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이 미소짓는 온실의 랩소디~동쪽 나라&중앙 나라~

 

현자

(히스, 괜찮을까...)

 

홍차를 엎지르지 않도록 조심스레 걸어서 히스클리프의 방 앞까지 도착했다.

그의 상태가 걱정됐던 나는 홍차를 가져다주러 오던 메이드에게 부탁해 그 역할을 대신 맡았던 것이다.

 

현자

(...혹시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러면 다시 나오자)

 

노크하려던 순간, 문이 살짝 열린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방 안의 모습이 보였다.

 


 

현자

(...아)

 

히스클리프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턱을 괸 채로 자신의 심장고동 소리를 듣는 것처럼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는 단정한 옆모습은, 모두가 잠든 밤보다도 훨씬 고요했으며 그대로 빗속으로 녹아들 것만 같았다.

 

히스클리프

...현자 님?

 

그가 먼저 이쪽을 알아차렸다. 그대로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기에 나는 황급히 달려갔다.

 

현자

앗, 그대로...!

죄송해요, 쉬는 중이었는데. 방해할 생각은 없었지만요...

 

히스클리프

아뇨, 저야말로 이런 차림이라 죄송해요. ......아, 혹시 홍차를 가져다주시러 오신 건가요?

 

현자

메이드 분께 부탁드렸거든요. 히스가 어떤지 신경 쓰여서...

홍차를 가져다드리고 곧바로 자러 갈 생각이었어요.

 

히스클리프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차까지 내오게 해버려서...

 

미안한 듯 히스클리프의 눈꼬리가 내려갔다. 그리고 살펴보는 것처럼 푸른 눈동자가 살며시 이쪽을 향한다.

 

히스클리프

...저기, 조금 진정도 됐으니 괜찮으시다면 함께 차를 마시지 않으시겠어요?

 

현자

괜찮나요? 그럼 조금만...

 


 

홍차의 따뜻한 향기가 컵에서 올라온다.

한 모금 마시고 마음이 안정된 듯, 두 사람 다 숨을 내쉬었다.

 

현자

히스, 안색이 좋아졌네요. 조금 안심했어요.

 

히스클리프

파우스트 선생님께 듣고 마력을 회복하고 있었어요. '마나 에리어에서 쉬는 게 가장 좋아'라고.

 

마법사는 각자 마나 에리어라 불리는 자신만의 파워 스팟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마음을 진정시키거나, 마력을 회복시키기 위한, 쉽게 말해서 좋아하는 장소인 것이다.

 

현자

그러고보니 히스의 마나 에리어는 비오는 날의 침대 위였죠.

 

히스클리프

네.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정신이 맑아지고 마력이 몸 속으로 스며들어오는 기분이 들어요.

 

회색빛 하늘은 그로부터 계속 울고 있었다. 빗자국은 점점 거칠어져갔다.

히스클리프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히스클리프

......아까는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오즈 님의 말에 동요해버려서.

 

현자

히스...

 

엄숙한 오즈의 말이 되살아난다.

"시노에게 저주를 건 것은 히스클리프일지도 모른다".

 

히스클리프

무서웠어요. 만약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무의식 속에서 시노를 속박해버리는 제 자신을 점점 알 수가 없어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어요...

초조하면 초조할수록 마력이 불안정해져서 이런 꼴을 보여드렸네요.

나 때문에 시노가 위험에 처해 있을지도 모르는데, 정말 한심하네...

 

현자

그런... 히스 때문이라고 확증이 난 것도 아니잖아요.

거기다 무의식적이라고 해도 그 모형정원에 왜 마력을 불어넣었는지 짚이는 건 없나요?

 

히스클리프

.......그렇, 네요.

 

말문이 막힌 히스클리프가 할 말을 찾듯이 시선을 방황한다.

 

히스클리프

어제의 훈련에서도 그렇고 아까 전에도 그랬듯이, 짐짝 밖에 안 되는 저 자신이 너무 한심해요.

나는 마법사인데도 중요할 때에 소중한 친구조차 구하질 못해...

 

쥐어짜내는 목소리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답답함과 초조함이 배어있었다.

마음도 몸도 자신의 것인데도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강하고 씩씩한 누군가처럼, 항상 흔들리지 않는 스스로가 되지 못한다.

그것은 나도, 겪은 적 있는 아픔이다.

 

현자

.......그렇지 않아요. 소중한 친구이기에 동요하고, 마음도 당연히 침착해지지 않아요.

히스는 한심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스스로를 심하게 책망하지 마세요.

 

완벽하게 전달되지 않는 자신의 말에 답답해져서 히스클리프의 손을 붙잡았다.

그를 괴롭히는 불안감과 실망감이 아주 조금이라도 옅어지도록.

 

히스클리프

현자 님...

 

히스클리프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그러고나서 눈썹을 내리고 희미하게 웃었다.

 

히스클리프

...실은 제가 이렇게 된 게 처음은 아니에요.

전에도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적이 있었어요.

 

현자

그런 일이 있었나요...?

 

끄덕이는 대신 눈을 감는 히스클리프. 그리고 다시 떠졌을 때, 하늘색 눈동자는 지금이 아닌 장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히스클리프

...오랑제리에 있었던, 오렌지 나무가 베어졌을 때예요.

당시 저에게 있어서 그 오렌지 나무는 소중한 친구였어요. 그게 없어지고 한동안 우울했어요.

그때는 시노가 열심히 위로해주고 격려해줬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마법을 쓸 수 없게 됐어요.

 

현자

시노가...

 

히스클리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아름다운 눈썹이 고민하듯 찌푸려졌다.

 

히스클리프

......현자 님. 시노가 갇히게 된 건, 정말로 저 때문일지도 몰라요.

 

현자

네...?

 

끊임없이 내리는 비가 유리창을 격렬히 때리며 노래한다. 우산을 가져가지 않고 뛰쳐나간다면, 분명 어쩔 수 없이 흠뻑 젖게 될 것이다.

 

히스클리프

...한심한 김에 조금만 더 옛날 이야기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내가 끄덕이자 히스클리프는 두꺼운 책을 넘기듯 살며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석양이 미소짓는 온실의 랩소디~동쪽 나라&중앙 나라~

 

마법사들의 표정이 굳었다. 특히 히스클리프는 험상궂은 얼굴이었다.

 

아서

어쨌든 빨리 대책을 세워보자.

원인이 무엇이든 우선은 시노를 구해야 해.

 

네로

문제는 '어떻게 모형정원에서 빼낼까'야.

 

리케

이 흑발 인형, 분명 시노일 거예요. 그렇다면 모형정원에서 인형을 꺼내면 나올 수 있게 되는 건 아닐까요?

 

카인

인형을 직접 꺼내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그것보다 이 상자의 벽을 부수는 건 어때.

 

네로

그것도 충분히 위험하잖아...

 

현자

(시노를 무사히 구출할 방법...)

 

무언가 조언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침묵하는 오즈를 곁눈질로 살폈다.

 

현자

저기, 오즈...

 

오즈

.......

 

오즈의 시선은 히스클리프에게로 향해 있었다.

 

오즈

히스클리프. 그 모형정원에서 희미하게 너의 기척이 느껴진다.

네가 시노에게 저주를 건 것이 아닌가.

 

히스클리프

네.......?

 

그 순간, 말소리가 잦아들었다.

 

카인

어이어이.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거야?

 

리케

히스클리프와 시노는 친구예요. 이런 짓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오즈

고의라고는 단정지을 수 없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며 생긴 정과 집착이 어떻게 귀결되는지는, 각자 다르지.

 

오즈의 말에 아서가 입을 연다. 그에게는 시선 주지 않은 채, 오즈는 말을 이었다.

 

오즈

히스클리프가 무의식적으로 그 모형정원과 시노를 강하게 연결지어 봉인한다고 바라면, 때로는 그것이 저주가 되지.

 

히스클리프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깜짝 놀랐다.

 

히스클리프

내가...? 시노에게 저주를...?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현자

히스...!

 

네로

괜찮아? 정신 차려!

 

카인

오즈. 방금 그 말에 근거가 있어?

 

오즈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다. 확증은 없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것이 사실일 경우, 어설프게 저주를 풀면 히스클리프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저주는 풀리면 주술사에게로 돌아간다. 만약 네가 저주를 걸었다고 한다면, 모형정원을 부수면 네 자신에게 저주가 되돌아가겠지.

 

카인・아서・네로

.......

 

현자

(그럴수가...)

 

잠시동안 말을 잃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창밖은 짙은 구름이 드리워져 차츰 어두워졌다.

 

리케

대체 어떻게하면 좋을까요? 이대로면 시노는...

 

파우스트

...가장 안전한 방법은 히스클리프가 봉인을 푸는 거다.

 

무거운 문을 밀어젖히듯이 파우스트가 말했다.

 

파우스트

만약 정말로 히스클리프가 저주를 걸었을 경우, 다른 사람의 개입은 위험성이 높아져.

하지만 주술사가 직접 푼다면 저주를 받을 걱정도 없어. 받더라도 피해는 최저한으로 끝난다.

그걸 위해서는 마법으로 자신의 의식을 모형정원에 연결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시선을 받은 히스클리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색은 지금도 창백하다.

 

히스클리프

...할게요. 제가 시노를 구할게요.

파우스트 선생님, 방법을 알려주세요.

 

파우스트

그러면 모형정원을 손바닥에 올리고...

의식을 송출한다는 감각으로 주문을 외워라.

 

히스클리프

네.

 

파우스트에게 배운대로 히스클리프가 주문을 외운다.

 

히스클리프

《레프세바이블프 스노스》...!

 

.......하지만 모형정원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히스클리프

마법이 왜 발동되질 않지...? 분명히 주문을 외웠는데.

 

파우스트

초조해하지 마. 침착하게 다시 한 번 해봐라.

 

히스클리프

네, 네...

《레프세바이블프 스노스》...!

.......큭. 소용이 없어.

 

그 뒤로 히스클리프는 몇 번이고 주문을 반복했다.

하지만 마법은 한 번도 그의 부름에 호응하지 않았다.

 

히스클리프

대체 왜, 이럴 때에...

 

답답한 공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워갔다.

창밖에는 서서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았기에 히스클리프는 자기 방에서 쉬기로 했다.

잠시 뒤, 따라갔던 파우스트가 돌아왔다.

 

아서

파우스트, 히스클리프의 상태는...

 

파우스트

제법 동요하고 있어.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군.

 

네로

그런가... 안색도 안 좋았고 말이지.

 

현자

...저기. 아까 히스가 하려고했던 마법은 어려운 것이었나요?

 

파우스트

섬세함과 치밀함이 요구되는 마법이긴 하지만 평소의 히스클리프였다면 별로 어렵진 않았을 거다. 오히려 특기라고 할 수 있는 분야다.

하지만 방금 전은 그 애의 마음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어. 마법을 쓸 수 없었던 건 그 때문이었겠지.

마법사는 마음으로 마법을 사용하니까.

 

파우스트에게 부축받으며 방을 나갈 때 히스클리프는 무척 쇠약해져 있었다. 오히려 그가 몸져눕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카인

...저주 운운하던 게 사실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어.

그래도 그럴 가능성을 지적받은 채 시노의 상태를 눈앞에서 마주하면, 여유를 잃는 것도 무리가 아냐.

히스에게 있어 늘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시노는 든든하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어.

시노도 의식이 있다면, 설령 한 쪽 팔을 잃는다 하더라도 주군의 앞에서 결코 무릎을 꿇지 않을 녀석이니까 말이야.

그게 그 녀석의 종자로서의 긍지야. 그러니까 히스는 지금 이런 모습의 시노를 지금까지 볼 기회가 없었던 걸지도 몰라.

 

파우스트・네로

.......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잠들어있는 시노에게로 모였다. 누워있는 그에게서 들려오는 것은 희미한 숨소리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 눈을 확 떠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서

...오즈 님. 무언가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오즈

없다.

 

리케

아무것도 없나요?

 

오즈

아무것도 없다.

 

파우스트

유감이지만 그 말대로다. 마음을 치유하는 건, 히스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과 마주할 수밖에 없어.

 

리케

그런...

 

기운없이 어깨를 떨구는 리케의 머리를 네로가 쓰다듬는다.

 

네로

안타깝지만 지금은 기다릴 때야. 가장 힘든 건 히스 그 녀석일테니까 말이지.

친구가 어려울 때 도울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는데도, 조급해질수록 마음대로 잘 안 돼.

그 녀석은 분명 지금쯤 스스로를 그렇게 책망하고 있을거야.

그러니까 말이야, 너무 몰아세우지 않도록 지켜봐주는 게 좋지 않을까.

 

아서

그렇네... 네로의 말대로야.

 

카인

히스는 괴로운 와중에도 자신의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있어.

우리들도 히스의 마음이 진정되는 걸 기다려주자.

 

리케

네...

 

파우스트

.......

석양이 미소짓는 온실의 랩소디~동쪽 나라&중앙 나라~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자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울렸다.

 

히스클리프

현자 님, 좋은 아침이에요.

 

현자

좋은 아침이에요. 무슨 일 있나요?

 

히스클리프

아뇨, 아무 일도 없어요. 그저 혹시나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자면 불안하실까봐...

 

현자

히스...

(그도 분명 어제의 일 때문에 괴로울텐데도...)

 

그의 배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젯밤, 카인과 파우스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히스클리프는 섬세하고 성실하고 무척이나 상냥하다. 그렇기에 사람의 불안에 민감하고 곁에 있어주려고 한다.

 

현자

고마워요. 어젯밤은 푹 잤어요.

장식된 드라이 플라워의 향기가 무척 좋아서...

 

테이블을 보고, "아아"하며 히스클리프는 끄덕였다.

 

히스클리프

저 꽃의 향기에는 숙면을 취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거든요. 옛날에 오랑제리에서 키워보자는 얘기가 나온 적도 있었지만요.

 

현자

오랑제리... 그 안뜰에 있었던 온실 말이죠.

그러고보니 시노가 그곳은 히스가 좋아하는 장소였다고 했는데 사실인가요?

 

히스클리프

으음, 그건...

 

히스클리프는 수줍은 듯 망설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히스클리프

무척 조용한, 안정되는 장소였기에 어릴 적 자주 그곳에서 보냈어요.

커다란 창문으로 부드러운 석양이 가득 비쳐들어서... 그곳에서 혼자 책을 읽는 게 좋았어요.

 

본 적이 없는데도 신기하게 상상이 되었다. 해질녘 노을빛에 둘러싸여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어린 그의 모습이.

 

현자

그때는 아직 오랑제리로 계속 쓰이고 있었던 거군요.

 

히스클리프

네. 나무 한 그루를 키우고 있었어요.

작은, 오렌지 나무였어요.

 

문득 시선이 조금 멀어졌다.

 

히스클리프

친분있는 귀족에게서 받았는데 제법 뿌리를 못 내려서, 걱정돼서 자주 보러 갔었어요.

시노랑 만나기 전까지 저에게 친구다운 친구는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 무렵엔 오렌지 나무를 친구처럼 생각했어서...

진짜 거기에 있는 것처럼 책을 읽어주거나, 말을 걸거나 했어요. ...조금 부끄럽네요.

 

현자

그렇지 않아요. 멋진 추억이라 생각해요.

그 나무는 지금 어떻게 됐나요? 어딘가에 옮겨 심었다던가...?

 

작게 고개를 흔들고 꽃이 시드는 것처럼 그는 눈을 내리깔았다.

 

히스클리프

...이젠 없어요. 꽤 옛날에 시들어서 베어버렸으니까요.

 

현자

어...

 

그때,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노크가 울렸다.

 

카인

아키라! 있어!?

 

현자・히스클리프

카인?

 

카인

그 목소리, 히스도 있는건가.

마침 잘 됐어. 두 사람 다 서둘러서 와 줘.

시노가 큰일이야.

 

히스클리프

시노가!?

 

현자

무슨 일인가요?

 

카인

오랑제리 앞에서 쓰러져있었다고 해. 방금 막 메이드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것 같아.

 


 

우리는 곧바로 시노가 옮겨진 응접실로 달려갔다.

 

네로

히스, 현자 씨.

 

아서・리케

.......

 

이미 보고를 받은 마법사들이 방에 모여있었다. 침대에는 눈을 감은 시노의 모습이 있었다.

다친 모습은 없이 그저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히스클리프

시노...!

 

현자

시노, 괜찮아요!?

 

시노

.......

 

시노는 눈을 감은 그대로 미동조차 없었다.

 

히스클리프

시노...?

 

리케

아까부터 계속 이 상태예요. 몇 번이나 불러도 반응이 없어서...

 

아서

외상은 없는데도 의식만 돌아오질 않아.

 

네로

지금 오즈와 파우스트가 오랑제리를 조사하러 갔어.

 

히스클리프

그런... 시노,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일어나, 시노. 시노...

 

시노

.......

 

시노의 손을 붙잡고 히스클리프는 몇 번이나 외쳤다. 하지만 눈을 뜨기는 커녕, 눈꺼풀을 움직일 기미조차 없다.

잠든 모습은 평소의 활발한 시노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마치 닮은 인형을 보고있는 것 같았다.

 

히스클리프

어째서 이런 일이...

 

목소리가 떨리는 히스클리프의 등에 네로가 살며시 손을 더했다.

 

네로

...일단은 두 사람이 돌아오는 걸 기다리자.

 

머지않아 파우스트와 오즈가 돌아왔다. 시노의 안부를 지켜보던 마법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두 사람에게로 달려갔다.

 

카인

파우스트, 오즈, 뭔가 알아냈어!?

 

리케

역시 저 오랑제리에는 위험한 마법도구가?

 

아서

아니면 혼절할 정도로 강력한 독초가 자라고 있었던 건가요.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에 파우스트와 오즈는 어느 것에도 고개를 저었다.

 

파우스트

아니...

 

오즈

오랑제리를 조사해봤지만 위험시될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현자

네...? 그럼 시노는 어째서...

 

파우스트는 품 속에서 작은 상자같은 것을 꺼냈다.

 

카인

뭐야, 그건?

 

파우스트

오랑제리 안에서 발견한, 기억의 모형정원이라 불리는 마법도구다.

 

리케

기억의 모형정원...?

 

파우스트

이건 마력을 품으면 상자 속에 상상하던 장소를 충실하게 재현해내지.

이것 자체는 장난감 같은 거고 귀찮아질만 한 물건은 아냐. 지금도 미약한 마력이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모형정원을 서서히 우리들 쪽으로 기울여 보였다.

 

히스클리프

...윽.

 

옆에서 히스클리프가 숨을 삼켰다.

모형정원에는 소년이라 추정되는 인형이 둘. 하나는 금발 머리, 다른 하나는 흑발이다.

중앙에는 오렌지가 열린 나무가 서 있다.

 

현자

(...오렌지 나무...?)

 

오늘 아침, 그런 이야기를 히스클리프에게서 막 들은 참이었다.

주의 깊게 바라보자, 모형정원에 커다란 창문과 벽돌의 색, 구조를 본 기억이 있었다.

안뜰에서 보았던 오랑제리의 분위기와 많이 비슷했다.

 

현자

(이 모형정원이 오랑제리를 재현하고 있다는 거야...? 거기다 이 두 개의 인형...)

 

카인

...저기, 이 인형, 히스와 시노를 닮은 것 같지 않아?

 

아서・리케

.......

 

누구나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동의의 침묵이 바닥에 깔린다.

네로가 눈살을 찌푸리고 파우스트를 본다.

 

네로

어이, 혹시 시노는...

 

파우스트

그래. 이 모형정원 속에 시노가 갇혀있는 것 같아.

 

전원

!

 

리케

그래도 시노는 여기에 있다구요?

 

오즈

몸 뿐이다. 시노의 정신은 여기에 없다.

 

현자

시노의 정신...

 

아서

눈을 뜨지 않는 건 그 때문인가...

 

카인

하지만 어째서 시노가 이렇게 된 거지? 장난감 정도의 도구가 위험할 리 없을텐데?

 

파우스트

그렇기 때문에 기묘한 거다.

젊은 마법사 중에서도 강한 마력을 가진 시노가, 이 정도의 마도구에 갇힐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

만에 하나, 방심해서 끌려들어갔다 해도 그 애의 마력이라면 스스로 나올 수 있을 터다.

 

네로

그렇단 말은 문제는 마법도구 그 자체가 아니라...

 

파우스트

다른 요인일 가능성이 높아.

 

아서・리케・카인

.......

 

히스클리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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