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이 미소짓는 온실의 랩소디~동쪽 나라&중앙 나라~

 

시노

생각보다 늦었네. 기다리다 지칠 참이었다고.

 

현자

저, 저기... 시노는 모형정원 안에 갇혀있던 게...?

 

시노

뭐야 그게. 그럴 리가 없잖아.

 

히스클리프

뭐야... 너 꼬박 하루 내내 잠들어 있었다고!?

 

시노

하루? 꽤 시간이 지났었군.

 

시노는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시노

그날 밤 오랑제리의 문을 열었던 순간 빨려들어왔지만, 그것 뿐이었어.

나오려고 했으면 언제든 나올 수 있었어.

하지만 이 녀석에게서 옛날 얘기를 듣는 게 재밌길래 지금까지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지.

 

히스클리프

이 녀석?

 

시노

히스, 내 얘기도 아주 많이 했다면서?

 

안뜰에 서서 이야기를 나눌 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다.

 

시노

들었다고. 너희, 오래된 친구라면서.

이 녀석은 히스가 다시 만나러 오는 걸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

그러니까 오랜만에 오랑제리의 문이 열렸을 때, 히스라고 생각해서 날 잡아당긴 것 같아. 나한테 네 기척이 묻어있었을지도 모르지.

 

현자

히스의 친구...

 

그쪽을 바라보자, 오렌지 나무 앞에 어느샌가 한 명의 남성이 서 있었다.

히스클리프와 많이 닮았다. 지금의 그가 조금 나이를 먹은 것 같은 용모였다.

 

현자

(이 사람은...)

 

히스클리프

혹시, 그때의 오렌지 나무...?

 

히스클리프가 멍하니 묻자, 그는 살며시 눈웃음을 보이며 끄덕였다.

 

시노

너랑 히스가 만나서 다행이야.

히스는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면도 있지만, 최고로 멋진 내 주군으로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어.

그러니까 안심해. 우리도 곁에 있으니까 말이지.

 

그는 시노와 나를 보고서 히스클리프의 모습을 바라보고, 기쁨이 흘러넘칠 듯이 환하게 웃었다.

바람이 없는데도 오렌지 나무의 가지와 잎이 쏴아아 경쾌하게 흔들린다.

히스클리프를 진심으로 환영하면서 말을 걸고 있는 것이라고, 왜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현자

(아아, 그렇구나...)

 

원망하던 게 아니었다.

오렌지 나무는 만날 수 없게 된 히스클리프를 줄곧 걱정해왔던 것이다.

베어쓰러져도, 땅에 뿌리를 뻗을 수 없게 됐어도, 사랑스러운 기억에 그 뿌리가 깊이 내리고 있었다.

작은 친구와 보냈던 석양의 시간을, 둘도 없을 양식으로 삼아서.

 

히스클리프

......크읏.

 

히스클리프의 뺨과 입은 떨리고 있었다. 그것들을 있는 힘껏 움직여 웃음을 짓는다.

 

히스클리프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그때는, 미안했...

 

밝은 목소리는 도중에 끊겨버리고 말았다. 히스클리프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울기 직전의 아이처럼.

어제, 히스클리프가 이야기했던 것을 떠올렸다. 자신과 시노와 오렌지 나무.

언젠가 셋이서 이야기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오렌지 나무가 시노를 빨아들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옛날에 친구가 바랐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서.

 

히스클리프

미안해... 그때, 도와주지 못해서...

나, 계속 후회했어.

다시 너랑 만나고 싶다고, 제대로 사과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외면하고...

나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해줘서 고마워.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나도 무척 기뻐.

정말로, 기뻐...

 

필사적으로 이어붙인 말에 오렌지 나무는 귀를 기울이고 하나하나 천천히 끄덕였다.

편지를 소중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알고있어, 라며 애지중지하는 것처럼.

그 표정은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상냥하고도, 온실에 비쳐드는 석양처럼 따뜻했다.

 

히스클리프

사실은 너랑 더 느긋하게 얘기하고 싶지만, 이대로 두면 시노가 위험해.

 

시노

...그런거야?

 

현자

네. 실은 제법 위험한 단계라서...

 

히스클리프

우선 지금은 빨리 돌아가야해.

 

오렌지 나무는 밝게 끄덕였다. 조금 쓸쓸하게, 하지만, 무척이나 따뜻한 미소로.

또다시 부드러운 바람이 분다.

그의 말이 들린 것인지, 히스클리프의 푸른 눈동자가 고요한 수면에 빗방울을 떨어뜨리듯 살며시 물결쳤다.

하지만 떨쳐버리려는 듯 미소를 짓고 밝게 말했다.

 

히스클리프

그래도 꼭 다시 만나러 올게!

 

히스클리프는 시노와 내 손을 잡고 주문을 외웠다.

왔을 때와 똑같이 일곱 개의 빛이 천장에서 쏟아진다.

그 반짝임 속에서 오렌지 나무였던 그는 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정신이 들자, 그곳은 원래의 오랑제리였다.

걱정이 담긴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마법사들의 얼굴이 보였다.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자

(...시노는!?)

 

히스클리프

시노...!

 

히스클리프는 튕겨져나오듯 외치며 오랑제리를 뛰어다녔다.

 


 

시노

.......응?

아아, 돌아온건가.

 

히스클리프

시노!

 

시노

히스. 별일이군.

네가 창문으로 뛰어들어오다니.

그러고보니 옛날에 비슷한 일이 있었지. 기억해?

그때는 내가 빗자루를 타고 히스의 방으로 가서 놀래켜줬지. 지금이랑 반대네.

 

히스클리프

...다행이다.

 

시노

왜그래.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선.

배라도 아픈건가?

 

히스클리프

하아... 얼마나 걱정했다고 생각하는거야...

애초에 왜 혼자서 오랑제리로 갔던 거야.

 

시노

히스가 자는 사이 몰래 정리해 놓고 아침에 깨끗이 정리된 오랑제리를 보여주고 싶었어.

거기는 네가 옛날부터 마음에 들어했던 장소였으니까.

 

히스클리프

...정말이지, 바보라니까.

그래도 고마워.

어서와, 시노.

석양이 미소짓는 온실의 랩소디~동쪽 나라&중앙 나라~

 

카인

나는 히스클리프 블랑쉐를 믿어. 히스도 자신을 믿어줘.

네가 시노에게 저주를 걸었을 리가 없어. 너라면, 분명 구할 수 있을거야.

 

히스클리프

응.

...있잖아, 만약 아주 옛날엔 친했지만 이제는 서먹해진 친구랑 오랜만에 재회하게 됐을 때, 카인이라면 어떻게 하겠어?

 

카인

나라면? 글쎄...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그때는 미안했어!

라고 말을 걸려나.

 

히스클리프

...아하하! 카인다워.

 

아서

누군가와 화해하러 가는 건가?

 

리케

과자를 들고 가서 사과하면 더 좋을 거예요. 미틸은 항상 그렇게 해주거든요.

 

히스클리프

아서 님, 리케!?

 

카인

뭐야, 두 사람 다 깨 있었어?

 

리케

카인의 목소리가 커서 눈이 떠졌어요.

 

카인

이상하네. 나로선 작게 말한 거였는데...

 

아서

히스클리프, 얘기는 들었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말해줘.

 

리케

시노를 구하기 위해 저희도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히스클리프

다들...

그럼 지금부터 마법 훈련에 함께해 주셔도 될까요?

 

아서・리케・카인

물론!

 


 

다음 날 아침,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다.

페인트를 칠한 지 얼마 안 된 것처럼 반짝반짝한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모형정원에서 시노를 꺼내오기 위해 파우스트와 오즈, 네로, 나, 이렇게 넷은 오랑제리 앞에 도착했다.

 

현자

여기서 저주를 푸는 건가요?

 

파우스트

기억의 정원과 연결이 강한 장소에 있는 편이, 마법이 효과적으로 작용되기 쉬우니까.

네로, 오즈. 무슨 일이 생기면 서포트를 부탁하겠다.

 

오즈

아아.

 

네로

알겠어.

 

히스클리프

잠깐만요!

 

현자

히스...!

 

파우스트

너희들...

 

아서

다행이다, 늦지 않은 것 같아.

 

히스클리프와 젊은 마법사들이 빗자루로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기분탓인지 다들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네로

너희들, 혹시 안 잔 거야?

 

우리와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카인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카인

그래도 밤을 새진 않았어. 그럴 뻔 하긴 했지만.

 

히스클리프

내 마법 훈련을 늦게까지 도와줬어.

 

현자

마법 훈련?

 

오즈

그런 걸 하고 있었나.

 

아서

네. 다같이 함께.

 

리케

비밀 특훈이에요!

 

파우스트를 바라보는 히스클리프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히스클리프

파우스트 선생님, 부탁이에요. 제가 하게 해주세요.

 

파우스트

...그 상태로 괜찮은건가?

 

히스클리프

괜찮습니다.

그리고 시노를 구하는 건, 친구이자 주군인 제 역할이니까요.

 

파우스트

.......

 

파우스트는 손바닥에 쥐고 있던 슈가를 히스클리프에게 건네주었다. 그가 입에 넣는 것을 확인하고서 모형정원을 건네주었다.

 

파우스트

해도 돼.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우리가 서포트 해줄테니.

 

히스클리프

네...!

 

마음을 다잡은 듯 입을 다물고, 문을 연다.

자신에게 들려주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히스클리프는 중얼거렸다.

 

히스클리프

이번에야말로...

 


 

오랑제리 안은 마법도구가 몇 개 놓여 있는 정도로, 상상했던 것보다 작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아서

여기가...

 

네로

좋지 않은 느낌은 안 드네.

 

카인

오히려 마음 편해질 정도야.

 

저주가 소용돌이 칠 것 같은 불온함은 전혀 없었다.

창문에서 햇빛이 잘 들어와, 밝고 따뜻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히스클리프

.......

 

가장 햇빛이 잘 들어오는 곳에는 작은 나무 그루터기가 있었다. 히스클리프는 그 앞에서 멈춰섰다.

 

파우스트

순서는 어제와 같다. 모형정원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의식을 송신하는 감각으로 주문을 외워라.

네 마음과 모형정원이 이어지는 걸 상상하는 거야.

 

히스클리프

네, 해볼게요.

 

히스클리프는 손에 모형정원을 올려놓고 눈을 감았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고, 신중하게 주문을 외운다.

 

히스클리프

《레프세바이블프 스노스》

 

아서・리케・카인

.......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형정원은 여전히 침묵 상태였다.

차츰 히스클리프의 얼굴이 초조함으로 물든다.

 

히스클리프

...실패인가...

 

현자

히스...!

 

나는 순간적으로 그의 손을 붙잡았다. 어제 그를 기운나게 해주려고 했을 때처럼, 무의식적으로.

 

현자

저도 도울게요. 반드시 시노를 구해내야죠.

 

정신이 든 것처럼 히스클리프는 끄덕이고 내 손을 마주 잡았다.

호흡을 진정시키고, 다시 한 번 주문을 외운다.

 

히스클리프

《레프세바이블프 스노스》...!

 

나도 마음속으로 강하게 외쳤다. 누구에게 기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저 기도했다.

 

현자

(부디 잘 되길...!)

 

그 순간, 모형정원이 떨리더니 일곱 개의 빛이 한꺼번에 밀어닥쳤다.

 


 

빛이 사라지고, 눈앞의 경치가 돌아온다.

아까와 똑같으며, 아까와는 다른 풍경.

분명 아침이었을텐데도, 석양빛이 커다란 창문에서 비쳐들어왔다.

 

현자

.......?

 

히스클리프

.......

 

다른 마법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곁에 있는 것은 히스클리프 뿐이었다.

 

히스클리프

죄송해요... 아무래도 현자 님도 함께 데려와버린 것 같아요.

 

현자

그 말은, 여기가...

 

히스클리프

네, 모형정원 안이라고 생각해요. 현자 님 덕분에 마법이 성공적으로 작동했어요.

 

현자

다행이다...!

 

휴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무사히 모형정원과 의식이 연결된 것 같다. 손을 잡고 있었기 때문인지 나도 함께 따라오게 된 것 같다.

모형정원 안은 실제 오랑제리보다도 넓게 느껴졌다.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히스클리프는 천천히 돌아보았다.

 

히스클리프

...오렌지 나무.

 

따라서 돌아보니, 푸르게 우거진 나무가 서 있었다.

모형정원에서 본 오렌지 나무였다. 그 밑에는 본 적 있는 뒷모습이 있었다.

 

히스클리프

...시노!

 

이쪽을 돌아본다.

 

시노

여어. 드디어 왔구나.

 

현자・히스클리프

.......어?

 

우리는 깜짝 놀랐다.

시노는 몸이 쇠약해져 있는 것 같지도, 저주에 걸린 것 같은 모습도 아니었다. 김이 샐 정도로 평소의 모습처럼 보였다.

석양이 미소짓는 온실의 랩소디~동쪽 나라&중앙 나라~

 

히스클리프

오늘 아침에 말씀 드렸지만 시노를 만나기 전, 저에게는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상대가 없었어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자신이 마법사라는 것에 열등감을 갖던 때여서...

대신에 머릿속에서 저와 비슷한 모습의 친구를 만들어냈어요.

물론, 가공의 존재라는 건 알고 있었죠.

그래서 그 친구를 만나는 건 오랑제리에서만이라고, 스스로 규칙을 정했어요.

 

현자

...비밀친구였던 거군요.

 

히스클리프

네. 그곳에서밖에 만날 수 없는 특별한 친구예요.

 

어린 히스클리프는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아무도 없는 오랑제리로 들어가 공상에 빠졌다고 한다.

오렌지 나무에 다가가 오늘 있었던 일을 들려주거나, 작은 고민을 털어 놓거나.

 

히스클리프

그렇게 지내는 동안, 어느새 오렌지 나무도 저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아졌어요.

어릴 때의 기억이기도 하고, 분명 기분탓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에게는 분명 그렇게 들렸어요.

정말로 친구가 되어준 게 기뻐서...

 

어른들이 보기엔 시시한 장난일지라도, 아이에게 있어선 기댈 수 있는, 의지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준다.

히스클리프에게 있어 오렌지 나무는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소중한 친구였다.

 

히스클리프

그러고나서 한동안 시간이 흘러 저는 시노와 만났어요.

오렌지 나무 말고는 친구를 사귀는 게 처음이었어서, 그에게도 시노의 얘기를 자주 해줬어요.

언젠가 시노에게도 그를 소개해줘서 셋이서 얘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히스클리프는 멋쩍은듯이 웃더니 홍차가 담긴 컵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따라그었다.

 

히스클리프

시노라면 알아줄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자신만의, 비밀의, 공상의 친구가 있다고 밝히는 건, 좀 부끄러울 것 같아서.

오렌지 나무가 열매를 맺게 되면 그에 대한 걸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부끄러워하는 그를 따라 나도 웃었다.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있는 생각을 꺼내기까지, 스스로 기간을 정해두는 마음을 나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표정에 약간의 그림자가 졌다. 참회하는 것처럼 톡하고 애처로운 목소리가 울린다.

 

히스클리프

....하지만 오렌지 나무는 뿌리를 잘 내리지 못했어요.

저는 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어요.

마법을 걸어봐도, 물이나 비료를 줘봐도 건강해지기는 커녕, 날마다 시들어가서...

스승님이 그 장소에 짐을 둬도 되겠냐고 얘기하셨을 때도, 저는 반대할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어요.

 

컵을 쥔 그의 손이 떨리면서 홍차의 표면이 흔들린다.

 

히스클리프

시들기 시작한 오렌지 나무는 얼마 안 가서 베어졌어요.

친구라고 생각하던 주제에... 겁쟁이처럼 그늘에 숨고, 저는 도와주지도 못했어요.

이렇게 끝나버렸기에, 더더욱 시노에게는 그에 대한 걸 얘기할 수가 없었어요.

 

침묵이 찾아오고 빗소리가 한층 크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우성치고 있다. 책망하고 있다. 울고있다.

이 빗소리는 히스의 귀에 어떻게 들리고 있을까.

 

히스클리프

어쩌면 그 나무는 저를 원망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복수하기 위해서 시노를 빼앗아 간 걸지도 몰라요.

...그 모형정원은 분명 제가 예전에 마음속으로 그리던 모습이었어요. 제가 몇 번이나 오렌지 나무에게 얘기했던, 제 꿈이었어요.

그래서 기억의 모형정원이, 이제와서 그 광경을 재현해서 보여주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더니 마법을 잘 못 쓰게 돼서...

 

현자

히스...

 

파우스트

네가 안 된다면, 내가 시노를 구하겠다.

 

어느샌가 방 입구에 파우스트가 서 있었다.

 

현자

파우스트?

 

히스클리프

선생님...!

 

파우스트

현재로서는 모형정원에서 좋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건 아니지만, 그리 느긋하게 있을 수가 없어.

육체에서 분리된 정신은 노가 없는 뗏목 같은 법이다.

이대로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상태가 계속되면 연결이 끊어질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시노의 의식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질 못해. 늦기 전에 대처한다.

 

담담하게 얘기하는 목소리는 진중하고 엄격했다. 파우스트는 히스클리프를 응시했다.

 

파우스트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지.

그래도 회복되지 않는다면, 내가 모형정원의 저주를 풀겠다.

 

히스클리프

.......

 

히스클리프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현자

하지만 다른 사람이 풀면 저주가 되돌아온다고...

 

파우스트

히스와 시노에게 영향을 끼칠 일은 절대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내가 전부 책임지겠다.

...네 자신을 너무 책망하진 마.

 

그렇게 말하고 파우스트는 발길을 돌렸다. 발소리가 멀어져간다.

 

히스클리프

.......

 

손에 들린 마시다 만 홍차는 완전히 열을 잃은 상태였다.

빗소리는 아직 멎지 않는다.

 


 

파우스트

.......

!?

 

네로

우왓! ...뭐야, 선생이었어?

 

파우스트

네로? 무슨 일이지, 이런 곳에서 허둥지둥거리고...

 

네로

아니, 그게...

 

파우스트

.......

히스라면 현자가 곁에 있다. 아직 좀 힘든 상태인 것 같아.

 

네로

...그렇구나.

 

파우스트

그 애는 좋게도 나쁘게도 사려가 깊어. 구하고 싶은 상대... 친구이기 때문에 마음이 혼란스러워질 때도 있지.

만일의 경우엔 내가 결판을 짓겠다. 그때는, 너도 힘을 빌려줘.

 

네로

그래.

...히스, 힘내라고.

 


 

그날 밤.

 

히스클리프

...시노.

 

시노

.......

 

히스클리프

역시 잠든 그대로구나.

 

아서

.......

 

리케

......

 

히스클리프

아서 님, 리케... 계속 시노를 지켜봐줬구나.

(좀 더 가까이서 시노의 상태를 봐도 괜찮으려나. 두 사람을 깨우지 않도록, 조심히...)

 

???

으왓!

 

히스클리프

!?

 

카인

안녕, 놀랐어?

 

히스클리프

카인!?

하아... 깜짝 놀랐어.

하마터면 큰 소리를 낼 뻔했다구.

 

카인

미안미안. 장난 좀 쳐볼까 싶었거든.

 

히스클리프

카인도 시노를 지켜봐줬구나.

 

카인

맞아. 아서도 리케도 밤을 새겠다고 말을 안 들어서, 교대로 지켜보는 걸로 했어.

 

히스클리프

그랬구나... 나만 혼자 쉬고, 면목이 없어.

 

카인

신경쓰지 마, 친구잖아. 시노도 히스도.

 

히스클리프

고마워...

.......

실은 내일, 파우스트 선생님께서 시노를 구하러 가실 것 같아.

 

카인

파우스트가?

 

히스클리프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원래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을 대신 떠맡아 주시려는 것 같다고 생각해. 그 마음은 무척 감사하지만...

나 스스로도 알고있어. 이것만은 빼앗기면 안 돼.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시노를 구하러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나 스스로 해내고 싶어. 내 자신의 손으로 시노를 구하고 싶어.

시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내가 되고 싶으니까.

 

카인

...그렇구나.

 

히스클리프

아야!

 

카인

이런, 너무 세게 때렸나.

방금 그 대사, 엄청 멋졌다고. 시노에게 알려주면 분명 놓쳐버린 걸 아쉬워할거야.

어쩌면 왜 깨워주지 않았냐면서 삐칠지도 모르지. 불평을 늘어놓기 전에 빨리 이 녀석을 마중하러 가주자고.

 

히스클리프

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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