늪을 억제할 수 있나? 아주 잠깐이라도 좋아.

레노는 치유가 필요하면...

 

레녹스

아뇨, 문제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정도 상처는 마법을 사용하는 데 아무 지장 없습니다.

 

파우스트

...그렇네. 미안하군.

 

네로

요리인에게는 막중한 일이구만. 뭐, 할 거지만 말이야.

 

미틸

저기...! 레노 씨 대신에 제가 해도 될까요!?

 

미틸이 피가로의 옆으로 날아온다.

 

미틸

물론 저로는 역부족이란 걸 알고 있지만요, 저를 감싸주신 것 때문에 레노 씨는 부상을 입으셨어요. 그러니까...

 

레녹스

미틸...

 

루틸

저도 하게 해주세요. 저와 미틸이 레노 씨 몫까지 할게요.

셋이서 힘을 합치면 분명 오랫동안 억제할 수 있을 거예요.

 

네로

...아니, 안 돼.

 

짧은 망설임 뒤, 피가로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네로가 먼저 고개를 저었다.

그로서는 드물게 단정짓는 말에 모두가 네로를 돌아본다.

 

미틸

네, 네로 씨...

 

네로

미안하지만 당신들은 뒤로 물러나줘.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산의 늪을 억제하지 못하면 당신들을 지켜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

양치기 군의 부상을 봤잖아. 당신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서 피가로는 진료소를 없애자고 말했던거야.

 

루틸・미틸

아...

 

레녹스

.......

 

짐작이 가는 듯,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예전 거처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진료소를 생각하지 않는 피가로의 태도에는 나도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합리성의 저울 반대쪽에는 모두의 안전이 놓여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형제가 후회를 머금고 빗자루를 움켜쥔다. 피가로는 그것을 털어내듯이 밝고 상냥한 목소리를 건넸다.

 

피가로

지금은 아냐.

모두가 없애지 않으려고 한 진료소를, 나 자신도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건 미틸과 루틸, 레녹스가 나를 멈춰준 덕분이야.

추억이 가득한 진료소는 없애지 않고 다함께 힘을 합쳐서 산의 늪을 다시 한 번 봉인할거야. 레노의 부상은 나중에 내가 치료할테니까 감사하라구.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피가로

너희들이 제안해준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야.

그렇지, 현자 님?

 

피가로는 나를 돌아보고 물었다. 그 표정은 왜인지 상쾌해 보였다.

이 장소의 누구나가 기쁜 마음이 북받쳐오른 얼굴이어서 나도 따라 웃으며 끄덕였다.

 

현자

네...! 부탁할게요, 피가로.

 

파우스트

좋아. 그럼 루틸과 미틸은 저쪽으로.

시노와 히스클리프는 현자를 지켜라.

 

히스클리프

네.

 

시노

간다, 미틸.

 

미틸

네... 레노 씨, 피가로 선생님, 조심하세요!

 

루틸

여러분, 무리하지 마세요...!

 

걱정 가득한 얼굴인 형제를 재촉하며, 시노와 히스클리프의 빗자루가 산의 늪에서 뿜어져나오는 구멍에서 떨어져 상승한다.

손을 흔들며 배웅한 피가로는 남은 세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피가로

그럼 시작해볼까. 레녹스, 네로.

 

피가로의 눈짓에 두 사람이 마도구를 꺼내들었다.

 

네로

간다.

 

레녹스

그래.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두 사람이 주문을 외우자 투명한 막으로 지면 전체가 덮였다.

강하게 짓눌린채로 산의 늪의 기세가 약해진다.

 

시노

좋아!

 

히스클리프

산의 늪이 막혔어!

 

직후, 검은 안개에 휩싸인 작은 상자가 격렬하게 빛났다. 짓눌린 지면이 저항하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레녹스

큭...!

 

네로

...윽...!

 

두 사람이 동시에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어떻게든 억제하고는 있지만 산의 늪의 저항은 꽤나 격렬한 것 같았다.

 

네로

...이제 한계야. 그쪽 서포트는 못해줘!

 

피가로

내가 주물 주변의 사악한 기운을 없앨게. 정화는 그쪽의 프로에게 맡길게.

 

파우스트

뭐가 프로란 거냐.

 

피가로

믿고있다구.

《폿시데오》

 

주물을 둘러싼 검은 안개가 날려가듯이 홀연히 사라진다.

사악한 기운이 벗겨진 마도구는 허공에 뜬 채 흔들리더니 괴로운 듯이 허덕였다.

 

파우스트

《사틸크나트 물크리드》

 

그러자 하얀 사슬 같은 것이 나타나 마도구를 휘감았다.

사슬은 마도구를 꽉꽉 조였고 비명이 더욱 커졌다.

원망이 담긴 목소리에 눈을 가늘게 뜨고 피가로가 무언가 중얼거렸다.

 

피가로

돌이 된 뒤, 이렇게나 집착만이 남아있었다니. 네가 조금 부러워.

무언가를 상상하고 애석해하고 단념하지 못한 채 큰 소리 치는 걸, 나는 앞으로 볼 수 있을까.

 

파우스트

뭘 중얼거리는 거야. 마무리할 차례다.

너도 목적을 달성하도록.

 

피가로

알고 있어.

 

파우스트

《사틸크나트 물크리드》

 

피가로

《폿시데오》

 

터지는 듯한 눈부심 속, 돌이 부서졌다.

동시에 눈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바람이 밑에서 불어온다.

 

현자

으...

 

잠깐 보였던 것은 구슬을 손에 든 채, 거칠게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떠오르는 장엄한 피가로의 모습.

 

현자

..........

.......?

 

다음 순간에는 산의 늪도, 꺼림칙한 마도구도 눈 앞에서 사라져 있었다.

 

현자

어라...

 

미틸

구멍이 없어졌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울퉁불퉁한 바위산의 풍경이 발 아래에 펼쳐져 있다.

 

루틸

이건...

 

시노

잘 모르겠지만 결국 잘 해결된 건가.

 

파우스트

그래, 끝났어.

 

피가로

이젠 괜찮아. 마도구는 정화했고, 산의 늪은 다시 땅 깊은 곳에 봉인시켰어.

 

히스클리프

다행이다...

 

네로

이거 참, 일단 안심이구만.

 

미틸

...저기, 피가로 선생님.

방금 전 마법, 피가로 선생님이 하신 거예요?

 

루틸

왠지 터무니없는 걸 본 것 같은데요...

 

피가로

.......

설마! 파우스트에게 일시적으로 힘을 빌렸어.

그렇지 않으면 주물과 산의 늪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을 테니까.

 

파우스트

.......

그렇...지...

 

루틸

뭐야, 그런건가요. 파우스트 씨가 힘을 빌려주셨군요.

 

미틸

혹시 피가로 선생님은 엄청난 마법사인 거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피가로

아하하. 그럴 리가 없잖아.

피가로 선생님은 그저 상냥한 의사 마법사니까. 그렇지, 레노.

 

레녹스

그렇습니다. 그래도 선생님 덕분에 이변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미틸

이제 진료소를 없애지 않아도 괜찮은거죠?

 

피가로

응. 지금까지처럼 그 장소에서 진료소를 계속할 수 있어.

모두들 덕분이야. 고마워.

 

루틸・미틸

아싸!

 

빗자루 위만 아니었으면 미틸과 루틸은 분명 펄쩍 뛰며 기뻐했을 것이다. 우리들도 분명 똑같이 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서로 손뼉을 치고 성공을 축하했다. 그 유쾌한 소리에 섞여 시노의 배에서 성대한 소리가 울렸다.

 

시노

...배고파.

 

파우스트・히스클리프

...풉.

 

루틸

아하하!

 

네로

그러고보니 계속 아무것도 안 먹었었네.

 

미틸

그 말 들으니까 갑자기 배가 고파졌어요.

 

피가로

좋아. 굶어 죽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자.

 

산 너머로 바람이 불어와 피로를 기분 좋게 어루어만진다.

석양을 쫓아가듯이 마법사들은 그 장소를 떠났다.

 


 

진료소에 돌아온 후. 이변이 해결된 것을 축하하며 우리들은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옹기종기 모인 진료소의 테이블에는 솜씨를 발휘한 네로의 맛있어 보이는 요리가 놓여있다.

 

루틸・미틸

와, 맛있겠다!

 

레녹스

진수성찬이네.

 

현자

네로, 고마워요.

 

네로

공복으로 일했으니 배고프잖아. 간단한 것들 뿐이지만 마음껏 먹어.

 

시노

한 그릇 더.

 

네로

빠르지 않아!?

 

시노

오늘 하루 종일 배고픈 상태였으니까 말이지. 접시에 놓는 것보다 빨리 내 입 안으로 넣고 싶을 정도다.

 

파우스트

아기새냐...?

 

히스클리프

바로 입에 넣으면 화상 입을걸.

 

피가로

하하. 젊은이의 위는 대단하구나.

 

남쪽의 마법사들도 동쪽의 마법사들도 이변을 해결했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파티는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크기도 형식도 상관없이, 제각각인 잔을 손에 들고 모두들 스스럼 없이 이 시간을 즐겼다.

 

미틸

형님, 이거 기억나요? 선생님께서 간직해두셨어요.

 

루틸

와아, 오랜만이다!

 

시노

뭐지?

꽃이 뿌리내린 진료소의 랩소디~남쪽 나라&동쪽 나라~

 

찾는 물건을 발견하지 못한 채 시간은 시시각각 흘러... 

이윽고 서쪽 하늘이 빨갛게 물들어가기 시작할 무렵.

 

히스클리프

이제 힘이 안 들어가...

 

네로

...히스, 한동안 쉬고 있어. 여긴 내가 할 테니까.

 

히스클리프

네로. 그래도...

 

파우스트

네로의 말대로야. 빗자루로 날 수 있을 정도의 마력은 남겨둬.

시노는 괜찮나?

 

시노

어, 아직 계속 할 수 있어.

 

인간이 육체노동으로 피로를 느끼듯이, 마법사도 마법을 계속 사용하면 피곤해진다.

피가로에게 씩씩하게 대답하던 마법사들도 쉴새없이 구멍을 계속 파냈지만 역시 지쳐있었다.

 

미틸

...하아, 하아...

 

레녹스

미틸, 괜찮아? 조금 쉬는 게 어때.

 

미틸

괜찮, 아요... 그것보다도 빨리, 찾아야...

 

시노

마력이 거의 안 나오고 있다고. 네 몫은 내가 해주지.

 

루틸

미틸은 아팠다가 나은지 얼마 안 됐으니까, 여긴 형님에게 맡겨.

 

레녹스

...다들 무리하지 마. 내가 바꿔줄게.

교대해서 휴식을...

 

현자

(그만큼 마법을 사용했으니 분명 상당히 피곤할텐데...)

 

이제 그만하자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지하에 묻혀있는 주물을 목표로 마법사들은 한 마음으로 구멍을 파내고 있었다.

앞으로도 그 장소에는 피가로의 진료소가 있기를 바라니까.

 

피가로

.......

곤란하네.

 

한숨 쉬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마법사들이 서로 격려하며 구멍을 파고있는 모습을 피가로가 바라보고 있었다.

 

피가로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 둘이서 뭔가를 들고와서... 아아, 씨앗이었던가.

화단을 만들고 싶다고 했었어.

그래도 진료소의 흙과는 맞지 않는 종자였어서 말이지. 나는 말렸어.

시들어버린다고 말하면서.

그래도 두 사람은 그때도 화단을 만들자고 말했어.

그 애들이 놀러오지 않을 때에도 화단에 꽃이 피어 있으면, 내가 덜 외로워하지 않겠냐면서.

 

현자

.......

 

두 사람의 마음은 나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행동으로 이 사람이 기뻐하게 되면 좋겠다고.

내가 없을 때 조금쯤은 쓸쓸하다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옆에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없는 것 같은 피가로의 분위기는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진료소도 마찬가지겠지. 소중한 장소가 없어지면 피가로가 외롭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수고를 들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어른들도 그 마음을 받아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이, 소중한 장소가 없어지면 쓸쓸하다고 그가 여기기를 바란 것일지도 모른다.

 

피가로

...아니나 다를까 꽃은 시들어버렸어. 그 애들도 아쉬워했지.

나도 실망시켜서 아쉬웠어.

나는 오랫동안 살아왔고, 솔직히 꽃이 있든 없든 외롭진 않아.

포기하기 아까운 것도 거의 없어. 그래도 이렇게 누군가가 대신해서 나의 뭔가를 아껴주는 건...

조금은 기쁘네.

 

현자

피가로...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흙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쯤이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에 열중해 있던 우리의 등 뒤에서 레녹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가로가 돌아보고 끄덕인다.

신호였다. 네로와 파우스트도 안심한듯한 얼굴로 시선을 교환한다.

 

파우스트

좋아. 여긴 우리가 대신하도록 하지.

 

레녹스

알겠습니다. 다들 일단 저쪽으로.

 

시노

...윽, 나도 할게.

 

루틸

저도 도울게요.

 

네로

너희도 숨이 턱끝까지 찼잖아. 일단 앉아서 쉬어둬.

이럴 땐 어른들이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하는 법이야.

마력 페이스 배분도 기술이야. 이제부턴 경험의 차이를 보여줄 때라고.

 

루틸

네로 씨...

 

시노

네로, 멋있는걸.

 

히스클리프

응, 멋있어.

 

네로

그렇게 칭찬하지 마. 부끄러워 지잖아...

그렇다곤 해도, 이렇게도 계속 끊임없이 파내면 역시 죽을 것 같구만. 너희들 고생했네.

 

네로의 칭찬에 모두들 쑥스러워하며 얼굴을 마주보고 기쁜듯이 웃는다.

아이들을 피난시킨 레녹스가 돌아오자 어른들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굴착한 지면을 만졌다.

 

피가로

그럼 시작할게. 파우스트, 네로, 레녹스도 힘을 빌려주겠어?

 

네로

힘을 빌린다는 게 무슨 뜻이야? 당신이 일할 차례 아니었나?

 

피가로

그건 그렇지만 말야. 더이상 저 아이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고, 한번에 해결하고 싶어서 말이지.

 

파우스트

물론 상관없어. 빨리 아이들을 안심시키도록 하지.

피가로, 먼저 시작해줘.

 

피가로

알았어. 그럼 나부터...

《폿시데오》

 

파우스트

《사틸크나트 물크리드》

 

레녹스

《포세타오 메유바》

 

네로

《아도노디스 옴니스》

 

루틸・미틸・히스클리프

...어어!?

 

레녹스・파우스트・네로

!?

 

엘리베이터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듯한, 몸이 부유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올려다보니 동그랗게 도려내진 하늘이 저 멀리서 보였다. 순식간에 구멍이 터무니없을 정도의 깊이까지 내려앉은 듯했다.

 

시노

...뭐야, 방금 그건.

 

미틸

네 명의 마력만으로 이렇게 된 건가요...?

 

네로

어이어이... 다들 너무 힘 준 거 아냐?

 

파우스트

너야말로 거의 전력이었잖아. ...무심코 힘이 많이 들어가버렸군.

아이들은 무사한가?

 

레녹스

피가로 선생님... "들키지 않도록"이라고 말씀하셨으면서...

 

피가로

미안미안. 땡땡이 친 만큼 만회하고 싶어서 그만.

고마워 다들, 덕분에 살았어.

 

네 사람은 웃으면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조금 피곤한 듯 보이기도 했다.

피가로는 물론, 모두가 마력을 강하게 사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줄곧 마음에 걸렸던 것이겠지.

땅울림과도 같은 진동이 가라앉자 기다리고 있던 젊은 마법사들이 이쪽으로 뛰어왔다.

 

미틸

피가로 선생님! 방금 그건...

 

피가로

미틸. 모두들 다치진 않았어?

꽤 약한 지층이어서 한번에 무너진 것 같아. 눈치채준 레녹스 덕분이야.

 

히스클리프

그런 건가요...?

 

루틸

레노 씨, 대단해요!

 

시노

꽤 하는걸.

 

레녹스

...아니, 모두가 이렇게 열심히 해준 덕분이야.

 

미틸

그래도 이렇게나 깊이 파내도 마법사의 주물은 나오질 않네요...

 

파우스트

하지만 기척은 가까이서 느껴져. 이대로 계속 파내다보면 분명 나타날 것 같군.

 

네로

즉, 보물 찾기를 위한 구멍파기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는 말인가.

 

현자

여러분 모두 계속 일만 하시는데, 휴식이 없어도 괜찮은 건가요...?

 

히스클리프

맞아, 시노. 지금이야말로 그걸 쓸 때 아니야?

 

시노

그거? ...아아, 그렇군!

다들 이걸 마셔. 내가 만든 피로를 회복하는 약이다.

 

레녹스

고마워.

 

루틸・미틸・히스클리프

...써!

 

현자

피, 피가로의 약보다 써...!

 

파우스트

약초를 대체 얼마나 넣은 거지...?

 

시노

두 배다. 어때, 효과가 바로 나올 것 같지.

 

네로

그, 뭐냐. 일단 졸린 건 싹 날아갔구만.

 

미틸

에헤헤... 덕분에 조금 힘이 돌아왔어요. 계속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레녹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고 파내보자.

 

루틸

화이팅-!

 

시노・미틸・히스클리프

화이팅-!

 


 

미틸

...양이 엄청나게 울고 있지 않나요?

 

한창 구멍을 계속 파내던 와중, 레녹스의 양이 갑자기 매애매애 울기 시작했다.

 

레녹스

정말이네. 무언가를 겁내는 듯한...

 

미틸

뭔가를 느낀 걸까요.

 

미틸은 고개를 기울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미틸

어라? 뭘까요.

저쪽에 뭔가가...

 

현자

저쪽?

 

미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서, 벽에서 작게 튀어나온 불가사의한 색깔의 무언가가 보였다.

 

미틸

...혹시 저게 마법사의 주물...?

 

그것을 파내려고 미틸은 마법을 사용해 주변의 흙을 치우려고 했다.

그러자 주물은 불길한 빛을 내며 벽 속에서 튀어나왔다.

 

현자

...!

 

네로

아무래도 저게 맞는 것 같네!

 

파우스트

그래, 저주의 본체다...!

 

레녹스

선생님, 저건...

 

피가로

거무스름한 작은 구리상자... 피술자의 이와 손톱을 떼어내 넣은 악취미적인 주물이야.

돌이 된 마법사의 마도구인 것 같네.

 

작은 상자는 공중으로 떠오르고 주변에 거무스름한 안개를 내뿜었다.

사악하게 번쩍이면서 목소리가 울린다. 호응하듯 발 아래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루틸・히스클리프

...윽!

 

지면에 균열이 생긴다. 그 틈새에서 진흙 같은 것이 쏟아져나왔다.

작은 구리상자와 같은 색깔의 그것은 사람의 손처럼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며 우리들 쪽으로 다가왔다.

 

시노

어이, 뭐야 이건. 우리를 노리고 있다고!

 

피가로

산의 늪이야. 저주에 동화되어 조종 당하고 있어.

 

네로

서 있기만 해도 공격한다고. 일단 날아서 도망치자!

 

히스클리프

현자 님, 제 빗자루에!

 

현자

네!

 

일제히 빗자루로 날아가려던 그 순간. 산의 늪의 망령이 미틸을 덮쳤다.

 

미틸

와악!

 

레녹스

미틸!

 

곧바로 레녹스가 손을 뻗어 미틸을 껴안으며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레녹스

...윽.

 

루틸

레노 씨!

 

현자

레녹스, 어깨가...!

 

떠오를 때 산성에 데였는지 어깨가 문드러져 있었다.

 

미틸

괘... 괜찮으세요!?

 

레녹스

응, 걱정하지 마.

네로와 똑같이, 나도 좀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야.

 

미틸

레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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