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출항

 

엄숙한 새벽이었다. 항구는 대선단(大船團)의 출발 준비로 야단법석이었다.

그녀와 마술사는 그런 사람들의 소란과 떨어진 곳에서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있다.

 


 

"드디어 로마 원정인가..."

"네. 우선 선제 공격 후 교섭할 생각입니다."

"정말이지. 지기 싫어하는 건 변함없네."

"우리쪽도 불만이 쌓일대로 쌓였으니 용서 없이 날려버려야죠. 그 후 그들이 당황한 틈을 타 조건을 꺼내 화평을 약속받겠습니다."

"그게 좋겠군. 하지만 브리튼은 언젠가 멸망할 나라야. 그렇다기 보다, 이미 멸망해 있어. ...라고 내가 말하면 넌 어떡할래?"

"평소 같은 농담이라고 화낼 겁니다. 브리튼은 멸망하지 않아요. 그걸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왔으니까요."

"그랬지. 최근에 자주 잊어먹는다니까. 나도 인간을 비웃을 수는 없겠군. ...음. 정말 조금 전의 일이었는데도 아주 먼 옛날 이야기 같아. 우서와 나는 이상적인 왕을 만들었어. 그건 잘 된 것 같아. 하지만 그 뒤는 예상대로 되지 않았어. 우리는 이상적인 왕을 목표로 했지. 너는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고 있어. ...처음부터 목적이 달랐던 거야. 그 차이를, 좀 더 빨리 눈치챘어야 했는데..."

"멀린?"

"괜찮아. 넌 그거면 돼."

"출항 시간이 됐군요."

"미안.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할게. 좀 실수를 해서 말이야. 잠시 동안 몸을 숨겨야 하거든."

"여성 문제는 자중하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 점만은 몇 년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는군요."

"내 삶의 보람이니까 말이야. 꽃이 없으면 뭐가 인생이냐."

"정말이지..."

자랑스럽게 말하는 마술사에게 그녀는 따뜻한 미소를 보냈다. 그렇다. 마술사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그녀의 미소를 지켜봐왔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을 위해 웃었던 적은 없다. 이 소녀는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것을 보고서야 기쁘게 웃는 것이다.

"고마워요, 멀린.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있어서 당신은 위대한 스승이었습니다."

"......"

"저는 당신과는 달리 이성과 관련된 적이 없어서 이 감정이 무엇인지 표현이 안 되지만, 당신이 있어주었던 것, 당신이 저와 어울려 준 나날들을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는 당신을 사랑했을지도 모릅니다."

뺨을 붉히지도 않고, 소녀처럼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그녀는 엉뚱한 생각을 성실하게 마음을 담아 얘기했다.

물론 그것이 사랑은 아니다. 사람으로서의 생활을 경험하지 않은 그녀가 지금까지 전해들은 범주 내에서 가장 큰 감사를 엉뚱한 말로 전한 것뿐이다.

마지막 대화가 끝났다. 

배는 왕을 태우고 황금의 바다로 나간다. 그것을 배웅하면서 마술사는 중얼거렸다.

"나는 인간의 사랑을 몰라. 아르토리아도 아직 인간의 사랑을 모르지. 그런 두 사람이 사랑에 대해 말하다니, 비인간적인 것에도 정도가 있지. ...아니, 그것도 당연한 결과인가. 인간이 아닌 서로가 인간 흉내를 냈던 거야. 잘 맞았을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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