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하는 밤의 캄페지오

 

네로

이거 전부 거미줄인가...?

 

모든 장소에 거미줄 같은 것이 둘러쳐져 있다.

단순한 거미줄이라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크다.

어젯밤 무르에게서 들은 거대 거미의 얘기가 머릿속에 되살아난다.

 

미틸・히스클리프

.......

 

현자

(그런데 전부 너덜너덜하네...)

 

천장은 간신히 남아 있지만 벽과 바닥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계단은 부서진 데다 깨진 석상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무너졌다기 보다 무언가가 날뛴 듯한 생생함이 있었다.

 

피가로

이 부서진 흔적을 보니 최근에 일어난 일이네.

 

신전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하다. 그저 우리의 발소리만이 섬뜩하게 울리고 있었다.

 

네로

뭔가가 있는 건 확실해. ...현자 씨, 우리에게서 떨어지지 마.

 

얼마 지나지 않아 광장 같이 탁 트인 장소로 나왔다. 굵은 기둥이 천장을 떠받치고 있었고, 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출입문이 무수하게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아무래도 이곳이 신전의 중심부인 듯하다.

 

히스클리프

시노! 있으면 대답해!

 

하지만 부름에 대답하는 목소리는 없다.

 

미틸

없는걸까...

 

낙담하려던 그 순간, 신전을 떠받치고 있던 커다란 기둥 하나가 눈앞에서 기우뚱하고 흔들렸다.

 

현자・미틸

...!

 

루틸・히스클리프

현자 님!

 

레녹스

미틸!

 

히스클리프

《레프세바이블프 스노스》 !

 

루틸

《올토닉 세토마오제》 !

 

루틸이 주변에 마법으로 벽을 두르고, 히스클리프는 내가 맞지 않도록 기둥의 움직임을 재빠르게 바꿨다.

레녹스는 순간적으로 팔을 뻗어 미틸을 끌어당겼다.

기둥은 그대로 땅을 울리며 쓰러졌다. 모래먼지가 자욱하게 떠올라 시야가 차단된다.

 

루틸

콜록... 현자 님, 괜찮으세요?

 

현자

콜록 콜록... 고마워요.

 

무르

.......

 

우리가 기침하는 가운데, 무르는 가만히 고양이처럼 주변을 유심히 둘러보았다.

 

무르

기척이 있어.

 

미틸

네?

 

무르

역시, 근처에 뭔가가 있어.

 

무언가라니...? 라고 물어보려던 찰나.

모래먼지 저편에서 갑자기 그림자가 뛰어들었다.

 

히스클리프

...! 현자 님, 뒤로!

 

시노

...히스?

 

히스클리프

...!?

 

루틸・미틸・네로・레녹스

어?

 

그림자의 정체는 시노였다. 머리에 거미줄이 붙은 채로 우리 일행을 조금 의외라는 듯이 바라본다.

 

현자

시노...!

 

피가로

역시 여기로 왔었구나.

 

시노

그래. 어젯밤 너희를 지켜주겠다고 말했으니까.

괴물이 있든 어떻든 사전조사하러 왔어.

괴물이든 짐승이든, 먼저 쓰러뜨려 두면 너희는 안전하게 신전에 들어올 수 있잖아?

 

네로

그럼 말이라도 하도 가라고. 네가 갑자기 없어지니까 다들 걱정해서...

 

시노

상황만 보고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신전 안쪽에 거미줄이 잔뜩 있는 걸 발견해서. 내친김에 모으고 있었더니 시간을 꽤 잡아먹었어.

 

그리고 시노는 쓰러진 기둥을 내려다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시노

큰 소리가 나서 서둘러 보러 왔지만, 설마 갑자기 기둥이 쓰러질 줄은.

히스, 다친 데는 없어?

 

히스클리프

.......바.

바보야! 내가 할 말이야!

아무 일 없었으니 다행이지만...

 

시노

그렇게 화내지 마. 자 이걸 보라고.

소재를 산더미만큼 모아왔어. 이거면 꿈을 먹는 고리를 만들 수 있겠지.

 

시노는 포대를 들고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폈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에 어깨의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히스클리프

하아...

 

네로

정말이지, 너는...

 

미틸

그래도 다행이에요. 시노 씨가 무사해서.

 

루틸

응, 그러게. 좀 무서운 신전이기도 하고, 만일의 사태가 일어나면 어떡하지 하고...

 

무르

거대 거미에게 잡아먹혀 버렸을지도!

 

시노

이 신전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이왕이면 거대 거미의 머리도 선물로 가져가려고 생각했는데.

 

레녹스

그렇단 건, 거대 거미는 역시 단순히 전설상의 얘기일 뿐이었다는 건가.

 

현자

...그래도, 그럼 아까 무르가 느꼈던 기척은...?

 

갑자기 네로의 예리한 목소리가 울렸다.

 

네로

...윽! 엎드려!

《아도노디스 옴니스》 !

 

현자

!?

 

우물쭈물하며 지면에 엎드린 내 머리 위로 네로의 마법도구가 거칠게 날았다.

완화되었던 공기가 순식간에 긴박해졌다.

 

현자

(여, 역시 괴물이...!?)

 

하지만 신음소리도, 격렬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백지와 같은 침묵이 흐른다.

조심조심 고개를 들자... 눈에 들어온 것은 뜻밖의 광경이었다.

 

브래들리・네로

.......

 

브래들리의 총구가 네로의 머리에, 네로의 커틀러리가 브래들리의 목에.

각각 정면으로 들이대고 있다.

 

네로

...엥?

 

서로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망설이면서 동시에 마법도구를 내렸다.

 

루틸

브래들리 씨, 어째서 여기에...?

 

브래들리

그건 내가 할 말이라고. 결국 너희도 여기로 흘러들어와 무인도 생활을 하게 된 건가.

 

시노・레녹스

너희들'도'?

 

무르

혹시 브래드, 쭉 여기에 있었어?

 

브래들리

쭉? 그렇게 말할 정도로 시간이 지나진 않았잖아.

것보다 뭣 좀 먹을 걸 줘봐. 여기 오고나서 제대로 된 음식을 안 먹어서 배가 고프다고.

 

네로

...너, 까불지 말라고!!

 

브래들리

우왓?

 

네로

망할 덜렁이가 바보같은 짓을 해서 얼마나 걱정했는데!

어디서 뒈지진 않았는지, 마음 놓고 밤에 잠도 못 잤는데! 살아있으면 빨랑빨랑 돌아오라고, 이 멍청아!

 

브래들리

어, 어이...! 그만하라고, 위험하잖아!

 

한 번 되돌렸던 커틀러리가 브래들리를 쫓아다닌다.

네로의 무시무시한 모습에, 그 자리에 있던 마법사들도 기에 눌려 멍하니 입을 열었다.

 

미틸

저기, 저희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잘...

 

시노

어떻게 된 거지? 브래들리는 혼자서 임무를 하러 갔던 게 아니었나?

 

무르

그건 비밀을 감추기 위해 지어낸거야!

사실은 말이야, 브래들리는 미스라의 실수로 마수와 함께 마그마 속으로 처박혔대!

 

루틸・미틸

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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